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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님의 서재입니다.

사람을 읽는 변호사가 세상을 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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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작품등록일 :
2023.09.06 15:27
최근연재일 :
2023.11.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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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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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54. 떡볶이와 오뎅 (3)

DUMMY

떡볶이 사건의 마지막 변론기일은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렸다.

떡볶이집과 오뎅집이 있는 상가 건물이 마포구에 있었고, 서부지방법원의 관할이 마포구를 비롯한 용산구, 은평구, 서대문구였기 때문이다.

법정에 들어서자 재판장 석에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판사가 앉아 있었다.

우리 차례가 되자 재판장이 나와 재혁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피고 측 준비서면 제출하셨네요. 내용 요약해서 말씀해 주시죠.”

“네. 지금까지 원고 측은 저희가 만든 음식이 떡볶이에 해당하여 동일 업종이므로 상가 규약에 따라 영업이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주장하는 떡볶이와 오뎅의 구별법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 피고 측 주장입니다.”

“어떻게 맞지 않는다는 거죠?”

“원고 측은 저희가 만든 음식이 외관상 떡볶이와 비슷하다고 해서 떡볶이에 해당한다고 하였으나 떡볶이인지 아닌지는 주된 재료가 무엇인지, 최초 어떤 음식을 만들기 위해 조리된 것인지를 종합하여 판단하는 것이 맞습니다.”


재판장은 내가 변론을 하는 사이 우리가 제출한 준비서면을 읽어보고 있었다.

준비서면을 읽던 그녀가 고개를 들고 나를 보는 순간 속마음이 내 귀에 들려왔다.


< 으음··· 이게 훨씬 더 설득력이 있네. 김앤전 주장은 너무 허접해! >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녀의 속마음과 전혀 달랐다.


“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원고의 메뉴와 피고의 메뉴가 외관상 비슷해 보이기는 하지만 원고의 메뉴는 떡볶이에 사이드 재료로 오뎅을 넣은 것이고, 저희 메뉴는 오뎅을 조리한 이후 떡볶이 국물을 만들어 위에 부어 주는 방식이라 주재료와 조리 방식에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의 있습니다.”


원고석에 앉아 있던 김앤전의 고 변호사가 손을 들었다.


“말씀해 보세요.”


재판장이 고 변호사에게 손짓을 하며 발언 기회를 줬다.


“사실 주재료나 조리 방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음식을 소비하는 소비자 입장에서 외관상 비슷하다면 그 음식을 동일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복지리나 아구찜 같은 음식에도 주재료의 양이 부재료의 양보다 적지만 그걸 아니라고 부정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죠.”


아구찜이라는 말이 나오자 재혁의 눈에 불꽃이 일었다.

며칠 전 일어났던 ‘신해아구찜’ 참사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원고의 주장은 일반적인 상식에 어긋납니다. 어떤 음식을 먹을 때 그 재료의 이름이 붙은 음식이라면 적어도 그 음식의 주재료가 상당 부분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입니다. 오징어볶음이나 제육볶음에 오징어나 돼지고기가 조금밖에 들어 있지 않다면 그걸 그 음식이라고 부를 수 있나요?”

“피고 측은 요리의 요건을 너무 편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편협하긴 뭐가 편협합니까? 아구찜의 경우도 그래요. 아구를 그렇게 조금만 넣고 콩나물만 들입다 때려 부은 게 정말로 아구찜이라고 생각하고 불만이 없으세요?”

“······”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재혁의 반격에 상대방 고 변호사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재혁의 모습을 보고 있던 재판장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배어 나왔다.


“자. 자. 피고 측 김재혁 변호사님은 진정하시고요. 김 변호사님이 뭘 말하려고 하는지는 잘 알겠습니다. 원고 측은 추가적으로 할 말이 있으신가요?”


고 변호사는 잔뜩 심통이 난 얼굴로 씩씩거릴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별말이 없자 재판장은 원고와 피고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이걸로 변론을 종결하고 판결은 2주 뒤에 선고하겠습니다.”


일어나서 재판장에게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데, 원고석에 있는 고 변호사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앉아 있었다.

재혁과 함께 법정을 나가던 나는 고 변호사에게 다가가 말했다.


“변호사님. 수고하셨습니다.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내 말에 고 변호사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약하게 고갯짓을 했다.

그에게 좋은 결과를 바란다고 했지만 말을 한 나나 말을 들은 고 변호사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대강 감은 잡혔을 것이다.

법정을 나오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


서울 강남 테헤란로 신광정유 그룹 회장실.

