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聰. 님의 서재입니다.

하늘과땅의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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聰.
작품등록일 :
2012.10.31 20:25
최근연재일 :
2022.07.24 14:15
연재수 :
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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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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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글자수 :
82,070

작성
22.05.2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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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1. 출장 (1)

DUMMY

첫째 날 오후


서부선의 철도는 센트로이드를 벗어나자마자 단 1초도 쉬지 않고 덜컹거렸다.

의자 좀 편한 거 설치하면 어디가 덧나나.

그리고 난 그 한숨도 쉬지 않는 덜컹거림에 맞춰 1초도 쉬지 않고 투덜거렸다.

아무리 국유재산이고 군용 목적을 우선으로 한 철도라지만 타는 사람 생각도 좀 해야지? 공무원은 사람도 아니냐? 말 나왔으니 말인데 공무원이라고 잊을 만하면 아무 데나 파견하는 건 어떤가. 심심하면 연구소에서 빼내서 이리 와라, 저리 가라, 그거 가져와, 갖다 놔, 치워. 제기랄, 이따위로 굴려 먹을 거면 봉급이나 좀 올려주던가.

중앙역에서 열차에 탄 뒤에 든 생각이라고는 하나같이 이런 것뿐이었다. 우울한 건 오늘이 월요일이란 것만으로도 충분하건만 출근하자마자 본 것이 책상 위에 떡하니 놓인 자줏빛 봉투였다. 첨부되어 있던 열차의 발차 시각까지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았던 건 덤이다. 덕분에 짐 챙길 생각은 꿈도 못 꾸고 출근할 때 들고 온 가방 그대로 들고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려야 했다.

발드라스. 테슬리의 책 회수.

참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저리 건조하게 쓰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읽자마자 북북 찢어 버렸지만 공문에는 딱 그렇게만 적혀 있었다.

하···. 책? 다시 한숨이 나왔다. 책? 진짜? 그것도 어디 이름도 모를 시골 어딘가에 있는? 분명 뭔가가 있으니 굳이 사람을 보내는 거겠지? 그게 아니라면 누군가는 내 부라린 눈앞에서 그럴듯한 이유를 대야 할 거야.

끼이이이이이이-

저만치 앞에서 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열차는 어느새 한 시골 역에 들어서고 있었다. 역명이 적힌 팻말이 서서히 느려지는 나무들 사이로 스쳐 갔다. 발드라스 - 내가 내려야 할 역이었다.

김 서린 차창 옆으로 곡괭이를 어깨에 멘 중년 남자가 스쳐 갔다. 도시락 가방인 듯한 큼직한 바구니가 괭이 끝에 걸려 흔들리고 있었다. 그 남자를 선두로 작업복 차림의 사람들이 곡괭이나 삽, 외발 수레 같은 물건들과 함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고된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인지 다들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어느 시점엔가 열차가 크게 꺾는다 싶더니 언덕 저 아래로 하나둘 건물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크게 타원을 그리는 철길과 그 맞은편의 절벽에 가까운 암반 사이로 띄엄띄엄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근래 들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흔하디흔한 개척촌 중 하나였다. 어느덧 열차는 걸음으로도 따라잡을 만큼 느려져 있었다.

“젠장, 제동선 좀 지키라고 몇 번을 말해! 그거 맞추는 게 그리 어려워? 저거 자네가 나를 거야? 이 짓거리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면서 이게 도대체 몇 번째야?”

석탄 타는 냄새에 갓 파낸 신선한 흙냄새, 자욱이 서린 김 사이로 누군가의 열이 받을 대로 받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만치 깃발을 든 나이 지긋한 역무원이 머쓱한 표정의 기관사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발드라스 시(市) 치안관(治安官) G. 윈치

‘다 쓰러져 가는’ 이란 표현이 실제로도 쓸 수 있는 거였다니. 으레 그렇듯 국장(國章)이 새겨진 명판이 붙은 건물이 마을 들어서는 길목에 서 있었다. 과연 이걸 ‘건물’이나 ‘서’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궁금하지만, 뭐 어쨌든. 문을 열자마자 소름 끼치는 경첩 갈리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저만치 머리가 벗어진 노인이 본인만큼 나이를 먹었을 듯한 책상에 앉아 뭔가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묵은 먼지, 곰팡이, 그리고 노인의 냄새가 났다.

