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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읽는 변호사가 세상을 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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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작품등록일 :
2023.09.06 15:27
최근연재일 :
2023.11.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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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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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74. 이슈는 이슈로 덮인다.

DUMMY

“정홍조가 그렇게 말했다면 임영학 후보가 뒤를 봐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 사실이라면 정말 충격적인데요.”


송석호 아나운서가 눈을 크게 뜨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임영학 후보가 조폭 출신 사기꾼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건 톱뉴스 중 톱뉴스였다.

송 아나운서가 몇 번 숨을 고르면서 진정한 뒤 다시 내게 물었다.


“정말로 임영학 후보가 정홍조에게 정치자금을 받았을까요?”

“제가 옆에서 본 게 아니라서 확실하게 말씀을 드릴 수는 없지만, 정홍조가 정치권이나 법조인들에게 로비를 많이 했다고 제게 말했고, 본인 입으로 임영학 후보의 이름을 말했다면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임영학 후보 측은 정홍조씨가 말한 정치자금에 대해서 하루속히 검증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송 아나운서가 서둘러 마무리를 하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어제 김 변호사를 피습한 범인들이 잡혔습니다. 소식은 들으셨나요?”

“그 범인들을 잡은 게 저희 사무실 강호 팀장입니다. 당연히 들었죠.”

“그래요? 같은 회사에 있는 팀장님이 잡으셨다고요?”

“네. 강남경찰서 강력반에서 조사를 받다가 정홍조가 어떤 이름을 중얼거리는 걸 들었습니다. 그걸 단서로 범인을 잡았죠.”

“정말 놀라운 일의 연속이네요.”


수십 년 방송경력이 쌓인 송 아나운서도 살짝 당황한 기색이 보였다.

경찰에 신고를 해서 경찰이 잡은 것도 아니고, 법률사무소 팀장이 직접 범인을 잡아왔다는 건 송 아나운서가 아니라 다른 어떤 사람이 들었더라도 놀랄 만한 일이었다.


“강호 팀장은 어떤 분입니까?”

“대한민국 강력계 형사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조폭들을 너무 거칠게 다뤄서 결국 옷을 벗게 되셨지만, 아마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었다면 아직도 현역으로 활약하셨을 것 같아요.”

“강 팀장이 직접 싸우는 걸 보셨나요?”

“두 번 봤습니다. 저번에 칼에 맞을 때도 10 대 1로 싸웠죠. 아마 제가 아니라 다른 형사분이랑 같이 계셨으면 칼도 안 맞고 쉽게 제압을 하셨을 거예요. 이번에 범인들도 실제 그렇게 잡으셨고요.”


나는 사실 그대로를 말했을 뿐인데, 송 아나운서를 비롯한 사람들은 이미 강호를 싸움의 신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잠깐 입을 벌리고 있던 송 아나운서가 황급히 입을 닫고 인터뷰를 이어갔다.


“잘 알겠습니다. 김 변호사와 강 팀장의 활약으로 범인을 잡았고, 옴니버스 펀드 사건도 수면 위로 드러났는데, 앞으로 옴니버스 수사팀에 바라는 일이 있나요?”

“네. 이 사건은 조폭 정홍조가 사모 펀드를 가장해서 투자자들의 돈을 편취한 사건입니다. 정홍조의 사기 행각에 증권사들이 가담하고 정치인들과 법조인들이 뒤를 봐준 전형적인 대형 게이트입니다. 억울한 투자자들을 위해서라도 한 점의 의혹도 남김 없이 철저히 밝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나는 말을 마칠 때까지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했다.

내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송 아나운서가 마지막 멘트를 날렸다.


“네. 오늘 수고해주신 김일목 변호사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무쪼록 조폭 출신으로 사업가 행세를 했던 정홍조가 법의 준엄한 심판을 받기를 염원하면서 오늘 순서를 모두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송 아나운서의 멘트가 끝나자 조명이 하나둘씩 꺼지면서 방송이 마무리됐다.

진행지를 정리하던 송 아나운서가 일어나 내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김 변호사. 오늘 정말 잘하셨어요. 앞으로 종종 봅시다.”

“네. 감사합니다. 아나운서님.”


송 아나운서는 눈을 찡긋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가 돌아서서 걸어가자 온몸의 힘이 쭉 빠져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았다.

넋 놓고 앉아 있는 내게 피디는 엄지를 척 들어 올려 보였다.

그렇게 나의 첫 방송은 끝이 났다.


***


내가 방송을 탄 다음 날.

확실히 방송의 위력은 신문 기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하는데, 나를 힐끗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어떤 사람은 힐끗 보더니 고개를 젓고, 어떤 사람은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다 뽀글머리를 한 50대 아주머니가 대뜸 다가와 어깨를 쳤다.


“아이고. 변호사님. 맞죠?”

“네. 맞습니다.”


나는 얼떨결에 맞다고 대답했다.


“어쩜 그렇게 말씀을 잘하셔. 실물로 보니 인물도 훤하네.”


