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聰. 님의 서재입니다.

하늘과땅의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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聰.
작품등록일 :
2012.10.31 20:25
최근연재일 :
2022.07.24 14:15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39,508
추천수 :
103
글자수 :
82,070

작성
22.05.27 21:21
조회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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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1쪽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2. 아이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 (1)

DUMMY

둘째 날 아침


“후욱... 후...”

통나무로 만들어진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젠장, 또야.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한동안 잠잠하다 했더니.

더럽게 추웠다. 새벽이라 그런가 공기가 유달리 싸늘했다. 여벌 옷을 챙겨올 겨를이 없었던 탓에 속옷바람으로 잠자리에 들었던 게 기억이 났다.

손을 더듬어 성냥을 찾았다. 치익 소리와 함께 어둠 사이로 붉은 방울이 떠올랐다. 심지에 갖다 댄 불에 곧 타닥거리며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돌아오는군...

땀이 다 식어갈 즈음에야 겨우 시계를 볼 정신이 들었다. 6시 반.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주위는 잉크를 머금은 종이처럼 새까맸다. 도로 들어가 한숨 잘까 망설이다 결국 일어나 있는 걸로 결론이 났다. 촛대를 들고 세면대로 걸었다. 저 거울 너머로 시꺼먼 머리카락을 턱에 닿도록 풀어헤친 작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웃어라, 얼간아. 웃으라고.

손으로 입술 끝을 들어 올리자 촛대를 들고 있던 인상 더러운 작자가 시익 조소를 지어 보였다. 촛불에 비친 붉은 눈동자가 눈썹을 잔뜩 찌푸린 채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여관의 홀은 이미 몇 군데 촛불이 켜져 있었다. 주방으로 통하는 문 너머로 간간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체크인할 때는 살필 겨를이, 밤에 돌아왔을 때는 불이 꺼져 보지 못했던 것들이 이것저것 눈에 띄었다.

특이하게도 벽과 기둥 사이사이에 벽걸이 대신 대장간 도구들이 걸려 있었다. 이 여관 이름이 모루와 망치인 이유인 듯싶었다. 망치와 집게부터 시작해서 풀무, 숫돌, 모루··· 모루? 모루를 벽에 걸어 뒀어? 설마 싶어 걸려 있던 모루 양 끝을 들고 힘을 주어 보았다. 척 봐서는 들 엄두도 못 낼 만큼 육중해 보이는 모루는 의외로 쉽게 들렸다.

속을 비워 놨나?

두드려 볼까 손을 올리는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방은 불편하지 않으셨어요?”

여관 아가씨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나오고 있었다. 이름이 마리아였지 아마. 주방 일을 하다 나온 듯 하얀 머릿수건을 쓰고 있었다.

“잘 잤습니다. 좀 춥긴 했지만요.”

대답하며 빙긋 웃었다. 하지만 아가씨는 내가 덧붙인 한 마디에 난처한 눈치였다.

“어젠 미처 못 봤는데 이거 대단한데요?”

“네?”

여관 아가씨는 그렇게 되묻다 내가 가리킨 모루에 미소를 지었다.

“그럴듯하죠? 울릭 아저씨가 만든 거예요. 처음 오시는 분들은 다들 한 번씩 들어 보세요.”

대답 대신 나를 가리킨 손가락에 그녀는 쿡쿡 웃었다.

“대장장이셨나 봐요?”

“센트로이드 근처에 계셨을 때요. 이 건물 지으면서 다 정리하셨다고 들었어요.”

몇 마디 나누는 동안 여관 아가씨는 나에 대한 경계심을 좀 푼 듯했다.

“재주가 많은 분인가 보네요. 대장간 일에 건물 설계까지 하시다니?”

“손재주가 대단한 분이에요. 마을 시계탑도 체스판도 직접 설계하고 만드실 정도로요.”

“체스판?”

“네. 저거요.”

내 되묻는 말에 여관 아가씨는 손가락으로 홀 저편을 가리켜 보였다.

“이야...”

감탄이 나왔다. 스무 걸음쯤 저편에 투기장의 링을 연상케 하는 구조로 붙박이 탁자들이 놓여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 8 x 8의 흑백 칸이 정교하게 조각된 체스판이 놓여 있었다. 체스판도 충분히 대단했지만 그 위에 늘어서 있는 말들은 그 이상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런 쪽으로 보는 안목이 없어도 하나하나 세심하게 조각했다는 걸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이거··· 실제로 게임을 할 수 있는 거예요?”

“네. 마을 분들이 종종 이걸로 내기도 하시는걸요.”