“실례합니다.”

노인은 내가 굳이 인기척을 내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기름때에 찌든 랜턴 너머로 흑백이 얽힌 체스판이 보였다.

“무슨 일로?”

“센트로이드 중앙연(中央硏)에서 나왔습니다. 일주일 정도 머무르려고요.”

“중앙연?”

그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대뜸 되물었다.

“혹시 테슬리 책 찾는답시고 온 건 아니지?”

음?

그는 내 얼굴을 보고 피식 웃었다.

“내기할까? 자넨 분명히 하루도 안 돼서 똥 씹은 표정을 짓게 될 거야.”

뭔가 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

“그거 찾는답시고 온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거든. 귀족 견공자제분 하나는 아예 눌러앉았고.”

노인은 굳이 짜증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이런 외진 마을이 외부인을 곱게 보지 않는 거야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이게 별다른 이유 없는 바깥사람에 대한 배척인지, 아니면 뭔가 이유가 있는 건지는 좀 두고 봐야겠지만.

“뭐 그건 그렇다 치고. 통행증?”

언제 물어보나 싶었다. 그는 요식적이라는 말도 아쉬울 만큼 건성으로 내가 내민 통행증을 살폈다.

“반 퍼지(Van Furge). 제국중앙연구소 제3분과 3급 연구 보조.”

“보조라고 쓰고 잡부라고 읽죠.”

“그 책이 대체 뭐길래 이젠 연구소까지 나서서 찾지? 뭐 금덩어리라도 파묻어 놨나?”

그는 통행증을 돌려주며 내게 물었다.

“그런 거 물어보셔도 전 모릅니다. 뭐 어깨너머 듣기로는 죽기 전에 그 책 쓴 사람이 뭔가 대단한 걸 만들었다던데요. 그게 뭔지는 저야 알 턱이 없지만.”

그렇게 대답하고 가방을 노인의 눈앞에 들어 보였다.

“검사하셔야죠?”

노인은 귀찮다는 듯 흘끗 가방을 바라보고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암만 봐도 삼십 센트릿짜리 장검이나 쇠뇌가 들어가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소란만 일으키지 말게.”

그는 이미 내게 흥미를 잃은 듯했다.

“여관 찾을 거면 광장 쪽 큰길로 끝까지 가라고.”

문을 나서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안관사가 약간 언덕배기에 놓여 있는 덕에 마을 전체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얼핏 보기에도 7년 전 사건 이후에 우후죽순 생겨난 개척촌 중 하나였고, 뭘 캐는지는 몰라도 광산으로 먹고사는 마을이란 것도 대충 알만했다.

휘-

사시사철 흐린 이맘때의 센트로이드와는 달리 하늘이 구름 하나 없이 깨끗했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짜증이 머리끝까지 나 있었는데 이제는 팔자에 없이 휴가라도 온 기분이었다.

책, 책이라. 진짜 책 한 권 찾아오라고 보낸 거라고? 흠.

광장을 가로지르자마자 저만치 여관이 눈에 띄었다. 술잔 명판이 붙은 2층짜리 갈색 벽돌 건물이 마을 모퉁이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모루와 망치. 어쩐지 여관보다는 대장간에 어울릴 이름인데. 아니면 전쟁 교범이라거나. 몇 개인가 정갈히 정리된 테이블, 마호가니 계산대,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하게 윤기가 나는 난간, 늦겨울 오후의 햇볕- 갑자기 든 휴가 온 기분 덕분인지 이제는 심지어 이 마을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저기에 아까 그 대머리 치안관이 앉아서 졸고 있으면 완벽하겠군.

