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聰. 님의 서재입니다.

하늘과땅의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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聰.
작품등록일 :
2012.10.31 20:25
최근연재일 :
2022.07.24 14:15
연재수 :
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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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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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글자수 :
82,070

작성
22.05.28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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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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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3쪽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5. 하얀 처녀 (1)

DUMMY

다섯 번째 날 아침


“그럼 좀 부탁합니다.”

마부는 무뚝뚝한 얼굴로 내가 내민 편지를 집어 들었다. 이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답게 매부리코에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억센 인상의 사내였다.

“편지 안에 딴 건 없지?”

“통행증 갱신 양식이 답니다. 우편취급소에 넘겨주시면 그쪽에서 알아서 할 겁니다.”

그렇게 대답하며 그에게 은화 한 닢을 건넸다. 출발 직전에 잡아 세운 덕에 잔뜩 굳어 있던 그 얼굴이 조금 풀어지는 듯했다.

“말투가 좀 그랬어도 너무 고깝게 보진 마. 요새 들어 부쩍 개인 화물 옮기는 거에 까탈스럽게 굴거든.”

“뭔 일 있습니까?”

“자인 가에 부쩍 마약이 돌아서. 그거 때문에 교단이든 유지군이든 약이 바짝 올라 있어.”

“마약? 센트로이드에요?”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야. 1년은 족히 됐을걸.”

그렇게 몇 마디 주고받고 있는데 뒤에서 낯익은 담배 냄새가 났다.

“일어났구먼?”

“윈치 씨.”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것도 좀 부탁하네.”

치안관은 그런 나를 지나쳐 마부에게 편지를 하나 건넸다.

“뭔 날이야? 이건 또 뭐야? 이것도 센트로이드까지 갖다 줘야 돼?”

“이건 포레스트글렌까지만 가면 돼. 거기 전광통신소에.”

“나보고 그 언덕까지 올라가라고? 이보슈, 난 뭐 시간이 남아도는 줄 아나?”

“다음번에 내가 한 잔 사지. 번거롭겠지만 좀 부탁함세.”

마부는 투덜거리면서도 마지못해 편지를 받아 들었다. 곧 마부의 고함과 함께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윈치 씨는 무슨 일로?”

“자네가 하려던 거.”

“치안 유지군?”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담뱃대를 꺼내어 물었다. 치안관은 담뱃대에 불을 댕기더니 마차가 숲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우편 마차가 완전히 사라질 때쯤 커다란 검은 마차가 우리를 지나쳐 마을을 나섰다.

“카지오네 마차로군.”

“부지런하기도 하네요, 진짜.”

나와 치안관은 여관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아직 해도 뜨지 않아 어두컴컴한 가운데에 담뱃불이 붉은 점처럼 떠올라 있었다.

“갑자기 왜 마음이 바뀌신 거예요?”

“뭐가?”

“치안 유지군요.”

그는 뭔가 생각하는 듯 잠시 말이 없었다.

“갈수록 뭔가 좀 꺼림칙해서. 의심하기 시작하니 죄다 그렇게 보이는 건지도 모르지만.”

“뭐 걸리는 거라도 있으신 겁니까?”

대답 대신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글쎄··· 뭐 굳이 꼽자면 눈사태?”

“그게 왜요?”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

“허구한 날 일어나는 거긴 한데 내 관사 쪽으로 난 건 이번이 처음이거든. 그냥 나도 잘 몰라. 왠지 불안해서 그래.”

지레짐작일 수도 있겠지만 의심이 가는 게 있었다. 만약에 이 눈사태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거라면 그럴 이유가 충분히 있다. 보통 이런 소규모 개척촌의 치안관사에는 이런 종류의 비상사태에 대비해 신호탄을 상비해 둔다. 7년 전 사태 직후에 인구분산을 목적으로 날림으로 만든 마을들이라 주요 도시들에 하는 것처럼 전광통신소를 일일이 설치할 여유도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너무 신경 쓰진 마. 편지 받을 녀석들이 심각하게 생각할 거 같지도 않고.”

“정신이 나간 게 아니고서야 심각하게 받아들이겠죠.”

“난 솔직히 기대 안 해.”

그렇게 대답하는 그의 표정은 왠지 냉소보다는 뭔가를 각오한 얼굴처럼 보였다.

“뭐, 연락이야 늦어도 내일 아침엔 가 닿을 테니. 군이 진짜 오고 열차만 다시 개통되면 그냥 괜한 걱정을 한 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좋겠는데.”

“설마 뭔 일 있으려고요.”

치안관은 고개를 끄덕이다 뭔가 생각난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오후에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페이 방으로 짐 좀 옮길까 해서.”

“네, 그러죠.”

“고맙네, 그건 그렇고···”

“네?”

“좀 자둬. 잠을 자긴 하는 거야?”

대답 대신 피식 웃었다. 사실 몸이 좀 많이 무겁긴 했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반응이 평소보다 좀 느렸다.

“마리아보고 자네 아침은 따로 놔두라고 할 테니 그냥 들어가 자라구.”

“그래 주시면 감사하고요.”


