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聰. 님의 서재입니다.

하늘과땅의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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聰.
작품등록일 :
2012.10.31 20:25
최근연재일 :
2022.07.24 14:15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39,522
추천수 :
103
글자수 :
82,070

작성
22.05.27 21:52
조회
48
추천
5
글자
12쪽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4. 인형을 당기는 실 (2)

DUMMY

“여기 원래 이렇게 어두워요?”

“모르겠는데··· 밤중에 와본 적이 있어야지.”

도서관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도 잘 안 보일 정도로 어두웠다. 가스등까지는 못해도 하다못해 초라도 하나 밝혀둘 것이지.

“얘는 이런 델 대체 어떻게 다니는 거래?”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는지 옆에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나저나 표정 변해서 서둘러 걸어온 게 무색할 만큼 도서관은 고요 그 자체였다.

“관사가 2층에 있댔죠?”

“응. 근데 2층 올라가는 계단이 어디쯤인지 모르겠어.”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갑자기 좀 멀어졌다.

“아이반 씨? 떨어지면 찾기 어려울 거 같은데요.”

“뭐라고?”

그새 다른 쪽으로 갔는지 목소리는 벌써 꽤 저 멀리서 들렸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냥 각자 올라가는 길 찾죠.”

지난번에 왔을 때 기억을 좀 더듬어 보았다. 그 웃기지도 않는 책들이 꽂힌 서가 옆으로 분명 계단이 있었지만 그게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았다. 당장 내가 어디 있는지를 모르겠으니.

철렁!

“음?”

투덜거리며 걷는데 금속성의 꽤 묵직한 뭔가가 발에 챘다.

“뭐야 이게.”

분명 들어와서 옆으로 새는 일 없이 죽 걸었으니 아직 도서관 주 복도일 거다. 누가 들어와서 걸으면 백발백중 채일 위치에 왜 이런 걸 놔두나 투덜거리며 발에 챈 그것을 더듬어 보았다. 금속 마감에 둥근 유리, 짤랑거리는 고리. 거기까지 알아차리자 두말 않고 외투 주머니를 더듬었다.

생각해 보니 성냥도 갖고 있었지.

치익 소리와 함께 허공에 불꽃이 떠올랐다. 랜턴에 불을 붙여 들자 그제야 주위가 어렴풋이 보였다.

“어?”

불빛을 봤는지 저만치 서가 한가운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자네야?”

“예. 누가 랜턴을 놔뒀어요.”

“잠깐만 거기 있어.”

그 말 뒤로 얼마 안 있어 부스스한 더벅머리가 서가 사이로 나타났다. 그는 랜턴을 넘겨받아 휘휘 둘러보더니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쪽.”

저만치 벽으로 계단이 뻐끔이 입을 열린 게 보였다.

“생각해 보니 그냥 소리쳐서 내려오라고 할 걸 그랬어요. 아마 위층에 윈치 씨랑 사서분 둘 다 있을 텐데.”

“그러게.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나와 사내는 계단을 오르며 그렇게 말을 주고받았다. 계단을 오르자마자 가스등이 켜진 방이 보였다. 창문을 열어 뒀는지 열린 방문 사이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영감님, 페이? 안에 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문을 밀고 들어가는 사내의 뒤를 따랐다.

“없네?”

“없네요. 아무도.”

방은 비어 있었다. 저만치 열린 창문 사이로 커튼이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치료사라고 했던가? 방안은 사방에 뭔지 모를 약초가 든 자루와 유리 용기, 곳곳에 던져둔 책 등으로 가득했다. 나이 먹을 만큼 먹고 혼자 사는 사람이 으레 그렇듯 허름한 책상과 간이침대는 온갖 잡동사니들로 주위를 분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책 되게 좋아하나 보네요. 내가 저번 해에 책을 몇 권 읽었더라.”

한편에 놓인 자루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둔 책을 집어 보았다. 비극론? 뭔가 연극 관련된 건가? 얼핏 펼쳐 본 책은 쪽마다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빽빽한 글씨로 가득했다.

“페이? 나 왔다.”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윈치 씨.”

“영감님 오셨구료.”

“자네들 여기서 뭐해? 페이는 어디 있는데?”

치안관은 그렇게 말하며 방 안을 두리번거렸다.

“이 손바닥만 한 방에 안 보이면 나간 거죠 뭘. 그런데 한참 먼저 나가셨던 분이 왜 이제야 오십니까?”

더벅머리 사내는 대답과 함께 들고 있던 랜턴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애니가 또 혼자 돌아다니고 있길래. 열 살짜리가 당최 겁이 없다니까.”

“또 그 녀석이에요? 그나저나 오다 페이 봤어요?”

“봤으면 안에 있냐고 물어봤겠어? 자네들 왔을 때 없던가?”

“이미 나갔나 봐요.”

“이 녀석이 한밤중에 늙은이 불러 놓고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저기 문진(文鎭)으로 눌러 놓은 거 쪽지야?”

