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대체역사

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5,119
추천수 :
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7.23 22:25
조회
3,149
추천
74
글자
9쪽

< #12. 하틴 4-1 >

DUMMY

“생각도 못 한 일이군.”


자신의 천막을 향해 천천히 걷는 하마드는 곁에 따라붙은 앗산에게 넌지시 말했다.


“저도 일 년 반이란 시간이 이렇게 날 바꿀 줄 몰랐습니다. 뭐, 생면부지인 바그다드에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으니까요. 역시 어머니는 대단한 여자였어요.”


앗산은 그동안 고생했던 일들이 별거 아니라는 듯이 웃으며 대꾸했다. 야스암이 말만 많은 이맘과 결혼을 할 때는 분노가 온몸을 감싸 기거하던 집을 거의 박살 내버리기도 했지만, 야스암의 말에 결국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 이 나이 먹어 축 늘어져 가는 몸뚱어리. 무엇에 쓰겠는가? 핏줄이 좋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다. 심지어 노예로 팔려온 창기들보다 예쁜 구석이 하나라도 남아 있겠느냐? 난 이거라도 팔아서 기회를 만들 거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널 위해서 말이다. -


이리저리 잔치에 고개를 들이밀더니 나이든 칼리프의 이맘 하나를 물었다. 천박한 분을 바르고 그 녀석이 원하는 뭐든지를 해내며 결혼해버린 것이다. 그 이후로 앗산은 자존심이란 건 팽개쳤다. 야스암과 같이 뭐든지 팔아버릴 마음이었다.


“복수, 그런 건 참 천박합니다. 그러니 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백부.”


앗산은 머리와 달리 입은 거짓을 말했다. 하마드는 침통한 표정이었다.


"앗산, 야스암이 다른 말은 하지 않았나?"


"뭐요? 아. 왜 그렇게 백부를 싫어하는지요? 아니면 왜 백부가 날 죽이지 않는지요? 대충 듣기는 했습니다만 그냥 노망난 여자의 넋두리로 치기로 했습니다."


"앗산, 사실은 말이다."


하마드는 비밀을 털어놓으려 마음먹었다. 일족의 체면을 위해 마음에만 담아두고 말았던 일 말이다.


"뭐 말이죠? 사실이란 게? 백부와 어머니가 사랑했던 사이라는 것? 아버지가 족장이 될 때까지 잠시만 맡는 임시라는 얘기에 백부를 떠나버린 것? 내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태어났다는 것? 뭐가 사실이란 거죠?"


앗산은 알아챘다. 확실치는 않으나 하마드의 마음을 짓누르는 비밀을 알고 있다. 야스암, 그녀의 욕심에 모든 게 틀어졌다. 앗산 이후로 동생은 아이가 없었다. 심지어 다른 여자의 몸을 통해서도 아이가 없었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그때부터였다. 야스암이 자신을 병적으로 싫어한 게······.


"앗산······."


"그거 하나는 사실이겠네요. 당신은 날 못 죽입니다. 그러나···. 저는 달라요. 아, 그런 표정은 처음이네요. 지금 당신을 죽일 생각은 없어요. 지금은 지하드잖아요. 영광스러운 지하드. 지금은 아니죠."


하마드의 입은 열리지 못했다. 모두 알고 있는 거다. 앗산은······.


"이번 전투가 끝나면 이리저리 흩어져 점령지를 넓히려 하겠죠. 우스만의 병력은 꽤나 크니 중요한 역할을 할 겁니다. 게다가 본거지가 이쪽이 아니라, 좋은 길잡이가 필요할 겁니다. 우스만은 살라흐앗딘에게 당신을 붙여달라 말할 겁니다."


우스만이 데려온 만 명의 군대 사이에, 하마드의 이천이 섞여 다녀야 한다? 하마드는 충격이 컸다. 함정을 벌써 파기 시작한 것이다.


"아, 우스만님의 군대는 이만은 돼요. 반절은 알 카락 성채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빈 성을 떨구려 하는 거죠······. 아, 류 녀석의 성채가 가까이 있네요. 도움을 좀 받아야겠어요."