“썅, 날씨 한 번 거지 같네.”

덩치에 걸맞게 얼굴에 살이 뒤룩뒤룩 붙은 경비가 그렇게 투덜거렸다.

“늦었습니다.”

덩치 큰 경비 뒤에서 좀 더 작은 녀석이 나타나 그렇게 말했다. 어딘가 고양잇과 동물을 연상케 하는 인상에 걸맞은 낮고 차가운 목소리였다. 찬 장검을 일부러 느슨하게 풀어 둔 첫 녀석과는 대조적으로 걸음걸이에 흔들림이 없었다.

“약속된 물건입니다.”

대답 대신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해 보았다. 2층 저택, 4개의 주 출입구··· 고개를 끄덕이자 녀석은 낮은 목소리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확실하게 처리해 주십시오.”


“명예도 치하도 없는 전장에 나설 자신이 있나?”

쓸데없는 질문이었다. 그런 삶이라면 내가 도망자 반이기 한참 전부터 이미 살아오고 있다. 뭘 생각하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더 더러우면 더러웠지 절대 덜하지는 않을 거다.


“죽지 마··· 제발···”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뭘?

“네가··· 있는 집 자식이었다는 거. 그것도 상당히 높은 집 자식이라는 거···”

이상하리만큼 창백해 보이는 얼굴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비가 지금 내리고 있었다.

“부둣가로 가. 아직··· 아직 헤엄쳐 갈 만한 거리에 있을 거야.”

베셀은 멍하니 바라보는 나를 밀어내더니 웬 종잇조각을 힘겹게 꺼내어 내밀었다.

“가라. 여기서 떠나. 넌 이 지옥에서 벗어나야 해. 얼른-”

그는 말을 채 맺지 못했다. 간신히 지탱하고 있던 팔꿈치가 무너지며 그 몸이 바닥에 쓰러져 힘겹게 헐떡였다.

이런 걸 원하지 않았어. 이런 걸 원하지 않았어···

아무 말 못 하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내가 그러고 있는 동안 입을 틀어막은 채로 부들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나를 바라보는 얼굴에 분노가 실려 있었다.

“가! 이 개새끼야! 이렇게 살아가고 싶어!? 하루하루 죽인 목숨으로 네 명줄을 잇는 이딴 개짓거리를 계속하고 싶어!?”

입안에 고여 있던 피가 그가 고함을 지를 때마다 튀어 올랐다. 새빨간 핏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아래 빗물에 섞여 붉은 파문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는 기색조차 없이 내게 고함을 질렀다.

“가!”


“···미안하구나.”

아버지의 얼굴은 언제나처럼 엄격했다. 하지만 그때도 아버지의 얼굴이 어딘가 평소와는 달라 보이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볼레크에게 미리 언질을 줬다. 너희들을 데리러 오면 따라가 있거라.”

그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때 아버지의 얼굴에 떠올라 있던 것은 모종의 각오였다. 그렇게 말을 맺고 아버지는 몸을 돌렸다. 오른손에 칼을 들고 돌아선 그 등이 유난히 크고, 또 무겁게 보였다.

“아버지.”

막 내딛던 그 걸음이 내 목소리에 멈췄다.

“왜 아버지가 가시는 거예요?”

하지만 그 무거워 보이던 등에 흔들림이 없었던 것은 아직도 똑똑히 기억한다. 아버지는 등을 돌린 그대로 내게 대답했었다.

“맺은 사람이 끊는 법이니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너도 곧 알게 될 테지.

마지막 말은 마치 먼 곳에서 울리는 메아리처럼 들렸다.


“손님?”

잠시 눈을 뜬 그대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지금 깬 건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건지 잘 구별이 되지 않았다. 다시 한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손님, 일어나 계신가요?”

수시로 꾸는 악몽이라면 모를까, 다른 꿈은 내용이 잘 기억이 안 나게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전부 다 기억이 났다. 사실 꿈이라고 하기도 뭐한 게 다 옛날 기억들이었다.

“네- 일어났어요. 잠깐만요.”

몸이 여전히 무거웠다.

“깨워서 죄송해요. 아침은 거르셨으니 점심 정도는 드셔야 할 것 같아서요.”

“아, 감사합니다. 곧 내려갈게요.”

억지로 몸을 일으켜 걸어 뒀던 옷가지들을 꿰입기 시작했다. 뭔가 뒤숭숭했다. 자각몽이라고 하던가? 꿈을 꾸고 있다는 걸 내가 인지하는 것도 그렇고 꾼 꿈이란 것들이 하나같이 그닥 반갑지 않은 것들인 그렇고. 꼭 누군가 억지로 기억을 퍼 올려 눈앞에 들이대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거울 앞으로 퀭한 붉은 눈이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충혈돼서 이렇게 됐다고 해도 믿겠네.

“웃어라, 얼간아. 웃으라고.”

그렇게 중얼거리며 손가락으로 입가를 밀어 올렸다.


여관 아가씨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홀에 내려가자 그녀는 곧바로 수프며 빵, 삶은 감자 등을 가져왔다.

