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대체역사

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5,166
추천수 :
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8.04 22:25
조회
2,873
추천
81
글자
10쪽

< #13. 낙성(落城) 5-1 >

DUMMY

고대 로마인들의 폐허를 성채로 바꿨었다. 그들은 건축에서는 도가 텄던 사람들이었나보다.


꼼꼼한 배수로. 단단한 토대. 낡고 버려지기는 했어도 크게 손볼 곳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적은 돈과 시간으로도 이리 괜찮은 성채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류는 하주에서 겪었던 일로 인해 비밀통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적에게 뺏겼을 때 기습으로 탈환을 하려거나 또는 이길 수 없는 적에게 포위되어 어떻게든 도망을 쳐야 할 때가 되면 필요했다.


그걸 고민할 때 류는 로마인들이 쓰던 작은 통로를 찾아냈다. 불편한 자세로 허리를 굽혀야 했지만 그 대신 탄탄하게 돌로 천장과 좌우가 만들어진 그런 통로였다. 통로를 찾아낸 건 지하의 저수조 옆 돌담 틈 사이에서였다.


류는 바닥에 놓인 돌덩이가 딱 맞아들어가는 걸 보아 원래 있던 로마인들도 마지막에는 써먹으리라 생각했다. 허리가 아파질 때까지 어둡고 습기 찬 통로를 지나가 보이니 꽤나 떨어진 작은 돌산 틈으로 출구가 있었다. 돌이 여러 겹 쌓여 작은 틈 사이로만 빛이 들어왔고 나와서 보니 밖에서는 공간이 있다는 걸 찾아보기 힘들게 되어있었다.


류는 참 잘 만들어진 성채라며 흡족해 했었다. 그리고는 돌아와 바닥에 놓였던 돌로 틈을 막아 숨겼었다.


이 비밀은 가족만이 알았었다.



***



"플레게톤의 장치는 이제 끝났습니다. 완벽해요! 제 필생의 역작입니다. 크크크"


"플레게톤?"


"아,주인님은 잘 모르시겠구나. 우리 신화에 보면 지옥에 흐르는 불길을 얘기하는 겁니다. 딱 맞는 이름 아니겠습니까?"


켈모레우스는 재미있겠다고 깔깔대던 그 장치를 만들어냈다. 류는 차근차근 안내를 받으며 설명을 들었다.


딱 한 번. 한 번만 제대로 돌아가면 되는 장치이니 더더욱 신경 썼다. 한 번만 제대로 돌면 되지만, 조금이라도 틀어진다면 류는 죽을 것이다. 그러니 켈모레우스가 말할 때마다 류는 꼼꼼히 살폈다.


"이 줄은 남은 쇠사슬이 있으면 덧대도록 하지. 이게 끊어져 버리면 결국 추가 떨어지지 못하잖아."


"제 계산으로는 문제없는데 뭐, 남는 게 있으니 보강하죠. 이봐!"


켈모레우스는 자기의 도제들을 불러 류의 말대로 일을 시켰다. 한창 열띤 목소리로 지시를 하던 켈모레우스가 희번덕거리는 눈빛을 돌리며 물었다.


"주인님은 생각보다 잔인해요. 녀석들의 최후를 생각하니 온몸이 부르르 떨립니다. 크하하"


"그걸 알면서도 만들어낸 자네도 만만치 않네. 고마워. 넉넉히 챙겨주겠네."


"아닙니다. 이번은 공짜죠. 공짜. 제 인생에 이런 경우가 없습니다만 이건 공짜예요. 아마 앞으로도 이런 걸 만들어낼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걸 만들라고 시킬 미친 영주도 없고요. 크하하하하"


역시 켈모레우스는 즐겁다는 듯이 한껏 웃었다. 밤이 깊어지자 병사들은 준비해뒀던 짚단에다가 투구를 씌워 넣고는 성벽에 살짝 기대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저수고 옆의 통로를 통해 조금씩 조금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밤새 적들의 신음이 들려왔다. 전투의 공포가 사라지자 화상 입은 이들의 비명이 더 커진 것이다.