그녀는 발걸음을 옮기더니 체스판 정면의 탁자 앞에 섰다. 가까이서 보니 체스판과 말들은 더욱 대단했다. 이음새를 전혀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 대장장이가 아니라 조각가의 솜씨라고 해도 믿겠다 싶을 정도였다.

여관 아가씨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탁자의 덮개를 들어냈다. 덮개 밑에 마찬가지로 나무로 조각된 작은 체스판이 있었다. 각각의 정사각형 판은 그에 대응되는 체스 말의 상징이 새겨져 있었다.

기보를 그냥 번호로만 쓰네.

군주(King)를 나타낸 판의 왼쪽 끝에 조그맣게 4가 인각(印刻)되어 있었다. 여관 아가씨는 목걸이를 벗어들더니 체스판 위쪽의 홈에 목걸이를 끼워 넣고 돌렸다. 만든 사람이 어지간히 체스를 좋아하는지 목걸이도 흰 체스 말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어디···”

왼쪽 끝의 병사(Pawn)를 나타낸 조각을 누르고 오른쪽 위의 칸을 누르자 찰칵하고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두 판이 잠시 뒤집혔다 나타나자 예상한 대로 병사가 내가 지정한 위치로 움직여 있었다. 뒤이어 바닥에서 톱니바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저편의 커다란 병사가 그 위치로 움직였다. 그 광경에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대단합니다. 정말로요. 이런 건 처음 봤어요. 센트로이드에서도 이런 건 못 찾을 겁니다.”

내 말에 여관 아가씨는 자랑스러워하는 얼굴을 해 보였다.

“로마이어 전체를 뒤져도 못 찾을 거라고 장담하세요. 우리 집 자랑거리랍니다.”

직접 본 사람이라면 정말 누구라도 부정할 수 없을 듯했다.

“뭐야, 한판 두자고?”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치안관이 담뱃대를 문 채로 막 들어서고 있었다.

“어제 그렇게 깨지고도 둘 생각이 드나 보군?”

“밥 먹고 이것만 한다고 자처하는 분한테 그런 말 듣고 싶진 않은데요.”

어젯밤에 두 판 두면서 정말 처절하다 싶을 정도로 졌다. 어디 가서 꿀릴 정도는 아니라 생각했는데 치안관을 상대로는 어린애나 마찬가지였다.

“아저씨 오셨어요?”

여관 아가씨는 반갑게 치안관을 맞았다.

“아침 먹으러 왔다. 가끔은 제대로 된 밥을 먹어야지.”

“그냥 매일 오시지. 어차피 돈도 안 받는데. 뭐하면 제가 갖다 드려요?”

할아버지와 손녀가 나누는 대화 같았다.

“관둬라. 벼룩에 간을 내먹지 남는 것도 없는 집에 무슨. 그나저나 이 친구 소식 없어?”

“조금 불안해지긴 하네요... 곧 돌아오시겠죠 뭐. 항상 그러셨으니.”

“거참. 알았다. 그런데 준비 안 해도 돼?”

“스프만 만들면 돼요. 두 분 다 지금 준비해 드릴까요?”

여관 아가씨는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네. 전 좀 기다려도 괜찮으니 천천히 하세요.”

“나도 마찬가지야.”

“알겠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방의 커튼 너머로 사라졌다.


“거 무슨 뜸을 그리 들이나... 오래 생각해도 소용없다니까?”

내 군주가 치안관의 기사와 전차 둘에 걸려 고립되어 있었다. 억지로 피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했다간 한 기 남은 주교가 잡히고 똑같은 상황이 재현될 판이었다.

“어째 쉽게 잡힌다 싶더라니.”

어쩐지 전차와 주교를 쉽게 내준다 했더니만 지금 와서 보니 내 대열을 무너뜨리려는 의도였다.

“미끼를 그렇게 덥석 물면 어떡해? 그 뒤로 공들이려던 게 다 허무할 지경이야.”

“나름 한 번 피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지금 자네 진형을 좀 보라구.”

내 못마땅한 소리에 치안관은 킬킬 웃었다.

“자넨 지휘관 같은 거 하면 안 되겠어.”

“무슨 말씀을? 이래 봬도 예비역 중윕니다.”

“허?”

“군번 불러드려요? 바스크 분쟁 때 395 경보병 여단 소속이었습니다.”

치안관은 의외라는 눈치로 내 얼굴을 살폈다.

“···비리비리해 보이는데?”

“사람 외모만 갖고 보시단 큰코다치실 걸요··· 선두 척후가 덩치 커서 좋을 게 뭐 있습니까.”

