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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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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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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04,559

작성
18.07.15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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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글자
12쪽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3-2 >

DUMMY

양쪽 병사들은 밤새 교대로 쉬며 대치를 풀지 않았다.


붉은 해가 슬그머니 떠오르는 시간. 어둠이 걷혀가자 전투가 시작될 거라는 생각에 사람들은 몸을 움직여 굳은 몸을 풀기 시작했다.


제레미는 자신과 함께할 기병들을 돌아보며 준비했다. 말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무기를 가다듬고 이제는 화려하게 꽃이 질 때다.


'재수 없는 녀석들. 전혀 신경도 안 쓰는군.'


기병들이 모여, 말을 준비하는 건 분명 공격에 나설 거라는 신호인데 녀석들은 요지부동이다. 심지어 가운데에 서 있는 저 녀석은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고 있다. 손으로 제레미를 가리키며 말이다.


"어떻게든 네 녀석만은 내가 책임지고 땅속에 파묻어주마."


이빨을 꽈드득 깨물며 혼잣말을 뱉을 때 아모리가 다급하게 달려와 손으로 가리켰다. 해가 떠오르며 이글거리는 지평선을 말이다.


그곳에는 하얀 물결이 천천히 몰려오고 있었다. 깃발을 들고 기다란 창은 어깨에 메고, 허리에는 기다란 검을, 팔에는 철을 덧댄 방패를 든 병사들이 말이다. 그들은 천천히 자신들의 신을 칭송하는 방언을 뱉으며 발걸음을 맞추고 있었다.


"아모리, 고몽에게 공작을 지키라고 해. 퇴각해야 한다."


아모리가 사라지자, 제레미는 기병들을 이끌고 진 앞으로 나섰다. 시간을 끌어야 할 테니까 말이다. 어느새 조슈아와 아모리도 다가와 양옆에 섰다. 서로 주먹을 맞대며 마지막을 준비했다.



***



"오, 의기가 대단한데. 아직도 해볼 생각인 건가?"


하지즈는 말고삐를 움켜쥔 손을 살며시 떨고 있었다.


"보나 마나 시간이나 끌다가 도망갈 생각이지. 그래도 남은 녀석들은 쓸만해 보여. 아깝다."


"뭐? 왜?"


하지즈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물었다. 류의 말을 듣고는 재빨리 머릿속으로 셈을 시작했다.


"왜라니? 내 땅에 쳐들어온 놈들인데. 그냥 돌려보내면 내 체면이 안 서잖아? 가능하면 레널드 녀석 멱을 따버리고 영토나 넓히지."


"그···. 그건. 내 병력으로?"


"동맹이잖아. 아주 가깝고. 피를 나눈 동맹 말이야."


류는 씨익 웃었다. 하지즈는 앞으로도 이런 일이 생길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 류의 성 위에 압둘이 올라서서 바지를 내리고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도망치려는 적에 대한 조롱이었고, 그걸 본 류의 말에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녀석, 듬직하네. 저건 부러워."



***



병사들을 벌리며 크게 감쌀 준비를 했다. 앞으로 튀어나와 막아 선 기사들과 기병이 애처로워 보였다. 불쌍한 희생양을 남겨놓고 다른 적들은 도망갈 준비에 바빴다.


류를 막아섰던 흑발 기사가 투구를 머리에 얹으며 고함을 지르는 게 보였다. 오히려 밀고 들어올 생각인가?


류는 몸이라도 풀 겸 앞으로 나와 극을 흔들었다. 죽음을 원한다면 마다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그와 발맞춰 진의 양옆으로 궁기병들이 달려나갔다.


적들은 감싸서 퇴로를 막을 생각이었다. 하지즈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이교도들의 몰살과 남겨진 전리품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영광스러운 승리를 신에게 바치고 그 업적이 또 다마스쿠스에 퍼지면 좀 더 위로 올라갈 거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대애앵, 대애앵!-


성의 망루에서 다급하게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적들의 움직임이 멈춰버렸다. 오히려 다시 진을 펼쳐 맞싸우려는 것 같았다. 갑자기 적들의 사기가 올라가자 류는 먼 곳을 바라봤고 이유를 알았다.


중무장한 프랑크 군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즈의 병력보다 적기는 했지만, 적군이 서로 합치면 숫자가 뒤집힐 정도는 되었다.


"뭐야. 저 녀석들."


하지즈는 당황했고, 적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성벽에서 노닐던 압둘은 바지를 주섬주섬 다시 걸치기 시작했다.


"하···. 본때를 보여줬어야 했는데. 그냥 이렇게 끝내야 하나?"


