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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님의 서재입니다.

사람을 읽는 변호사가 세상을 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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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작품등록일 :
2023.09.06 15:27
최근연재일 :
2023.11.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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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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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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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93,542

작성
23.09.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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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001. 내가 누구냐고?

DUMMY

판결을 선고하기 전.

재판장은 뱁새눈을 뜨며 나를 힐끗 쳐다봤다.


< 운 좋은 놈!! 김앤전을 이기다니··· 하긴 너 같은 놈이 언제 한 번 이겨 보겠냐!! >


재판장은 입꼬리를 한쪽만 올린 채 웃음을 짓다 방청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후훗! 이겼구나. 그냥 판결이나 하면 될 것이지 비웃기는···’


재판장의 표정을 생각하면 기분이 더러웠으나 어차피 소송에서는 이겼으니 그깟 비웃음쯤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판결을 선고하겠습니다.”


속으로 나를 비웃던 재판장은 짐짓 무게를 잡으며 방청석을 향해 말했다.

내 옆에 있던 김재혁 변호사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재혁아! 잘 나올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걸 형이 어떻게 알아요?”


재혁은 나의 말에도 여전히 굳은 얼굴을 하고 속삭였다.

나와 거의 붙어 지내다시피 하는 재혁이지만 내 능력을 알지 못했다.

하긴 내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해도 믿지 못할 터.

굳이 그에게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든다.”


나는 재혁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재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막 판결문을 읽으려는 재판장 쪽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1심에서는 병원의 진료 시설이 없고, 원무과 등 사무실만 있는 별관 건물에 약국을 개설한 것이 병원의 구내에 약국을 개설한 것이 아니라고 보아 약사법 제20조 제5항에 따라 약국의 개설을 불허한 보건소의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고 판결하였습니다. 이에 대해서 항소인은 진료 시설이 없다고 하더라도 병원의 별관에 약국을 개설한 것은 위 약사법 조항에 위배되어 1심 판결이 취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재판장이 판결문을 읽고 있음에도 원고석에 앉아 있는 병원 약사와 김앤전 변호사의 얼굴에는 전혀 긴장이 배어나지 않았다.

1심에서 승소한 것이 항소심에서 뒤집어질 것이라는 의심은 조금도 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의 이런 자신감의 원천은 상대방이 갓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개업한 새내기 변호사라는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심에서 항소인이 한 주장과 그 증거를 보면 다음과 같은 사정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병원은 크게 본관과 별관의 두 건물로 나뉘어 있는데, 두 건물의 95%를 병원이 사용하고 있는 점, 건물의 소유권이 의약품 도매업체에 있고, 도매업체의 대표가 병원장과 친척 관계에 있는 점, 비록 본관에서 약국으로 가는 통로가 칸막이로 막혀져 있다고는 해도 환자의 입장에서는 병원과 동일한 건물에 있다고 인식되는 점······”


재판장이 판결문을 읽어나갈수록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되자 병원 약사는 의아한 표정으로 김앤전 변호사를 바라봤다.

김앤전 변호사는 예상과는 다르게 전개되는 판결문에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반면, 선고가 시작될 무렵 얼굴이 굳어져 있던 재혁과 우리 의뢰인은 얼굴이 환하게 펴지기 시작했다.


“이 모든 사정을 참작하여 다음과 같이 판결을 선고합니다. 제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제1, 2심 소송비용은 모두 원고가 부담한다.”


판결 선고가 끝나자 재판장은 나를 보며 비웃음을 한 번 날린 뒤 법대를 빠져나갔다.

판사들이 법정 밖으로 나가자 원고석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던 김앤전 변호사가 나를 한번 째려보고 나서 천천히 법정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의 뒤를 똥 씹은 표정을 한 병원 약사가 따랐다.


“변호사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의뢰인이 밝게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병원이 들어선다는 말에 건물을 다 짓기도 전 앞 건물에 약국을 차린 약사였다.

병원이 들어서면 장사가 잘될 것이라 기대했지만, 곧 문제가 생겼다.

병원 건물 별관에 약국이 들어선 탓이었다.

덕분에 눈앞이 캄캄해져 며칠 밤낮을 잠을 못잤다고 했다.


“아휴 보건소에서 약국 개설허가를 안 내줘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소송까지 할 줄은 몰랐네요··· 그것도 김앤전까지 쓰면서 말이죠.”


