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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님의 서재입니다.

두윤이의 무림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8.05.20 22:25
최근연재일 :
2019.01.11 21:06
연재수 :
144 회
조회수 :
362,859
추천수 :
3,806
글자수 :
842,547

작성
18.05.22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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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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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글자
16쪽

제 이름은 두윤이에요 -2

DUMMY

다시 돌아온 초가집, 아무도 없다. 천존은 지그시 눈살을 찌푸리며 마당 한구석으로 다가갔다. 손질하던 나물이 평상에 널려 있다. 녀석은 언제 돌아올까? 나무 평상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에 들어갔지만, 온갖 상념이 끊이지를 않는다.


“할아버지!”


짤랑거리는 외침에 천존은 번쩍 눈을 떴다. 약초 바구니를 든 녀석이 해맑게 웃고 있다.


“제가 얼른 밥 차릴게요. 시장하시죠?”


기쁨에 차올라 부엌 쪽으로 달려가는 녀석,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다. 천존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눈을 감았다.




“할아버지! 식사하세요.”


한적한 평상에 밥상이 차려진다. 천존은 애써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 없다. 먹을 필요도 없고.”


“어젯밤도 그랬어요. 제가 차린 밥상을 한 번도 받지 않으셨다고요. 그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녀석이 두 손을 모으고 반짝이는 눈망울로 올려다본다.


“제발 한 입만 드셔보세요. 네?”


천존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럼 한술 뜨지.”


전날처럼 마른 나물이 전부였는데 제법 먹음직스럽다. 한술 뜨니 싱그러운 산나물 향기가 입안 가득 퍼진다.


“어때요? 정말 꿀맛이죠. 저 아래 시냇가에서 캐온 거예요. 실은 제가 혼자 먹으려고 아껴둔 건데요. 할아버지께는 기쁜 마음으로 드리겠어요. 이곳에 처음 오신 손님이니까요.”


“고맙구나. 그런데 넌 왼손으로 밥을 먹느냐?”


녀석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다. 왼쪽 손가락 사이에 젓가락이 어설프게 걸려 있다.


“네. 하나도 불편하지 않아요.”


“글도 왼손으로 쓰겠구나. 그건 나쁜 습관이다.”


“정말 이해가 안 가요. 왜 다들 제가 왼손을 쓰는 걸 싫어하죠? 칠복이 아저씨가 그러셨어요. 왼손을 쓰는 아이는 의자에 손을 묶어놔야 한데요.”


뭐라 말을 이으려 입술을 달싹이던 천존은 그만두고 말았다. 녀석이 불만스러운 듯 양 볼을 부풀린다.


“좋아요! 이제부터 오른손으로 밥을 먹겠어요. 대신 팔을 다치면 굶어 죽어야겠네요. 왼손으로 밥을 먹는 건 나쁜 습관이잖아요.”


“······.”


천존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잠시 꽁해 있던 녀석이 금세 방긋 웃는다.


“그런데요. 어제 한숨도 못 주무시는 거 같은데, 무슨 걱정 있으세요?”


“운기조식 중이었다.”


“운기조식이 뭔데요?”


확 짜증을 내려다가 녀석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고 참았다.


“운기조식은 심신의 기를 가다듬고 순환시키는 것이다. 잠을 잔 것보다 훨씬 상쾌하지.”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너는 무공이 무엇인지 아느냐?”


“모르는데요?”


“그럼 무림은 들어봤겠지?”


녀석이 왼손에 들고 있던 나무젓가락으로 밥그릇을 ‘탁’ 친다.


“그건 들어봤어요. 아랫마을에서 가죽을 팔 때 사냥꾼 아저씨들한테 들었는데요. 무림인은 아주 무서운 사람들이래요. 이유 없이 막 사람들을 때린 데요. 그런데요. 전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묵묵히 밥을 먹던 천존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섭지 않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저는 그 사람들보다 훨씬 힘이 세고 멋진 선녀님을 알거든요.”


“선녀?”


소년이 힘껏 고개를 끄덕인다. 까만 눈이 유독 반짝인다.


“이 산에 계시는 일곱 선녀님이에요. 전 그분들과 아주 친해요. 정말 친절하고 상냥하시죠. 할아버지도 만나보면 분명히 좋아하실 거예요.”


“그 선녀라는 사람은 이름이 무엇이냐?”


“음, 그러니까 이름은 잘 몰라요. 설령 있다 해도 외우기 힘들 거예요. 일곱 분이나 되는 이름을 어떻게 다 외우겠어요?”


“그러냐?”


천존은 인상을 구기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식사를 다 하셨으니 차를 내올게요. 어제 드려야 했는데 게을러서 죄송해요.”