류는 말을 달려 다가오는 프랑크 군을 향해 다가갔다. 충실한 류의 타와시들은 겁을 먹으면서도 영주를 지키겠다며 따라붙었다.



***




중무장한 프랑크 군의 선두에는 일단의 기병들이 모여있었다. 그의 앞에는 레널드가 보낸 전령이 말을 건네고 있었다.


-'어서 공격하세나. 이교도에게 본때를 보여줄 테니 어찌 기뻐하지 않으시겠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말을 하던 전령은 달려온 류를 보더니 화들짝 놀라 입을 다물어버렸다. 잠시 분위기를 살피다 고개를 숙이고 말을 돌려 달아나버렸다.


"오랜만입니다. 로드 발리앙."


"역시 오랜만입니다. 로드 류."


"싸움에 끼어드실 건가요? 그러면 돌아가서 채비해야 해서 말입니다. 전에 약속을 지킬 때가 되긴 했죠."


류의 말에 발리앙은 덥다는 듯 벗겨진 정수리를 손으로 훔쳤다. 땀이 가득했다. 전령이 돌아간 후, 레널드의 진영에서 기병들이 레널드를 호위하며 달려오고 있었다. 잔뜩 짜증이 올라온 얼굴이었다.


곁눈으로 훑어보며 발리앙은 류의 말이 이해되지 않아 물었다.


"약속?"


"내 목숨을 한번 구해줬으니 살려드리겠다고 한 적이 있죠. 사실 빚이란 거 가슴에 쌓아두면 계속 멍이 든답니다. 전 약속을 꼭 지키는 사람이라서 힘들었습니다."


"쳇, 이벨린의 발리앙이 그렇게 우습게 보이던가? 적당히 하지. 레널드를 뒤로 물려서 돌아가게 하겠다. 그러니 쫓지 말아."


류는 발리앙의 말에 오히려 어이없다며 따져 물었다.


"안돼. 당신도 한 땅의 영주잖아. 자기 땅에 쳐들어온 녀석을 아무 혼쭐도 안 내고 돌려보낸다? 그게 말이 돼? 자기도 그렇게 안 할 거면서 그렇게 하라고 협박을 하는 거야?"


-발리앙! 어서 저놈을 죽이세.-


발리앙은 자기에게 애걸복걸하는 말투로 고함을 지르는 레널드의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협상하세나. 우리 쪽의 잘못이니. 합당하게 말이야."



***



"난 겁쟁이가 아니야! 발리앙. 자네가 돕지 않겠다면 우리만이라도 싸우겠다."


"좋으실 대로. 보통 포로로 잡아서 몸값을 가득 받는 게 이곳 풍습이라던데. 네 녀석 몸값은 필요 없어."


발리앙은 탁자의 양쪽에 앉아 드잡이질하는 둘을 바라보며 물을 한잔 마셨다. 섭정인 레몽은 호전적인 기나 레널드를 걱정하기는 했지만, 예루살렘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래서 발리앙이 병사들을 이끌고 달려온 것이다.


"그만 들 두시고 정리합시다. 류, 자네는 피해당한 걸 보상받고자 하는군. 그리고 협정을 위반하고 쳐들어온 레널드 공작에게 벌이 가해지는 걸 원하고 말이야."


류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널드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지다가 발리앙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레널드 공작. 당신은 이 무슬림 영주의 죽음을 원하고 있고, 또한 내 병력이 합쳐지면 간단히 이기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맞지요?"


강경한 입장을 내세우는 양쪽을 보며 발리앙은 고민에 빠졌다. 이렇게 나서서 정리한다고 과연 불씨는 사그라질까? 그냥 불타게 놓아둬 버릴까? 궁전 안에서 매일 기 일파와 레몽 일파의 싸움을 보는 것도 신물이 났다.


그냥 선왕의 죽음으로 예루살렘은 끝난 게 아닌가? 고민하던 발리앙은 그래도 최선을 다해보겠다며 마지막으로 중재에 나섰다.


"합당한 보상은 예루살렘 왕국이 내줄 것이며, 향후 조약을 위반하는 일이 없도록 잘 관리하겠소. 더 싸우겠다면 우리는 물러나리다. 그리고 레널드 공작, 당신의 일 년간 소출은 관리를 보내 우리가 거둬들이겠소."


류는 마지못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레널드는 품위 없이 제 생각만 고집했다.


"발리앙! 좋다. 내 편에 설 필요도 없어. 난 중재를 원하지 않는다."


억지를 부리는 레널드에게 처음으로 발리앙이 불같이 화를 냈다.


"감히! 왕의 뜻을 어기겠다는 건가? 자네는 왕국의 신하가 아닌가? 성묘에서 왕을 따르겠다고 맹세하지 않았는가? 말해보라. 레널드."