아마 약사는 천국과 지옥을 몇 번이나 오간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를 새내기 변호사인 나와 재혁이 구원해 준 것이다.

약사는 손에 힘을 꽉 주며 말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감사는요 뭘. 다 순리대로 된 거죠?”

“아닙니다. 아니에요. 변호사님들이 수고하셔서 좋은 결과 나온 거 다 알고 있습니다.”


손을 꽉 부여잡은 의뢰인은 여전히 활짝 웃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그의 얼굴에 미묘한 표정 변화가 일어났다.

입은 여전히 웃고 있었으나 눈은 그의 심경 변화를 그대로 드러내며 굳어졌다.

그리고, 나에게만 들리는 그의 속마음.


< 아··· 씨··· 성공보수 깨지게 생겼네. 좀 깎아 달라고 해볼까? >


***


서울고등법원 청사 앞.

병원 약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김앤전 변호사의 휴대폰이 울렸다.


- 정 변호사. 병원장 사건 어떻게 된 거야? 정말로 깨진 거야?

- ···네. 대표님.


정 변호사는 옆에 있던 병원 약사의 눈치를 보며 힘없이 대답했다.

그는 병원 약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몇 걸음 정도 거리를 뒀다.


- 어쩌다 그렇게 됐어? 나보고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랬잖아?

- 그게··· 잘 진행되다가 상대편에서 병원 약사가 건물주의 바지라는 사실을 알아내는 바람에······.

- 그걸 어떻게 알아?! 전혀 드러날 수가 없는 일인데!!


김앤전 김형모 대표는 격앙된 듯 소리를 높였다.

정 변호사는 행여 김 대표의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을까 약사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말했다.


-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두 번째 변론기일부터 갑자기 약사와 병원장과의 관계를 말하는데, 저도 정말 당황했습니다.

- 약사는 뭐래?

- 전혀 말한 적이 없답니다.

- 뭐야 그럼!! 상대방이 점쟁이라도 만나서 알아봤다는 거야? 그걸 어떻게 알아?


김 대표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으나 정 변호사는 대답할 거리가 마땅찮아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한참을 씩씩거리던 김 대표가 다시 말을 이었다.


- 정 변호사. 병원장하고 내 관계 잘 알지?

- 네. 대표님.

- 병원장한테 가서 재판 결과에 대해 브리핑하고, 어떻게든 우리한테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조치하고 와. 나중에 내가 만나서 잘했는지 확인할 거니까.

- 네. 알겠습니다.


정 변호사는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을 뱉어냈다.

한숨짓는 변호사의 심정을 이해해 줄만도 했지만 김 대표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 뭘 잘했다고 한숨을 쉬고 그래? 겨우 사법연수원 수료한 애송이들한테 지고선.

- 아··· 네··· 죄, 죄송합니다.


이렇게까지 몰리니 정 변호사의 눈시울이 저도 모르게 붉어졌다.


- 그나저나 상대방 변호사가 누구라 그랬지?

- 법률사무소 ‘일혁’의 김일목, 김재혁입니다.


정 변호사는 울먹이는 목소리를 억지로 누르며 겨우 대답했다.

그런데, 휴대폰 너머 김 대표의 목소리가 좀 전과 다르게 무겁게 깔렸다.


- 김일목하고 또 김재혁이라고 했나?

- 네. 김일목은 세연대 출신이고, 김재혁은 서울대 법대 나온 친구입니다. 김재혁은 사법연수원 성적도 좋아서 충분히 판사를 할 수도 있었다 그러더라고요.

- 그래. 알았네. 어쨌든 수고했어.


말을 마친 김 대표는 서둘러 통화를 종료했다.

갑작스런 그의 태도 변화에 정 변호사는 의아했지만, 병원장을 만나러 갈 생각에 금방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런 정 변호사를 지켜보고 있던 병원 약사는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는 그를 보며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고 있었다.


***


“형. 아까 승소할지 어떻게 알았어요?”


재혁이 불판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을 뒤집으며 물었다.


“느낌이 왔지. 그리고 우리한테 유리한 증거도 많이 나왔었잖아.”

“그렇긴 하죠. 근데, 형은 어떻게 약사가 건물주 바지인 걸 알았어요? 난 생각도 못했는데······”

“아··· 그거? 우연히 약사가 건물주한테 인사를 하는 장면을 보고 촉이 좀 왔지.”


