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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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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5,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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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8.07 22:40
조회
3,157
추천
76
글자
9쪽

< #13. 낙성(落城) 6-2 >

DUMMY

"날 기억하는가?"


류는 아침 일찍 누군가 앞을 막고 묻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다.


검은 머리 녀석. 녀석의 눈은 조금은 거북했고 적대감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글쎄? 하도 많이 기사들을 쓰러뜨려서 말이야. 내가 쓰러뜨린 일곱 번째의 동생이라도 되던가? 아니면 여덟 번째의 애인?"


"레널드 공작의 기사라네. 자네의 창을 받아냈던 어깨가 아직도 욱신거린다고."


아···. 기억이 났다. 알폰소 이후로 유일하게 류의 공격을 받아냈던 인물이었다. 그제야 류도 상대를 인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자네의 실력에 경애를 표하네. 자네 같은 실력자는 몇 못 보았네."


"난 의심스럽다네. 어제까지 무슬림의 곁에서 검을 뽑아 든 사내가 오늘은 우리 편이라······. 이해가 전혀 되지 않는 게 이상한가?"


그렇군. 상대의 말이 맞는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렇게 서로 신경이나 날카롭게 세울 때가 아니니 혀를 찰 수밖에 없다.


"내 이름은 류. 보두엥 선왕에게 작위를 받은 기사. 살라흐앗딘에게 아미르의 이름을 받은 영주. 좀 이해하기 어렵긴 하겠지. 하지만 싸움터에서 칼을 바꿔 쥔 적은 없다네. 정 이해가 안 된다거나 꼭 다시 겨루겠다고 마음먹었으면 싸움이 끝나기를 기다리게나. 그때는 받아주지."


"이름을 말했으니 나도 이름을 말하겠다. 나는 제러미. 지금이라도 상관없으니 말만 하면 증인을 모으겠다. 비록 나에게 좋은 주인은 아니었으나 어쨌든 주인이고, 그의 죽음에 자네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는 법."


상대는 저돌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그의 양옆에 동료들인지 뭣인지 모를 녀석들이 다가와 어깨를 같이했다.


"우리가 증인을 서지. 뭐, 공정한 대결."


그렇게 류의 신경을 긁어대자 류도 참지 못하고 허리춤에 손을 슬그머니 가져다 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낙엽 베기라도 춤춰볼까나 하며 말이다. 그때 누군가 둘 사이를 가로막으며 손을 뻗어왔다.


"워워···. 그만둘 두게나. 적을 앞에 두고 뭐 하는 짓인가?"


알폰소였다. 그는 특유의 유유자적하며 능글맞은 목소리로 서로를 등 떠밀어 떼어냈다. 필요하지 않은 싸움에 힘쓸 필요 없다는 생각에 류는 그냥 돌아서 걸어 사라졌다.


"자네, 이번에는 내가 살려준 거야. 다음에는 생각도 하지 말아. 지금처럼 같은 편인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라고."


알폰소는 넌지시 제러미의 눈을 노려보며 당부했다. 발끈한 제러미가 대들듯이 말했다.


"무슨 소리입니까? 해볼 만 하다고요. 저도 죽일 생각은 없어요. 다만 예전에 나눴던 승부를 겨뤄볼 생각일 뿐입니다."


알폰소는 손을 흔들며 류의 뒤를 쫓았다. 그러다 고개를 살며시 돌렸다.


"제러미, 자넨 나하고 다섯 번 주고받으면 질 거야. 그런데 류? 저 사람은 단칼에 벨 거다. 운 좋게 한번 받아냈다고 이길 사람이 아니야."


제러미는 알폰소의 실력을 알기에 이를 바드득 갈며 물었다.


"그러는 당신은? 당신 정도면 이깁니까?"


"아니. 이기기는 힘들지. 그 대신에 절대 지지는 않아."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까?"


"쟤는 원수진 일만 없으면 말이야. 뒤돌아서 도망치는 녀석은 안 죽일 거야. 난 절대 원수도 안 질 거고. 싸우게 되면 죽어라 도망칠 거니까 죽지는 않겠지. 그럼 무승부지 뭐."


부들거리는 제러미에게 알폰소는 하늘을 가리켰다.


"이제 시작이네. 모두 힘내자고. 모든 은원은 일이 끝난 후에 가리고 말이야."


하늘에는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불덩어리가 날아가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세기에는 너무 많았다. 살라흐앗딘의 투석기가 불덩이를 쏘아 붓기 시작했다.