“방에 묵으시겠어요?”

문득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얀 앞치마에 머릿수건을 쓴 아가씨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청소라도 하다 온 듯 두 손으로 창문닦이가 담긴 양동이를 들고 있었다.

“네. 빈방 있나요? 일주일 정도 묵으려고 하는데요.”

“골목으로 창이 난 방이 있습니다. 연통이 망가져서 밤에 불을 못 땔 텐데 괜찮으세요?”

사무적이라고 해야 할까. 말투는 공손했지만 어딘가 날이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노인도 그렇고 이 아가씨도 그렇고 찾아왔다는 손님들이 뭔가 문제라도 일으켰나?

“괜찮습니다. 그냥 버티죠, 뭐. 지금 체크인할 수 있어요?”

“예. 정리는 다 되어 있어요. 바로 들어가셔도 돼요.”

여관 아가씨는 그렇게 말하며 양동이를 들어 올려 보였다.

“잠깐만 기다려 주실래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잠시 벽돌에 붙은 이끼를 감상하고 있자니 계산대로 들어선 아가씨가 내게 손짓을 해 보였다.

“방에 들어가 보시겠어요?”

“그냥 묵겠습니다. 어차피 달리 여관이 또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요.”

그렇게 대답하고 통행증을 내밀었다. 여관 아가씨는 통행증을 받아들더니 계산대 아래에서 가죽으로 장정 된 책을 꺼내 들었다.

“성함이... 반... 퍼지 씨?”

그녀는 그렇게 물으며 통행증과 내 얼굴을 번갈아 살폈다. 적힌 인적 사항과 내 외모를 비교해 보는 거다. 여기 치안관보다 낫네.

“일주일 부탁합니다.”

“오늘부터 다음 주 수요일까지... 20루이입니다. 아침은 8시에서 10시, 저녁은 6시에서 8시까지예요. 여기로 나오셔서 저한테 말씀하시면 됩니다.”

여관 아가씨는 그렇게 말하며 장부에 이것저것을 적어 넣었다.

“그럼, 따라오시겠어요?”

가느다란 손가락이 탁하고 장부를 세워 덮고는 7이라는 딱지가 붙은 열쇠를 집어 들었다.

“안 복잡하면 그냥 알아서 가겠습니다. 지금 좀 바쁘신 것 같네요.”

그렇게 말하고 손을 내밀었다. 여관 아가씨는 잠시 머뭇거리다 곧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요즘 갑자기 손님들이 많아져서요. 혹시 부르실 일이 있으면 침대 머리맡에 줄을 당기면 돼요.”

열쇠를 받아들고 계단을 올랐다. 공문에 첨부되어 있던 서류들을 다시 제대로 읽어 보고 싶었다. 들어서자마자 너 책 찾으러 왔지 그렇게 묻는데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 싶었다.

방문을 열자 옅은 등유 냄새가 풍겼다. 침대, 탁자, 난로 모두 관리하는 사람의 성품을 보여주는 듯 잘 정돈되어 있었다. 대강 외투를 벗어 의자에 던지고는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냥 한숨 잘까.”

사실 그래도 된다. 지금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내 바람과는 반대로 이미 손이 가방을 더듬고 있었다. 젠장, 어딘가 항상 신경 한구석을 곤두세워놓고 있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렸어. 이제는 맘 놓고 쉬고 싶어도 몸이 그걸 거부한다.

어디... 전역할 때 갖고 온 단검, 잉크병- 아 젠장, 이거 또 느슨해졌네. 새 걸 사든지 해야지 원. 찾던 게 손에 잡히자 그대로 그걸 끄집어 올렸다. 끈이 반쯤 풀린 갈색 봉투에서 서류 뭉치의 끄트머리가 삐져나와 있었다.