손종민 회장은 접대용 쇼파에 앉아 맞은편에 앉은 정장 차림의 노신사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손 회장이 노신사에게 물었다.


“신광 리테일에 납품을 원하신다고요?”

“네. 저희도 프랜차이즈 사업 외에 직접 소매업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회장님을 찾아왔습니다.”

“치킨 업계에서는 배가 치킨이 1위지요?”

“네. 회장님 사업에 비하면 새발에 피죠. 하하!!”


노신사는 치킨프랜차이즈 배가 치킨의 창업주 배철호 회장이었다.

대한민국 외식업의 대표 업종이라 할 수 있는 치킨 산업은 배철호 회장 이전과 이후로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배 회장 이전에도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있기는 하였으나 지역에 사업을 하는 정도였는데, 배 회장이 배가 치킨을 전국 규모의 프랜차이즈로 키워낸 이후 치킨 산업의 규모가 눈에 띄게 커지게 되었다.

이후 배가 치킨의 아성을 넘기 위해 많은 업체들이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전부 실패했고, 오히려 배가 치킨에게 가장 위협적인 업체는 배 회장이 두 번째로 만든 회사인 메가 치킨이었다.

메가 치킨은 배 회장이 세컨드 브랜드로 런칭한 이후 사업이 급속도로 커져 업계 2위가 되었으나, 배 회장이 잠시 자금 압박에 시달릴 때 사모 펀드에 매각했다.


“아니에요. 저희 사업들 중에 대한민국에서 일등을 하는 업체가 하나도 없는데, 배 회장님이 만든 브랜드가 치킨 업계에서 1, 2위를 하니 저보다 뛰어나신 거죠.”

“과찬이십니다. 그러면 뭐합니까? 지금 그 일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는데···.”

“왜요?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미간을 찡그린 배 회장의 얼굴을 보며 손 회장은 걱정 반, 호기심 반의 마음으로 물었다.

말을 하기 그런지 배 회장은 몇 번이나 입술을 움찔거렸다.

배 회장이 그러니 손 회장은 무슨 일인지 더 알고 싶어졌다.


“그러지 말고 말씀해 보세요. 혹시 제가 도움이 될지 압니까?”

“뭐 그리 대단한 거는 아닙니다. 저희 회사에서 출시한 제품 중에 프레쉬 후라이드치킨이라는 게 있습니다.”

“아! 그거요. 저희 아들 녀석이 좋아하는 제품인데.”

“그러시군요. 하여간 저희 제품 중에 판매량으로 따라갈 제품이 없을 정도인데, 요즘 들어 판매량이 급감해서 원인을 알아본 결과 메가 치킨에서 출시한 제품이 저희 제품을 따라한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말을 마친 배 회장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이 일로 속앓이를 꽤 많이 한 것 같아 보였다.


“그렇군요. 그러면 메가 치킨 쪽에 뭔가 조치를 취하셔야죠?”

“안 그래도 그러려고 하고 있는데, 그쪽 일을 봐주고 있는 게 하필이면 김앤전이라서.”

“그게 어때서요? 다른 데도 많은데 퍼시픽도 있고.”

“문의를 했는데, 김앤전도 부담스럽고, 이런 레시피 관련 침해는 어렵다고 해서.”


밝아졌던 배 회장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지켜보던 손 회장은 뭘 그런 일로 걱정하냐는 듯 껄껄 웃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회장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거 처리해 줄 로펌 있습니다.”

“그게 어딘데요?”

“법률사무소 일혁이라고? 젊은 친구들인데 아주 일처리가 깔끔합니다.”

“일혁이라고요? 처음 듣는데?”


배 회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들어보실 거예요. 아직 유명해지기 전이니까. 그 친구들 나이는 어리지만 충분히 능력을 가진 친구들입니다. 그러니까 저희 그룹에서 법률 자문 계약도 줬죠.”

“아!! 그렇습니까?”


배 회장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신광정유 그룹에 법률 자문을 한다니 신뢰가 확 오는 모앙이었다.


“한번 가서 말씀이나 나눠 보세요. 들어보고 판단하시면 될 겁니다.”

“네. 회장님. 감사합니다!!”

“그럼 사업 얘기 마저 할까요?”


두 사람은 편의점에 납품할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배 회장은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손 회장에게 제품을 설명했다.

때로는 심각하게, 때로는 웃으며 그들의 대화는 한동안 이어졌다.


***


“판결을 선고하겠습니다.”


재판장이 판결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원고 대리인인 김앤전의 변호사들은 출석하지 않았다.

판결 선고기일에 출석할 의무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들이 나오지 않는 건 선고 결과를 어느 정도 예상했기 때문일 것이다.


