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聰. 님의 서재입니다.

하늘과땅의시대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聰.
작품등록일 :
2012.10.31 20:25
최근연재일 :
2022.07.24 14:15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39,521
추천수 :
103
글자수 :
82,070

작성
22.05.27 21:36
조회
44
추천
5
글자
7쪽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3. 눈사태 (3)

DUMMY

셋째 날 밤


“엇차.”

가끔 이럴 때가 있다. 한 번 잠을 제대로 못 자기 시작하면 일종의 각성 상태가 돼서 잠드는 게 영 어려워진다. 그렇게 되면 피로는 슬슬 쌓이는데도 잠은 올 기미가 안 보이는 그런 상황이 한동안 지속된다. 그게 내가 자려고 누웠다가 한밤중에 이렇게 밖을 걷고 있는 이유였다.

망할. 직업병이지, 직업병.

그렇게 중얼거리며 언덕으로 올라섰다. 풍차를 지나 한 십여 분 걸었을까. 저만치 찾던 게 눈에 띄었다. 허름한 널빤지로 만들어진 이정표에 흰 페인트로 6이라는 글자가 아무렇게나 휘갈겨져 있었다. 아이반 씨가 말한 물에 잠겼다는 갱도가 내가 지금 향해 가고 있는 곳이었다.

단단하네. 수풀 같은 것도 없고.

좁은 길 사이로 내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길 한편으로는 폐쇄되기 전에 썼을 듯한 간이 선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최소한 몇 달은 안 쓴 선로답게 곳곳에 녹이 슬어 있었지만, 형편 좋게도 선로 옆에 설치된 난간은 아직껏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개울은 비탈 아래로 흐르는 모양이다. 풍차까지 따라 올라왔던 개울이 이제는 물소리도 나지 않는 걸 보면.

기역자로 꺾인 굽이를 지나치자 찾아온 곳이 보였다. 척 보기에도 ‘들어갈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시오’라고 말하는 듯한 육중한 철문이 저만치 바윗덩어리 한가운데 버티고 있었다.

철문, 쇠사슬, 자물쇠.

두 손으로 들어본 자물쇠는 크기도 크기였지만 무게가 얼핏 예상한 것보다 훨씬 무거웠다. 강제로 여기 들어갈 일이 생긴다면 차라리 쇠사슬을 끊으려 드는 게 훨씬 빠를 듯했다.

“완벽하네, 이 정도면.”

이 정도면 그 시체가 여기서 나왔다고 보긴 어렵겠지.


탁.

순간 온몸에 피가 돌았다. 나도 모르게 바위벽 아래 그늘에 바짝 몸을 붙였다. 분명히 돌이 발에 채는 소리였다. 굳이 군에서 받은 훈련이 아니더라도 이스타노플에서 살았던 시절 덕분에 저런 소리를 구분하는 건 아예 뼛속에 새겨져 있었다.

···망할.

모퉁이를 향해 슬슬 다가가다 그렇게 중얼거렸다. 습관대로 허리 뒤를 더듬어 봤지만 당연히 아무것도 없었다. 급한 대로 두어 개 돌을 주워들었다. 얼마나 될까? 아까 소리를 떠올려 보면 절대 먼 거리는 아니었는데. 저만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죽인 채 한발 한발 조심스레 걷고 있었다. 성인 남자, 약간 거친 숨소리, 마침 바람도 이쪽으로 불어오고 있었다.

“거참.”

거기까지였다. 맥이 풀리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오전에 내내 맡았던 담배 냄새가 났다. 쥐고 있던 돌을 떨어뜨리며 크게 하품까지 했다.

젠장, 하품하니 진짜 졸리네.

“거기 누구야?”

예상대로 저편에서 바짝 긴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그렇게 대답 아닌 대답을 하며 모퉁이를 돌았다. 치안관이 대여섯 걸음 거리에서 쇠뇌를 들고 있었다. 그는 나인 걸 알아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 대체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윈치 씨야말로 여긴 웬일이에요? 쇠뇌는 또 왜?”

치안관은 긴장이 풀렸는지 끙 하는 소리와 함께 소맷자락으로 머리를 닦았다. 벗어진 머리가 달빛에 반질반질 윤이 나고 있었다.

“자네 찾아갔다가 방에 없길래. 마리아는 자러 들어간 줄 알았다고 하고.”

“잠이 안 와서요. 좀 돌아다닐까 하다 아침에 들었던 거 기억도 나고. 근데 전 왜요?”

윈치 씨는 잠시 뭐라고 할지 고민하는 듯하다가 결국 역정을 냈다.

