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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님의 서재입니다.

두윤이의 무림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8.05.20 22:25
최근연재일 :
2019.01.11 21:06
연재수 :
144 회
조회수 :
362,860
추천수 :
3,806
글자수 :
842,547

작성
18.12.0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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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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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
11쪽

목격자는 싫어요 -118

DUMMY

이 일을 계기로 대회 첫 번째 규칙이 수정되게 된다. 상처의 범위를 어디까지 정할지를 두고 공방이 벌어졌는데, 내린 결론은 피였다. 세부적으로 결정된 사안은 옷에 피가 묻거나, 연무장 바닥에 핏물이 떨어지면 패배였다.


그러자 일부 참가자들이 의문을 제기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상(內傷), 그러니까 뼈가 부러지거나 타박상은 어찌 되냐는 물음이다.


심판들은 고민에 빠졌다. 생각하면 할수록 복잡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아까 다리가 부러졌다는 꼬마 녀석이 지금은 멀쩡하게 뛰놀고 있으니까.




기린이가 헐레벌떡 뛰어온다.


“형, 오늘은 더 이상 대련이 없데요. 규칙을 새로 정한다고 하던데요.”


두윤이는 팔짱을 끼며 코웃음을 쳤다.


“그러게 좀 잘 정했어야지.”


“맞아. 괜히 헷갈리게 하고 있어.”


막내 녀석도 꽁알대자, 옥기린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대련이 무승부로 끝났잖아요.”


“그건 그래!”


일행이 지나가자 삼삼오오 모여 있던 사람들이 눈을 치뜬다.


“아니 저분은! 혹시 천무님 아니십니까?”


두윤이가 환하게 웃는다.


“맞아요. 그렇지만 제 이름은 두윤이에요. 천무라고 불리기 싫다고요. 바싹 마른 나물처럼 무미건조한 느낌이잖아요.”


“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앉았어. 쟤가 천무면 파리는 새다!”


“······.”


말을 꺼낸 사람이 머리를 긁적인다.


“하하, 그런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술이나 마시러 가자고.”


쑥덕대며 사라지는 사람들. 두윤이가 울상을 짓는다.


“우이씨 진짠데...”


“응? 쟤는 아까 걔잖아.”


막내 녀석이 어디론가 쪼르르 달려간다. 전각 뒤편의 후원, 흑의 소년이 멍하니 앉아 있다. 아까 대련 순서를 가지고 싸웠던 녀석인데.


“너 여기서 뭐하고 있어. 밥 먹으러 안가?”


소년이 힘없이 고개를 든다. 두 눈은 퉁퉁 부어있고 볼에는 아직도 눈물 자국이 짙다.


“다, 당신은!”


일행을 본 소년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난다. 한쪽 손이 품 안으로 들어가고.


“혼자 온 거야? 왜 여기서 울고 있어. 엄마 잃어버렸니?”


두윤이는 쪼그리고 앉아 소년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아니면 배고파? 같이 밥 먹으러 갈까?”


“······.”


소년은 손을 빼내려다 멈칫했다. 환한 미소가 햇살처럼 반짝이고 있다.


“크윽...”


꽉 다물린 입술이 깨져 핏물이 흘러내린다. 긴 속눈썹을 타고 눈물이 그렁그렁 떨어져 내리고. 결국, 소년은 무너지듯 쓰러져 버렸다.


“못하겠어요. 더는 못하겠다고요.”


엉엉 우는 소년을 보며, 일행은 크게 당황했는데.


“얘가 갑자기 왜 이래?”


“몰라요. 아까 그 일 때문에 그런가? 은근 소심한 녀석이네.”


후원에서 불어오는 꽃향기가 소년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무관에서 누구도 함부로 발을 들일 수 없는 곳. 천마 궁독의 처소다.


마당 안뜰, 한 소년이 어깨를 늘어뜨린 채 탁자에 앉아 있다. 임사군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마셔라. 마음이 안정될 거다.”


미동도 하지 않는 소년. 임사군은 탁자 위에 놓인 단검을 집어 들었다. 날카롭게 벼린 칼날에 시퍼런 액체가 묻어있다.


“이 칼은 내가 맡아 두겠다. 위험한 물건이니까.”


