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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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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5,112
추천수 :
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7.14 10:25
조회
3,478
추천
92
글자
8쪽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2-2 >

DUMMY

"괜찮죠?"


노인은 눈치를 살피며 말을 걸었고, 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노인은 자신을 켈모레우스라고 소개했고, 비잔틴에서 젊은 적에 살았었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그는 이리저리 흘러 다니다 아모데우스의 부대에 자리를 잡고 불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면 주인님. 값을 매겨볼까요?"


"어···. 값? 하···. 물론이지. 물론 공짜로 하라고 하진 않겠어."


"그럼요. 어떻게 샜는지 모르겠지만, 무슬림도 요즘에는 만든다고는 합니다만 진짜배기가 가장 낫지요. 그리고 이걸 만드는 장인은 관리를 철저히 해서 밖으로 나돌아다니지 못하게 합니다. 비잔틴도 이슬람도 마찬가지로요."


"그···. 그럼 얼마나?"


"한 동이에 은화 다섯 닢으로 하죠. 물론 재료값은 주인님께서 내셔야 합니다."


켈모레우스는 곧 영지 안에서 류 다음으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됐다.



***



류는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보며 그동안 지불한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되뇌었다. 불에 몸이 타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가장 끔찍한 죽음이겠지만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통쾌한 일인가?


게다가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남의 땅에 쳐들어온 모리배들에겐 자비가 아까운 일이다.


그때 제레미라는 기사가 외쳤다.


"그리스의 불이다. 물을 붓지 말고, 식초를 뿌려! 식초를 뿌리면 꺼진다."


그러자 병사들이 준비해놓은 식초를 가져다 뿌려대기 시작했다. 녀석들도 그리스의 불을 아는 것이다. 그렇게 물을 뿌려대도 땅에 뒹굴어도 사람이 뼈만 남을 때까지 불타던 불길이 삽시간에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그동안 켈모레우스에게 퍼준 돈이 아까워졌다. 하지만 후회해서 무엇하겠는가? 식초를 뒤집어쓰고 덤벼들기엔 녀석들도 곤욕이니 자주 할 일은 아닐 테고. 그래도 위협적인 무기이기는 했다.


야단법석인 도중에 충차는 쓰기 힘들 정도로 불타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류는 만족하지 않고, 손으로 셈을 더하며 중얼거렸다.


“은화 다섯 닢은 너무 비싸. 이러면 두 닢으로 해야겠어.”



***



류는 말을 달렸다. 제레미라고 불린 기사는 기병들을 몇 데리고 류의 뒤를 쫓았다. 타와시들은 중간중간 흩어지며 몇 명씩 적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그래도 류를 쫓는 적들은 많았다. 류는 모르겠지만 이름을 날리고 싶다는 생각에 류만 보고 쫓아오는 녀석들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류는 쫓는 적들이 너무 뒤처지지 않게 중간중간 말을 쉬어가면서 뒤를 돌아봤다.


말을 어루만지며 숨을 가다듬게 보살피다가 광분한 적이 달려들 때쯤 다시 달리기 시작하고는 했다. 그러다가 가끔은 그리스 용병인 경기병들이 금세 따라붙어 원하지 않는 싸움도 몇 번을 해야 했다.


그러나 류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착실하게 하나둘 베어 버리자, 경기병들은 슬그머니 거리를 두고 뒤를 쫓기만 할 뿐, 자신들의 기사를 앞에 내세웠다.


류의 상대는 제레미와 네 명의 기사. 한 번에 붙어볼 만한 상대들은 아니었다. 아까 한 합을 나눠본 결과, 제레미라는 녀석은 알폰소보다 강하면 강했지 만만한 녀석은 아니었다. 곁에 있는 넷 중 하나라도 비슷한 실력이면 류도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어 보였다.


한참을 북쪽으로 달리던 류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 뒤쫓아오는 적들이 점점 다가오지만, 이제는 신경도 쓰지 않고 말을 세운 것이다.


류는 웃으며 생각했다. 이제 됐다고 말이다.



***



뒤를 쫓던 제레미와 기사들은 당혹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멈췄다. 레널드가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짜증을 내겠지만 지금은 우선 멈춰야 했다.


“제레미. 어떻게 할까요?”


기사 하나가 겁먹은 말투로 물었다. 제레미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혀를 끌끌 찼다.


“우선 돌아가자.”

제레미는 말을 마치고는 말머리를 돌려 본진으로 향했다. 바보처럼 지금 공성이나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어서 알려야 했다. 잘못하면 준비도 못 하고 제대로 한 방 먹을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제레미는 한참을 달려, 불타버린 충차는 밀어내고 공격을 준비하는 본진에 도착했다.


“어떻게? 베어버렸냐? 녀석의 목은?”


레널드의 말에 당혹감을 느끼며 제레미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자신이 본 걸 털어놓기 시작했다. 제레미의 말을 듣던 레널드의 얼굴은 터질 듯이 새빨개져 가기 시작했다.



***



류는 성채를 향해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힘겹게 류를 태우고 달리느라 고생한 말을 쉬게 하면서 말이다.