뭔 소리야 하는 듯한 얼굴에 한숨을 쉬었다.

“부대 움직이기 전에 앞서서 살피는 정찰조 말하는 겁니다.”

“그럼 정찰병?”

“대충요.”

그는 담뱃대를 뻐끔거리다 말을 이었다.

“좀 의왼데. 체스 두는 거 봐서는 혼자 다니는 성격으로 보였는데 말야.”

“그런 걸 어떻게 아십니까?”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는 해도 찬찬히 보다 보면 또 비슷한 데가 있어. 뭐 반은 그냥 내 감이지만.”

···흠.

“아주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네요. 사정이 되면 혼자 다니는 걸 좋아하긴 하니.”

뭐, 거의 혼자 일하기는 하지.

“뭐, 어쨌든.”

치안관은 그렇게 말하며 내게 눈썹을 들어 올려 보였다. 뭔가 싶어 바라보고 있자니 그 눈길이 궁지에 몰린 내 군주를 향했다가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안 둘 거야?”

쳇. 잠시 다른 데 팔렸던 정신이 다시 체스판으로 향했다.

어떻게 한다···

“캐슬링.”

앳된 목소리가 들렸다. 옆을 내려다보니 어제 거리에서 봤던 머리 하얀 어린애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어, 안녕.”

조금 놀랐다. 왠지 별 이유 없이 다시 볼 일은 없을 것 같았는데 그 애가 바로 옆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뭐라고 했니?”

“캐슬링. 아저씨 왕.”

“이 녀석이!?”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캐슬링이 뭐였더라. 잠깐 아버지에게 체스를 배우던 기억을 떠올렸다. 비상탈출 비슷한 거였는데. 맞나? 맞다. 군주하고 전차가 자리를 바꾸는 거였다. 다행히 그 둘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얼굴에 시익 미소가 번져 나갔다. 저만치 체스판의 말들이 움직이자 치안관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이사, 이 녀석···!”

아이는 그가 역정을 내는 동안 옆에서 의자를 끌어오고 있었다. 이사가 내 편에 서서 훈수를 두기 시작하자 치안관도 슬슬 고민하는 게 눈에 보였다.


“저 녀석···! 그 영감탱이하고 둘 때도 만날 저 녀석 때문에 지는데 말이야!”

노인은 못마땅한 목소리로 혀를 끌끌 찼다. 아이는 그새 지쳤는지 갖다 놓은 의자에 기대어 졸고 있었다.

“그나저나,”

그새 복기를 다 한 모양인지 치안관이 내게 말을 걸었다.

“자네 책 찾으러 온 거 아니었어?”

“이미 찾았습니다. 내용은 영 아니었지만.”

그는 내가 들어 보인 책의 표지를 보고 소리 내어 킬킬 웃었다.

“내가 뭐라 그랬어? 자네도 그 책 찾으러 온 사람들이 나갈 때 표정을 한 번 봐야 돼.”

“그건 그냥 거울 보면 될 거 같네요.”

내 대답에 그는 이제는 아예 배를 잡고 웃었다.

“그거 가져갔다 노란 봉투 받는 거 아냐?”

징계 봉투라... 솔직히 한 반쯤은 그거 받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에이... 전 가져오라고 한 거 가져가는 죄밖에 없습니다?”

“욕 먹을걸?”

“일주일 있다 먹겠죠, 뭐. 근데 공무원이셨어요? 노란 봉투 아시는 걸 보니?”

“센트로이드 시청에 있었어. 신원(身元) 증빙 쪽으로.”

“시청에요? 그런 자리에서 어쩌다 이런 데로 오신 겁니까?”

“신원 가지고 장난치다 걸렸거든.”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버텼다간 비유로든 문자 그대로든 목이 날아갈 판이라 관뒀지. 마침 경력 불문하고 치안관 모집한다길래 이 마을에 눌러앉았고.”

“뭘 얼마나 받아 드셨길래?”

치안관은 대답 대신 웃으며 눈을 찡긋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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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4. 인형을 당기는 실 (3) +1 22.05.27 57 8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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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막간 22.05.27 50 4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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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3. 눈사태 (2) 22.05.27 51 6 11쪽
8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3. 눈사태 (1) 22.05.27 61 4 15쪽
7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2. 아이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 (3) 22.05.27 58 5 8쪽
6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2. 아이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 (2) 22.05.27 65 3 16쪽
»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2. 아이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 (1) 22.05.27 74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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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1. 출장 (2) 22.05.27 94 5 8쪽
2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1. 출장 (1) 22.05.27 188 6 16쪽
1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프롤로그 +21 22.05.27 350 15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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