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聰. 님의 서재입니다.

하늘과땅의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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聰.
작품등록일 :
2012.10.31 20:25
최근연재일 :
2022.07.24 14:15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39,520
추천수 :
103
글자수 :
82,070

작성
22.05.28 22:34
조회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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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8쪽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5. 하얀 처녀 (2)

DUMMY

다섯 번째 날 오후


돌을 깎아 만든 체스판과 체스 말 한 세트, 옷 두어 벌, 싸구려 파이프 담배 한 상자, 그리고 책 두 권. 치안관의 이삿짐이란 것들은 장정을 둘이나 불러 도움을 청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이었다.

“겨우 이거 옮긴다고 불렀어요?”

더벅머리 사내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체스판을 어깨 위에 올린 채로 연신 투덜거렸다. 치안관은 정작 묵직해 보이는 길쭉한 상자만은 자기가 들고 있었다.

“지금 드신 게 무거워 보이는데요?”

“무거워. 근데 어쩔 수 없어.”

“뭔데요?”

“쇠뇌랑 소총.”

“아.”

“어차피 자물쇠 걸어 뒀을 거 아녜요. 까다롭게 구시긴.”

“얼마 되지도 않는 늙은이 짐 옮기는 게 그리 귀찮아?”

치안관은 사내의 투덜거림에 핀잔처럼 농을 던졌다.

“이럴 때만 늙은이시죠? 참나, 짐꾼이랍시고 불려 와서 들러리 노릇이나 하고 있으니 그럽니다.”

“일 적다고 투덜거리는 놈은 처음 보겠군.”

주거니 받거니 하는 동안 도서관에 닿아 있었다. 내게 연락하기 전에 치안관이 열어 둔 모양인지 정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당분간 여기 계시는 겁니까?”

사서의 방은 저번에 왔을 때와 별반 다른 게 없었다. 사방에 쌓인 책과 유리병, 약초 자루 사이로 지저분한 간이침대 하나가 간신히 드러나 있었다.

“아마도. 페이 녀석 보통 산 들어가면 한두 주는 안 돌아오니.”

“담뱃불 조심하시구료.”

사내는 담뱃대 털 곳을 두리번거리는 치안관에게 저만치 쓰레기통인 듯한 상자를 가리켜 보였다.

“그래야겠어.”

“밤에는 심심하시겠는데요.”

“뭐 이 동네 언젠 안 그랬나. 이렇게 된 김에 책이나 읽지. 그런데 랜턴 못 봤어?”

“랜턴이오?”

그렇게 되물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 어젯밤에 불을 끄고 책상 위에 올려 뒀는데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어제 여기 놔뒀잖아?”

“그러게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그건 페이 그 녀석 건데. 어젯밤에 왔다 갔나?”

치안관은 못마땅한 듯 혀를 끌끌 찼다. 별달리 할 말이 없어 멀뚱히 윈치 씨만 바라보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저만치 문가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말한 누군가는 대답도 듣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전에 길가에서 마주쳤던 카지오의 경호원 중 하나였다.

“빅터?”

치안관의 목소리에 녀석은 별말 없이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그러고 보니 그 카지오네 패거리 중에 유일하게 아직껏 별다른 말을 들은 적이 없는 녀석이었다.

“웬일이지? 자네가 혼자 다닐 때도 있구먼?”

희끗희끗한 짧은 머리, 최근에 면도한 거 같지만 아무래도 다시 하는 게 나을 것 같은 수염, 가늘고 길게 찢어진 눈매. 처음 봤을 때도 왠지 살쾡이가 생각나는 인상이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더 그랬다. 길이 든 장비들과 소리 죽여 걷는 습관이 든 발걸음 역시 그런 인상에 한몫하고 있었다. 여러모로 동료란 작자와는 정반대의 의미로 기분 나쁜 녀석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 왜 이렇게 낯이 익지? 어디서 봤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녀석은 갑자기 내 앞에 와 섰다.

“반 퍼지 씨 되십니까.”

나한테 볼일이 있다고?

“도련님께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으면 하십니다. 지금 시간 되십니까?”

영문을 몰라 윈치 씨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러고 있는 동안 치안관과 사내는 나란히 손가락을 내게 향한 채로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요?”

“예.”

녀석은 한마디 짧게 대답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까, 요점이 뭡니까?”

재수 없는 귀족 나리는 두 발을 탁자에 올린 채로 멀거니 나를 쳐다보았다.

“지금껏 얘기했잖아.”

“지금까지 들은 거 반복해볼까요? 도대체 뭔 소릴 하고 싶은 건지 감이 안 잡힌단 말입니다.”

뭔가 이것저것 늘어놓은 건 많았는데 도저히 정리가 안 되는 수준이었다. 뭐 하자고 여기까지 온 건지... 그런 생각에 의자에서 일어서서 방을 둘러보았다. 들어올 때부터 느꼈지만, 이 거창한 저택이 왜 이런 데에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별장? 굳이 이런 아무것도 없는 산 한가운데에? 하긴 저기 저 등신이 주인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러니까-”

“도련님, 제가 대신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때껏 귀족 나리 옆에 기대어 입을 다물고 있던 살쾡이가 입을 열었다.

“요약하자면 우리와 함께 책을 찾자는 겁니다.”

