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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읽는 변호사가 세상을 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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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작품등록일 :
2023.09.06 15:27
최근연재일 :
2023.11.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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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3,542

작성
23.10.2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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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049. 김앤전의 반격 (1)

DUMMY

아버지!

재혁은 분명 김 대표를 아버지라고 했다.


“오빠! 왜 그래요? 갑자기 뭐에 놀란 사람처럼···.”


유리가 내게 말하자 재혁이 돌아봤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


“아냐. 아무것도 아냐. 근데, 너 진짜 김 대표하고 친척이야?”

“아··· 아뇨. 그냥 대학 다닐 때 김앤전에서 인턴을 한 적이 있어서. 그때 알게 됐어요.”


뻔한 거짓말이었다.

김앤전의 대표가 인턴까지 만날 이유도 없고, 만났다 하더라도 의례적으로 잠깐 만났을 텐데 이름을 부를 만한 사이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유리가 재혁을 말을 듣고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구나. 그래도 김형모 대표하고 재혁이 너 되게 닮았어.”

“저는 그런 말 처음 듣는데··· 뭐 그게 중요한가요? 사건 얘기나 하죠.”


재혁은 유리의 말을 얼버무리고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쉽게 넘어갈 수 없었다.

재혁은 어머니와 함께 강남에 산다고 했다.

학창 시절도 어려움 없이 자랐고, 지금도 딱히 돈 걱정은 없는 것 같았다.

김 대표가 재혁의 아버지라면 재혁의 유복한 형편이 전부 이해된다.

그런데, 사법연수원을 수료할 때 녀석의 행동은 전혀 설명이 되지 않는다.

판·검사를 가도 충분한 성적이고, 아버지가 있는 김앤전에 가더라도 낙하산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 만큼의 실력이었다.

그런데, 그런 꽃길을 마다하고 나와 함께 가시밭길을 걷는 이유는 뭔가.

풀리지 않는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혔다.


“오빠!!”


유리가 큰소리로 나를 불렀고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어··· 왜? 왜?”

“정말 이상하시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시는 거예요?”

“아··· 아무것도 아니야. 사건 생각 좀 하느라고.”

“에이. 아닌 것 같은데?”


유리는 뭔가 촉이 왔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도 유리가 촉을 발동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맞출까 봐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갔다.

유리는 잔뜩 긴장한 나를 보며 배시시 웃었다.


“오빠! 좋아하는 여자 생겼죠? 남자들은 연애 시작하면 꼭 저렇더라.”

“하하!! 내가 무슨 여자를··· 만난다고.”


유리의 촉은 전혀 엉뚱한 곳을 짚었다.

그녀의 엉뚱한 얘기에 나는 물론이고, 긴장하고 있던 재혁까지 풀어진 것 같았다.

재혁과 김 대표의 가족사는 다음에 캐기로 하고 일단 혼란스러운 상황은 수습해야 했다.


“자. 이제 사건 얘기 좀 해 볼까?”


내 말에 재혁과 유리는 기록을 보기 시작했다.

우리 세 사람은 앞으로 재판에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한참 동안 토론했다.

유리의 맹활약 덕분에 재판은 우리 쪽에 유리할 것으로 생각됐다.


***


사무실로 돌아오는 내내 김형모 대표의 머릿속에 재혁의 했던 한 마디가 맴돌았다.


[우리 사무실 에이스는 내가 아니라 김일목 변호사입니다.]


‘김일목이 에이스라고? 겨우 세연대나 나온 놈이 에이스라니?’


김형모 대표는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울대 법대를 나오고 사법연수원을 3등으로 수료한 재혁이 치켜세우는 놈이라면 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복잡한 생각 와중에도 김 대표의 머릿속에는 선명한 그림이 있었다.


‘다니던 사무실이 망하면 지가 어디로 가겠어? 가는 곳마다 망하면 결국 나한테 올 거야.’


시실 김형모 대표의 재혁에 대한 생각이 바뀐 건 최근의 일이었다.

김형모 대표는 재혁 말고 본처와의 사이에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었다.

딸은 어렸을 적부터 공부와 담을 쌓고 지내 미국과 영국으로 유학을 보냈지만 겉멋만 들어 돈만 축낼 뿐이었다.

그나마 아들은 공부에 관심이 있어서 서울에 있는 중위권 대학 법학과를 나왔는데, 10년 동안 사법시험에 도전했으나 실패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 겨우 미국 변호사를 땄다.

아들을 김앤전에 데려왔으나 자존심이 강한 김앤전 변호사들은 아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매정하게 내쳤던 재혁이 김 대표를 닮았던 것이다.