밤하늘의 유성 같았다. 셀 수 없이 떨어지는 불똥별은 아름답기만 했는데 저것들은 사람을 죽여버린다. 곧 예루살렘은 불덩이가 된 듯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불타올랐다.


이제 살기 위해 싸울 때가 됐다.



***



깃발은 곧 이곳저곳에서 올랐다. 완전히 정리하지는 못했지만, 적의 공격이 뜸해지면 바로 다음 곳을 향해 달렸다.


쉬지 못하고 온몸에 피 칠갑을 해가며 셀 수 없는 적을 죽였다.


걸쳐진 사다리를 타고 머리부터 보이기 시작했을 때 류는 검으로 정수리를 쪼갰다. 몇 번 휘두르다 검날이라도 상할까 쓰러진 병사의 War-pick을 집어 내려찍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강철 가시가 투구에 박히면 적은 눈을 뒤집고 사다리에서 떨어져 내렸다.


다행히도 높은 성벽이 큰 도움이 됐다. 튼튼하게 만든다고 했지만, 사다리들은 휘청거렸고, 적은 굼뜨게 오를 수밖에 없었다. 겨우 성벽에 손을 얹었을 때 매서운 공격을 받게 되면 허공에서 허우적대며 버텨볼 뿐이지. 대처할 뾰족한 수가 없었다.


한 손으로 방패를 들어 이리저리 막아보며 다른 동료가 올라서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 옆에서 찔러온 창에 옆구리를 꿰뚫리거나 밀려버리면 네 길은 넘는 높이에서 떨어져 뼈가 부서지거나 동료들의 발에 짓밟혔다.


'다행이다. 성벽이 높아 다행이야. 내 성보다 한 배 반은 높다. 적들의 공격은 더욱 어렵다. 오늘은 버텨낼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할 때 류는 남문 쪽에 깃발이 오르는 것을 보았다. 깃발이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깃발을 들고, 급박한 상황이면 흔들라 하였다.


류는 결국 남문으로 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계단 쪽으로 향했다. 걷는 와중에도 곁에는 사다리들이 하나둘씩 계속 걸쳐지고 있었다. 병사들은 몸을 내밀고 창으로 찍어내리다 활에 맞고 떨어지기 일쑤였다.


"몸을 내밀지 마라! 사선에서 피해! 허리가 아프더라도 숙이고 정면을 봐라. 녀석의 눈이 보일 때 얼굴을 찍어버려라."


눈에 화살을 맞고 쓰러진 병사를 안고 한 젊은이가 흐느끼고 있었다. 비슷한 나이. 동년배인 걸 보니. 친구나 터울 적은 형제이리라. 서럽게 울고 있는 모습에 덕윤이 겹쳐져 보였다. 비슷한 또래이다. 류는 곁에 쪼그리고 앉았다.


"기사는 말이다. 울지 않는다. 가슴에 검을 품고 사는 사람은 울지 않는다. 넌 기사다."


슬그머니 오른팔에 묶인 붉은 천을 매만지다가 젊은이의 붉은 천을 가리켰다. 젊은이는 자신의 팔을 바라봤다. 그리고 눈을 숙여 쓰러진 이의 붉은 천을 봤다.


눈물은 멈췄다. 류는 젊은이의 손을 펴고 가지고 있던 워픽을 넘겨주었다. 손가락을 살며시 접어주었다.


"몸은 내밀지 말고, 머리가 보이면 그냥 기분 풀릴 때까지 휘둘러. 어깨가 뻐근할 수도 있으니 헛되게 힘은 쓰지 말고. 적당히만 휘둘러도 제대로 꽂히더라."


류는 계단을 내려서며 지원을 왔던 기사들을 불러모았다. 얼핏 본 성벽 위에는 젊은이가 미친 듯이 워픽을 휘두르는 모습이 살며시 보였다.


"힘을 빼라니까. 저러다가 나중에 팔도 못 들 텐데······."



***



"무슨 일이야? 발리앙."


멍하니 앞을 바라보는 발리앙의 곁에 선 류는 자신의 물음이 별 필요 없는 짓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사다리차가 조립이 다 되었나 보다. 높이도 성벽보다 낮지 않다. 오히려 조금은 높은 거 같다. 그렇게 되면 이점은 확실하다. 뛰어내리며 공격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압도적일 것이다. 게다가 망루의 크기도 훨씬 크다. 열을 지어선 병사들이 적어도 다섯 여섯은 동시에 뛰어내릴 것이다.


수는 스물이었다.


"망했네. 우선 깃발 올리고 협상해보자고 할까?"


