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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님의 서재입니다.

사람을 읽는 변호사가 세상을 바꿈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팅커테일
작품등록일 :
2023.09.0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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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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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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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 격랑(激浪)속으로

DUMMY

“차근차근 말씀해 보세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서 그런지 내 말이 더욱 또렷하게 들렸다.

정 국장이 자료를 내밀며 말했다.


“저희 사무실 사건이 약 150건인데, 지금까지 80건의 의뢰인들이 계약 해지를 요구했습니다. 물론 수임료도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고요. 그게 며칠 사이 일어난 일이에요.”

“우리 사건의 상대방에 김앤전이 대리인으로 선임됐다고요?”

“네. 굵직한 사건은 물론이고, 소액 사건까지 전부 다요. 김앤전이 소액 사건을 하는 건 저도 처음 봅니다.”


김앤전 같은 대형 법무법인은 최소 수임료가 몇 천만 원이기 때문에 소액 사건은 거의 하지 않는다.

설사 그런 일이 있다 하더라도 기업과 관련된 사건으로 수임료를 충분히 받고 하기 때문에 일반 개인의 소액 사건을 수임하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김앤전이 왜 소액 사건을 해요? 그걸 상대방이 수임료를 주고 했대요?”

“그건 아닐 겁니다. 아마도 우리 사무실을 표적으로 공격하는 것 같습니다.”

“왜요? 우리 사무실한테 몇 번 졌다고 그러는 건가?”


너무 황당해서 나도 모르게 볼멘소리를 냈다.


“이런 추세로 나가다가는 우리 의뢰인 전부 계약 해지를 할지도 모릅니다. 김앤전이 왜 우리한테 이러는지 모르겠네요. 소송에서 몇 번 졌다고 이럴 리는 없는데···.”


정 국장이 초조한지 손가락으로 연신 테이블을 두드렸다.

정 국장의 말을 들은 우리 모두가 굳은 표정이 되었고, 그중에서도 재혁은 유독 심각한 얼굴이었다.

나는 재혁의 심각한 얼굴을 보다 문득 얼마 전 녀석을 찾아왔던 김형모 대표가 떠올랐다.


‘그거야. 김앤전이 이러는 건 재혁과 관련이 있어!’


그렇지만 아무리 김앤전의 행동이 재혁과 관련이 있다고 해도 지금 이 상황에 그걸 밝힐 수는 없었다.

사람들이 다들 걱정하고 있는데 대표인 내가 그들과 똑같이 행동할 수는 없었다.


“우리가 많이 크긴 컸나 보네. 김앤전이 견제를 다 하고 말이야. 너무 신경 쓰지 맙시다. 신광정유에서 성공 보수 4억 들어오면 그걸로 일단 사무실 운영하면 되죠. 우리 못 믿고 가는 의뢰인들 굳이 잡을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수임료까지 돌려 주면 타격이 클 텐데요?”

“까짓거 원하는 대로 해 주세요. 그거 안 돌려 준다고 싸우는 것도 우습잖아요. 괜히 똑같은 사람 되는 것 같고.”


정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고, 강 팀장과 이유리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나, 재혁의 표정은 전혀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 정 국장님하고 강 팀장님은 의뢰인들한테 전화해서 계약 계속 유지할 건지 파악하시고, 우리 믿고 남는 의뢰인들 사건에 집중합시다. 사건 없으면 좀 쉬면 되죠.”

“참! 변호사님.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뭔데요?”

“박 변호사님이 그만둔다고 하셨어요.”


박 변호사라면 이유리를 뽑기 전에 사건 처리를 위해서 뽑았던 경력 변호사였다.

전에 일하던 법인보다 급여도 많이 주고, 담당하는 사건도 줄여 줬는데 왜 그만둔다는 건지 궁금했다.


“박 변호사님이 왜요?”

“그게··· 김앤전에서 스카웃제의가 왔다고···.”

“이야!! 정말 치사하게 구네.”


박 변호사는 김앤전에서 데려갈 만한 인재가 분명 아니었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기는 했지만 그에게 평범한 능력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우리 사무실도 그에게 원하는 건 단지 정형화된 사건의 처리 정도였다.

그때, 묵묵히 듣고 있던 이유리가 끼어들었다.


“사실 저도 김앤전에서 오라고 제의가 왔어요.”

“이 변호사도?”


나를 비롯한 사람들 모두 놀란 눈으로 유리를 쳐다봤다.