약식 통행 허가 갱신 안내

기간 연장이 필요할 경우 만료일 하루 전까지 연장 신청서를 제출하십시오.

- 센트로이드 중앙시청 통행관리과


아이스레인 행(行) 열차편 안내

아 젠장 이거 첨부되어 있었잖아? 집어 든 문서에는 서부행 열차 노선의 발차 시각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하긴 하루에 딱 두 번 있는 걸 그냥 가라고 던졌을 리가 없지. 인쇄된 종이가 얄팍한 탓에 다른 서류에 붙어 넘어간 모양이었다.


중요 인사 인명부

흠. 기록원 문서네?

T227-C-4. 니콜라스 테슬리 (Tesley, Nicholas)

- 출생지: 로마이어, 센트로이드, 자인 가(家)

- 인적사항: 펠릭스 테슬리 (부) / 노라 테슬리 (모)

- 특기사항: 동력(動力) 관련 설계 전문가. 개량형 방적/방직 장치 동력부 설계

그 아래 붉은 잉크로 덧붙인 문장이 있었다.

* 핏빛 9월단과의 직접적 관계가 거의 확실시됨. 지도부 활동 가능성 있음


연표

- 337: 출생 (1월 24일), 로마이어 센트로이드 자인 가

- 349: 카지오 상회 견습 공원(工員)

- 357: 카지오 상회 정식 공원

- 358: 카지오 상회 퇴직, 국립대학 입학

- 364: 국립대학 역학부 졸업

- 370: 국립대학 역학부 조교수

- 373: 국립대학 역학부 정교수

- 380: ‘외부 동력에 의한 단순 반복 장치의 설계’ 발표


논문? 뭐야 이게. 한 줄짜리 제목 아래에 근 서너 줄은 되어 보이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미안하지만 요만큼도 읽고 싶지 않았다. 공용어가 맞긴 한 거냐. 하지만 그 아래에 붉은 글씨로 덧붙여진 몇 줄의 손글씨에는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갔다. 선황제의 업적- 세간에는 키퍼들과의 거래를 통해 얻어낸 것으로 알려진 것이었다.

* 358: 제국 증기 기술청 설립

* 386: 증기기관을 이용한 초기형 동력 장치 제작

* 387: 부모 사망, 타살, 예리한 흉기에 의한 자상(刺傷), 원한관계? 미결 387-59

- 390: 국립대학 퇴직, 행방불명

- 398: 변사체로 발견 (센트로이드 오데일 6-11, 11월 20일). 부고 안내 2주 후 화장. 기타 소지품은 중앙시청 분실물 관리소로 이관


소지품 목록

- 1루이 은화 27닢, 1바트 동화 6닢

- 회중시계, 안쪽 면에 여성의 초상화 있음

- 상/하의 한 벌, 특기사항 없음

- 출판계약 관련 전표: 그린우드, 초판 1쇄 1판. 자비 출판. 397년 6월 29일

- 부치지 않은 편지 1부 (수신자 미상)


요 근래 들어 이 테슬리란 이름을 몇 번 들어본 적이 있다. 굳이 관심 가질 이유도 여유도 없었기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지만. 거의 7, 8년 전에 갑자기 사라진 사람, 그것도 국립대학의 교수가 난데없이 수도 한복판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으니 사람들이 떠들어댈 만도 했다.

편지- 이건 직접 가서 조회신청 넣지 않는 한은 보기 어려울 거고. 출판계약 전표- 그린우드?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그린우드라면 불쏘시개 연애소설 찍어 내는 걸로 악명이 높은 출판사다. 까놓고 말해 돈만 좀 찔러주면 누구든 제 이름 걸고 작가 행세 할 수 있게 해주는 싸구려 문고판 전문 회사. 암만 봐도 교수까지 했던 사람이 자기 이름 걸고 책을 내고 싶어 할 곳은 아닌데.

