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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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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5,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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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7.09 22:25
조회
3,547
추천
92
글자
8쪽

< #10. 작지만 작지 않은 전쟁 3-2 >

DUMMY

물이 귀한 곳인데 마차에 물이 가득 실려 오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기다랗게 마차들이 동이에 물을 가득 채운 채 다가오고 있었다. 하마드의 백성들이 승전을 축하하며 주변의 수원지들을 긁어 보내온 것이다.


류는 사슬갑옷을 벗고 땀에 범벅이 된 천 옷마저 훌훌 벗어 던져 버리고 물을 끼얹었다. 물은 넉넉해 포로들에게도 한 잔씩은 돌아갈 상황이니 이 정도 사치는 부려도 될듯했다.


어깨가 다행히도 부서지지는 않았는지 통증이 약간 있을 뿐 더 나빠지지는 않았다.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며 아버지는 약초를 으깨 잘 바라주고는 천을 감아 고정해줬다. 순식간에 몸이 말라가며 쌀쌀한 초원의 저녁이 시작되었다.


덕윤이 눈을 떠 물을 받아 마셨다는 얘기에 발걸음을 돌리려다 말았다. 지금은 심경이 복잡해서 어떤 말이 입 밖으로 나올지 모를 상황. 조금 지켜보자고 마음먹은 류는 천천히 모래언덕으로 올랐다.


초병들이 류를 보며 환호성을 터트렸다. 멋쩍은 손짓으로 조용히 하라고 말린 류는 모래언덕의 정상에 털썩 앉아 주변을 바라봤다. 전투가 끝나자 백성들이 돌아왔는지 하늘 높이 오르던 검은 연기가 곳곳에서 잡혀가고 있었다. 집을 잃은 이들도, 가축을 잃은 이들도, 늦게 떠나다 가족이 죽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했다.


-축하해. 재미있었네. 특히 그 커다란 괴물과 싸우는 모습은 솔직히 조금은 감동하기까지 했다네.-


“재미있는 카나비 선생께서 납셨군. 이제는 몸이라도 드러내지. 난 허공에다가 말하는 취미는 없다네.”


-쳇, 상대방의 사정을 배려해야지. 괜스레 칼침이라도 놓을 생각인가?-


“뭐, 껄끄러우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도 돼. 어쨌든 자네 시험은 통과한 건가?”


-물론,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말이야. 앞으로 자네와 하마드의 일은 내가 전담하도록 하지. 그 대신 하사신 들과의 다툼은 받지 못하겠어. 좀 사연이 있어서 말이야. 뭐 그리고 보수는 적당히 시세대로 하겠네. 문제없지?-


“시세?”


-무슬림 영주는 금 열 덩이, 프랑크 영주는 스무 덩이, 뭐 종교인들은 다섯 덩이 정도. 종교인이라 하면 이맘이나 주교 뭐 가리지 않는다네.-


“더럽게 비싸구먼.”


류는 혀를 찼다. 카나비 같은 밤의 암살자들에게도 쉬운 일들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너무 비쌌다.


류의 투덜거림에 잠시 침묵이 이어지다가 가까운 곳의 모래더미가 살며시 갈라지며 카나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에는 억울하다는 표정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비싼 게 아니야. 적당한 거라고. 네놈들이 그냥 마음에 안 들어. 죽일래. 이러면서 막 의뢰하니까 난잡해진 거지. 원래 이건 예술에 준하는 멋진 일이라고, 게다가 중간에 들어가는 경비가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알았어. 그 대신 나도 자넬 시험해보고자 하는데······. 불만 없지?”


“쳇, 또 술탄이라도 건들라는 얘기냐? 그런 정도만 아니면 이번에는 무료로 놀아주지.”


류는 해가 지며 하늘로 별들이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시험을 의뢰했다.


“오늘 적진의 원로들. 일곱이었지?”


“그렇지.”


“그들의 목을 베어줘. 일곱 중에 셋만. 그러면 겁에 질려 하마드에게 등 돌릴 생각은 안 하겠지.”


그 말에 카나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의문이 있는 것이다.


"왜 셋이야? 전부 죽여버리지. 혹시 내가 힘들까 봐 배려하는 거야? 의외로 따뜻한 남자네. 크크"


"아니, 첫 번째는 그러려니 하겠지. 원로들이면 원한을 산 데도 꽤 있을 테니까. 그런데 두 번째는 의심하기 시작하겠지. 뭔가 시작됐구나 하고 말이야. 세 번째는 겁에 질릴 것이야. 그렇구나. 하마드가 우릴 건드리는구나 하고 말이야."