“원고는 피고가 동종 업종의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상가 관리 규약을 위반하여 원고와 동일한 영업인 떡볶이를 만들어 판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피고가 만든 제품이 자신들의 제품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동일하다고 주장합니다.”


재판장이 비어 있는 원고석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에 대해 피고는 원고와 피고의 제품에 들어간 주재료의 구성이나 조리 방법을 볼 때 원고의 제품과 피고의 제품이 구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판단해 보면 다음과 같은 이유로 원고의 청구는 인정될 수 없습니다. ······”


재판장의 판결 이유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이미 결론이 난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나와 재혁은 부담 없이 서로를 보며 웃고 있었다.

드디어 판결 이유가 끝나고 재판장이 우리를 보며 주문을 낭독했다.


“주문.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 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원고 패소 판결입니다. 원고 측에서 오늘 안 나왔기 때문에 항소에 대해 따로 고지는 하지 않고, 판결문은 원고에게 직접 송달하겠습니다. 다음 사건.”


법정을 나오자마자 재혁이 웃으며 말했다.


“이번 사건은 형 아이디어 덕분에 이겼네. 근데, 그걸 어떻게 생각해 낸 거야?”

“네가 신해아구찜에서 다 말해 줬잖아?”

“뭐 내가?”


재혁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래. 네가 거기서 아구가 안 들어간 건 아구찜도 아니라고 소리쳤잖아. 그거 듣고 느낌이 빡 왔지.”

“우와!! 그런데, 왜 나는 그런 생각을 못했지?”

“그야 네가 그때는 너무 열 받아서 다른 생각을 못 했겠지. 하여간 이 사건은 네가 크게 한 몫한 거야.”

“후훗!! 그런가?”


재혁은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재혁아. 이긴 기념으로 떡볶이나 먹으러 갈까? 오뎅 많이 넣어서.”

“무슨 소리야? 우리 의뢰인이 오뎅 가게하는데 당연히 오뎅 먹으러 가야지. 떡볶이 국물도 달라고 하고.”


우리가 웃으며 법원 정문을 막 나가려는 찰나 휴대폰의 진동음이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정성식 국장이었다.


-변호사님. 손님이 오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손님이요? 누구신데요?”

-그게. 배가 치킨 배철호 회장이라고 그러시던데요.

“배가 치킨이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고, 재혁은 물론 지나가던 사람들까지 나를 쳐다봤다.


-네. 배가 치킨이요. 맨날 TV에서 광고하는 거기.

“근데, 거기서 왜 저를 만난다고?”

-신광정유 손종민 회장한테 소개를 받으셨대요. 하여간 빨리 오세요.


전화가 끊어지고 나는 고개를 돌려 재혁을 멍하니 쳐다봤다.


“형. 뭐야? 배가 치킨 회장이 사무실에 온대?”

“어. 그렇대.”

“그럼 빨리 가야지. 뭘 그렇게 멍 때리고 있어? 어서 가자.”


재혁이 손을 흔들어 택시를 잡았고, 여전히 멍 때리고 있는 나를 택시에 욱여넣었다.

택시는 재빠르게 사무실을 향해 달려갔고, 나는 거의 도착할 때쯤 제정신이 돌아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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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062. 숨기려는 자, 밝히려는 자 +4 23.11.09 690 19 11쪽
61 061. 불가능이란 없다 (3) +4 23.11.08 697 18 12쪽
60 060. 불가능이란 없다 (2) +4 23.11.07 720 22 11쪽
59 059. 불가능이란 없다 (1) +3 23.11.06 754 22 12쪽
58 058. 치킨대전 (4) +3 23.11.05 781 20 12쪽
57 057. 치킨대전 (3) +4 23.11.04 760 18 13쪽
56 056. 치킨대전 (2) +3 23.11.03 776 19 12쪽
55 055. 치킨대전 (1) +4 23.11.02 835 19 11쪽
» 054. 떡볶이와 오뎅 (3) +5 23.11.01 862 22 12쪽
53 053. 떡볶이와 오뎅 (2) +6 23.10.31 908 25 12쪽
52 052. 떡볶이와 오뎅 (1) +4 23.10.30 944 25 13쪽
51 051. 격랑(激浪)속으로 +5 23.10.29 967 30 12쪽
50 050. 김앤전의 반격 (2) +5 23.10.28 961 25 12쪽
49 049. 김앤전의 반격 (1) +4 23.10.27 973 25 12쪽
48 048. 재혁의 비밀 +5 23.10.26 997 26 12쪽
47 047. 신참 변호사 이유리 +4 23.10.25 1,021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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