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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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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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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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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04,559

작성
18.07.12 22:25
조회
3,639
추천
99
글자
10쪽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1-2 >

DUMMY

요새라고 표현하기에는 꽤 튼튼하였고, 성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모자란듯했다. 무너진 토대는 아주 옛날 옛적에 로마인들이 세운 것이었다고 했다. 거기에다가 이슬람식의 성도 아니고, 십자군의 성도 아닌 요상한 물건이 나와버린 것이다.


이상하게 섞여버린 이상한 성. 그래도 적은 인원으로도 많은 적을 막아내기 위해 여러 가지 수를 써놨다. 난공불락은 아니더라도 쉬이 떨어질 그런 곳은 아니다.


얕은 언덕 위에 서 있는 이 성의 가장 압권은 높다란 석재 망루였다. 모두 이 정도로 높을 필요는 없다고 말렸지만 다른 성들보다 한 배 반은 됨직한 높이였다. 이곳은 아버지가 활을 날리면 사각이 없을 위치였고, 적의 움직임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젠장, 내 다리는 생각 안 하고 만든 거냐? 올라가다가 싸움이 끝나겠다.’


투덜대는 아버지의 말에 '도르래라도 달아서 올려드릴까요'라고 했다가 면박만 더 받아버렸다.


거기다가 물이 귀한 이곳의 사정을 생각해 우물을 여러 곳에 파놓았다. 게다가 성채의 한가운데 지하에는 돌을 토대로 잘 깔아놓고 저수조를 만들어놓았다. 빗물이나 우물에서 흘러나온 물이 모이도록 말이다.


그리고, 불화살이라도 쏟아진다면 불타버릴 목조건물들은 최대한 빼고 지었다. 특히나 식량을 저장할 창고는 튼튼하게 지어져 절대 불탈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일은 구릉 위에 서 있는 이 성을 더욱 탄탄하게 해줄 해자 공사였다. 장인들은 이 정도 잡일까지 할 수는 없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고, 결국 류와 맘루크들의 일이 돼버렸다. 몇 주 동안 힘겹게 땅을 파내자, 모두 녹초가 돼버렸다.


그래도 집을 튼튼하게 만드는 일이었으니 쉴 수는 없는 일이었고, 류는 주변의 유목민이나 주민들에게 삯을 주고 인부를 끌어모았다. 이건 그들이 자립할 수 있게 돕는 일이기도 했으니 나쁜 일은 아니었다. 다만, 카나비가 대가를 바라며 돌아올 때 줄 돈을 빼놓으니 이제는 그다지 남은 돈이 없었다.


'젠장, 장사라도 해야 하나? 순례자들이 차고 넘친다더니. 코빼기도 안 보이네.'



***


"저기 봐!"


망루 위에서 바람이나 쐬며 게으름을 피우던 압둘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삽질하던 류가 짜증 난 목소리로 대꾸했다.


"압둘! 일 안 할 거야! 또 뭘 보라고···."


고개를 돌려 압둘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본 류는 삽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성으로 들어섰다. 일하던 인부들도 겁먹은 표정으로 따라 들어왔다.


멀리서 다가오는 건 화려한 마차 한 대와 호위하는 기병들 십여 명, 보병들도 보조를 맞추느라 빠르지는 않았지만, 방향을 보니 똑바로 성을 향해 오고 있었다.


도착한 병사들은 프랑크인 들이었다. 정연한 자세와 커다란 방패, 기마들은 중무장하였고, 몇 마리 말은 마갑까지 입혀놓았다. 많지는 않은 수였지만, 꽤 강해 보였다.


망루에는 아버지와 활을 배운 맘루크 몇 명이 올라갔다. 나머지 인원은 성문이 뚫릴 경우를 대비해 성문 바로 뒤에 무기를 들고 대비하기 시작했다. 일일이 지시를 하지 않아도 재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 미더웠다.


성문의 작은 망루에 몸을 드러낸 류는 외쳤다.


"너희들은 누구냐? 이곳은 나, 류의 영지. 빼앗겠다면 목숨을 걸 각오를 해라."


말을 내뱉으면서도 좀 오글거렸다. 하지만 영주라면 이런 보여주기도 필요하긴 하다.