‘잘 자랐어. 내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아.’


좀 전에 김 대표에게 당신이라고 하면서 대든 재혁이었지만 김 대표의 애틋한 마음은 더 쌓여만 갔다.

그러는 사이 김앤전 사무실이 있는 경복궁 옆 빌딩에 도착했다.

김 대표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서둘러 대표실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에 타기 전 미리 하태현 실장에게 대표실로 오도록 지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대표실 문을 열자 미리 와 있던 하태현 실장이 깍듯하게 인사했다.


“어. 하 실장. 법원행정처 내부 정보 좀 알아낼 수 있나?”

“법원행정처라면 법원행정처장 지냈던 기용덕 대법관이 있습니다.”

“행정처장까지는 필요 없고, 전산 자료가 좀 필요한데···.”

“그러시다면 행정처 고위공무원 출신도 있기는 있습니다.”

“어. 그 사람이 좋겠네.”


김 대표가 흡족한 표정으로 하 실장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하 실장은 갑자기 왜 그런 사람을 찾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갑자기 왜 법원행정처 자료가 필요하다고 하시는지···?”

“우리 사무실에 사람을 하나 데려와야겠는데, 그놈을 데려오려면 그놈이 다니는 사무실을 없애야 하거든.”

“사람을 데려오는데 사무실을 없앤다고요? 그럴 정도로 공을 들여서 데려올 사람이 누굽니까?”

“자네는 몰라도 돼.”


김 대표가 숨을 길게 내쉬며 나직하게 말했다.

눈치 빠른 하 실장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그의 의중을 헤아려 보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하 실장은 김 대표가 말을 하기 전 먼저 본인의 추측을 밝혔다.


“혹시 법률사무소 일혁 관련 자료를 원하시는 건가요?”

“허헛!!”


허를 찔린 사람처럼 김 대표는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하하!! 역시 자네는 눈치가 빨라. 일혁이 대리인으로 선임된 사건을 전부 뽑아 와. 그 사건들 상대방 대리인으로 우리 사무실이 전부 나간다.”

“김앤전이 선임되자마자 일혁한테 맡긴 의뢰인들이 거의 떨어져 나가겠네요.”

“그렇지. 바로 그걸 노리는 거야.”


김 대표가 흡족한 얼굴로 하 실장을 바라봤다.

그래도 하 실장은 굳은 얼굴을 풀지 않고 말을 이었다.


“대표님. 저희 김앤전이 대한민국 최고의 법무법인인데, 애송이들 상대로 이런 일을 하면 업계에 소문이 날까 두렵습니다.”

“하 실장. 나는 이런 자네의 충성심을 높게 사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회사는 내 회사고, 내가 결정하는 대로 가는 거야. 내가 결정을 한 이상 자네는 그걸 충실하게 이행해 주기만 하면 돼.”


표정 변화 없던 하 실장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

하지만, 하 실장은 이내 흔들리던 눈빛을 바로 하고 고개를 90도로 숙였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지시하신 대로 자료 뽑아 놓겠습니다.”


김 대표는 하 실장에게 나가라고 손짓했고, 하 실장은 성큼성큼 대표실을 나섰다.

대표실을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김 대표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


신광정유 사건의 두 번째 변론기일이 열리기 일주일 전에 우리는 몇 번의 토론을 거친 끝에 주장을 정리한 준비서면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그리고, 변론기일이 열릴 때까지 상대방 대리인인 정승우 변호사는 준비서면을 받고 반박 서면을 제출하지 않았다.

마침내 두 번째 변론기일이 열렸다.


“변론기일 전 피고 신광정유 측에서 준비서면을 제출하셨네요. 어떤 내용이죠.”

“원고 신광건설은 ‘신광’ 상표를 단독으로 취득했고, 상표권을 등록할 때 명의 신탁을 했다고 하면서 그 증거로 상표 사용 계약서를 들고 있지만, 상표 사용 계약서는 상표권 등록 이후 작성된 문서이므로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자 주심인 우동 판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 오오!! 대단한데. 이렇게 되면 원고 대리인이 급해지겠어. >


우동 판사의 마음을 듣고 나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자 다급하게 된 원고 대리인 정승수 변호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피고 측 주장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미 상표 사용 계약서 상 원고 신광건설이 상표권의 실 소유자임을 확인한 이상 상표권 등록을 명의 신탁으로 봄이 합당합니다.”

“글쎄요. 원고의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만 상표 사용계약서가 먼저 작성된 것이 아니어서 좀 그렇네요.”