앗산은 싱긋 웃으며 몸을 돌렸다.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멍하니 서 있는 하마드를 향해 한마디를 던지고는 종종걸음으로 사라져버렸다.


"류······. 보고 싶었다고 꼭 전해주세요. 매일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고요."


하마드는 한참이나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



지칠 대로 지친 십자군들은 찬 새벽 기운에 몸을 부스스 떨더니 겨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멀리 호수가 보였다.


밤새 추위에 시달리던 그들은 벌써 몸이 달아오르는 더위가 시작되자 더이상 참기 힘들었다. 더 걱정인 것은 하루 이상, 물을 입에 대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뚫어버리자. 모두 적들을 부숴버리고, 힘찬 진격을 하자. 녀석들의 피를 땅에 가득 흩뿌리고 저 호수에 몸을 던져 열기를 식히자."


누군가가 떠들었다. 모두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지친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때가 됐습니다. 병사들도 더이상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정면 승부입니다."


제라르가 기에게 떠들어댔다. 기는 갈증에 바싹 말라버린 혀를 입안에서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친위대는 앞장서자, 내가 그 선두에 있을 것이다."


기가 호기롭게 외쳤다. 신이 예비하신 자그마한 시련. 그것을 이겨낼 때 자신은 신의 사도임이 증명될 것이다. 존경받지 못하나 그래도 왕이 선두에 서겠다고 말에 오르자 사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뒤처지면 죽는다는 걸 안 기사들도 말에 올라 무구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몇 남지 않은 기사단원들도 왕의 곁으로 몰려가 튼튼한 방벽을 만들기 시작했다. 14년간의 포로 생활로 증오가 가득한 레널드가 기의 옆에 바싹 말머리를 붙였다.


제라르는 그걸 보더니 슬그머니 뒤로 말을 몰았다. 지나치던 말단 기사단원은 말을 멈추더니 고개를 숙이며 이죽거렸다.


"기사단은 단장의 명에 따라 앞에 서겠나이다. 뒤에서 편안히 오소서."


이죽거림에 얼굴이 붉어진 제라르는 말을 멈추고 의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기사가 지나치자 다시 뒤로 말을 돌렸다.


"신께 영광을! 예루살렘에 영광을! 기 왕에게 영광을!"


말의 투레질이 거칠어지더니 트롯(빠른 걸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로 머리를 맞추며 발걸음을 함께 하더니, 속도를 점점 올리기 시작했다.


화살이 하늘 가득 날라오기 시작했다. 기사들의 눈에는 화살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창은 버려버리고, 왼팔을 들어 머리 위로 방패를 받쳐 들었다. 남은 손은 고삐를 힘겹게 쥐고 허리춤의 검을 되뇌며 달렸다.


말의 속도가 최고조에 달하자, 기사들은 함성을 질렀다. 거대한 울음이다. 평원 가득히 기사들의 외침이 터지자, 뒤쫓는 보병들도 연달아 함성을 질렀다. 그들 눈에는 살라흐앗딘의 병사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 뒤에 잔잔하게 물결치는 호수만이 보일 뿐.



***



"끝났네."


하마드의 곁에 선 류는 씁쓸한 말투로 얘기했다.


벌써 보병들과 기병들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틈새를 파고든 살라흐앗딘의 중기병들이 점점 간격을 벌리고 있었다. 도주를 막으려 뒤를 방비하던 무슬림 기병들도 시간을 맞춰 뒤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앞뒤가 가로막힌 보병들은 방진을 세우고 드세게 밀어붙이려 했지만, 경기병들이 매섭게 돌며 눈앞에서 화살을 당겼다. 왕의 기사들은 벌써 보이지 않을 만큼 달려나가 중기병들과 격돌을 시작했다.


기세등등했던 기의 기사들도 눈앞에 살라흐앗딘의 본진이 보일 때쯤 돌격이 멈춰버렸다. 땅에서 떨어져 버린 기사들마저 있는 힘을 내 검을 뽑아 들고 뛰어들었지만 결국 하나둘 쓰러질 뿐이다. 그 위를 아직도 달리던 기사들의 말이 짓밟고 지나쳤고, 그도 얼마 못 가 창에 찔린 채 허공에 떠버렸다.