을씨년스러운 밤이 깊어졌다.



***



-드르륵······. 드르륵-


성채에 혼자 남은 류는 곳곳을 다시 눈에 담으려 돌아다니다가 해가 뜨기 시작하자 도르래를 당겼다. 철창이 힘을 주어 돌릴 때마다 한 움큼씩 들썩이며 올라갔다.


철창이 크게 올라가 턱에 닿자, 류는 도르래에 걸쇠를 걸고는 그곳에 쇠사슬을 걸었다. 아침부터 철창이 열리는 소리에 적들은 당황했는지 눈을 비비며 일어서기 시작했다. 류는 활짝 열린 성문 앞에 서서 외쳤다.


"앗산, 이 겁쟁이야. 오늘은 결판을 내자. 성문을 활짝 열었는데도 오지 못하겠다면 한 무리의 장수라 할 수 있겠느냐?"


이 황당한 광경에 적들은 우물쭈물했다. 다만 급하게 잠자리에서 일어선 앗산만이 겉옷을 대충 챙겨입으며 달려 나왔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앗산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가지고 싶다면 와서 가져가라. 이 성도, 내 목숨도. 그리고 네가 사모하는 연이도 말이야."


류는 몸을 돌려 성문 안으로 사라졌다. 활짝 열린 성문만을 놔두고 말이다.


"공격이다! 모두 공격해라!"


앗산은 병사들이 작은 성문을 지나쳐 꾸역꾸역 들어서기 시작하자 갑작스레 걱정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흥분한 병사들이 류를 난도질한다면. 혹여나 연이를 욕보인다면 말이다.


앗산도 급히 달려 들어갔다. 류의 병사는 많아야 수백. 자신의 병사가 적어도 세배는 들어갔을 즈음에 말이다. 그런 앗산의 곁에는 부장들 몇이 가까이 붙어 지키기 시작했다.


"아무리 함정을 파본다 해도 이정도 숫자라면 다 소용이 없는 거다. 결국 전쟁에서 이기는 건 사람의 수다. 이 바보야."


앗산은 얼굴 가득히 야비한 웃음을 지으며 혼자 읊조렸다. 그간의 고생이 오늘 끝날 것이다. 류를 사로잡으면 장대에 걸어 살갗을 한겹 한겹 벗기며 소금 칠을 할 것이다.


죽여달라고 애원해도 죽이지 않고 매일매일 고문할 것이다. 그 더러운 입에는 양물을 잘라내어 집어넣고 실로 꿰매버릴 것이다.


그리고 눈앞에서 연이의 옷을 벗겨 강간할 것이다. 앗산의 눈에는 광기만이 남았다.



***


망루에 올라선 류의 눈에는 하얀 물결이 성문을 통과하는 게 보였다.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간 고생하던 그들은 무작정 달려드는 것으로 응어리를 풀고 있었다. 잔뜩 긴장한 선두가 주위를 둘러보며 이상한 걸 느꼈지만 연이어 들어오는 동료들에게 등이 밀려 계속 안으로 들어올 뿐이었다.


앗산도 보였다. 겁많은 녀석이라 그런지 주변에는 잔뜩 무장한 장수들이 여럿 둘러싸고 있었다. 앗산도 당황했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하지만 앗산마저도 물결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도 점점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야 정신을 차린 병사들이 흩어지며 건물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분명 들어오게 한 후 기습을 가하려 한다고 생각한 거겠지.


그러나, 그건 아니다. 나 혼자서 너희들을 모두 상대할 것이다. 류는 그리 생각하며 앗산을 불렀다.


"앗산! 날 찾나!"


앗산은 고개를 들어 류를 보더니 검을 빼 들고는 공격하라 말했다. 녀석들이 달려들었다. 이제는 시간이 되었다.