치안관이 담뱃대로 가리킨 곳에는 반으로 접어 둔 종이가 바람에 움찔거리고 있었다.

“용케 보셨구료.”

“여기선 잘 보이는데 뭘.”

그는 종이를 끄집어내더니 내게 건넸다. 치안관은 내가 다시 건넨 쪽지를 펼쳐 보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이거 뭐라고 써 놓은 거야? 이렇게 깨알같이 써 놓으면 어떻게 읽으라고?”

그는 넌더리를 내며 내게 다시 쪽지를 건넸다.

“종이 크기 보니 어쩔 수 없었겠는데요. 와··· 근데 이건 좀 심하긴 하네.”

사서는 직업에 안 어울리게 글씨가 심하게 악필이었다. 그마저도 급히 썼는지 심하게 흘려 쓴 글씨였다.

“어디··· 아저씨, 이시- 이지? 아, 이사 약 다 떨어져 가서 구하러 갔다 올게.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는데 그동안 도서관 좀 봐줘. 어차피 그 거지굴 폭삭 무너져서 갈 데도 없잖아. 괜히 마리아네 가서 귀찮게 굴지 말고.”

“그 녀석···!”

“추신 있네요. 창고에 누워 있는 친구한테서 이상- 이거 뭐라고 쓴 거야?”

잉크 방울이 떨어져 있었다.

“차-았어? 아, 찾았어. 지금까지 내가 본 적이 없는 거라 좀 신경이 쓰이는데-”

“뭘 찾았다고 저러지?”

옆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겸사겸사 포레스트글렌까지 갔다 오려고. 그리고 그 공무원 샌님이 찾던-”

내가 찾던?

“왜 그래?”

“번져서 못 읽겠는데요.”

아까보다 훨씬 큼직한 잉크 자국이 쪽지 아랫부분을 완전히 덮고 있었다.

테슬리의 책을 말하는 건가? 설마 내 주머니에 든 걸 말하는 건 아닐 거고?

번진 글씨가 뭔지 살펴봤지만 허사였다. 그렇게 잠시 쪽지를 들여다보고 있는 동안 치안관과 사내는 슬슬 돌아가려는 눈치였다.

“그 사서 평소에도 이렇게 훌쩍 어디 가고 그럽니까?”

“응.”

“아니.”

서로 다른 대답이 동시에 돌아왔다. 둘은 서로 얼굴을 보며 잠시 멈칫했다.

“틈만 나면-”

“이사 녀석-”

동시에 나오던 말이 동시에 멈추며 두 사람은 다시 서로를 보고 멈칫했다.

“뭐 내키면-”

“필요할 때만-”

결국 치안관이 역정을 냈다.

“가만히 있어!”

“이사요? 그 애?”

“그래. 그 애 기침약으로 쓰는 게 있는데 그거 떨어지면 이래.”

“무슨? 그냥 내키면 계곡 쏘다니다 오는 거잖아요?”

“약재 구하러 가는 거야. 마을에 누구 아플 때 페이가 재료 없다고 하는 거 봤어? 그 녀석이 그렇게 생각 없이 사는 줄 아나.”

“뭐, 생각 없는 거면 나나 영감님만큼은 될 거외다.”

“뭐? 내가 뭘 어쨌다고?”

딴청을 피우는 사내에게 주먹을 불끈 쥐며 다가가는 치안관을 말렸다.

“그나저나 내가 찾는 책이라니? 공무원 샌님이 저 말하는 거 맞죠?”

“이 마을에 공무원은 나하고 페이밖에 없어.”

“페릴로니 영감님도 있잖아요.”

치안관은 뭔가 못마땅한지 끙 소리를 냈다.

“나참, 대체 뭐 하자고 이 한밤중에 여기까지 왔는지. 먼저 갑니다.”

뭐가 재밌는지 킬킬 웃던 사내는 그렇게 말하고는 방을 나가 버렸다.


···테슬리의 책이라.

다시 한번 쪽지를 펼쳐 보았다. 내가 그러고 있는 동안 치안관은 멈칫하더니 다시 방 안으로 걸어갔다. 뭔가 가면 갈수록 이상하네. 철도 뚫리는 대로 돌아갈까 했던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큰 기대는 않는 게 낫겠지만 일단 이 사서가 뭘 말하려 했는지 정도는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내가 그러고 있는 동안 치안관은 창문을 닫느라 용을 쓰고 있었다.

“제가 하죠.”

창틀에 뭐가 끼었는지 좀 뻑뻑했다. 내가 힘을 주어 창문을 닫자 그는 의외라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젊은 게 좋긴 좋군. 언뜻 보기엔 영 비리비리해 보이는데 말야.”

“저 예비역 중위라니까요?”

치안관은 먼저 나가라고 손짓하더니 그대로 램프 불을 꺼 버렸다.

“이거 뭐가 보여야지.”

“달이 떴어. 계단만 내려가면 돼.”

그 말대로 창문 사이로 달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여기 익숙하신가 봅니다.”

