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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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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6,259
추천수 :
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7.07 10:25
조회
3,650
추천
97
글자
10쪽

< #10. 작지만 작지 않은 전쟁 1-2 >

DUMMY

다행히도 병력은 늦지 않게 물릴 수 있었다. 적들은 아쉽게도 먹잇감을 놓쳤다. 바로 덫 한 발짝 앞에서 도망쳐 버린 것이다. 그래도 적들은 내색하지 않고 진을 다시 치기 시작했다.


그걸 바라보며 하지즈의 군대는 한참을 물려 진을 쳤다. 병영은 분노한 맘루크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젠장, 이기고 있었는데 왜 물린 거야?-


-그러게, 다시 이런 기회는 없었을 텐데.-


-하지즈 대장이 잘해주기는 하지만 사실 겁쟁이잖아.-


류가 그들 앞을 지나자 모두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여 예를 올렸다. 오늘의 아까운 전투. 사실 계속 밀리기만 했을 뿐인 답답한 전투에 속 시원히 물을 끼얹어져 준 건 류가 유일했다.


아···. 한 명이 더 있는구나. 돌아가는 상황도 모르고 저기서 자신을 흠모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사람 말이다.


-이 녀석들아, 흉흉하게 그딴 칼이나 휘두르지 말고 말이야. 우아하게 활을 배워.-


고개를 마구 끄덕이는 험상궂은 사내들이 우스웠다. 하마드의 천막으로 돌아왔다. 하지즈와 하마드는 지도를 펼친 채 정신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 싸움으로 이 대 일 비율도 깨졌습니다. 물론 안 좋은 쪽이죠."


"류, 자네 왔군. 어서 오게나."


눈도 떼지 않고 하마드가 인사를 던졌다. 며칠이나 피로가 쌓여 오늘은 전선에 몸을 나타내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그날의 전투의 큰 그림은 하마드가 밤새 짜낸 것이다. 병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한 번에 무너지지 않는 것은 하마드 덕이기는 했다. 하지만 류가 말했던 대로 조금씩 져가고 있는 게 바뀌지는 않고 있었다.


”제가 오해한 게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자네가 맞을 거야. 하지즈도 그리 판단했으니 맞을 것이네. 우린 모험을 하기에는 너무 가진 게 없어. 오늘 함정에 빠졌으면 내일 싸울 방법이 없네.“


”내일은 싸울 수 있겠지만 모레는 힘들겠죠. 글피 정도 되면 도망 다니느라 바쁠 겁니다.“


류의 말에 천막 안의 공기는 가라앉기 시작했다. 테이블을 둘러싼 사람들 모두 말이 없어졌다.


”그러니 내일은 이깁시다. 하마드, 좋은 계획이 있습니까?“


”이렇게 짜봤어.“


하마드의 설명이 이어졌고,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결국은 모두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하나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었다. 내일은 류도 말을 타고 달려나가는 게 아니라 전열의 앞에서 버티기로 했다. 내일은 속도의 싸움보다는 끈기의 싸움이 될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내일 힘들어질게. 아니 죽을지도 모르네. 류, 동맹이 중하다지만 사실 집안일에 자네 목숨을 내놓을 필요는 없네.“


미안한 표정으로 말하는 하마드의 말에 류는 고개를 저었다.


”뭐, 잘 끝나면 많이 얻어낼 겁니다. 차라리 제가 없었으면 할 정도로 말입니다. 그러니 각오나 두둑이 하시죠.“


류는 말을 끝내고 천막을 나와 아버지를 향해 걸어갔다. 여전히 아버지는 그의 추종자들을 모아놓고 열띤 얘기를 나누고, 아니 주입하고 있었다. 순진한 맘루크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며칠 뒤면 모두 궁수를 하겠다고 나설 모양이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류는 아버지의 곁에 툭 앉아 내일 작전에 관해 설명했다. 혹여 첩자가 있을지도 모르니 고려말로 주고받았다. 주변의 맘루크들의 얼굴은 당혹감이 서려버렸다. 온갖 인상을 쓰며 귀를 기울여봤지만, 그들 귀에는 괴상한 운율에 불과했으니까 말이다. 아버지도 한참 후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류는 초병들이 불을 활짝 켜고 노려보는 곳을 벗어나 가까운 모래언덕 쪽을 향했다. 모래 위에 벌러덩 누워 하늘을 보니, 새까만 하늘에 별만이 촘촘히 박혀 반짝였다. 아름다웠다.


”있는 거냐?“


류의 물음에 스르르 모래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



평원을 가로지르며 두 진영이 밝힌 불빛이 가득 차자 그것은 장관이었다.


양 진영에서 벗어나 고지를 점거한 원로들의 병력도 진을 치고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한낮의 치열했던 싸움을 구경하던 원로들은 슬그머니 술까지 마셔대며 즐기기까지 했다. 지금은 펼쳐진 천막들 사이로 술주정을 하는 소리까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천막의 휘장을 걷으며 뛰쳐나온 앗산은 얼굴이 붉어진 채 찬바람을 맞기 시작했다.


‘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가? 이게 필요한 일인가?’