류의 말에 발리앙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네 같으면 받아들이겠나?"


"아니."


방어하기 위해 성벽에는 커다란 쇠뇌들이 옮겨져 있었다. 두꺼운 밧줄을 쏘아 꿰어버린 다음에 도르래로 돌을 묶어 넘어뜨린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녀석들은 사다리차를 밀며 다가오다가 해자를 만나자 수많은 병사가 달려들어 모래를 담은 포대기를 던져넣기 시작했다.


지금은 우리가 두들길 때다. 활과 석궁이 병사들을 후드득 쓰러뜨리자 녀석들의 사다리차도 문을 열고 화살을 맞서 쏘기 시작했다. 서로 활이 날아다닌다.


병사들은 아우성을 치며 자기 일을 하기 시작했다. 성벽 한참 뒤에 놓아뒀던 투석기가 매끈한 돌덩이를 쏘아대었다. 몰려있는 적들은 돌덩이가 구를 때마다 학살당하기 시작했다. 몇몇 돌덩이들은 운좋게도 사다리차의 망루나 기둥에 맞았다. 풀썩 부서지며 쓰러지는 나무 망루에서 사람들이 장난감처럼 쏟아졌다.


"왼쪽은 알폰소가 갔어. 오른쪽을 맡아주게."


발리앙의 말에 류는 오른쪽을 향해 달려갔다. 오른쪽으로 몰려드는 사다리차는 다섯. 그중 둘은 벌써 해자를 메꾸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낯익은 백색 사자기가 보였다. 녹색 바탕에 하얀 사자가 수놓아진 하마드의 깃발.


'결국 이렇게 되는가?‘


작가의말

날씨가 여전하네요. 태풍과 함께 호우가 기다려집니다.

아...여전히 내일은 좀 쉬겠습니다. 대신 주말에 더 많은 분량으로 찾아뵐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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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낙성(落城) 6-2 > +14 18.08.07 3,158 76 9쪽
153 < #13. 낙성(落城) 6-1 > +20 18.08.06 2,926 72 10쪽
152 < #13. 낙성(落城) 5-2 > +26 18.08.05 2,906 78 9쪽
151 < #13. 낙성(落城) 5-1 > +12 18.08.04 2,873 81 10쪽
150 < #13. 낙성(落城) 4-2 > +10 18.08.03 2,839 86 9쪽
149 < #13. 낙성(落城) 4-1 > +14 18.08.02 2,985 74 9쪽
148 < #13. 낙성(落城) 3-2 > +28 18.07.31 2,953 71 9쪽
147 < #13. 낙성(落城) 3-1 > +26 18.07.30 3,033 69 8쪽
146 < #13. 낙성(落城) 2-2 > +9 18.07.29 2,967 78 8쪽
145 < #13. 낙성(落城) 2-1 > +12 18.07.28 2,947 74 8쪽
144 < #13. 낙성(落城) 1-2 > +10 18.07.27 3,052 78 9쪽
143 < #13. 낙성(落城) 1-1 > +10 18.07.26 3,144 67 9쪽
142 < #12. 하틴 4-2> +14 18.07.24 3,193 68 9쪽
141 < #12. 하틴 4-1 > +14 18.07.23 3,150 74 9쪽
140 < #12. 하틴 3-2 > +13 18.07.22 3,360 75 9쪽
139 < #12. 하틴 3-1 > +8 18.07.21 3,244 82 9쪽
138 < #12. 하틴 2-2 > +8 18.07.20 3,329 89 10쪽
137 < #12. 하틴 2-1 > +17 18.07.19 3,384 83 9쪽
136 < #12. 하틴 1-2 > +14 18.07.17 3,617 82 10쪽
135 < #12. 하틴 1-1 > +4 18.07.16 3,513 84 9쪽
134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3-2 > +18 18.07.15 3,670 96 12쪽
133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3-1 > +12 18.07.14 3,476 89 8쪽
132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2-2 > +6 18.07.14 3,479 92 8쪽
131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2-1 > +16 18.07.13 3,467 89 10쪽
130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1-2 > +14 18.07.12 3,640 99 10쪽
129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1-1 > +32 18.07.10 3,740 107 10쪽
128 < #10. 작지만 작지 않은 전쟁 3-2 > +10 18.07.09 3,548 92 8쪽
127 < #10. 작지만 작지 않은 전쟁 3-1 > +19 18.07.08 3,632 105 9쪽
126 < #10. 작지만 작지 않은 전쟁 2-2 > +16 18.07.08 3,573 9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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