점점 두꺼워지는 포위망에 바로 손 앞에 있는 것 같았던 살라흐앗딘의 본진은 점점 멀어져갔다.


점점 평원을 가득 메웠던 함성이 잦아들자, 주위에 서 있는 기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지나치며 창을 내리꽂는 무슬림들만 보일 뿐이었다. 배가 꿰뚫린 한 기사가 다가오는 무슬림 기병에게 속절없이 검을 휘둘러봤지만, 허공만 스쳐 지나갔다.


무슬림은 공허한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단말마의 발악이 멈추자 조심스레 다가와 손도끼로 정수리를 찍어버렸다. 그리고는 말을 몰아 다른 희생자를 찾았다.


신음과 비명만이 가득한 평원에는 까마귀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



"대승입니다. 우리 피해는 겨우 이삼천 정도 될 것입니다. 적은 궤멸했습니다. 첫날 도망친 이들 빼고 살아남은 게 겨우 삼천이고, 모두 포로입니다."


여러 장수가 살라흐앗딘의 주변에서 이리저리 떠들고 있었다. 그들은 알았다. 십자군은 전멸했다. 이제 겨우 한 줌밖에 남지 않은 병사들로 어찌 성지를 지키겠는가?


예루살렘이 눈앞에 보였다.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무사, 기사 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4 < #13. 낙성(落城) 6-2 > +14 18.08.07 3,157 76 9쪽
153 < #13. 낙성(落城) 6-1 > +20 18.08.06 2,926 72 10쪽
152 < #13. 낙성(落城) 5-2 > +26 18.08.05 2,906 78 9쪽
151 < #13. 낙성(落城) 5-1 > +12 18.08.04 2,873 81 10쪽
150 < #13. 낙성(落城) 4-2 > +10 18.08.03 2,839 86 9쪽
149 < #13. 낙성(落城) 4-1 > +14 18.08.02 2,985 74 9쪽
148 < #13. 낙성(落城) 3-2 > +28 18.07.31 2,952 71 9쪽
147 < #13. 낙성(落城) 3-1 > +26 18.07.30 3,032 69 8쪽
146 < #13. 낙성(落城) 2-2 > +9 18.07.29 2,967 78 8쪽
145 < #13. 낙성(落城) 2-1 > +12 18.07.28 2,947 74 8쪽
144 < #13. 낙성(落城) 1-2 > +10 18.07.27 3,052 78 9쪽
143 < #13. 낙성(落城) 1-1 > +10 18.07.26 3,143 67 9쪽
142 < #12. 하틴 4-2> +14 18.07.24 3,193 68 9쪽
» < #12. 하틴 4-1 > +14 18.07.23 3,150 74 9쪽
140 < #12. 하틴 3-2 > +13 18.07.22 3,360 75 9쪽
139 < #12. 하틴 3-1 > +8 18.07.21 3,244 82 9쪽
138 < #12. 하틴 2-2 > +8 18.07.20 3,329 89 10쪽
137 < #12. 하틴 2-1 > +17 18.07.19 3,384 83 9쪽
136 < #12. 하틴 1-2 > +14 18.07.17 3,617 82 10쪽
135 < #12. 하틴 1-1 > +4 18.07.16 3,513 84 9쪽
134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3-2 > +18 18.07.15 3,669 96 12쪽
133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3-1 > +12 18.07.14 3,476 89 8쪽
132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2-2 > +6 18.07.14 3,479 92 8쪽
131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2-1 > +16 18.07.13 3,467 89 10쪽
130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1-2 > +14 18.07.12 3,639 99 10쪽
129 < #11. 이 땅은 내 것이다. 1-1 > +32 18.07.10 3,740 107 10쪽
128 < #10. 작지만 작지 않은 전쟁 3-2 > +10 18.07.09 3,548 92 8쪽
127 < #10. 작지만 작지 않은 전쟁 3-1 > +19 18.07.08 3,632 105 9쪽
126 < #10. 작지만 작지 않은 전쟁 2-2 > +16 18.07.08 3,573 94 9쪽
125 < #10. 작지만 작지 않은 전쟁 2-1 > +13 18.07.07 3,631 92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