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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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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5,103
추천수 :
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7.16 22:46
조회
3,512
추천
84
글자
9쪽

< #12. 하틴 1-1 >

DUMMY

"너무 돈에 환장한 녀석 같군."


하지즈는 술을 마시며 아까 봤던 켈모레우스의 험담을 넌지시 시작했다. 류의 생각으로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하지즈가 내뱉을 말은 아니었다.


"괜찮아."


"뭐···. 뭐라고?"


하지즈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살림을 위해서 아끼고 아끼는 게 당연함에도 이 신출내기 영주는 돈을 아낄 줄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저 녀석, 다행히도 흥청망청 써대고 있어. 후사가 없는 홀몸이라 그런지. 먹을 거, 입을 거, 여자. 가리지 않고 이리저리 써대고 있지."


"그게 괜찮다고 할 상황인가?"


하지즈의 목젖으로 술이며 술이 아닌 게 넘어가며 꿀렁이고 있었다. 류는 방긋 웃었다. 아직 구두쇠 하지즈는 큰 그림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웃음이었다.


"그 덕분에 이상하게 영지 내에 돈이 돌더라고. 이제 성채 공사도 끝났고, 돈이 흐르게 할 방법이 없는데. 저 녀석 덕분에 상인들의 방문도 잦아지고 여자들도 왔다가 눌러앉고 말이야."


"쳇, 그렇다고? 그러면 네가 그렇게 하면 되잖아. 뭐하러 눈꼴 사납게 유세 떠는 걸 지켜보는 거야?"


"선은 넘지 않게 하는 거지. 옆에 똘똘한 녀석을 몇 명 붙여놨어. 일이라도 시키라고 말이야. 아주 쑥쑥 머릿속에 집어넣고들 있지. 그리고 얼마나 살겠어? 그냥 수업료로 생각하면 되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말이야."


"중요한 건······?"


"영주는 모범을 보여야 하잖아. 금욕적인 삶. 백성을 위하는 마음. 그런 거 말이야."


하지즈는 혀를 끌끌 차며 류에게 술이 아닌 것을 따라주었다. 괜한 걱정이었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곧 안색을 바꾸고는 천천히 하마드의 말을 전하기 시작했다.


"하마드 나리가 너에게 전하라는 말이 있어."


"뭐. 적당히 귀찮게 하라는 얘기 말이야?"


하지즈는 심각한 표정으로 걱정스레 말하기 시작했다. 하마드의 심중은 모르겠지만 분위기는 확실히 좋지 않았다는 듯이 말이다.


"마음은 알겠으나 적당히 하라. 선에 발을 걸치고 있다."


류는 하지즈가 건넨 술을 들이부으며 고민에 빠졌다. 유일한 동맹과 뭔가가 틀어지고 있는 건가?



***



하지즈는 곯아떨어지듯 쓰러져버렸다. 귀찮다는 표정으로 압둘은 하지즈를 둘러매 옮기더니 침대에 던져넣었다. 그리고 곧 다시 술에 빠져들었다.


류는 바람도 쐴 겸, 천천히 성벽 위에 올랐다. 밖의 병영은 여기저기 횃불을 달아놓았고 천막이 수없이 펼쳐져 있었다. 예전 같으면 승리 후에 광란의 잔치가 벌어질 듯한데 지금은 조용히 쉬고들 있었고, 가끔 초병들의 순찰만 보였다.


하마드의 세력에 들어간 후 난잡한 용병의 탈은 벗어버린 것이다. 강한 군대를 가진 하마드가 부러웠다. 저 정도만 가지고 있다면 주변 십자군 영주들도 귀찮게 하지는 않을 텐데.


'필요할 때마다 빌려 쓰는 수밖에 없지. 그런데 하마드의 말은 무엇인가? 경고일까?'


-오늘의 승리를 축하하네. 난 참 행운아야. 오랜만에 찾아왔더니 이리 멋진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줄이야.-


"카나비?"