잔뜩 화를 내는 발리앙의 모습을 처음 본 류는 그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무너지는 커다란 둑을 두 손을 막아보려 애쓰는 마음을 말이다. 하지만 감동한 류와 달리 레널드는 마지막 선을 넘어가 버렸다.


"왕? 아홉 살짜리 그 왕? 레몽과 발리앙의 허수아비 왕? 난 왕으로 인정 안 한다."


레널드는 군대를 움직이겠다고 일어섰고, 흑발의 기사는 따라나서며 류와 눈이 마주쳤다. 서로 인정하는 눈빛이 오갔다. 살며시 서로에게 고개를 숙였다.


"레널드 공작. 그 말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내 군대는 이 영주와 손을 잡을 겁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말이다. 발리앙의 단호한 말에 충격받은 레널드는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이제야 졌다는 걸 인정한 표정이었다. 아무 말 없이 레널드는 돌아가 병력을 물려 되돌아갔다.


"적을 만드셨군요."


멍하니 있는 발리앙을 위로한답시고 이렇게 말을 건넨 류는 실수라는 걸 깨달았다. 이 멋진 사내의 눈가가 붉어져 있는걸 보고 말이다.


"자네와 엮여서 좋은 일이 없군. 그러면 나도 물러가겠네. 쓸데없는 서약서는 쓰지 말자고. 적당히 챙겨서 보낼 테니."


조용한 축객령이었다. 발리앙의 말에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는 하지즈가 얄밉기는 했지만, 류는 고마움에 감사를 표했다.


"로드 발리앙, 내 꼭 약속하리다. 당신이 위험할 때 내가 도울 방법이 있다면 그 목숨은 내가 구하리다."


자그마한 영지를 가진 류의 호언장담에 어이없다며 발리앙은 피씩 웃었다. 그러나 레널드가 떠날 때보다는 조금은 풀린 표정이었다.



***



하지즈의 병사들이 성 주변에 천막을 치고 쉴 준비를 하자, 류도 성으로 돌아왔다. 성문이 열리며 류와 하지즈를 환영하는 목소리가 드높았다.


아버지와 연이를 번갈아 안고는 류는 소리쳐 외쳤다.


"이 땅! 너희들이 걱정하지 않고 살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약속을 지켰다."


환호성 사이로 다가온 압둘과 여러 맘루크가 웃으며 술을 풀어달라고 목청 높이 외쳤다. 기분이다.


"있는 술을 모두 풀어라!"


그때 떠들썩한 분위기 사이로 켈모레우스가 다가와 손을 비비며 웃었다.


"주인님,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다른 게 아니라, 그리스의 불이 거의 떨어져서 말입니다. 다시 얼마나 준비할까요?"


기분 좋은 와중에 돈부터 따지고 들기 시작이다. 류의 이마에 핏줄이 잔뜩 곤두섰다.


"켈모레우스, 뭐 도움을 받은 건 확실하네만. 꼭 그걸 써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그 돈이면 병사들을 늘리고, 무기를 사는 게 나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야."


류가 쏘아붙였지만, 켈모레우스는 몽땅 빠져버린 이빨을 자랑하며 끌끌 걸렸다.


"그러면 좀 가격을 낮추죠. 은화 두 닢 정도로 하는 대신에 말입니다."


"대신에 뭐?"


"영주님도 나중에는 적들의 성을 공격할 일이 있지 않겠습니까?"


류는 의중도 모른 채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그러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지 않았는가?


"베틀램이나 트레뷰셋이란게 있는데 말이죠. 베틀 램은 아, 우릴 공격하던 마차 같은 거고. 튜레뷰셋은 커다란 돌을 날리는 기계고 말입니다."


"그래서?"


"배틀램은 은화 스무 닢, 트레뷰셋은 백 닢으로 하시죠. 제가 그것도 잘 만드는 장인입니다. 끌끌···."


켈모레우스는 또 자기의 재능을 팔아치우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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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 #13. 낙성(落城) 3-1 > +26 18.07.30 3,033 69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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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 #12. 하틴 3-2 > +13 18.07.22 3,360 7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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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 #12. 하틴 2-1 > +17 18.07.19 3,384 83 9쪽
136 < #12. 하틴 1-2 > +14 18.07.17 3,617 82 10쪽
135 < #12. 하틴 1-1 > +4 18.07.16 3,513 84 9쪽
»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3-2 > +18 18.07.15 3,670 96 12쪽
133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3-1 > +12 18.07.14 3,476 89 8쪽
132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2-2 > +6 18.07.14 3,479 9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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