정 변호사의 주장에 여자 재판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재판장에게도 우리 주장이 먹히기 시작했다는 행동으로 보였다.

이제 원고 측을 좀 더 힘들게 만들 주장을 펼칠 때가 됐다.


“원고는 계속 상표 사용 계약서를 상표 실 소유의 근거로 주장하지만, 사실 계약서의 작성 경위로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건 어째서죠?”

“상표 사용계약서의 작성 시기는 1997년 12월입니다. 1997년 11월에 IMF에 구제금융 신청을 하고 신광건설은 자금 압박을 견디지 못해 부도를 낼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것과 이 상표 사용계약서가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원고 측 정 변호사가 ‘이건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나를 봤으나, 그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재판장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와 정 변호사를 번갈아 쳐다봤다.


“계속 말씀해 보세요.”

“상표 사용 계약서를 작성할 당시 원고 신광건설은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자금 사정이 좋던 신광정유가 자금을 빌려주려고 했는데, 계열사에서 그냥 돈을 빌리면 형사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고, 그 자금 역시 부채로 잡히기 때문에 상표 사용료 형식으로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이런 계약을 체결한 겁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심 우동 판사는 우리가 제출한 준비서면을 읽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준비서면과 증거를 본 우동 판사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나와 이유리를 쳐다봤다.


< 판결문 쓰기 쉽게 잘 정리했네. 생각보다 실력이 좋군. >


‘좋아! 원고 측에서 결정적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이 사건은 이겼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 표정 관리를 했다.

이제 평정심을 잃은 원고 대리인 정 변호사가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IMF로 자금 압박을 겪던 회사는 신광건설뿐만이 아닙니다. 니라 전체가 부도 위기를 얘기했는데, 우연히 그때 상표 사용계약이 체결됐다고 해서 자금 지원 목적의 계약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가만히 보고 있던 이유리가 참전했다.


“사실 이 계약서를 보면 주된 내용은 상표권의 소유나 명의신탁을 밝히는 게 아니라 사용료를 통한 자금 지급에 목적이 있다는 걸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이 계약서가 상표권 소유권 확인이 주가 아닌 계약이라 이 계약서에서 소유권이 신광건설에 있다고 밝혔어도 최종적인 확인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이유리의 변론은 아주 명쾌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정 변호사는 손을 부들부들 떨 뿐 반박을 하지 못했다.

재판장은 정 변호사의 말을 기다리다 아무 말이 없자 재판을 끝내려 했다.


“더 이상 할 거 없으면 변론 종결하고 다음 달에 판결을 선고하겠습니다.”

“재판장님. 한 기일만 더 주시면 저희가 증거를 찾아서 제출하겠습니다.”

“그럼 일단 선고 기일 지정할 테니까 제출되는 증거 보고 변론 재개 결정하겠습니다.”


재판장은 정 변호사의 요청을 거절하고 변론을 종결했다.

나와 유리가 일어나 재판부에 인사를 하고 법정을 빠져나갈 때까지 정 변호사는 원고석에 앉은 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음 재판을 하려고 기다리던 변호사가 정 변호사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서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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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063. 승자와 패자 +4 23.11.10 699 18 12쪽
62 062. 숨기려는 자, 밝히려는 자 +4 23.11.09 699 19 11쪽
61 061. 불가능이란 없다 (3) +4 23.11.08 706 18 12쪽
60 060. 불가능이란 없다 (2) +4 23.11.07 730 22 11쪽
59 059. 불가능이란 없다 (1) +3 23.11.06 765 22 12쪽
58 058. 치킨대전 (4) +3 23.11.05 792 20 12쪽
57 057. 치킨대전 (3) +4 23.11.04 771 18 13쪽
56 056. 치킨대전 (2) +3 23.11.03 784 19 12쪽
55 055. 치킨대전 (1) +4 23.11.02 843 19 11쪽
54 054. 떡볶이와 오뎅 (3) +5 23.11.01 871 22 12쪽
53 053. 떡볶이와 오뎅 (2) +6 23.10.31 917 25 12쪽
52 052. 떡볶이와 오뎅 (1) +4 23.10.30 953 25 13쪽
51 051. 격랑(激浪)속으로 +5 23.10.29 976 30 12쪽
50 050. 김앤전의 반격 (2) +5 23.10.28 971 25 12쪽
» 049. 김앤전의 반격 (1) +4 23.10.27 983 25 12쪽
48 048. 재혁의 비밀 +5 23.10.26 1,006 26 12쪽
47 047. 신참 변호사 이유리 +4 23.10.25 1,033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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