“아니다. 됐다.”


“그러지 마시고 한번 드셔보세요. 엄마랑 할아버지도 제가 끓인 차는 정말 좋아하셨다고요.”


녀석이 부리나케 부엌 쪽으로 달려간다. 창고 비슷한 곳에는 여러 가지 사냥도구들이 잔뜩 널려 있다. 천존은 녀석이 차를 끓이는 모습을 응시했다. 다시금 꼼꼼하게 살펴도 무공을 익히기에는 불가능한 신체다.


“자, 식기 전에 드세요.”


녀석이 찻잔을 내온다. 천존은 찻잔을 내려다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찻잔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찻잎이 둥둥 떠 있는데, 이건 제대로 된 차가 아니다. 그냥 그릇에 찻잎 던져 넣고 거르지도 않은 채 내온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향기가 좋아서 슬쩍 차를 머금어 봤다.


“어때요?”


녀석이 한껏 기대에 찬 눈으로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다.


“나름 괜찮구나.”


“우와! 기뻐요. 처음이에요. 제가 끓인 차를 칭찬한 사람은 할아버지밖에 없다고요.”


“아까는 네 엄마랑 할아버지가...”


“아랫마을 아저씨들은 제가 끓인 차를 좋아하지 않으세요. 칠복 아저씨는 최악이라고 하시면서 찻물을 땅바닥에 부어버린 적도 있다니까요. 그럴 때면 정말 화가 나요. 차를 못 끓인 저도 잘못이지만, 그렇게 행동하는 건 무례한 거라고요. 그런데요. 장평 아저씨는 그런대로 마실만하다고 하셨어요. 아저씨는 참 좋은 분이세요.”


“그만 알았다. 그런데 너는 글을 아느냐?”


“잘 몰라요. 엄마랑 할아버지한테 배웠는데 매일 혼났어요. 그런데 아랫마을 아저씨한테 배우는 것은 싫어요! 그분은 술 냄새를 풍기면서 글을 가르쳐 주세요. 제발 그러지 말라고 부탁하면 또 화를 내시고요.”


천존은 자신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


“일단 그건 그거고. 나는 오늘 여길 떠날 것이다.”


한껏 들떠있던 녀석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가기 전에 하룻밤 신세를 졌으니 몇 가지 기술을 전수해주마.”


“기술이요?”


녀석이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짓는다.


“간단한 무공이다.”


“무공이요? 아 그 무림인들이...”


“그래, 그게 무공이야.”


녀석이 실망한 표정을 짓는다.


“왜 싫으냐?”


“싫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아할 수도 없을 것 같아요. 장평 아저씨가 그러는데 무림인들은 사람들을 괴롭히길 좋아한대요. 또 아저씨가 힘들게 사냥한 호랑이 가죽을 그냥 뺏어갔다지 뭐에요? 진짜 나쁜 사람들이라고 아저씨가 노발대발하셨는데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 분했어요.”


“무림인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좋은 사람도 있다.”


녀석이 까만 눈을 동그랗게 뜬다.


“할아버지는 무림인이에요?”


천존은 그렇다고 답하려다 왠지 말하기가 꺼려졌다. 그 이유를 잠시 생각했는데 왜 그랬는지는 잘 몰랐다.


“무림인은 아니지만, 무공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천존은 말을 이으며 손을 내저었다. 붉은 연기가 피어올라 마당 한편에 말려둔 나물을 휘감는다.


‘쉬익!’


순간, 나물들이 재로 화해 흩어져 버린다. 소년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가루로 변한 나물과 이쪽을 번갈아 응시했다.


“아수라혈교의 교주인 아수라의 독문 절기니라.”


아수라혈마공(阿修羅血魔功).


지금 이 장면을 무림인들이 목도했더라면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했을 것이다. 무림인들에게 절대적인 공포로 군림했던 아수라(阿修羅). 그 핏빛 연기 앞에 수많은 사람이 재로 화한 것을 안다면 소년은 겁에 질리리라.


“어휴, 그 나물은 제가 온종일 산을 헤매서 겨우 캐온 거예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게냐?”


천존은 와락 인상을 찡그렸다.


“내가 가르칠 무공은 한 가지 보법과 검법이다. 이걸 익히면...”


말을 잇던 천존은 흠칫 몸을 떨었다. 소년의 시선이 계속 나물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어허! 감히 딴청을 피우는 것이냐?”


“딴청을 피운 게 아니라 힘들게 캐온 나물이 못 쓰게 되어 아깝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요, 그거 꼭 배워야 해요?”


“······.”