소년의 고개가 살짝 숙여진다.


“넌 올바른 선택을 한 거야. 그 말을 따랐다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을 테지.”


“제발 우리 가족을 살려주세요. 이렇게 빌게요.”


소년이 탁자에서 벌떡 일어나 무릎을 꿇고 빈다. 임사군은 눈살을 찌푸렸다.


“일단 들어가 좀 쉬어라. 네가 여기 머물고 있는 이상, 그들이 함부로 가족을 해할 수는 없을 게다.”


천마군림대의 부축을 받으며 소년이 물러가자, 임사군은 단검을 쏘아봤다.


“일이 어렵게 됐군. 한데 왜 만독림을 이용했을까?”




동백운은 어두운 실내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가족들 생각에 울고 또 울었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차라리, 이대로 숨이 멈췄으면 좋겠어.’


엎드린 탁자 위로 눈물이 똑똑 떨어진다.


“야, 너 거기서 뭐해?”


작은 속삭임, 백운이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언제 옆에 서 있었던가. 천무가 입가에 손을 댄 채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당신은!”


“조용히 해. 떠들면 걸린단 말이야.”


“네?”


“걱정 마. 나 다 들었어. 도와주려고 온 거야.”


대체 뭘 도와준다는 건지.


“일단 여기서 나가자. 따라와.”


손을 잡고 이끄는 천무, 따뜻한 온기에 얼마나 안도감이 드는지 모르겠다.




얼마 후, 일행은 악양 시내를 걷고 있었다. 도와준다는 말에 얼레벌레 따라온 백운이는 멍하니 천무의 뒤를 따라갔다.


“야, 우리 뭐 좀 먹고 갈래. 배고프지 않아?”


천무님의 말씀에 꼬마가 고개를 끄덕이지만, 신경질적인 인상의 소년은 버럭 화를 낸다.


“형! 지금 한가하게 밥이나 먹을 때에요. 얼른 백운이네 가족을 구해야 하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아직 시간이 이른걸.”


완전히 어두워지려면 한참 남았다. 그러니 좀 여유가 있는 것도 같고.


“우와! 양고기 꼬치다. 얼른 먹고 싶어!”


구수한 고기 냄새에 절로 입안에 군침이 돌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간다. 백운이는 멍하니 길 위에 서 있었다.



배 터지게 양 꼬치를 먹고 나니 자연스럽게 나른해지는 몸뚱이. 일행은 골목길 어귀에 앉아 배를 두드리고 있었다.


“근데, 두윤이 형은 어디 갔어요?”


막내의 물음에 기린이가 슬쩍 옆 건물을 가리킨다.


“배 아프다고 뒷간에 갔어.”


“혼자 다 먹으니까 그렇지, 쌤통이다!”


“야 그래도 형이 돈 냈잖아.”


“하핫, 그런가?”


백운이는 푹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우, 뱃속이 이상해...”


두윤이가 바지를 주섬주섬하며 다가온다.


“그런데 백운아, 가족들은 지금 어디 있어?”


그것도 모르고 구할 생각을 했던가. 백운이는 빽하고 소리를 지르려다 참았다.


“어머니와 형은 흑아루에 있을 거예요. 저도 거기에 갇혀 있었어요.”


“거기가 어디야?”


옥기린이 대신 답한다.


“외곽에 큰 장원이 있는데요. 거기가 흑아루라고 들었어요.”


두윤이가 벌떡 일어난다.


“좋아, 밤에 출동한다!”


막내가 묻는다.


“그럼 그때까지 뭐해요?”


“글쎄? 뭐하지. 우리 시내 구경 갈래?”


옥기린이 와락 소리를 지르고.


“준비할 게 얼마나 많은데 그런 말씀을 하세요!”


“응? 난 벌써 다 준비했어. 목검도 챙겼고...”


쪼그려 앉아서 발을 꼼지락거리던 막내가 중얼댄다.


“그런데 우리 이러다 사부님한테 걸리면 어떻게 해요?”


“윽! 그럼 곤란한데. 난 은 사부님을 실망시키기 싫어.”


기린이가 뭐가 문제냐는 투로 답한다.


“안 걸리면 돼요. 두건을 쓰면 누가 알아보겠어요?”