“제 능력을 알아보고 그런 제안을 한 것이겠지만, 저는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유리는 초점 잃은 눈으로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서, 그녀의 말이 진담인지 농담인지 구분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웃는 것도 아니고 진지한 것도 아닌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고맙다. 유리야.”

“고맙긴요. 당연히 그래야죠.”


유리와 얘기를 끝낸 후 나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정 국장님하고 강 팀장님은 의뢰인들 계약 유지할 건지 파악해 주시고요. 재혁, 유리는 남은 사건들 최대한 열심히 처리하자고. 이럴수록 더 독하게 해야 됩니다.”

“네.”


정 국장, 강 팀장, 유리는 거의 동시에 대답을 하고 회의실을 나갔다.

하지만, 재혁은 굳은 얼굴을 풀지 않고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재혁에게 시간을 주는 게 맞는 것 같아 나는 서류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섰다.

막 나가려 할 때 등 뒤에서 재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 잠깐 얘기 좀 해!”


***


사람들이 회의실을 전부 나갔는데도 재혁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재혁의 마음을 들어 대강 짐작을 하고 있었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아무것도 모른 척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왜? 무슨 할 얘기가 있어?”

“김앤전이 저렇게 나오는 거 말이야···”


재혁은 시원하게 말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숨기고 싶은 자신의 과거를 내보이기 싫은 그의 마음이 십분 이해되었다.

몇 번이나 입을 움찔거리던 재혁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실은 김앤전이 저러는 거 나 때문에 그러는 것 같아.”

“뭐?”


나는 놀란 표정을 짓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나의 노력이 통한 건지 녀석은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저번에 김앤전 김형모 대표가 찾아왔잖아. 그때 나보고 김앤전으로 들어오라고 했는데, 거절했어.”

“그거야 박 변호사도 그랬고, 이유리도 그랬다잖아. 근데, 왜 너 때문에 김앤전이 그런다는 거야?”


이번에도 내 마음을 들키지 않도록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재혁은 그런 내 표정을 보면서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 재혁이가 진짜로 털어 놓기 싫은 진실을 말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나는 그가 스스로 말을 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었다.

1초의 시간이 1시간처럼 느껴졌다.

째깍. 째깍.

벽에 걸린 시계의 바늘 소리만 회의실의 적막을 깨고 있었다.

그리고, 들리지 않을 것 같았던 재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은 김앤전 김형모 대표가 내 아버지야.”

“어? 뭐···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이번엔 더 난이도가 높았다.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사람처럼 놀란 표정과 함께 손까지 미세하게 떨어 줘야 했기 때문이었다.


“김 대표가 내 아버지라고. 물론 어릴 때 몇 번 본 게 전부지만 말이야.”

“이게 무슨 일이냐? 그럼 아버지 회사로 가야지. 왜 여기 있어?”

“아버지긴 하지만 어린 나와 엄마를 버리고 간 인간이라 난 그 사람을 아버지라고 생각한 적 없어.”


아버지를 그 사람이라고 말하는 걸 봐도 재혁이 얼마나 김 대표를 증오하는지 알 수 있었다.

어느새 재혁의 표정이 괴로움에서 분노로 바뀌어 있었다.


“야! 그래도 아버지는 아버진데, 제안을 받아들여야 되는 거 아니냐!”

“싫어! 싫어!! 그 사람 보는 것도 싫은데 같이 일하라는 건 나더러 죽으라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재혁은 진심으로 싫은지 붉게 충혈될 정도로 눈에 힘을 주었다.

서슬 퍼런 녀석의 기세에 말을 걸기조차 부담스러웠다.

분노하던 재혁은 잠시 후 기분이 누그러졌는지 한결 부드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형. 미안해. 괜히 나 때문에··· 내가 사무실 나가면 다 해결될 거야.”


나는 재혁의 말을 듣자마자 불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야!! 이 새끼야!! 그게 무슨 개소리야!!”


내 화난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재혁은 크게 당황했다.

나는 그런 녀석에게 더 크게 소리쳤다.


“한 번 같이 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같이 가는 거지. 그렇게 쉽게 그런 말을 해!! 죽으나 사나 너랑 나랑은 같이 있는 거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재혁은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감동받은 것 같았다.

사실 나도 내가 이런 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만큼 내가 녀석을 아끼고 있다는 것을 내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 나서야 알았던 것이다.


“혀엉!!”