아주머니는 마치 내가 아는 사람인 것처럼 주위를 둘러보며 큰소리로 말했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고, 내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자 아주머니는 더욱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그런 놈은 아주 혼이 나야 돼. 훌륭한 일 하는 변호사 양반한테 칼부림이나 하고 말이야. 사형감이야. 사형감!”

“그럼. 그럼. 그런 놈은 사형시켜야지!”


술 냄새가 풀풀 풍기는 할아버지가 아주머니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호응을 받아서 그런지 더 신이 난 아주머니는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자. 우리 훌륭한 일을 하신 변호사님한테 박수 한 번 쳐 줍시다! 박수!”


술 냄새 나는 할아버지를 필두로 사람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붐비는 지하철에서 사람들의 박수를 받고 있으려니 참으로 난감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다가 지하철의 문이 열리자 얼른 내렸다.

목적지가 아니었지만 이 상황을 버티면서 갈 수는 없었다.


“변호사 양반 잘 가요. 파이팅!”


인파에 묻혀 보이지도 않는 아주머니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지하철의 문이 닫혔다.

역에서도 사람들의 흘끔거리는 시선은 여전했다.

다음 열차를 타고 오는 길에도 사람들은 나를 흘끗거렸으나 아주머니와 같이 적극적인 사람은 다행히도 없었다.

교대역에서 내려 사무실로 오는 동안에도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도 이러는데 연예인들은 불편해서 어떻게 사나.’


겨우겨우 사무실에 도착하니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어제 뉴스 잘 봤습니다. 엄청 잘 하시던데요.”


정성식 국장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국장님까지 왜 그러세요? 부끄러워 죽겠습니다.”

“부끄럽긴 뭐가 부끄러워요? 앞으로 방송 출연 많이 하실 텐데 익숙해지셔야죠. 그건 그렇고, 여기 좀 보십시오.”


정 국장이 신문을 내밀었다.


[ 임영학 후보 대선 가도 빨간 불. 정홍조 게이트 새로운 변수로 떠올라 ]


신문 기사의 제목은 매우 자극적이었다.

하지만, 임영학 후보가 정홍조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것이 드러나면 후보 사퇴는 물론이고 감옥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제목이 자극적인 것만큼 큰일인 것도 사실이었다.


“대선이 이제 코앞인데, 정말 밝혀질까요?”

“제가 경험한 바로는 절대 밝혀지지 않을 겁니다.”


내 질문에 정 국장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왜 그렇죠?”

“쉽게 말하면 대마불사죠. 지지율 1위 후보가 잘못한 일을 밝히다가 정말로 대통령이 되면 뒷감당을 어떻게 하겠어요. 대통령은 불소추특권도 있어서 기소도 못하는데. 임기 끝나고 기소하기 전에 담당 검사가 먼저 짤리겠죠. 그런 일을 할 만한 검사는 대한민국에 없습니다.”

“그렇겠군요.”

“그리고, 임 후보 쪽에서 가만두고 보지 않겠죠.”


정 국장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가만히 안 있으면요?”

“뭔가 큰 걸 하나 터뜨릴 겁니다. 이슈를 이슈로 막는 거죠.”

“이슈를 이슈로 막는다?”


그동안 수없이 보아온 일이다.

권력을 잡고 있는 쪽에서 불리한 일이 터질 때 꼭 다른 쪽에서 일이 터지는 것을.

얼핏 보면 우연인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획된 일이란 걸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정 국장의 말처럼 임 후보쪽에서 어떤 이슈를 들고 나올 것인지 궁금해졌다.


***


“기어이 그놈이 일을 저지르는군.”


임영학 후보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후보님. 제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그만···”


말을 마친 김형모 대표가 고개를 떨궜다.

임 후보는 그런 김 대표를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봤다.


“형님. 이게 뭐 김 대표가 잘못해서 그런 겁니까. 다 그 조폭 놈이 벌인 일이죠. 너무 김 대표에게 뭐라 그러지 마세요.”


임 후보가 김 대표를 탐탁지 않게 쳐다보는 모습을 보고 있던 옥 의원은 심기가 불편했다.

김 대표는 엄연히 자신의 친한 친구이고, 자기가 데려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임 후보가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건 옥 의원 꼭 자신을 향해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런 옥 의원의 기분을 알아차렸는지 임 후보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내가 김 대표한테 뭐라고 그러긴 뭘 뭐라 그래? 그냥 정홍조 그놈 생각에 기분이 안 좋아져서 그런 거야. 김 대표도 너무 미안해할 거 없습니다.”

“네. 후보님. 감사합니다.”


그제야 김 대표가 겨우 고개를 들었다.


“일단 언론에 풀렸으니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할 게 아닌가? 가만있다가는 지지율이 떨어질 텐데.”


임 후보가 초조한 눈으로 옥 의원을 바라봤다.

급박한 상황임에도 옥 의원은 여유 있게 미소까지 띠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홍조가 조폭 출신이고 2,000억 넘게 투자자들한테 피해를 입힌 놈인데, 그놈 말을 누가 믿겠습니까?”