유난히 정 없단 소리를 들었던 천존은 녀석의 인생이 불쌍해 몇 가지 무공을 손수 가르치려 했다. 그런데 꼭 배워야 하느냐고 묻는다. 천존은 두통이 몰려오는 것 같아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무공을 익히는 것, 이는 궁극의 목표라고 늘 여겨왔다. 무(武)의 이치란, 끊임없이 배워 익혀도 끝이 없는 법. 마치 천하제일인을 꺾었음에도 천검에게 패배한 일과 같다. 무림에는 언제나 새로운 별이 탄생하고 수많은 강자가 나타난다. 그랬기에, 엄선한 제자들을 모아 천존궁(天尊宮)을 만든 것이다.



처음에는 막연히 무공을 연구하고 익히는 모임이었다. 작금에 이르러서는 무림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세력이 되어 버렸고 말이다. 물론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세인들은 천존궁에 입궁해 무공을 익히는 것을 꿈에 그릴 만큼 영광으로 생각했는데.


“그러니까 왜 배워야 하는데요? 전 그런 거 귀찮고 배우기 싫어요.”


‘크으윽!’


갑자기 주화입마가 오는 것 같아 천존은 가슴을 움켜잡았다. 그렇지만,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섭렵한 자신 아닌가. 이런 핍박과 모욕은 정말 오랜만이었지만, 이대로 물러난다면 고금제일인이 아니다.


“네 놈이 왜 무공을 배워야 하는지 알려주마. 내가 가르칠 보법은 하룻밤에 수백 리 길을 주파할 수 있고, 검법은 사나운 짐승을 때려잡을 수 있는데...”


“에이, 안 그래도 돼요. 전 그렇지 않아도 산을 아주 잘 타요. 아랫마을 아저씨들한테도 칭찬을 많이 들었는걸요? 두윤이는 타고난 약초꾼이라고요.”


천존은 발작을 일으키려다 슬쩍 미간을 좁혔다. 그러고 보니 이제까지 녀석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


“네 이름이 두윤이냐?”


소년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네. 전 장두윤이라고 해요. 할아버지는요?”


“나는 그냥 광 할아버지라 부르면 된다.”


그렇게 소년과의 인연은 계속되었다.




밥상이 치워지고, 천존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당 가운데 섰다. 발을 디딜 때마다 흙으로 된 땅바닥은 물론이고 단단한 암석에까지 깊은 발자국이 파인다.


“움직임을 보았느냐?”


“뭘요?”


평상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녀석이다.


“백여 년 전, 무영신투의 무영보법이다. 일 할만 익혀도 산을 타는 데 무리가 없을 게야.”


무영신투(無影神鬪), 그는 가히 바람이라고 표현해도 될 만큼 빠른 자였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십 리를 달린다 하여 십리일보(十里一步)란 별호가 붙었다. 경공에서 만큼은 신의 경지에 이른 자, 무영보법을 대성하면 바람조차 그의 옷깃 하나 스치지 못할 것이다.


“따라 해 보아라.”


“제가 언제 배운다고 했어요? 전 배우기 싫어요.”


“아니 왜?”


“아까도 말씀드렸잖아요. 전 산을 잘 탄다고 말이에요. 그리고요, 이제 나물을 캐러 가야 해요. 할아버지께서 아까운 나물을 재로 만들었잖아요.”


“후우...”


천존은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으나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했다.


“이 보법을 익히면 나물을 아주 많이 캘 수 있다. 게다가 절벽 위 약초도 손쉽게 캘 수 있지. 그럼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아하, 그렇군요. 좋은 생각이에요.”


그제야 녀석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흠, 그럼 뭐 배워보죠.”


소년이 정말 큰 인심 쓴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천존은 울음을 머금고 말았다.



바닥에 찍힌 발자국을 따라 뒤뚱뒤뚱 걷던 녀석, 곧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린다.


“아니 또 왜!?”


“이게 뭐예요? 아랫마을 장평 아저씨가 키우는 돼지도 이렇게 뒤뚱거리지 않을 거예요. 약초를 캘 때 쓸모없을 것 같으니 안 배울래요. 뭐 이런 불편한 걸음이 있어요?”


천존은 평상에 앉아 혀를 차 버렸다. 지하에 있는 무영신투가 지금 이 장면을 봤다면 아마 심장마비를 일으켰을 게다.


“흠흠, 그럼 보법은 앞으로 착실히 익히도록 해라. 이제 검법을 알려주겠다.”


천존은 마당 중앙에 섰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어떤 검법을 떠올렸다. 자신에게 쓸개를 씹는 수모를 안긴 검법. 짐승 때려잡는 데 쓴다니 기분이 매우 상쾌하다.