“차라리, 그 애송이와 어미를 죽이는 게 낫지 않아? 하마드의 자리를 노릴만한 건 그 가문밖에 없잖아. 필요하면 갓난아기까지 모두 몰살해줄게.”


“아니, 하마드가 얘기 안 하는 뭔가가 있어. 내가 그랬다는 걸 알면 오히려 적으로 돌아설 거야. 그네들은 원로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그냥 능력 없는 철부지와 목소리만 큰 여편네일 뿐이야.”


카나비는 군영 주변으로 불타기 시작하는 모닥불을 하나둘 바라보다가 손을 내밀었다. 류는 카나비의 손을 바라보다 내밀어 잡아줬다. 카나비는 기분 좋은 듯 손을 힘있게 흔들었다. 류는 어깨가 욱신거려 눈살을 찌푸렸다.


“그냥 아무나 셋 죽여주지. 귀찮으니까 가까운 녀석들 위주로 후다닥 해치우고 찾아가도록 할게.”


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하늘로 눈을 돌렸다가 곁을 보니 카나비는 소리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소름 끼치는 녀석 같으니라고.'


류는 그래도 카나비와 적이 아니라, 손을 잡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험한 녀석은 목숨을 끊기 전까지는 위험한 녀석. 태생이 원래 그러니 마음을 줄 수도 없고 서로 이용이나 해야 할 상대다.


카나비와 이 정도 사이는 딱 좋은 거리다.



***



전쟁의 뒤처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상자들을 모아 매장하고 이맘들이 그들의 천국행을 기원하며 마무리했다.


류는 하지즈의 맘루크 중에 마음에 드는 십여 명을 콕콕 집어서 내놓으라고 닦달했고, 하지즈도 줄 수 없다고 바득바득 우기며 버텼다. 그러나 결국 류의 지갑이 열리자 잠깐 셈을 해보던 하지즈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락했다.


"어. 이만큼씩이나 주겠다니. 너무 많이 주는데?"


하지즈가 덥석 쥐여주는 금덩이에 놀라며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띄웠다. 셈이 잘못됐는지 몰라도 서로 얘기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었으니까 말이다.


"마차와 먹을 것, 간단한 생필품까지 오백 명이 삼 개월 정도 쓸 것도 포함해서···."


"뭐? 포로들이 이동할 때 쓸 거냐?"


"포로가 아니야. 자유민들이지. 초병도 없이 길잡이만 붙여서 보낼 거야."


"쳇, 돈 낭비군. 그러다 모두 도망간다."


하지즈는 류를 어리숙한 녀석이라며 혀를 찼다. 하지만 류의 생각은 단호했다.


"어차피, 커다란 땅에 목책을 두르고 키울 수는 없어. 늑대들을 양처럼 키울 수는 없는 법이지. 기왕 도망갈 거면 빨리 가버리는 게 나아. 앞으로도 자리 잡을 때까지 계속 돈을 처바를 거니까."


하지즈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리 좋은 눈빛은 아니었다. 자신의 삶에 비추어서 이건 돈 낭비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하지즈는 솔직히 돈을 맡기면 불려주겠다는 얘기를 하려다 말았다.


지나가던 부관을 불러세운 하지즈는 주변의 상인들을 수소문하라고 일을 시키고는 자신의 천막으로 사라졌다.


아마, 목숨을 건 싸움에 잔뜩 흥분했던 그는 술 한잔을 몰래 하며 신에게 감사를 올릴 생각일 것이다.


그리고 오늘처럼 무모한 짓은 안 하겠다고 다짐하겠지.


그는 그런 게 어울렸다.



***



하마드의 천막에 들어서자,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하마드와 알마릭이 있었다.


알마릭은 류를 바라보다가 일어서 눈인사를 했다. 이 안타까운 일의 시발점이자, 마무리였으니 여러 생각이 엇갈렸을 것이다.


"고맙네. 족장을 보호해줘서."


"저도 고맙습니다. 알마릭. 당신 덕분에 기회가 생겼어요."


씁쓸한 미소와 함께 서로 악수했다. 알마릭은 다시 하마드의 곁에 설 것이다. 나도 그를 용서할 것이다.


그는 앞으로는 나를 도울 것이다. 그러면 됐다.


"좋은 일이야. 이리 정리가 됐으니 원로들도 마음을 돌릴 거네. 그리고 술탄께서도 모술에 무혈입성하셨다고 하네. 그 소식에 알레포도 문을 열고 고개를 조아리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하고 말이야."


하마드는 목숨이 경각에 달했던 오늘 일은 모두 잊고, 주군의 성공에 감격하고 있었다.


이제 살라흐앗딘은 뒤를 겁내지 않고 힘을 모을 수 있다. 류는 이게 조용한 날의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걱정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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