내용을 숙지할 겸 인명부를 처음부터 다시 훑어 내려가는데 한 문장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 핏빛 9월단과의 직접적 관계가 거의 확실시됨. 지도부 활동 가능성 있음

핏빛 9월단이라. 7년 전 사태 당시에 활동했던 어떤 집단의 이름이었다.

“겨우 그거밖에 안 됐었나.”

7년, 이제 보니 겨우 7년밖에 안 됐다. 로마이어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이라면, 특히나 센트로이드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392년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현 황제가 집권한 이후로 워낙 큼직한 사건이 많아 빠르게 잊혀갔지만- 아니, 누구든 그걸 잊은 사람은 없을 거다. 그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할 뿐이지.


테슬리의 책을 가져오라.

갑자기 주어진 일이 무진장 심각하게 보였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대체 어떤 새끼가 날 엿 먹인 거지 그런 생각뿐이었는데.

“...젠장, 몰라.”

서류 뭉치를 얼굴에 내려놓은 그대로 눈을 감았다.

테슬리, 핏빛 9월단, 방직업계, 폭동-

후반기 교육을 받을 때였던가.

“대체 이런 걸 왜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질문이네. 대답은 ‘닥치고 머릿속에 욱여넣기나 해’ 되겠네만.”

훈련생들이 고지식 교수라 부르던 나이 지긋한 강사는 그렇게 대답하고 수업을 계속했다. 하지만 그는 그 수업이 끝나고 난 뒤에 나를 불러내어 한참 동안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 나라의 재정 문제 때문이야. 식량 수급도 관련이 있고. 간단히 말하면-”

방직업이 중요한 이유 - 뭐 말하자면 로마이어라는 나라가 내세울 게 그거밖에 없어서 그렇다. 서부의 미개척 지대를 제외하면 영토 대부분이 지형이 험하지 않은 곳을 찾기가 어려울 지경이고, 그나마 있는 경작지는 남부에 손톱만 한 정도라 자급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반대급부인지 각종 금속이나 목재는 풍부하다지만 사람이 석탄을 씹어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래서 판투스에서 면화를 사다 가공해서 면직물을 되파는 방식으로 이윤을 남긴다. 현 황제가 판투스를 박살내고 더는 밀값으로 장난을 치지 못하게 만든 지금도 로마이어로서는 국가재정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중요 산업이다.

“그 기계가 처음 나왔을 때는 다들 형편이 좀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지. 나라에서 많이 팔아서 이윤을 많이 남기면 어련히 떡고물이 떨어지겠거니 그런 식으로들 말이야. 근데 제일 먼저 모가지가 날아간 건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들이었거든.”

그는 그렇게 말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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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5. 하얀 처녀 (3) +2 22.06.03 62 6 14쪽
16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5. 하얀 처녀 (2) 22.05.28 56 6 8쪽
15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5. 하얀 처녀 (1) 22.05.28 51 4 13쪽
14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4. 인형을 당기는 실 (3) +1 22.05.27 58 8 19쪽
13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4. 인형을 당기는 실 (2) 22.05.27 48 5 12쪽
12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4. 인형을 당기는 실 (1) 22.05.27 44 5 8쪽
11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막간 22.05.27 50 4 3쪽
10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3. 눈사태 (3) 22.05.27 44 5 7쪽
9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3. 눈사태 (2) 22.05.27 51 6 11쪽
8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3. 눈사태 (1) 22.05.27 62 4 15쪽
7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2. 아이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 (3) 22.05.27 59 5 8쪽
6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2. 아이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 (2) 22.05.27 65 3 16쪽
5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2. 아이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 (1) 22.05.27 74 5 11쪽
4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1. 출장 (3) 22.05.27 84 5 8쪽
3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1. 출장 (2) 22.05.27 95 5 8쪽
»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1. 출장 (1) 22.05.27 189 6 16쪽
1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프롤로그 +21 22.05.27 351 15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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