재혁의 눈은 이미 눈물을 쏟아내기 일보 직전이었다.

여기서 녀석과 눈을 마주치고 있다가는 나도 울어 버릴 것 같아 바로 몸을 돌려 회의실을 나가면서 소리쳤다.


“한 번만 더 그런 소리하면 죽여 버린다!!”


회의실의 문을 쾅 닫고 나온 나를 강 팀장이 존경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봤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서둘러 내 방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뺨을 타고 눈물 한 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


“스님!”


강 팀장은 혜명 스님 앞에 앉자마자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강 형사. 무슨 일인가? 재판도 잘 끝났는데, 무슨 일이 또 생겼나?”


혜명 스님은 손에 들고 있던 염주를 손가락으로 하나씩 굴리기 시작했다.

강 팀장의 허둥대는 모습을 보고 궁금증이 생긴 모양이었다.


“저희 사무실에 큰일 났습니다. 큰일이.”

“이 사람 참. 자네 사무실에 큰일이 났다고 하면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차근차근 설명을 해 보게.”

“맞다! 스님은 모르시지.”


거친 숨을 고르던 강 팀장이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어서 말해 보게.”

“그게 스님. 김앤전 아시죠?”

“법무법인 말인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법무법인?”


혜명스님은 눈을 지그시 감으며 물었다.


“네. 맞습니다. 그 김앤전이 갑자기 우리 사무실 사건 상대방으로 선임을 해서 저희 쪽 의뢰인들이 계약을 해지하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왜 그런다는 건가?”

“그게 우리 사무실이 김앤전이랑 소송을 몇 번 해서 이겼는데, 그것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확실한 건 다들 모르는 눈치입니다.”

“김앤전이 보잘 것 없는 사무실을 공격한다? 어허······.”


혜명스님의 입에서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를 지켜보고 있던 강 팀장이 근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스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이제 시작되는 것 같아.”

“시작되다뇨? 뭐가 말씀입니까?”


시작이라는 말에 강 팀장의 눈이 커졌다.


“천 년을 이어온 악연 말이야. 이번에는 그 한을 풀어낼 수 있을런지······ 나무아미타불.”


혜명스님이 읊조리듯 말하자 강 팀장의 궁금증은 더해졌다.


“도무지 못 알아듣겠네요. 스님 속 시원히 말씀해 주십시오.”

“자네는 말을 해도 모를 게야. 자네도 이미 배에 올라탔으니 같이 격랑(激浪)을 헤쳐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격랑이라고요?”

“그래. 그 어떤 파도보다 더 강하고 험한 파도!!”


스님의 말에 강 팀장은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아무리 무섭게 생긴 깡패나 칼을 든 조폭이 와도 꿈쩍도 안 하는 그였지만 스님의 탄식 같은 말은 무서운 모양이었다.


“스님. 저는 빠지면 안 되겠습니까?”

“허허!! 사람 참. 싸움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자네가 어딜 도망간다고 그러는 게야.”

“그··· 그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변호사님 잘 보필하게.”


스님으로부터 한마디 들은 강 팀장은 민망한지 머리를 긁적거렸다.

물끄러미 강 팀장을 쳐다보던 혜명스님이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격랑을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지.”


말을 마친 스님은 바로 옆에 있던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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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060. 불가능이란 없다 (2) +4 23.11.07 730 22 11쪽
59 059. 불가능이란 없다 (1) +3 23.11.06 765 22 12쪽
58 058. 치킨대전 (4) +3 23.11.05 792 20 12쪽
57 057. 치킨대전 (3) +4 23.11.04 771 18 13쪽
56 056. 치킨대전 (2) +3 23.11.03 784 19 12쪽
55 055. 치킨대전 (1) +4 23.11.02 843 19 11쪽
54 054. 떡볶이와 오뎅 (3) +5 23.11.01 871 22 12쪽
53 053. 떡볶이와 오뎅 (2) +6 23.10.31 916 25 12쪽
52 052. 떡볶이와 오뎅 (1) +4 23.10.30 953 25 13쪽
» 051. 격랑(激浪)속으로 +5 23.10.29 976 30 12쪽
50 050. 김앤전의 반격 (2) +5 23.10.28 971 25 12쪽
49 049. 김앤전의 반격 (1) +4 23.10.27 982 25 12쪽
48 048. 재혁의 비밀 +5 23.10.26 1,006 26 12쪽
47 047. 신참 변호사 이유리 +4 23.10.25 1,033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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