“옥 의원. 자네 너무 태평한 거 아닌가? 예전 대통령 선거 때 사기꾼 하나 때문에 우리 당 후보가 떨어진 거 몰라?”


임 후보는 다급했는지 10년 전의 일을 끌어냈다.

10년 전 압도적인 지지율 1위를 달리던 자유대한당의 후보가 병역 브로커의 의혹 제기에 무너졌던 사건.

사실 그 사건으로 자유대한당 후보가 상당히 큰 타격을 받은 것은 맞지만, 커다란 이슈가 몇 가지 있었기에 꼭 그 사건으로 낙마했다고 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 임 후보가 처한 상황에서 그 사건이 안 떠오를 수 없었다.


“하하!! 형님도 참. 그때야 그 사건도 있지만 다른 건도 많았잖아요. 지금은 이거 하나고, 이것도 조금 있으면 묻힐 텐데 뭘.”

“묻히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잠자코 듣고 있던 김 대표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옥 의원에게 말했다.

호기심이 든 건 임 의원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옥 의원의 입을 주시했다.


“저번에 말씀 드렸잖아요. 통일당 최 시장!!”

“아!! 통일당 최 시장이 여비서하고 불륜 관계라는 거 말인가?”

“네. 그 여비서 오늘 JBS에 나갑니다. ‘화제의 인물’에 나갈 거예요.”

“그게 정말이야?”


임 후보는 놀라다 못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쩍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임 후보를 대신해 김 대표가 옥 의원에게 물었다.


“그거 옥 의원 자네 작품이야? 아니면 통일당에서 그런 거야?”

“하하!! 내가 왜 남의 당 일에 관여를 하겠나? 통일당 염 후보가 최 시장한테 밀리니까 수를 쓴 거지.”

“그거 완전 똥볼인데. 통일당에서 임 후보님하고 할 만한 사람은 최 시장이 유일하잖아.”

“그러니까 손 안 대고 코 푸는 거지. 도랑 치고 가재 잡고. 하하하!!!”


옥 의원과 김 대표가 껄껄대며 웃자 입을 벌리고 있던 임 후보가 천천히 입을 다물더니 특유의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대중들은 셀럽들의 추문에 말 그대로 환장한다.

사회적으로 더 중대한 일이 옴니버스 펀드 사건일지라도 그건 최 시장의 추문으로 충분히 덮일 수 있었다.

대선 가도에서 중대한 장애물이 없어졌다고 생각한 임 후보가 드디어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이 사건이 언제 다시 수면에 드러나더라도 그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그의 웃음 소리는 사무실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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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4. 이슈는 이슈로 덮인다. +3 23.11.21 398 16 12쪽
73 073. 범인은 내 손으로 (2) +3 23.11.20 439 18 12쪽
72 072. 범인은 내 손으로 (1) +4 23.11.19 480 20 12쪽
71 071. 결정적 단서 +3 23.11.18 511 18 12쪽
70 070. 동상이몽 +3 23.11.17 511 20 12쪽
69 069. 조폭은 조폭 (2) +2 23.11.16 552 20 12쪽
68 068. 조폭은 조폭 (1) +3 23.11.15 556 19 12쪽
67 067. 옴니버스 펀드 (4) +3 23.11.14 572 19 12쪽
66 066. 옴니버스 펀드 (3) +4 23.11.13 556 14 12쪽
65 065. 옴니버스 펀드 (2) +3 23.11.12 582 18 12쪽
64 064. 옴니버스 펀드 (1) +3 23.11.11 672 20 12쪽
63 063. 승자와 패자 +4 23.11.10 690 18 12쪽
62 062. 숨기려는 자, 밝히려는 자 +4 23.11.09 690 19 11쪽
61 061. 불가능이란 없다 (3) +4 23.11.08 697 18 12쪽
60 060. 불가능이란 없다 (2) +4 23.11.07 720 22 11쪽
59 059. 불가능이란 없다 (1) +3 23.11.06 754 22 12쪽
58 058. 치킨대전 (4) +3 23.11.05 781 20 12쪽
57 057. 치킨대전 (3) +4 23.11.04 760 18 13쪽
56 056. 치킨대전 (2) +3 23.11.03 776 19 12쪽
55 055. 치킨대전 (1) +4 23.11.02 835 19 11쪽
54 054. 떡볶이와 오뎅 (3) +5 23.11.01 862 22 12쪽
53 053. 떡볶이와 오뎅 (2) +6 23.10.31 908 25 12쪽
52 052. 떡볶이와 오뎅 (1) +4 23.10.30 944 25 13쪽
51 051. 격랑(激浪)속으로 +5 23.10.29 967 30 12쪽
50 050. 김앤전의 반격 (2) +5 23.10.28 961 25 12쪽
49 049. 김앤전의 반격 (1) +4 23.10.27 973 25 12쪽
48 048. 재혁의 비밀 +5 23.10.26 997 26 12쪽
47 047. 신참 변호사 이유리 +4 23.10.25 1,021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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