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聰. 님의 서재입니다.

하늘과땅의시대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聰.
작품등록일 :
2012.10.31 20:25
최근연재일 :
2022.07.24 14:15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39,510
추천수 :
103
글자수 :
82,070

작성
22.05.27 21:47
조회
43
추천
5
글자
8쪽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4. 인형을 당기는 실 (1)

DUMMY

넷째 날 밤


결국 어젯밤도 잠은 제대로 못 잤다. 내 빌어먹을 직업을 탓해야지 어쩌랴.

“아니, 정말 괜찮다니까요?”

“내가 안 괜찮아.”

관사가 파묻힌 덕분에 치안관은 머무를 곳이 없었다. 평소 인망을 보여주듯 한잔 하러 들르는 사람마다 그런 그에게 자신의 집에서 지낼 것을 권했지만, 그 때마다 그는 사람들을 한마디 말로 돌려세웠다.

“체스는 어떻게 두라고?”

지나가는 말로나마 권하던 사람들이 그 말 한마디에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건 참 진기한 경험이었다. 결국 그는 마을 청년들이 하루를 꼬박 걸려 파낸 관사에서 그나마 멀쩡한 물건들을 여관으로 옮겨 왔다.

“쯧쯧··· 저 체스에 미친 대머리.”

옆에서 담요를 둘러쓴 채로 손을 녹이던 다른 노인이 그런 치안관을 보며 혀를 찼다. 내가 마을에 도착한 날 기관사에게 역정을 내던 역무원이 바로 그였다. 그 역시 이번 눈사태로 역사가 폭삭 내려앉은 탓에 여관에 묵는 신세가 됐다. 눈사태가 일어날 때 운 좋게도 지하실에 볼일이 있었던 덕에 화를 면했다고. 그나저나 그를 찾아낸 청년들은 여관에 돌아올 때까지도 황당해하고 있었다. 근 여덟 시간을 갇혀 있었는데 청년들이 그를 찾아냈을 때 지하실의 간이침대에서 코를 골고 있었다고 하니 말 다 했다. 뭐 어쨌든, 재미있는 건 옆에서 보기엔 참 비슷한 둘이 앙숙이라는 거다.

“사돈 남말하시누만. 머리 벗겨진 거라면 나보다 심하면 심했지 절대 덜하지는 않은 작자가.”

특히 누가 더 대머리인가 하는 거로.

“뭣이!?? 난 최소한 옆은 있다고? 머리에 옆으로 단선도 아니고 복선을 놓은 주제에!”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예를 들어도 참··· 그러는 지는 앞뒤로 기찻길 크다랗게 놔서 좋겠구먼? 누가 역무원 아니랄까 봐 머리에 깃발 달고 다니나? 왜 빨갛게 파랗게 염색도 해보지?”

“저 망할 영감태기가!?”

“오, 그래! 한판 해볼래?”

역무원 영감님이 담요를 벗어 던지자 치안관도 질세라 담뱃대를 문 입을 치켜세우며 팔을 걷어붙였다.

“거 그만들 좀 하시죠. 아직 두 시간도 안 됐는데 이 꼴을 한 대여섯 번은 본 거 같아요.”

하필이면 주변에 아무도 없는 탓에 이럴 때마다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말려야 했다.

“아까 보니 두 분 방도 서로 마주 보고 있던데요. 두 분 다 관사 다시 지을 때까진 여기 계셔야 할 텐데 좀 사이좋게 지내시는 게.”

“뭐!?”

“뭣이!”

두 노인이 동시에 내 쪽에다 대고 고함을 쳤다.

“당장 바꿔 달라고 해야겠어!”

“누가 할 소릴!?”

“지금 여관 아가씨 요리 중인데요. 오늘 하루 이래저래 터진 게 많아서 저녁만 세 번짼가 하는 거 같던데.”

나잇값 좀 하시라고요.

피식 웃으며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내 말이 찬물을 끼얹는 게 됐는지 치안관은 다시 담뱃대에 불을 댕기고 역무원 영감님은 주섬주섬 담요를 들쳐 썼다.

“울릭 영감이 그립구만 진짜.”

“누가 할 소릴?”

물론 조용한 건 잠시였다. 두 노인은 등을 돌린 채로 서로에게 쉴 새 없이 독설을 쏟아냈다.


“저 왔습니다~!”

누군가가 여관 문을 열고 들어서며 소리를 쳤다. 언제나처럼 갈색의 더벅머리를 한 건장한 사내였다. 그는 들어서서 주위를 슬슬 둘러보다 치안관에게 다가갔다.

“윈치 씨.”

치안관은 그새 한 대를 다 태웠는지 다시 담배를 채우고 있었다.

“왜?”

“페이가 불러요.”

“페이? 왜?”

“전들 압니까? 얼른 가 보시구료. 오는 길에 만났는데 여기까지 오기 귀찮다고 도로 들어가던데요.”

“이 녀석이 지금이 몇 신데 노인을 오라 가라야?”

“8시 17분이다. 대머리 영감아.”

역무원 영감님이 그렇게 말하며 회중시계를 흔들어 보였다.

“누가 물어봤어!?”

치안관은 발끈하더니 의자에 걸쳐 둔 조끼를 집어 들고 그냥 나가 버렸다.

“뭔 일인데 이런 한밤중에 부른답니까?”

“내가 아나. 페이 걔 좀 이상한 거야 뭐 하루 이틀 아는 것도 아닌데. 피곤해 죽겠네.”