“죄송합니다. 계속 번거롭게 하는데요, 이거.”

수프는 막 만든 것 같았다. 점심 먹기엔 좀 늦은 시간이니 내가 일거리를 늘린 셈이었다. 그나저나 어제도 그랬지만 오늘은 특히나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나저나 괜찮으신 거예요?”

여관 아가씨는 잔에 물을 따라 주며 그렇게 물었다.

“네? 뭐가요?”

“안색이 무척 수척해 보이세요.”

“괜찮습니다. 잠을 잘 못 자긴 했는데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그런 거라.”

걱정이 된 듯한 얼굴로 바라보는 걸 억지로 웃어 보였다.

“천천히 드세요. 필요하신 게 있으면 말씀하시고요.”

그렇게 말하고 주방으로 돌아가려는 그녀를 불러세웠다.

“마리아 씨, 혹시 이사 지금 자고 있어요?”

“네? 이사요?”

“네.”

여관 아가씨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뇨. 일어나 있어요. 아직 지붕 위에 있을 거예요.”

“그렇군요.”

그녀는 뭔가 묻고 싶은 눈치였지만 굳이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이사.”

아이는 언제나처럼 지붕 끄트머리에 앉아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이미 여관 아가씨가 한 번 다녀갔던 듯 어린애가 쓰기에는 꽤 큰 숄이 그 어깨에 둘려 있었다. 들은 건지 못 들은 건지 반응이 없는 아이를 향해 일부러 발소리를 내어 걸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거야?”

못 들은 건지 대답하고 싶지 않은 건지 아이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어젯밤도 그렇고 그 전도 그렇고. 난 널 전혀 몰라. 그런데 어쩐지 넌 그렇지 않은 거 같거든.”

지금껏 겪은 일, 시체도 그렇고 어젯밤도 그렇고 도저히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넘어갈 수가 없었다.

“아저씨.”

흰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꼈다. 아이는 등을 돌리지도 않고 그대로 말을 이었다.

“이름이 뭐야?”

“이름?”

난데없는 질문에 그렇게 되물었다. 내 이름?

“반. 반 퍼지.”

“자기를 비웃는 이름 말고.”

순간 얼굴이 굳었다.

“···무슨 뜻이야?”

알고 그렇게 물은 건 아닐 거다. 설마, 아닐 거야.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아이는 또 한 마디를 던졌다.

“아저씨 목에 있는 건?”

나도 모르게 올라간 손이 목을 움켜쥐었다. 목덜미를 감싼 천이 느껴졌다. 목을 드러내는 옷은 갖고 있지 않다. 보여 주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았다. 아이의 등이 천천히 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석탄 같은 두 검은 눈동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애, 도대체···

“어이~! 퍼지 군~!”

저만치 아래에서 더벅머리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중에 얘기하자.”

그렇게 말하고 지붕 끄트머리를 붙잡고 창틀 아래로 내려섰다.


“바안 퍼-”

소리쳐 부르던 목소리가 뚝 끊겼다.

“뭐야!? 지금 어디에서 나온 거야?”

그는 동그래진 눈으로 내게 물었다.

“지붕이오.”

“지붕?”

그는 그렇게 되물으며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았다.

“저기서? 어떻게?”

“창틀에 매달렸다 내려왔죠. 그런데 뭔 일로?”

“아, 윈치 씨가 찾길래.”

그러고 보니 아침에 도서관으로 짐 옮기는 걸 도와 달라고 했었지.

“짐 나르는 거 도와달라고요?”

“응.”

“나 참. 이젠 여기 와서까지 잡부 노릇인가.”

투덜거리는 나를 그는 어딘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살폈다.

“자네 괜찮아?”

“왜요?”

“얼핏 봐도 꽤 수척해 보이는데?”

“괜찮습니다. 그런데 윈치 씨는 어디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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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5. 하얀 처녀 (3) +2 22.06.03 62 6 14쪽
16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5. 하얀 처녀 (2) 22.05.28 56 6 8쪽
»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5. 하얀 처녀 (1) 22.05.28 52 4 13쪽
14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4. 인형을 당기는 실 (3) +1 22.05.27 58 8 19쪽
13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4. 인형을 당기는 실 (2) 22.05.27 48 5 12쪽
12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4. 인형을 당기는 실 (1) 22.05.27 44 5 8쪽
11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막간 22.05.27 51 4 3쪽
10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3. 눈사태 (3) 22.05.27 44 5 7쪽
9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3. 눈사태 (2) 22.05.27 51 6 11쪽
8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3. 눈사태 (1) 22.05.27 62 4 15쪽
7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2. 아이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 (3) 22.05.27 59 5 8쪽
6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2. 아이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 (2) 22.05.27 65 3 16쪽
5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2. 아이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 (1) 22.05.27 74 5 11쪽
4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1. 출장 (3) 22.05.27 84 5 8쪽
3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1. 출장 (2) 22.05.27 95 5 8쪽
2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1. 출장 (1) 22.05.27 189 6 16쪽
1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프롤로그 +21 22.05.27 351 15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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