“쯧, 아미르라면 알아서 정리해야지.”


류는 핀잔주듯이 말하는 하지즈를 쳐다보며 웃었다. 반갑기도 하고, 시간에 딱 맞춰 도착해준 게 고맙기도 해서 말이다.


“왜? 적은 수로 많은 적을 상대하는 게 용기인가? 내가 뿌려댄 게 있는데. 됐어. 난 안 받을 거야. 그렇게 고고하게 얘기하는 게 영리한 건가?”


“젠장, 하마드 나리도 너하고 얽힌 게 짜증이 나실 거다.”


류와 하지즈의 뒤에는 하지즈가 애써 키운 기병들이 조금 거리를 두고 질서정연하게 따라붙었다. 기병들의 수는 삼백여 명 정도, 적지는 않았지만, 레널드의 군대를 뭉개기에는 좀 모자랐다.


“그런데 이게 다야? 생색내기냐? 그리고 어제까지만이라도 왔으면 내가 이렇게 모험을 걸 필요는 없잖아.”


“보병들은 지금 지쳐 쓰러질 정도로 뛰고 있다. 부관 녀석의 닦달을 받으면서 말이야. 그리고, 다마스쿠스에서 여기까지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서신을 받자마자 난 쉬지도 않고 떠난 거다.”


투덜대는 류의 말에 하지즈는 지지 않고 받아쳐 버렸다.


“흠···. 웬만하면 겁만 주고 물러나게 하는 게 제일 나은데···. 보병이 늦으면 녀석들이 한번 해보려고 할지도 모른다고.”


류는 생각보다 꼬여버린 시간을 되짚어보면서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괜찮아. 내일 동틀 때면 도착할 거야.”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지즈는 나름 의젓하게 말을 몰며 여유로워 보였다. 그러고 보니 하마드의 후원을 제대로 받았는지 병사들의 병장기도 괜찮아 보였고, 예전보다 사기도 높은 것 같았다.


“병사들이 꽤 훈련을 잘 받았네. 내가 있을 때보다는 훨씬 나아.”


간만의 칭찬에 하지즈는 조금 놀란듯했지만, 얼굴에 환한 미소는 숨기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걸 고맙다고 맞받아칠 하지즈는 아니었다.


“참나, 내가 잘하는 게 운용과 조직인데. 당연한 거 아니야? 난 내 자리를 제대로 잡아가고 있어. 그런데 넌 뭐냐? 자기 땅도 못 지키는 아미르는 위신이 떨어진다고.”


“이기려고 하면 우리 힘으로 이길 수 있어.”


“뭐···. 뭐라고?”


하지즈는 류의 대답에 당황하며 되물었다. 그렇게 자신 있으면 뭐하러 원군을 요청한 것인가?


“이길 수 있는데 귀찮잖아. 녀석들은 져도 인정을 안 할 거야. 그냥 계책에 졌다. 운이 나빴다. 그렇게 말이야. 그런데 술탄의 중신이 보낸 군대가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걸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 적들이 신경 쓰는 곳이구나. 만만하게 건들면 안 되겠구나.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 그러면 내 도움은 별로 필요 없었던 것이냐?”


“뭐 귀찮기는 해도, 어떻게든 할 수 있었지. 몇 가지 방법도 생각했고 말이야. 아. 명목상이기는 해도 내가 예루살렘에서 작위를 받은 기사가 아닌가? 그래서 공식적으로 서찰도 보냈네. 아주 정중한 항의의 뜻을 담아서 말이야.”


“참···. 대단한 녀석.”


“칭찬 고마워. 하지즈. 사실 이렇게 계산적인 건 자네에게 배운 거야.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거 같더라고.”


류의 너스레에 하지즈는 슬쩍 부아가 돋는지 듣기 힘든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자···. 필요도 없는 사람들을 불러낸 대가는 치러야지. 기병 삼백에 보병이 천명. 오가고 하는 동안에 소모한 물자를 돈으로 따지면 말이야.”


류는 하지즈의 말이 시작되자, 등자를 후려갈겨 말을 달려나갔다. 하지즈의 구시렁대는 소리를 뒤로하고 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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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 #13. 낙성(落城) 2-1 > +12 18.07.28 2,947 74 8쪽
144 < #13. 낙성(落城) 1-2 > +10 18.07.27 3,052 78 9쪽
143 < #13. 낙성(落城) 1-1 > +10 18.07.26 3,143 6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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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 #12. 하틴 3-2 > +13 18.07.22 3,360 75 9쪽
139 < #12. 하틴 3-1 > +8 18.07.21 3,244 82 9쪽
138 < #12. 하틴 2-2 > +8 18.07.20 3,329 89 10쪽
137 < #12. 하틴 2-1 > +17 18.07.19 3,384 83 9쪽
136 < #12. 하틴 1-2 > +14 18.07.17 3,617 82 10쪽
135 < #12. 하틴 1-1 > +4 18.07.16 3,513 8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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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3-1 > +12 18.07.14 3,476 89 8쪽
»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2-2 > +6 18.07.14 3,479 92 8쪽
131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2-1 > +16 18.07.13 3,467 8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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