서가 사이를 아무렇게나 걸어가는 듯했지만 어느새 치안관은 도서관 밖으로 나가는 통로를 걷고 있었다.

“이 마을에 체스 외에 낙이라고는 책뿐인데 뭘.”

“그렇군요.”

곧 정문을 나섰다. 우리 둘이 나서자 치안관은 열려 있던 문을 밀어 그대로 닫아 버렸다.

“뭐 열쇠는 갖고 갔겠지.”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때껏 들고 있던 담뱃대를 툭툭 털어 집어넣었다.


달빛이 꽤 환했다. 삼지일이 이틀 전이었으니 만일(滿日)이 멀지 않았다. 나와 치안관은 몇 갈래인가 깨어진 달빛 아래를 걸었다.

“자네 괜찮아?”

“뭐가요?”

“한 이틀 제대로 못 잤지 아마? 오늘 눈 치운다고 또 삽질했고. 그 정도면 피곤할 법도 한데.”

“피곤하긴 합니다. 그런데 몸에 밴 버릇 때문에 한 번 못 자기 시작하면 한동안 잘 못 자게 돼요.”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젯밤처럼 시체 앞에 두고 날을 새는 것만 아니라면야.

“보기보다 억세구먼.”

“전역한 지 좀 됐지만 아직도 체력 관리는 합니다.”

“아직 예비역이랬나?”

“명목상으로는요. 전역한 뒤엔 개인적으로 조사할 게 있어서 훈련도 잘 못 나가지만.”

“조사?”

잠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냥 여기저기 흥미가 있어요. 연구 보조라고 해도 일단은 공무원이니 행정원이나 기록원 문서에 접근할 기회가 있거든요. 그런 데 가서 되는 대로 떠들어 보는 거죠.”

되는대로 둘러댄 말이지만 일단은 사실이었다. 로마이어라는 나라에 대해 잘 알 필요가 있었으니.

“행정원이나 기록원에까지 가서? 무슨 탐정 흉내라도 내나?”

대답 대신 빙긋 웃어 보였다. 치안관은 내가 대답하고 싶지 않아 한다는 걸 읽었는지 말이 없었다.

“자네 나이가?”

“갑자기 그건 왜요?”

“그냥 궁금해서.”

“몇 살쯤 돼 보입니까?”

“이십 대 초반? 중반? 삼십 대까지는 아닌 것 같고.”

“대충 그쯤 됩니다.”

그는 내 대답에 피식 웃었다.

“뭔 비밀이 그리 많아? 말하기 싫으면 관둬.”

잠시 말을 돌릴까 해서 화젯거리를 찾는데 저만치 뭔가 보였다.

“윈치 씨, 저게 왔다던 그 우편 마찹니까? 내일 아침에 떠난다고 하지 않았어요?”

시계탑 앞으로 말 두 마리가 끄는 마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방향을 보니 어딘가 밖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듯싶었다.

“저거? 저건 카지오 그놈 거야.”

“웬 마차? 어디 가나?”

“저게 어딜 봐서 여행용 마차로 보여? 말했잖아. 귀족 나리라 입맛이 비싸서 뭐든 센트로이드에서 갖다 먹는다고. ”

“허, 저게 다 먹을 거라고요?”

마차는 꽤나 컸다. 저걸 꽉 채울 정도면 뭘 얼마나 가져오는 거지?

“내가 아나. 하여튼 있는 놈들의 행세란···”

치안관은 못마땅한 듯 혀를 끌끌 찼다.

“대체 뭘 갖다 먹길래? 아무리 빨라도 센트로이드에서 여기까지 마차로 오려면 사흘은 족히 걸릴 텐데. 상하지나 않으면 다행이겠네요.”

“알 게 뭐야. 먹고 배탈이나 나라지.”

치안관은 퉁명스레 대답하고는 다시 담뱃대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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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5. 하얀 처녀 (2) 22.05.28 57 6 8쪽
15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5. 하얀 처녀 (1) 22.05.28 52 4 13쪽
14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4. 인형을 당기는 실 (3) +1 22.05.27 58 8 19쪽
»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4. 인형을 당기는 실 (2) 22.05.27 49 5 12쪽
12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4. 인형을 당기는 실 (1) 22.05.27 44 5 8쪽
11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막간 22.05.27 51 4 3쪽
10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3. 눈사태 (3) 22.05.27 45 5 7쪽
9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3. 눈사태 (2) 22.05.27 51 6 11쪽
8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3. 눈사태 (1) 22.05.27 62 4 15쪽
7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2. 아이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 (3) 22.05.27 59 5 8쪽
6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2. 아이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 (2) 22.05.27 65 3 16쪽
5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2. 아이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 (1) 22.05.27 74 5 11쪽
4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1. 출장 (3) 22.05.27 84 5 8쪽
3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1. 출장 (2) 22.05.27 95 5 8쪽
2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1. 출장 (1) 22.05.27 189 6 16쪽
1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프롤로그 +21 22.05.27 351 15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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