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낙성(落城) 3-1 >
하마드는 잠시 진중을 떠났다가 돌아와 살라흐앗딘의 암살미수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황급히 술탄을 찾아뵌 그는 자신의 주인이 아무 해를 입지 않은 것을 신에게 감사드렸다.
"살라흐앗딘, 다행입니다. 흉수는 도대체 어떤 놈입니까?"
"계집이더라. 아주 어린 계집아이. 멋모르고 달려든 아이 같으니 난 살려주고 싶은데. 이맘들이 난리야. 당장 고문을 하고 뒤를 알아낸 후 목을 베라고 난리야."
맘루크의 도움으로 겉옷을 걸쳐 입으며 살라흐앗딘은 슬픈 듯 말했다. 하마드는 당치 않은 얘기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결국 자기도 술탄의 이런 면모에 반한 것 아닌가?
"제가 한번 설득해보겠습니다. 배후만 말하면 처벌은 하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그래 주게나. 만약 설득이 통하지 않으면······. 목을 매달 수밖에 없다. 차마 시체라도 온전히 놔두고 싶구나."
"네."
하마드는 천막을 다시 나와, 암살자의 면상을 확인하려 발걸음을 했다. 벌써 정오가 지나 펄펄 끓는 날씨에 암살자는 천막 사이의 커다란 기둥에 묶여 있었다.
밤새 불어닥친 모래폭풍에 온몸이 모래투성이였다. 입술은 그새 바짝 마른 것이 힘들어 보였다. 가까운 곳에 하지즈도 다가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암살자의 얼굴을 쳐다보려 했다. 하지만 소녀는 죽은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물을 가져다 다오."
하마드의 말에 병사 하나가 부리나케 달려가 물을 한 그릇 가져왔다. 하마드는 무릎 꿇고 소녀의 입에 물을 넘겼다. 처음에는 거부하며 앙다문 입술 사이로 흘러내렸지만 이내 소녀는 헐떡이며 물을 받아마셨다.
"술탄의 뜻은 널 살리고 싶어 하신다. 배후만 말해라. 널 살리고, 나쁜 녀석들이 널 협박한다면 뒤를 막아주겠다."
샤아는 하마드의 말에 조금이나마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지켜보는 초병들의 눈은 흉흉했다. 분명 저들 중 몇은 하사신이리라. 다시 절망이다.
"나리, 감사합니다만 그냥 죽여주시죠."
그때 하마드의 뒤에서 지켜보던 하지즈가 '헉' 거리는 탄식을 뱉었다. 고개를 돌려본 하마드의 눈에는 하지즈가 입을 황급히 막으며 고개를 돌리는 게 보였다.
"하지즈, 날 따라와라."
벌떡 일어선 하마드는 하지즈의 팔목을 잡아채 사람이 보이지 않는 천막 사이로 끌어갔다.
"넌 뭔가 알고 있지?"
부들거리며 몸서리치던 하지즈가 주변을 살피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하마드, 류가 데리고 다니던 아이입니다. 예전에 하사신 마을을 공격했을 때 살아남은 아이인데······. 모른 척하고 그냥 돌봐주고 있었습니다."
"이럴 수가······. 류의 이름이 들려오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분명 앗산이······."
당황한 하마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지즈는 당황한 눈으로 손을 뻗었다. 고개를 돌린 하마드의 눈에는 앗산이 보였다.
"백부님. 제가 뭘요?"
입을 다문 하마드의 귀에 앗산이 입을 가져다 댔다.
"제가 다 정리하겠습니다. 불충한 아미르 따위, 제 손으로요. 그러니 백부님은 모른 척 빠져 계세요. 무슬림도 아닌 녀석을 감싸려 오해받기에는 좀 그렇잖아요? 얼마나 물고 뜯으려는 녀석들이 많은데 말입니다. 아신 일족의 이름은 드러나지 않게 하겠습니다."
비열한 웃음이 가득했다.
***
샤아는 계속 입을 다물었다. 살라흐앗딘은 결국 이맘들의 의견을 따라 샤아를 죽이라 했다. 온몸을 토막 내라는 이맘들에게 버럭 화를 내어 목매다는 것으로 막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샤아의 눈앞에 장정들이 나무기둥을 두 개 연달아 세우더니 그 끝에 기다란 줄을 몇 번이나 감아 연결했다. 그리고는 그 두툼한 줄 더미에 줄을 다시 걸어 올가미를 만들었다. 몇은 물통을 가져다 세웠고 샤아의 등을 떠밀어 교수대로 향하게 했다.
"자비로우신 술탄께서 고통스럽지 않게 한 번에 죽이라 하셨다. 목을 매달면 단번에 당겨서 목뼈를 부러뜨려라."
하마드는 그리 말하고는 참혹한 광경이 싫어 자리를 피했다. 곁에 서 있던 하지즈도 하마드를 따라 가버렸고, 이맘 몇과 앗산만이 책임자로 남아 이리저리 지시를 시작했다.
"술탄의 목숨을 노렸다. 알아서들 해라."