“광부라면서 뭐 얼마나 했다고 엄살이에요?”

그는 눈썹을 추켜세우다 그게 자신이 했던 말이란 걸 기억한 듯 피식 웃었다.

“젠장, 사람 멋쩍게 만들긴.”

“아이반 씨, 그러고 보니 묻고 싶은 게 있는데 혹시 풍차 쪽 개울 갱도 타고 나옵니까?”

“엥?”

그는 이게 뭔 소린가 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개울? 풍차 너머에서 내려오는 거?”

더벅머리 사내는 그렇게 되뇌더니 잠시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럴걸? 맞아. 예전에 배수로 내면서 그걸 언덕 아래로 흐르는 물길로 연결해 뒀던 기억이 나.”

“그 물길 얼마나 큰 거예요?”

“글쎄? 그때그때 다르지? 배수로에 따라서는 사람 키만 한 것도 있어.”

그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고개를 갸우뚱해 보였다.

“그런데 왜 자꾸 이런 걸 물어? 거기서 일 안 한 지 1년은 훌쩍 넘었다니까?”

잠시 속으로 고민을 했다. 어떻게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마땅히 둘러댈 구실이 떠오르는 게 없었다.

“시체가 거기서 나온 거 같아요.”

그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진짜? 6번 갱에서? 어떻게?”

“전들 압니까?”

사내는 손바닥을 펼치더니 그대로 턱을 움켜쥐었다.

“에이, 아닐 거야. 거기 둘러둔 쇠사슬이든 자물쇠든 만만한 게 아냐. 그건 작정하고 곡괭이로 찍어도 못 부숴.”

“그러고 보니 윈치 씨가 가져오라고 했던 자물쇠가 그거였어요?”

그는 이건 또 뭔 소린가 하는 얼굴을 해 보였다.

“아··· 창고 잠가두게 가져오라고 했던 거? 어. 뭐 열쇠는 결국 못 찾았지만. 그거 윈치 씨가 어디서 다른 자물쇠 구해와서 잠가 뒀을걸. 페이가 방금 영감님 부른 이유가 그 창고에 누워 있는 친구한테서 뭔가 찾았다고-“

내 표정이 변한 걸 봤는지 사내의 말이 끊겼다.

“시체에서 뭔가 찾았대요?”

“어, 응. 무슨-”

“저도 좀 갔다 올게요.”

코트를 집어 들고 여관 문을 나섰다. 더벅머리 사내도 놀란 얼굴로 나를 따라왔다.

“어이, 대체 왜 그래?”

“아이반 씨, 그 사서 아가씨 도서관에 살죠?”

“응. 근데 갑자기 왜 그리 심각해? 그 작자 사고로 죽은 거라며?”

“그게···”

뭔가 둘러대려 했지만 역시나 빠져나갈 구멍이 안 보였다.

“사고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뭐!?”

“넘겨짚지는 마시고요.”

“자네가 그런 거잖아? 사고로 보인다는 거.”

“정확한 사인은 모릅니다. 그냥 치안 유지군 올 때까지는 괜히 마을 분위기 흉흉하게 만들 필요 없겠다 싶어서 그랬던 거죠.”

“그럼··· 살인일 수도 있단 거야?”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백발백중 살인이었지만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그도 보이는 것처럼 어수룩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럼 그 눈사태도···”

“뭔가 좀 이상해요. 그래서 그 사서 아가씨가 찾았다는 게 뭔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럽니다.”

“걱정?”

뭔가 톱니바퀴가 하나둘 맞아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뭐, 전부 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살인과 눈사태가 연결되어 있다면 사서가 시체에서 뭔가를 찾아냈다면 뭐가 됐든 그걸 일으킨 자들에게 결코 달가울 리 없는 일이었다.

“아이반 씨, 그 사서분이 윈치 씨 불러 달라고 하고 돌아간 뒤로 바로 오신 거예요?”

문득 생각이 나 그렇게 물었다.

“···아니, 오는 길에 몇 놈 만나서 잡담 좀 했지.”

그는 뭔가 짐작 가는 게 있는지 켕기는 목소리로 대답해 왔다.

“서두르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하늘과땅의시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8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막간 +3 22.07.24 88 4 3쪽
17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5. 하얀 처녀 (3) +2 22.06.03 62 6 14쪽
16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5. 하얀 처녀 (2) 22.05.28 56 6 8쪽
15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5. 하얀 처녀 (1) 22.05.28 51 4 13쪽
14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4. 인형을 당기는 실 (3) +1 22.05.27 57 8 19쪽
13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4. 인형을 당기는 실 (2) 22.05.27 48 5 12쪽
»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4. 인형을 당기는 실 (1) 22.05.27 44 5 8쪽
11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막간 22.05.27 50 4 3쪽
10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3. 눈사태 (3) 22.05.27 44 5 7쪽
9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3. 눈사태 (2) 22.05.27 51 6 11쪽
8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3. 눈사태 (1) 22.05.27 61 4 15쪽
7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2. 아이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 (3) 22.05.27 58 5 8쪽
6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2. 아이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 (2) 22.05.27 65 3 16쪽
5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2. 아이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 (1) 22.05.27 74 5 11쪽
4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1. 출장 (3) 22.05.27 83 5 8쪽
3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1. 출장 (2) 22.05.27 94 5 8쪽
2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1. 출장 (1) 22.05.27 188 6 16쪽
1 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프롤로그 +21 22.05.27 350 15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