류의 단호한 말에 성안으로 피해 들어온 백성들이 '오오'거리며 안심하기 시작했다. 영주가 없이 비어있던 이곳에선, 이들은 도망 다니기 바빴다. 그게 도적이던지, 아니면 잔혹한 프랑크 기사들이던지 말이다.


그런데 이 영주는 땅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고, 늠름한 사내들이 무기를 들고 방비를 하는 게 그들의 마음에 큰 인상을 남긴 것이었다.


묵묵부답인 상대의 태도에 류는 손을 들었다. 망루에서 날카로운 화살촉이 녀석들을 겨냥하기 시작했다. 그때 마차 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내리기 시작했다.


머리끝을 묶어 길게 늘어뜨린 금발의 미남자, 능글맞은 알폰소였다. 녀석은 내리자마자 반갑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뭐냐? 염탐이라도 하려고 온 거냐?"


"에이, 우린 친구잖아. 그냥 살 곳도 정리된 거 같은데 손님 좀 맞지? 게다가 귀한 분도 데려왔다고."


"마차 하나만 들어와. 나머지는 모래바람으로 목욕이나 하라고 하고."


류는 그렇게 말하고 손을 들었다. 알폰소의 목젖을 노리던 아버지의 활을 내려졌고, 성문은 조그맣게 마차 한 대가 통과할 정도로만 살짝 열렸다.


오랜만에 봐도 역시 알폰소는 넉살이 좋았다. 가식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듯이 과하게 포옹을 하는 것이 역시 알폰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살피는 모습마저도 말이다.


"자,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이여. 이 모래바람이 불어닥치는 요새에는 어쩐 일인가?"


냉담한 말투에 너털웃음을 지으며 알폰소는 머리를 긁적였다.


"빨리 와서 일이라도 도울 걸 그랬나? 미운털이 박혔군. 다른 게 아니라, 좋은 일이 있어서 이웃들에게 축하라도 받으려고 말이야. 어서 나와."


알폰소의 말에 마차 문이 열리며 시녀 두 명이 재빨리 내렸다. 뒤이어 내린 것은 풍만한 몸을 자랑하는 한 여인이었다. 류의 눈에는 살이 뒤룩뒤룩 찐 것인지, 아니면 풍만한 편인지 판단이 가지 않을 여인이었다. 다만 풍만한 몸에 어울리게 사근사근 웃는 모습이 성격은 좋아 보였다.


"일렌느야, 우리도 정리가 다 돼서 말이야. 다음 주에는 식을 올릴 예정이라네. 일렌느, 전에 얘기했던 류우우라네."


곧 연이와 샤아가 일렌느를 데리고 성의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사라졌다. 재잘대며 수다를 떠는 모습이 평화로웠다. 그 모습에 류의 얼굴에도 조금은 미소가 지어졌나보다.


"곤란해,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고 눈독을 들이는 거는 말이야. 이래서 내가 데려오고 싶지 않았는데······."


일렌느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에 고개를 저으며 성채 안으로 알폰소를 들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끌벅적한 술자리가 펼쳐졌다. 술이 몇 잔 돌자, 알폰소는 웃으며 용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웃이여, 우리 약속은 기억하나?"


"서로 싸우는 척만 하고 발 빼기로 한 것 말인가?"


"표현이 좀 그렇군. 그냥 불필요한 피는 흘리지 말자고 표현하자고."


"그래, 그래서?"


"자네가 자리를 잡아가니 이제는 레널드가 신경이 쓰이나 봐. 사실 그동안 참고 있던 것도 신기할 지경인데 말이야. 연락이 왔어. 여길 치려는데 병사를 내라고 말이야. 거의 반강제 조로 말이지."


"이상하군. 살라흐앗딘과 평화조약 중일 텐데 그렇게 나온다는 게 말이야."


류의 말에 알폰소는 잔에 술을 가득 따르더니 하늘로 들어 올렸다. 약간 눈가에 눈물이 그렁한 채로 말이다.


"위대한 왕이시여, 영원하소서!"