줄을 잡고 있던 병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나 마나 하마드의 말과는 달리 최대한 천천히 잡아당길 게 분명했다. 자신들의 영웅을 죽이려 한 역적. 그 죄는 저승으로 가서도 영원히 받는 게 마땅했으니 말이다.
샤아가 올가미를 걸고 올라서자 곧 병사 하나가 물통을 걷어찼고, 곧 허공에서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거세게 조여오는 줄이 목덜미를 짓눌렀고, 샤아는 캑캑거리며 몸부림쳐봤지만, 허공에 매달린 허수아비일 뿐이었다.
-죽어라!-
누군가가 외친 목소리에 모두 합창을 하듯 죽으라고 함성을 질러댔다. 그 모습에 앗산은 빙긋이 웃었다. 류를 죽일 땐 저처럼 목을 매달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때 천막이 여러 개가 부서지며 비명이 들려왔다. 미친 말 한 마리가 천막들을 짓밟으며 진중을 가로질러 다가오고 있었다. 말에는 조그마한 녀석이 몸을 숙이고 손에는 창을 든 채 사납게 휘두르고 있었다.
"막아라!"
앗산의 말에 병사들이 창을 꼬나 들고 달려들었지만, 거침없이 사람을 짓밟으며 달려드는 말에 모두 혼비백산했다. 녀석은 창을 휘둘러 샤아의 목줄을 끊어버리고는 그녀를 품에 안아 들었다.
"젠장! 죽여버려라!"
병사들이 다가가 이리저리 창을 찔러댔다. 엉덩이에 찔린 말이 성질을 부리며 뒷발로 병사를 걷어차자 입에서 피를 토하며 병사가 쓰러졌다.
샤아를 안아 든 덕윤은 박차를 가하며 다시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 곳으로 스쳐 지나갔다. 말은 크게 상처 입은 듯 미쳐 날뛰었다.
앗산은 쓰러진 병사에게서 창을 빼앗아 들어 힘껏 던졌다. 창은 하늘 높이 날더니 덕윤의 등에 박혀버렸다. 그런데 힘이 모자랐는지 덕윤은 계속 달려나갔다. 잠시후 흔들리던 창은 맥없이 빠지더니 땅바닥에 뎅그렁거리며 떨어졌다.
“쫓아라!”
앗산은 주변의 병사들에게 고함을 지르며 가까이 있던 말을 잡아타고는 뒤를 쫓기 시작했다. 진중을 빠져나갈 때 천막에서 뛰쳐나오던 병사 곁을 지나치며 창을 낚아챘다.
녀석들이 달리고는 있지만, 멀리 가지는 못할 것이다. 둘이 탄 데다가 분명 창에 여기저기 찔렸으니 말도 쓰러질 것이다.
이를 악물고 앗산은 박차를 가했다.
***
샤아는 꿈만 같았다.
죽기 전에 보고픈 녀석 하나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다. 감싸 안은 덕윤의 팔은 단단했다. 고개를 숙여 덕윤의 품속으로 빠져들었다.
말은 쉬지 않고 달렸다. 하지만 둘이 타기에는 말이 힘들어 보였다. 멀리 쫓아오는 적들도 이제는 조금씩 거리를 좁힌다.
“안될 거 같아. 우리 잡힐 거야. 날 놔두고 가.”
샤아는 슬픈 듯이 말했다. 하지만 덕윤이라도 살려야 했다. 그렇게 말하는 샤아의 눈을 덕윤이 웃으며 바라봤다. 처연한 웃음.
갑작스레 덕윤이 입을 맞춰왔다. 달리는 말 위에서의 입맞춤. 말이 요동칠 때마다 서로 이가 부딪쳤지만 절대 떼지 않았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더 힘껏 사랑을 나눴다.
“괜찮아. 샤아, 넌 살 수 있어. 도망칠 수 있어.”
“뭐?”
“자리를 잡고 안장에 앉아. 고삐를 잡아, 박차를 쉬지 말고 때려. 난, 이미 늦었어.”
그때였다. 덕윤의 가슴팍에서 피가 뭉글거리며 새어 나오는 게 보였다. 샤아는 비명을 질렀다.
“바보같이, 주인님 말대로 갑옷은 벗지 말걸······. 땀 냄새가 너무 심해서 네가 싫어할까 봐 벗어버렸다.”
덕윤은 힘을 강제로 써 샤아를 안장에 바로 앉히더니 고삐를 샤아의 손에 움켜쥐게 했다. 스르르 떨어지는 덕윤.
털썩 소리와 함께 덕윤이 먼지를 일으키며 땅에 떨어졌다. 그때 말도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버렸다. 바닥을 뒹굴던 샤아는 다친 다리로 일어서려다 쓰러지길 반복했다.
결국 기어, 있는 힘껏 기어갔다.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덕윤의 눈이 흐려져 갔다. 샤아는 기어서 손을 마주 잡았다.
그렇게 웃으며 마주 잡은 손위로 성난 말들이 짓밟고 지나갔다.
- 작가의말
아....갔습니다. 눈물이 나지만, 후련합니다. 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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