“그런가?”


막내가 히죽 웃는다.


“기린이 형 말이 맞아요. 목격자만 없으면 아무도 모를 거예요.”



그래서 일행은 중간에 옷가게에 들렸다. 장원에 몰래 잠입해야 하는데 흰옷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너냐?”


옷가게 여주인이 와락 인상을 찡그린다.


“저기, 오늘은 야행복을 사러 왔어요.”


“야행복?”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옷을 보여주는 여주인, 이쯤 되면 거의 본능적인 반응이다.


“이 옷은 어때?”


한눈에 봐도 고급진 야행복이 척 놓인다. 가슴 쪽에는 예쁜 학이 수놓아져 있는데.


“요즘 이게 유행이야. 어때 멋지지?”


두윤이가 좋아라 웃는다.


“와, 정말 멋져요. 이왕이면 유행을 따르는 게 좋겠죠?”


팔짱을 끼고 있던 옥기린이 버럭 화를 낸다.


“그냥 검은 옷이면 된다고요. 무슨 유행을 찾아요?”


두윤이가 어깨를 움찔한다. 한쪽에서는 막내가 야행복을 걸쳐보다가 궁시렁댄다.


“너무 커! 게다가 앞이 안 보인다고!”


머리에 뒤집어쓰는 두건이 얼마나 큰지 어깨까지 내려온다.


“그건 손을 보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 내일까지 수선을 해 놓을게.”


“지금 당장 필요하다고요. 좀 더 작은 건 없어요?”


“후우...”


결국, 여주인은 아무 옷이나 들고 나왔다.


“이 옷으로는 안 되겠니? 그냥 검은색이면 되잖아.”


“그런가?”


두윤이가 조곤조곤 옷을 걸친다. 몸에 딱 맞는다. 그렇게 모두 네 벌의 야행복이 갖춰지고. 여주인은 번개 같은 솜씨로 대충 두건을 만들어 주었다.


“이러면 멋이 없는데...”


쫑알대는 두윤이를 보며 여주인이 와락 인상을 긁는다.


“대충 뒤집어써! 누가 본다고.”


“그래도요.”


“나 가게 문 닫고 집에 가야 해. 빨리 고르란 말이야!”


“죄송해요. 그럼 이 옷으로 할게요.”


여주인이 손을 내민다. 옷 수선비랑 두건 만든 값까지 합쳐 제법 비싸다. 그런데 아무도 수중에 돈이 없었으니. 두윤이는 옷값을 계산하며 울상을 지었다.


“오늘 아주 탈탈 털리는구나. 아, 피 같은 내 돈...”


야행복을 입던 백운이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저놈이 진정으로 도와줄 생각이 있는지 불안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설 수 없었는데.




집무실 의자에 앉아있던 임사군은 멍하니 상대를 올려다봤다. 천마군림대 대원이 숨을 헐떡인 채 서 있다.


“다시 말해보게. 지금 어디 있다고?”


“저 그게 그러니까, 기루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기루? 가만있어봐. 거기가 뭐하는...”


사고가 정지될 만큼의 충격. 임사군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놈들이 거길 왜 갔어?!”


그때, 누군가 집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천기수사님, 그 아이도 사라졌습니다.”


“······.”


임사군은 관자놀이를 매만지며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조용히 시립해 있던 기찰영주가 한마디 한다.


“구천마련의 무사들은 흑아루에 머물고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기루 뒤편 장원이지요.”


“현재 사황의 위치는?”


“아직 무림맹에 머물고 있습니다. 회의가 방금 끝났다는 소식입니다.”


“천마군림대는 지금 당장 흑아루로 가게. 마차가 필요할 수도 있으니 준비토록 하고.”


대원들이 바람처럼 사라진다.


“자네는 무림맹 군사에게 이 일을 전하도록.”


“알겠습니다.”


“기찰영주! 비밀 유지에 만전을 기하게. 자칫 전면전이 일어날 수도 있어.”


“명심하겠습니다.”


기찰영주가 집무실을 빠져나가자 임사군은 힘없이 의자에 주저앉았다.


‘또 사고를 치다니. 도대체가 그냥 넘어가지 않는 날이 없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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