류는 돌에 단단히 묶인 줄에 검을 가져다 댔다. 병사들이 망루의 작은 입구로 쇄도해올 때 다시 한번 먼 곳까지 살폈다. 마을에 보이는 적들은 적었다. 화상으로 몸져누운 녀석들 외에는 모두 약탈과 살인을 위해 몰려든 게 분명했다.


'이제 지옥도가 열리는구나!'


줄을 끊었다.



***



사다리차를 넘길 때 썼던 돌이 바닥으로 미끄러지듯 떨어져 몰려든 병사들을 으깼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사슬이 고리를 통과하며 드드득소리를 내더니 성문의 도르래를 당겼다. 걸쇠가 튕겨 나가며 철창이 떨어졌다.


바닥에 파놓은 홈과 마주 들어가는 요철이 지나치던 병사들의 몸을 꿰뚫어 땅에 박아버렸다.


녀석들은 광분해 미친 듯이 망루의 작은 문으로 쇄도해온다. 하지만 이정도로 지옥도가 열리는 게 아니다. 성벽 위에 걸쳐놓은 나무통들의 뚜껑을 줄들이 당겨버린다. 줄은 얼기설기 성벽 위를 이어가며 하나하나 당겨 뜯어냈다. 뚜껑이 매섭게 닫힌 녀석은 통째 떨어져 바닥에다가 액체를 튕겨버렸다.


성벽부터 안쪽으로 온통 액체들이 뿌려졌다. 망루의 가까운 곳에는 이미 흥건하게 뿌려놨던 액체들이 있다.


뒤집어쓴 적이 놀란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봤다. 류는 손에 든 횃불을 던졌다. 수많은 눈이 횃불을 바라본다. 용감한 누구라도 나서서 잡아챌 생각을 못 하고 되돌아 뛰었다. 철창을 부수려 두 손으로 두들긴다.


불이 붙었다. 세상이 불타버린다.


망루 주변의 자그마한 땅만 남기고 모두 불바다가 된다. 병사들은 살아남으려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등에 불이 붙은 병사가 동료를 끌어내고 들어서려다 칼을 맞고 쓰러진다.


광분한 적들끼리 칼부림이 벌어진다.


불은 녀석들을 천천히 죽였고, 녀석들은 서로를 맹렬히 죽였다.


앗산과 그 수하들은 망루 안으로 뛰어 들어와 가파른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모여든 연기가 망루 안의 공간을 따라 하늘로 치솟는다. 거대한 연기가 솟아오르다가 뜨거운 바람으로 변해 솟구쳤다.


류는 검을 들고 망루 위로 오르는 계단 곁에 섰다.


콜록거리며 숨을 겨우 참고 올라온 장수 하나가 보였다. 그는 얼굴에 칼이 꽂히자 비명을 지르다가 망루 아래로 떨어졌다. 퍼석 소리와 함께 두개골이 깨졌고, 깔린 병사 몇이 신음을 냈다.


다른 장수 하나는 막무가내로 검을 휘두르며 올라서다가 류가 다리를 걸어 밀어버리자 허공에서 허우적대며 불길로 떨어졌다.


앗산이 올라섰다. 캑캑거리며 고통스러워하는 녀석에겐 시간을 줬다. 숨을 고를 시간을. 그동안 자신의 잘못을 반성할 시간을.


몇 번 검을 마주하지 않았지만, 그동안 류를 괴롭힌 것만큼 검 실력이 좋지는 않았다. 어깻죽지 밑에서부터 위로 쳐올린 검에 녀석은 팔을 잃었고 쓰러졌다. 류는 녀석의 뒤에 주저앉아 발목부터 칼을 꽂았다.


이게 지옥이다. 수많은 병사의 고통 소리를 반주로 삼아, 앗산이 연주하는 지옥이다.