전장까지 따라 나온 야스암은 앗산을 불러다 원로들의 비유를 맞추라며 강요하곤 했다. 그래서 지금도 마음에 없는 술자리에 끼어있었던 것이니까 말이다. 물론 앗산도 어머니의 마음을 안다. 족장의 자리를 놓고 도전장을 던진 앗산에는 명분이 없다. 정통성? 죽은 아버지는 그냥 하마드의 동생일 뿐이다. 시답잖게 하녀의 피를 반절 받았다는 게 무슨 큰 흠인가?


‘하늘에 대고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구나.’


앗산은 가슴에 가득 차오르는 울분을 토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용기가 없었다. 혹시나 원로들의 미움을 사는 게 아닌가? 병사들이 차기 족장이라는 녀석이 미쳤다는 소문이라도 내는 게 아닌가? 이런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니 말문이 저절로 막히는 것이다.


‘이렇게 족장이 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앗산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손을 뻗어 하마드의 진영을 움켜쥐려 했다. 원래 있어야 할 곳은 저기다. 이렇게 되뇌며 말이다. 저곳에서 자신이 상대하는 건 돈밖에 모르는 용병대가 아니라 저주받을 프랑크 돼지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던 앗산은 그나마 어떻게든 마음의 위안을 찾기로 했다. 이렇게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유일하게 웃음을 주는 일을 생각하기로 했다. 어머니의 약속 말이다.


-힘을 내어라. 네가 족장이 되면, 그 고려 계집과의 결혼도 반대하지 않으마. 다만 정실은 안된다.-


‘그래, 나쁜 놈이 되기로 했으면 철저히 나쁜 놈이 되자. 욕을 먹더라도 갖고 싶은 걸 챙겨보자. 그게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 말이다.’



***



”대단하군. 뭐, 특별한 능력이라도 있는 건가?“


카나비는 모습도 드러내지 않은 채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냥, 네 녀석을 처음 봤을 때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하더군. 게다가 헤어질 때 고생 좀 해보라고 했을 때 알아챘지. 네 놈은 이런 사투가 즐거운 구경거리일 뿐이란 걸 말이야.“


”크크, 고생이 심하군. 나 같으면 지금이라도 말을 몰고 도망칠 거야. 저쪽 뒤편으로는 감시도 소홀해서 금방 빠져나갈 수 있다고.“


”잡소리 집어치워. 그건 그렇고 좀 도와줄 수 있어?“


”왜? 몇 놈 목이라도 그으라고? 그건 우리끼리 약속이 틀리잖아. 난 신의를 잘 지키는 사내라고.“


카나비의 말에 류는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이 신의를 입에 담다니 말이다.


”그러면 오늘 적장은 무사한 거지? 그건 모르나?“


”쩝, 궁금하면 내일 부딪쳐봐. 녀석들이 허세를 부리며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을지 모르잖아. 경험 많은 놈들은 도망칠 때가 제일 위험하다는 걸 알고 허세도 잘 부린다고.“


역시 쉽사리 알고 싶은 걸 알려주지는 않는다. 류는 이 녀석의 시험이 짜증 나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검을 빼 들고 주변의 모래더미들을 휘저어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하마드가 다급한지 여기저기 전령들을 보내더군. 아마 질 거 같으니까 허리를 바싹 숙이며 도와달라고 하나 보지.“


류는 머리를 두들겨 맞은 거 같았다. 작전을 지시할 때 하마드는 웃으며 힘내자고 말했었다. 류가 듣기로는 신념에 차 있는 목소리였다. 그런 그도 힘들다고 생각한 것인가?


”그래도 하마드의 면이 깎일까 걱정할 필요는 없어.“


”뭐···. 무슨 얘기야?“


”아···. 전령들은 모두 길을 잃고 저승을 떠돌고 있다는 얘기지.“


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검을 뽑았다. 이 녀석이 도와줄 생각이 없으면 없었지. 이렇게 곤란하게 만들면 안 되지. 이건 시험이 아니라 방해일뿐 아닌가? 분노에 찬 검이 주변을 찔러대기 시작했다.


”워···. 워. 내가 한 일이 아니야. 산노인이 이전 일 때문에 슬금슬금 복수를 하나 보지. 나도 옛친구들을 보고 피해 다니느라 고생을 했네.“


”산노인?“


”아, 셰이크 알 자발, 하산에 사바흐(산노인)···. 몰라? 셰이크라고 하면 대충 아는데···. 가명이라지만 워낙 유명해서 말이야. 사실 나, 진짜 이름도 알고 있지. 그런데 떠벌리고 다니면 반드시 죽이려고 쫓아다닐 거야······. 너만 살짝 알려줄까?“


류는 실망한 표정으로 검을 집어넣고는 발걸음을 병영 쪽으로 돌렸다. 귓가에 카나비의 장난기 섞인 말투가 계속 들려왔다.


”그거 봐, 협정은 무슨 협정? 산노인은 당한 건 반드시 갚는 성격이라고.“


류는 떠들어대는 목소리는 뒤로하고 생각에 빠졌다.


‘원군은 없다. 그러면 우리 힘만으로 이겨야 한다. 우리 힘? 아니, 아니지. 내가 이기게 해주겠다. 적진을 갈라서라도 녀석의 목을 끊어내고 돌아오겠다. 그러면 이기겠지. 셰이크? 그 노인네가 산노인이라는 놈이었어? 젠장, 크게 될 놈이라고 아부를 떨더니 이렇게 방해를 해? 한번 손을 봐주겠다. 제대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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