“하늘과 땅 사이, 가장 강한 힘을 꼽으라면 그 첫째가 극양(極陽)이니.”


활짝 펴진 손바닥에서 태양처럼 밝은 구체가 떠오른다. 구체는 빠르게 회전하며 어떤 모양을 만들어갔다. 그 모습은 다름 아닌 검이었으니. 이는 무형검강(無形劍剛)의 경지, 바로 천검의 절대삼검 중 마지막 삼 식이다.


“이를 하늘의 빛, 천광이라 한다!”


‘파치지직! 콰콰쾅!’


손에서 번쩍이던 무형검강이 그대로 주변 나무를 가격한다. 강렬한 폭발음과 함께 나무는 그 자리에서 박살이 나버리고, 마치 불에 탄 형상으로 재가 되어 흩어진다.


“다 외웠느냐?”


천존은 짐짓 한숨을 내쉬며 소년을 돌아봤다.


“뭘요? 이걸 어떻게 외워요. 너무 어렵잖아요. 차라리 눈을 감고 절벽을 오르는 편이 더 쉽겠네요.”


“끙, 그렇다면 조금 쉬운 것으로 알려 주마.”


“네!”


걱정 말라는 듯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 천존은 불안한 마음으로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집어 들었다.


“두 눈 크게 뜨고 잘 보거라.”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손에 들린 나뭇가지가 허공으로 두둥실 떠오른다. 가지 끝에 붙은 입이 미세한 파랑을 일으킨다. 파랑이 심해져 떨림이 되고, 그 떨림이 최고조에 이른 순간. 나뭇가지가 바람을 가르며 허공으로 치솟는다.


“이름조차 없는 무명검법. 나는 이를 은하성검이라 부른다.”


‘슈우우웅!’


어두운 밤하늘을 뚫고 한줄기 불덩어리가 떨어져 내린다. 나뭇잎과 풀들이 미친 듯이 펄럭이고, 불덩어리가 지면으로 떨어지자 대폭발이 일어난다. 천존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불이 떨어진 곳을 응시했다. 커다란 바위가 시커멓게 그을린 채 반으로 쪼개져 버렸다.


은하성검(銀河星劍)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단지, 깨달음을 얻은 수도자가 하늘의 유성우를 보고 따라 했다는 전설만 전해진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검법은 수세대에 걸쳐 집약되고 강화되었으니, 마지막은 천존의 손에서 완성되었다. 허공을 격하여 검을 손에 쥔 것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은하성검, 이는 이기어검(以氣馭劍)의 또 다른 경지였으니.


“멋지긴 한데 이것도 너무 시끄러운데요? 짐승들이 아마 다 도망가 버릴 거예요. 그리고 너무 어려워요. 좀 더 쉬운 건 없나요?”


“······.”


초식을 펼친 천존은 녀석이 씨부렁거리는 말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은하성검을 피할 수 있는 짐승이 있을까? 지상에서 가장 빠르다는 무형신투조차 이 검법은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너무 시끄럽단다.


“그러냐? 그럼 그냥 이거나 배워라.”


천존은 귀찮다는 듯 아무렇게나 허공에 나뭇가지를 펼쳐냈다. 낭창 휘어지는 나뭇가지의 궤적에서 바람이 인다. 서슬 퍼런 바람결은 검처럼 벼려져 있으니. 얼핏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것 같지만, 서릿발처럼 차가운 기운이 사방으로 흩뿌려진다.


오래전, 역적의 딸이라는 가련한 운명을 타고난 여인이 있었으니. 황실에 반한 죄로 가족들이 몰살당하자, 여인은 홀로 살아남아 복수의 칼을 갈았다. 그러나 제대로 된 검조차 구할 수 없었기에, 여인은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검술을 연마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 했던가. 여인은 복수에는 실패했지만, 황실을 피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첫서리가 내려 나뭇잎이 붉게 시들면, 황실에서는 그녀를 떠올리며 불현듯 몸서리를 쳤다고 한다. 무림인에게는 생소한 이야기였는데 황실 사람들은 그녀에 대해 이렇게 노래했다.


‘바람결에 버드나무가 흔들리니, 꽃술이 하염없이 날리우네. 몸에 닿아 시리니 서릿발이었구나. 아아, 이내 한을 어이할꼬.’


여인의 한이 서리처럼 흩날린다는, 바로 유리예상검(柳利蘂霜劍)이었다.


“오호, 뭔가 있어 보이네요. 마음에 들어요. 이 검법이라면 아마 순식간에 호랑이를 물리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냐?”


천존은 허탈한 심정으로 나뭇가지를 소년에게 건네주었다. 물론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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