-쳇, 오랜만에 왔더니 목소리마저 잊었는가?-


성벽 위 횃불들 사이에서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검은 옷의 카나비가 몸을 드러냈다.


"어떻게 들어온 거야? 성문은 닫혔고, 병사들이 순찰하는데?"


"영업 비밀까지 묻진 말라고."


카나비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랑스레 말했다. 캐물어봤자 알려주지는 않겠지만 찝찝했다. 집이란 곳에 이리 외부인들이 들락날락한다는 게 편한 잠은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면 왜 온 거야? 일은 끝났나? 시간을 정하면 돈을 준비해서 건네주도록 하지."


심각한 표정으로 노려보는 류에게 카나비는 오히려 더 심각한 표정으로 문제가 생겼다고 넌지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 그게 끝났다고 볼 수도, 아니라고 볼 수도 있어서 말이야. 확실하게 정해놓질 않아서 확인 좀 하려고 왔어."


"왜? 간단하잖아. 세 명이 죽길 바란다고. 넌 알았다고 했고."


"물론 세 명이 죽었지. 그런데 말이야. 내가 둘을 죽였는데, 세 번째 목표였던 한 놈이 먼저 죽었더라고. 그래서 하나를 더 죽여야 하나? 아니면 이걸로 끝낼까 고민하다가 물어보러 왔어."


류는 알아차렸다. 주제넘게 오지랖 부리지 말라는 충고를 말이다. 생각보다 하마드는 착한 사람은 아니었다. 웃음이 나왔다.


"그만두지. 둘로 족한 거 같으니 말이야. 날짜를 정하면 보수를 갖다 주지."


"뭐······. 다음에도 일이 있으면 연락 달라고."


류는 어떻게 카나비를 부르면 되느냐고 물으려 했지만, 돌린 눈에는 카나비가 성벽을 훌쩍 뛰어 몸을 던지는 모습만 보였다. 놀라 달려가 고개를 내밀었지만 벌써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겨버렸다.


-망루에 깃발을 낮춰 달면 사흘 안에 가도록 하지.-


류가 묻고자 했던 질문에 답을 하며 말이다. 류는 어떻게 하면 성벽을 보강할 수 있을지 고민에 빠져버렸다.



***



시간은 흘러 다시 계절이 변했다. 그래 봤자 이 열사의 땅은 변함이 없었다. 단지 밤이 되면 더 쌀쌀한 모래바람이 스산하게 불어닥친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변함이 없었다.


발리앙은 에데사 백령을 지나 아크레 성안에 몸을 드러냈다. 조슬랭의 비밀 서한을 받자마자 충성스러운 수하들만 데리고 말을 달렸다. 이벨린에서 아크레까지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쉬지 않고 달렸다.


성문을 들어서자마자 발리앙은 알 수 있었다. 모든 종탑이 울려 퍼지는 아크레. 찬란하게 불타올랐던 별을 뒤이은 별똥별은······. 반짝이지조차 못하고 땅으로 떨어졌다.


발리앙은 어린 보두엥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다. 눈물이 글썽거렸지만 다툼을 막아야 했다. 성큼성큼 복도를 지나, 홀을 지나쳐 어린아이가 무거운 짐을 벗고 쉬는 방으로 들어섰다. 방안은 아직 어렸던 보두엥을 위해 나무 말이나 움직이는 장난감들이 구석구석 놓여있었다.


발리앙은 더는 참지 못하고 왈칵 눈물이 터져버렸다.


침대에는 아이가 창백하게 식어가는 얼굴로 누워있었다. 곁에는 조슬랭 백작과 레몽 3세가 침통한 표정으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찌할 줄 모르는 와중에 발리앙이 들어오자 둘은 급히 향후 어찌할지 묻기 시작했다.


"보두엥 전하께서 승하하셨네. 다음 왕은 어찌해야 할지 레몽 백작과 의논 중이었네."