“난데없이 시체 나오고, 눈사태까지 나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시체 찾았단 사람이 갑자기 없어지니 이상한 생각이 들 수밖에!”

“응?”

이게 뭔 소린가 하다 문득 이해가 갔다. 동시에 좀 화도 났다.

“뭡니까 이건!? 지금 저 용의자 취급하는 거예요?”

“그럼 마을 사람 의심할까?”

“허? 무슨 덜떨어진 살인범이 이딴 델 옵니까!? 진작 도망가면 도망갔지! 말 나왔으니 말인데 마을 온 지 사흘도 안 된 생판 남을 발견자로 만든 건 윈치 씨라구요!?”

치안관은 할 말이 없는지 다시 끙 소리를 내며 발을 돌렸다. 그는 장전되어 있던 시위를 풀어 놓고는 허리춤을 더듬었다. 나와 그는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걷기 시작했다.

“후우···”

그는 담뱃대를 크게 한 모금 빨아들인 뒤에야 좀 진정이 되는 듯했다.

“우편 마차 왔다길래 알려주러 갔었지. 설마 초저녁인데 벌써 잘까 싶어서.”

“저 어젯밤에 한숨도 못 잤어요. 낮엔 제설작업 돕고 있었고요. 나 참 진짜 온 지 사흘도 안 됐는데 이게 뭔 꼴인지.”

내 투덜거리는 소리에 치안관은 대답이 없었다.

“제가 여기로 온 건 어떻게 아셨어요?”

“마을 사람 하나가 자네가 이쪽으로 가는 걸 봤다길래.”

나도 좀 긴장이 풀린 탓인지 슬슬 몸이 나른했다. 어느덧 나와 치안관은 풍차를 지나 마을 외곽을 걷고 있었다. 오가는 사람이 없는지 이 근방은 수풀이 꽤 우거져 있었다.

“우편 마차 왔다고요?”

“그래. 내일 새벽에 떠난대.”

“그거 좀 생각을 해 봤는데 굳이 수고 들여서 알릴 필요는 없을 거 같아요.”

“그건 왜?”

“눈사태 났잖아요. 철도 막혔으니 뚫으려 들겠죠.”

얼핏 듣기로 석탄 운반차는 거의 매일 다닌다고 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최소한 오늘 오후에 오기로 되어 있던 열차가 터널이 막힌 걸 봤을 것이다.

“아닐걸.”

단칼에 자른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예? 왜요?”

“오늘 마을 사람들 눈사태 났어도 꽤 침착하지 않던가?”

듣고 보니 그랬다. 마을이 고립된 거치고는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은 반응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눈사태는 거의 매년 나. 아마 이 정도면 그냥 녹을 때까지 기다릴 거야. 정 급하면 우편 마차 다니는 길로 오고 가고 하는 식으로.”

“철도가 막히는 거잖아요?”

“포레스트글렌으로 가는 우회로를 택하겠지. 약간만 돌아가면 되거든.”

“하하···”

헛웃음이 나왔다. 하긴··· 이 서부 개척촌들은 말하자면 임시방편으로 만들어진 마을들이라 제국 정부에서도 그닥 신경을 쓰지 않는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할 말이 없어졌다.

“후우.”

치안관은 저만치 여관이 보이자 다시 한번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하늘과땅의시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8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막간 +3 22.07.24 88 4 3쪽
17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5. 하얀 처녀 (3) +2 22.06.03 62 6 14쪽
16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5. 하얀 처녀 (2) 22.05.28 57 6 8쪽
15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5. 하얀 처녀 (1) 22.05.28 52 4 13쪽
14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4. 인형을 당기는 실 (3) +1 22.05.27 58 8 19쪽
13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4. 인형을 당기는 실 (2) 22.05.27 48 5 12쪽
12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4. 인형을 당기는 실 (1) 22.05.27 44 5 8쪽
11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막간 22.05.27 51 4 3쪽
»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3. 눈사태 (3) 22.05.27 45 5 7쪽
9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3. 눈사태 (2) 22.05.27 51 6 11쪽
8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3. 눈사태 (1) 22.05.27 62 4 15쪽
7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2. 아이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 (3) 22.05.27 59 5 8쪽
6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2. 아이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 (2) 22.05.27 65 3 16쪽
5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2. 아이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 (1) 22.05.27 74 5 11쪽
4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1. 출장 (3) 22.05.27 84 5 8쪽
3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1. 출장 (2) 22.05.27 95 5 8쪽
2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1. 출장 (1) 22.05.27 189 6 16쪽
1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프롤로그 +21 22.05.27 351 15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