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약사가 건물주의 바지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다른 이유가 있었다.

1심에서 보건소의 약국 개설 불허 처분이 취소되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의뢰인이 찾아왔을 때 나는 제일 먼저 병원 별관에 있는 약국을 찾아갔다.

병원 약국은 1심에서 승소 판결이 선고되자마자 개국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는 상황이었다.

거기서 인부들에게 지시를 하고 있던 병원 약사에게 나는 이렇게 물었다.


“젊으신데 성공하셨나 보네요? 이렇게 큰 약국을 다 여시고.”


그러자 병원 약사는 나를 위아래로 훑더니 가소로운 눈빛을 보내며 대답했다.


“성공은 뭘··· 그냥 벌어 둔 것 하고 대출 받아서 하는 거죠.”


하지만, 약사의 말과 그의 속마음은 달랐다.


< 별놈 다 보겠네. 내가 무슨 돈이 있어서 이렇게 큰 약국을 차리냐? 사장님이 차려 주니까 하는 거지. >


나는 그때 병원 약사가 누군가의 바지임을 알아챘다.

그리고, 나는 약국 건너편 카페에서 약사가 속으로 생각했던 그 ‘사장님’이 오길 기다렸다.

한 시간쯤 지났을 무렵 마침내 그 사장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장님이 나타나자 약사는 물론이고 건물의 관리인까지 그 사장님에게 인사를 했다.

약사뿐만 아니라 건물의 관리인까지 인사를 하는 사람.

그 사장님이 건물주일지도 모른다는 것은 쉽게 추론이 가능한 일이었다.


“그랬구나. 형은 참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야.”


재혁이 삼겹살 한 점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뭘 몰라?”

“연수원 다닐 때부터 형은 남들이 다 모르는 걸 혼자 알곤 했잖아?”

“내가 그랬나? 일단 한잔 하자”


나는 재혁의 다음 말을 막기 위해 얼른 잔을 들어 그에게 술을 권했다.

하지만, 내 바람과 달리 재혁의 말은 술을 먹고 나서도 이어졌다.


“기억을 잘 못하나 봐? 형이랑 민사 모의재판할 때 나랑 붙었었잖아?”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 나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그날의 일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재혁의 마음을 읽고 ‘혼동의 예외’ 판례를 주장해 교수님에게 칭찬을 들었던 그 때를.


“아아!! 형 진짜 모르는 거 맞아요? 그날 교수님한테 칭찬받고 기분 좋아서 같은 조 사람들한테 술 샀잖아.”

“아! 맞다. 그랬지!”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재혁이 기억하는 것처럼 나는 그날 교수님께 칭찬을 받고 재혁을 비롯한 같은 조 몇몇에게 술을 샀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날 재혁은 평소와는 달리 술을 엄청나게 마시고 내게 불만 섞인 투정을 부렸었다.

내가 그 ‘혼동의 예외’ 판례를 알고 있을지 전혀 몰랐다고 하면서 말이다.


“하여간 형은 남다른 면이 있는 거 같아요. 어떨 때 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다가도 또 어떨 때 보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기도 하고······”


재혁의 넋두리를 들으며 나는 아무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재혁은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초점 풀린 눈을 들이대며 다시 물었다.


“형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에요? 말 좀 해 봐요?”


민사 모의재판이 있었던 그 날처럼 재혁은 내게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재혁에게 빙긋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누구냐고?”


재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술에 취했는지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그대로 꼬꾸라졌다.

난 녀석의 정수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회상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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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056. 치킨대전 (2) +3 23.11.03 783 19 12쪽
55 055. 치킨대전 (1) +4 23.11.02 843 1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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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053. 떡볶이와 오뎅 (2) +6 23.10.31 916 25 12쪽
52 052. 떡볶이와 오뎅 (1) +4 23.10.30 953 25 13쪽
51 051. 격랑(激浪)속으로 +5 23.10.29 975 30 12쪽
50 050. 김앤전의 반격 (2) +5 23.10.28 970 25 12쪽
49 049. 김앤전의 반격 (1) +4 23.10.27 981 25 12쪽
48 048. 재혁의 비밀 +5 23.10.26 1,005 26 12쪽
47 047. 신참 변호사 이유리 +4 23.10.25 1,031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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