갑작스러운 알폰소의 행동에 류는 의아했지만, 알폰소의 이어진 말에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보두엥 전하께서 승하하셨네. 봄에 말이야. 지금은 정신없지. 자네를 시작으로 슬슬 싸움을 걸어보려 할거네. 미치광이 녀석들이 말이야."


"후···. 왜 내가 본보기지? 만만하게 보이는 건가?"


혼잣말로 너스레를 떨던 류도 술을 가득 따라 하늘로 들어 올렸다.


"왕이시여, 편안하게 쉬소서!"



***


"경치가 좋아. 꽤나 멀리까지 보이는군."


술을 깰 겸 바람을 쐴 겸, 류와 알폰소는 망루 위에 섰다. 가까운 곳의 두 영주 간의 담판이다. 다른 이들은 모두 자리를 피했다.


"어떻게 할 거야? 미운털이 박힐 테니 너도 참전인가?"


"아. 관둘래. 오늘 살펴본 거로는 무리야. 난 빠지련다. 류우우. 결혼식 핑계를 대고 다음에는 참전한다고 슬슬 아부나 떨어야지. '레널드 공. 겨우 작은 요새 하나인데 무슨 걱정이신가요?' 하고 말이야."


"얄팍한 녀석. 어쨌든 그거라도 고맙다."


노을이 진다. 역시 카스티야도 멋있는 풍경이지만 적막한 초원의 노을에는 한 수 접을 수밖에 없다. 더불어 알폰소는 넌지시 자신이 알고 있는 얘기를 털어놓았다.


"레널드의 기사는 스무 명 정도, 기사들에겐 종자나 견습이 하나둘씩 붙으니 평균 내서 세 명 정도라고 하면 팔십 명, 석궁수가 스물, 궁수가 오십, 창병이 삼백 명 정도. 그리고 그리스 용병들이 백여 명. 다하면 얼추 육백은 될 거야. 성에 반은 놓고 오겠지. 나 빼고 다른 영주들은 생색만 낼 테니 많아야 오십 명 정도? 그러면 오백 명 정도 되겠네."


류는 알폰소의 설명에 귀 기울였다. 류의 손아귀에는 지금 스무 명이 될까 말까 한 병력이 있었다. 성을 거점으로 지켜낼 수 있을까? 포로였다가 풀어줬던 주민들을 다시 징집해야 하나?


고민이 많아졌다.


"언제야? 언제쯤 쳐들어온대?"


"다음 주. 그러면 난 갈란다. 병사들이 투덜대는 게 한눈에 다 보이네. 녀석들. 이 부근에서 모래바람이 없는 데가 어디 있다고 구시렁대는 거야."


류와 알폰소는 망루에서 내려섰고, 볼일을 마친 알폰소는 길을 재촉해 자신의 성채를 향해 떠났다.


"압둘! 아버지를 모셔와. 논의할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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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 #13. 낙성(落城) 2-1 > +12 18.07.28 2,947 74 8쪽
144 < #13. 낙성(落城) 1-2 > +10 18.07.27 3,052 78 9쪽
143 < #13. 낙성(落城) 1-1 > +10 18.07.26 3,143 67 9쪽
142 < #12. 하틴 4-2> +14 18.07.24 3,193 68 9쪽
141 < #12. 하틴 4-1 > +14 18.07.23 3,150 74 9쪽
140 < #12. 하틴 3-2 > +13 18.07.22 3,360 75 9쪽
139 < #12. 하틴 3-1 > +8 18.07.21 3,244 82 9쪽
138 < #12. 하틴 2-2 > +8 18.07.20 3,329 89 10쪽
137 < #12. 하틴 2-1 > +17 18.07.19 3,384 83 9쪽
136 < #12. 하틴 1-2 > +14 18.07.17 3,617 82 10쪽
135 < #12. 하틴 1-1 > +4 18.07.16 3,513 84 9쪽
134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3-2 > +18 18.07.15 3,669 96 12쪽
133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3-1 > +12 18.07.14 3,476 89 8쪽
132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2-2 > +6 18.07.14 3,479 92 8쪽
131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2-1 > +16 18.07.13 3,467 89 10쪽
»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1-2 > +14 18.07.12 3,640 9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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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 #10. 작지만 작지 않은 전쟁 2-2 > +16 18.07.08 3,573 9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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