발리앙은 품속의 서한을 내밀었다. 몸이 좋지 않았던 보두엥 4세가 너무 어린 조카의 장래조차 어둡게 보았는지 만약을 대비해 남긴 글이었다.


왕의 인장이 찍힌 서한이 공개되자, 조슬랭과 레몽은 눈여겨 한 줄 한 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이 움직이는 걸 보던 발리앙은 자신이 아는 내용을 천천히 설명했다.


"만약 5세께서 적당한 후사가 없는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면, 즉 예루살렘의 왕이 끊기면 유럽의 교황, 프랑스 왕, 신성로마제국 황제, 영국 왕의 의견을 받아 왕을 옹립하고, 그동안은 레몽 백작께서 섭정으로 왕위를 지켜달라는 내용입니다."


레몽은 반색하며 좋아하는 얼굴을 감추지 못했고, 조슬랭은 넌지시 싫은 분위기를 감추지 않았다. 예루살렘의 두 축인 데 이리 다투면 좋지 않을 것을. 발리앙은 슬픔을 넘어 조금은 분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는 조슬랭의 영지, 유언을 왜곡하고 레몽과 자신을 죽인다면 왕위 찬탈에 나설지도 모를 상황이다. 그래서 조슬랭의 마음이 흔들리기 전에 말을 덧붙였다.


"이 유언은 대주교와 템플기사단장, 구호기사단장까지 함께 하겠다는 서약이 되어있습니다."


글의 마지막에 서약하기로 한 사람들의 인장까지 보게 된 조슬랭은 슬그머니 얼굴을 바꿨다. 서약한 셋은 적으로 만들기에 힘든 사람들이었다.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던 조슬랭은 발리앙의 표정을 읽었다. 결국 조슬랭은 마지못해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레몽에게 넌지시 권했다.


"분명 이번 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저는 보두엥 전하의 유해를 모시고 예루살렘의 성묘 교회로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그동안 레몽 백작께서는 가신들을 모두 데리고 오시죠. 적어도 곁에서 든든하게 버팀목이 될 사람들이 있어야 할 겁니다."


조슬랭의 말은 맞았다. 이리저리 흔들어댈 게 뻔한데, 가신들이라도 적다면 암살이라도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 알았소. 어서 가서 채비하겠소."


급하지만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서는 레몽의 뒷모습을 보며 발리앙은 텁텁한 입맛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 유럽의 왕들은 이곳에 큰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냥 섭정인 레몽이 왕위를 넘겨받아도 무방하겠지라며 넘길지도 모른다.


왕 넷의 협의가 있어야 하니 몇 년이 걸릴 일인지 모른다. 그동안은 왕 노릇을 하며 성묘교회의 수호자라는 감투에 열중할 것이다. 그러다 유럽에서 서신이 오면 레몽이 받아들이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발리앙은 이제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이벨린으로 돌아가면 성벽을 보수하고 병사를 더 모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해야 할 때가 됐다.


작가의말

그동안 너무 평화로웠죠? 이젠 시작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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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 #13. 낙성(落城) 1-1 > +10 18.07.26 3,143 6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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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 #12. 하틴 4-1 > +14 18.07.23 3,149 74 9쪽
140 < #12. 하틴 3-2 > +13 18.07.22 3,360 7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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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 #12. 하틴 2-2 > +8 18.07.20 3,329 89 10쪽
137 < #12. 하틴 2-1 > +17 18.07.19 3,384 83 9쪽
136 < #12. 하틴 1-2 > +14 18.07.17 3,617 82 10쪽
» < #12. 하틴 1-1 > +4 18.07.16 3,513 84 9쪽
134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3-2 > +18 18.07.15 3,669 96 12쪽
133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3-1 > +12 18.07.14 3,476 89 8쪽
132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2-2 > +6 18.07.14 3,478 92 8쪽
131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2-1 > +16 18.07.13 3,467 8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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