다리의 힘줄을 끊었다. 잘린 어깻죽지 안에 손을 집어넣어 근육을 당겨 고통을 줬다. 마지막으로 목을 자르려 검을 들다가 류는 검을 내렸다.


"앗산. 이렇게 죽으면 너무 편안한 죽음이다."


류는 숨을 헐떡이며 공포에 질린 앗산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매정한 발이 그를 차 공중으로 던져버렸다. 밑에는 앗산의 부하들이 서로 껴안고 불타고 있었다.


그 위에 철퍽 떨어진 앗산은 곧 불이 붙어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불에 타들어 가는 고통이 가장 심하다 하니 너에게는 이게 어울린다."


마을 바깥에서 군대가 몰려온다. 아버지가 압둘과 함께 병사들을 데리고 마을을 탈환하려 말이다. 망루에서 압둘의 쌍 도끼가 빛나는 모습을 보고, 아비가 활을 당기는 모습을 보았다.


적들은 전의를 잃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류의 기병들이 쉽사리 도망치게 놔두지는 않았다.


이렇게 지옥도는 그 입을 벌렸다 다물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무사, 기사 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4 < #13. 낙성(落城) 6-2 > +14 18.08.07 3,158 76 9쪽
153 < #13. 낙성(落城) 6-1 > +20 18.08.06 2,926 72 10쪽
152 < #13. 낙성(落城) 5-2 > +26 18.08.05 2,906 78 9쪽
» < #13. 낙성(落城) 5-1 > +12 18.08.04 2,874 81 10쪽
150 < #13. 낙성(落城) 4-2 > +10 18.08.03 2,839 86 9쪽
149 < #13. 낙성(落城) 4-1 > +14 18.08.02 2,985 74 9쪽
148 < #13. 낙성(落城) 3-2 > +28 18.07.31 2,953 71 9쪽
147 < #13. 낙성(落城) 3-1 > +26 18.07.30 3,033 69 8쪽
146 < #13. 낙성(落城) 2-2 > +9 18.07.29 2,967 78 8쪽
145 < #13. 낙성(落城) 2-1 > +12 18.07.28 2,947 74 8쪽
144 < #13. 낙성(落城) 1-2 > +10 18.07.27 3,052 78 9쪽
143 < #13. 낙성(落城) 1-1 > +10 18.07.26 3,144 67 9쪽
142 < #12. 하틴 4-2> +14 18.07.24 3,193 68 9쪽
141 < #12. 하틴 4-1 > +14 18.07.23 3,150 74 9쪽
140 < #12. 하틴 3-2 > +13 18.07.22 3,360 75 9쪽
139 < #12. 하틴 3-1 > +8 18.07.21 3,244 82 9쪽
138 < #12. 하틴 2-2 > +8 18.07.20 3,329 89 10쪽
137 < #12. 하틴 2-1 > +17 18.07.19 3,384 83 9쪽
136 < #12. 하틴 1-2 > +14 18.07.17 3,617 82 10쪽
135 < #12. 하틴 1-1 > +4 18.07.16 3,513 84 9쪽
134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3-2 > +18 18.07.15 3,670 96 12쪽
133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3-1 > +12 18.07.14 3,476 89 8쪽
132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2-2 > +6 18.07.14 3,479 92 8쪽
131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2-1 > +16 18.07.13 3,467 89 10쪽
130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1-2 > +14 18.07.12 3,640 99 10쪽
129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1-1 > +32 18.07.10 3,740 107 10쪽
128 < #10. 작지만 작지 않은 전쟁 3-2 > +10 18.07.09 3,548 92 8쪽
127 < #10. 작지만 작지 않은 전쟁 3-1 > +19 18.07.08 3,632 105 9쪽
126 < #10. 작지만 작지 않은 전쟁 2-2 > +16 18.07.08 3,573 94 9쪽
125 < #10. 작지만 작지 않은 전쟁 2-1 > +13 18.07.07 3,631 92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