저 한 마디를 그리 배배 꼬아서 얘기했단 말이지. 아니, 꼬아서 얘기한 게 아니라 그냥 멍청해서 깔끔하게 표현을 못 한 것 같다.

“그 빌어먹을 것 때문에 이 산골짝에 처박힌 지 벌써 2년이 다 돼가. 난 하루라도 빨리 그거 찾아서 여기서 떠나고 싶거든. 한 번 마을 뒤집어 볼까도 했는데 그 치안관 영감탱이가 난리를 쳐서 이젠 그럴 수도 없어.”

“뭐 좀 물어봐도 됩니까?”

대놓고 귀족 나리 대신 살쾡이에게 물었다.

“그 책이란 게 대체 뭐죠? 나야 공문으로 책 가져오라니 왔을 뿐인데, 당최 그게 뭐고 당신네들이 왜 그걸 찾는지 모르겠거든요.”

뭔가 대답하려는 귀족 나리를 살쾡이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비밀이라 이거죠? 그럼 하나 더 물어봅시다. 굳이 날 여기 데려와서 이러는 이유가 뭡니까? 내가 뭐나 되는 사람이면 모를까 그냥 말단 공무원인데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지 정말 모르겠거든.”

“우리와 같이 일하게 된다면 다 설명해 드리죠.”

참 진지하기 짝이 없는 대화였는데 되레 웃음이 나왔다. 아직도 내 주머니에 들어 있는 책에 이것과 참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그걸 조소로 받아들였는지 덩치와 귀족 나리가 인상을 구겼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당신들 이런 책 너무 많이 본 거 아녜요? 척 보기에도 뭔가 뒤 구린 짓 벌이는 모양인데, 당신들 일에 끼어들 생각 없지만 그렇다고 거기 엮일 생각도 없습니다. ‘가늘고 길게 살자’가 내 인생 신조거든요.”

그때껏 귀족 나리 옆에 앉아 건들거리던 덩치가 입을 열었다.

“그냥 두들겨 패지?”

“핸슨, 입 다물어.”

살쾡이가 그렇게 말하며 내게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연기라면 칭찬해 드려야겠군요. 하지만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마을 사서가 당신에게 뭔가를 남겼습니다. 그걸 넘겨받고 싶습니다.”

얼굴을 찌푸렸다. 사서? 지금 마을 떠나 있는? 굳이 뭔가라고 지칭한 걸 보면 아까 말한 테슬리의 책을 말하는 건 아니다. 내가 머리를 굴리는 동안 살쾡이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사서? 뭔갈 남겼다고? 난 처음 듣는 소린데요.”

“거짓말 마.”

“믿든지 말든지... 아니, 그 사서 분 돌아오면 직접 물어보면 되잖아요?”

무슨 생각인지 살쾡이가 대답 대신 귀족 나리가 앉아 있던 책상 아래에서 뭔가를 집어 들어 책상에 내려놓았다. 랜턴이었다. 바닥 쪽에 갈색으로 뭔가가 지저분하게 튀어 얼룩져 있었다.

“그분, 당분간은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그래 봐야 얼마나 걸린다고? 그렇게 되물으려다 멈칫했다. 어딘가 그 건조한 말투에 섬뜩한 데가 있었다.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어젯밤에 도서관에 가셨다고 들었는데요.”

녀석은 나직하게 읊으며 랜턴을 툭툭 두드렸다. 저 갈색으로 튄 거- 말라붙은 핏자국이다. 아직 피가 굳지 않았을 때 누군가가 더듬기라도 한 것처럼 몇 개인가 손가락 자국이 남아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살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살쾡이를 바라보았다.

손끝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뭔 소린지 모르겠군요. 할 말은 그게 답니까?”

“우리와 함께 일하자고 제안 드린 것, 좀 더 생각해 보시죠. 테슬리의 책에 대해 아는 사람은 적을수록 좋고, 이미 알고 있다면 카지오 사람인 게 좋으니까요.”

“...생각해 보죠.”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시죠. 마차까지 안내해 드릴 테니.”

살쾡이는 그렇게 말하고 허가를 구하는 듯 귀족 나리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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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막간 +3 22.07.24 88 4 3쪽
17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5. 하얀 처녀 (3) +2 22.06.03 62 6 14쪽
»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5. 하얀 처녀 (2) 22.05.28 57 6 8쪽
15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5. 하얀 처녀 (1) 22.05.28 52 4 13쪽
14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4. 인형을 당기는 실 (3) +1 22.05.27 58 8 19쪽
13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4. 인형을 당기는 실 (2) 22.05.27 48 5 12쪽
12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4. 인형을 당기는 실 (1) 22.05.27 44 5 8쪽
11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막간 22.05.27 51 4 3쪽
10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3. 눈사태 (3) 22.05.27 44 5 7쪽
9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3. 눈사태 (2) 22.05.27 51 6 11쪽
8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3. 눈사태 (1) 22.05.27 62 4 15쪽
7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2. 아이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 (3) 22.05.27 59 5 8쪽
6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2. 아이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 (2) 22.05.27 65 3 16쪽
5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2. 아이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 (1) 22.05.27 74 5 11쪽
4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1. 출장 (3) 22.05.27 84 5 8쪽
3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1. 출장 (2) 22.05.27 95 5 8쪽
2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1. 출장 (1) 22.05.27 189 6 16쪽
1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프롤로그 +21 22.05.27 351 15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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