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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님의 서재입니다.

두윤이의 무림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8.05.20 22:25
최근연재일 :
2019.01.11 21:06
연재수 :
144 회
조회수 :
361,723
추천수 :
3,806
글자수 :
842,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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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07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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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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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글자
11쪽

행복해요 -140

DUMMY

길고 길었던 무림대회가 끝났다. 결론적으로 우승자는 존재하지 않았고 말이다. 마지막까지 연무장 위에 누가 서 있었는지 불분명했기 때문인데, 비가 온 게 컸다.


엄밀히 따지면, 최종우승자는 사황이 되어야 했다. 독고진천이 스스로 물러났으며 심판 역시 그렇게 판단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천기수사 임사군은 강한 의문을 표했다. 당시 해가 서산(西山)을 확실히 넘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비구름 때문에 해가 보이지 않았고 정확한 시각도 불분명하다는 반론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와 여러 논란이 겹치면서 우승자를 결정하지 못했다. 고금제일인의 권좌 역시 물 건너 가버렸고 말이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으니.



사람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비록 우승은 거머쥐지 못했으나 진정한 고금제일인의 탄생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도했음을 말이다.


무(武)가 생겨난 이래, 그 누구도 오르지 못한 곳.


우리가 본적 없는, 아니 상상조차 못 했던, 그래서 이름조차 붙일 수 없었던 경지.


세인들은 그와 같은 경지를 이렇게 명명했다.


‘극초월고수(極超越高手).’


무림 역사상 단 한 명의 이름만이 공식적으로 기록되었을 뿐이다.




그날 저녁.


은 사부가 일행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못다 한 생일잔치를 조촐하게 치른단다. 두윤이는 얼른 생일 선물을 사온다며 시내에 나가려 했지만, 아무도 보내주려 하지 않았다.


또 사고를 칠 게 뻔하니까. 그 일로 잠시 실랑이가 벌어졌는데, 녀석이 의외로 쉽게 포기해 버린다. 뭔가 준비한 눈치였는데.



숙소 문을 열던 두윤이와 주상이는 휘둥그레 눈을 치떴다. 금방 접시를 내려놓던 은경이가 활짝 웃는다.


“어서 와, 이번에는 늦지 않았네.”


주상이는 헛기침을 하고서는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식탁에 온갖 산해진미가 풍성하게 차려져 있다. 가운데에는 촛불이 놓여 있는데, 왠지 뿌듯하고 포근한 감정이 밀려온다.


“우와! 멋지잖아.”


두윤이가 탄성을 내지르며 식탁으로 달려간다. 먼저 하나 집어먹으려는데 은경이가 손등을 ‘탁’ 친다.


“안돼요, 다 같이 먹어야지. 그런데 손은 씻었어요?”


“씻었어!”


“뻥까지 말고 얼른 가서 씻고 와요.”


“칫, 어떻게 알았지?”


꽁알대며 밖으로 나가는 녀석, 금세 되돌아온다. 주상이는 옆자리 의자를 빼주었다. 두윤이가 훌쩍 엉덩이를 걸치더니 젓가락을 집어 든다.


“이제 먹는다! 잘 먹겠습니다.”


식기를 내려놓던 은경이가 잔소리를 해댄다.


“으이그, 먼저 먹지 말라니까! 조그만 참아 봐요. 오늘의 주인공은 주상이잖아요.”


“그렇구나. 친구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


참아낸 보람이 있던가. 임 사부가 노릇노릇 구워진 닭요리를 내온다. 고소하고 달콤한 향에 취해 까무러칠 정도다.


“주상아, 나 더 이상은 못 참겠어!”


“그래, 얼른 먹자. 배고프지?”


멋진 생일 파티였다. 허겁지겁 닭다리를 뜯어먹는 두윤이 옆에 소령이가 딱 붙어있다. 조곤조곤 닭살을 발라내어 녀석 접시 위에 살며시 올려놓는다.


“어머, 두윤이가 배고팠나 보구나. 잘 먹네?”


은 사부가 환히 웃으며 요리 하나를 내온다.


“자, 이것도 먹어보렴. 내가 직접 요리한 거야.”


고기와 야채를 잘게 썰어서 볶은 요리, 물이 흥건하게 떨어진다. 불 세기를 잘못 맞추면 흔히 일어나는 참사다.


“급하게 준비하느라 맛이 없을지도 몰라.”


그래, 딱 봐도 급하게 요리한 것 같다. 그러니 맛이 있을 턱이 있나. 어정쩡하게 젓가락질을 하던 두윤이가 휘둥그레 눈을 치뜬다.


“정말 맛있어요!”


“고마워. 그런데 진짜 맛있는 거지?”


“네! 예전 엄마가 해준 요리 같아요. 정성이 듬뿍 담겨 있어서 마치 집에 온 듯 푸근함마저 느껴지는걸요?”


은 사부가 배시시 웃는다.


“어쩜, 얘가 말을 너무 예쁘게 하네.”


맞은편에 앉아 젓가락을 놀리던 임 사부가 콧방귀를 뀐다. 찌릿하고 쳐다보는 은 사부.


“왜요, 뭐 문제 있어요?”


“아, 아닙니다. 향이 참 좋군요. 하하...”


억지로 젓가락을 놀리는 임 사부를 보며 은경이는 웃음을 참느라 푹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요. 이 닭고기도 사부님께서 직접 하셨어요?”


진짜 맛있게 먹은 닭요리다. 은 사부가 살짝 고개를 모로 떨어뜨린다.


“아니, 그건 임 사부님께서 하신 거야. 맛은 어떠니?”


“최악이에요!”


“······.”


닭이 든 접시를 식탁 한가운데로 밀어버리는 두윤이.


“팍팍하고 질겨요. 정말 마음이 울적해지는 맛이네요. 이런 요리를 매일 먹어야 한다면 평생 감옥에 갇힌 느낌일 거예요.”


“그럼 못써요. 아무리 내가 한 요리가 맛있어도 실례잖니. 임 사부님께서 그 요리를 하느라 얼마나 애쓰셨는데.”


“좋아요. 그럼 대신 먹을 만하다는 표현을 쓰겠어요. 물론 맛있다고 오해하시면 곤란해요. 식당 밥보다 조금 낫다고 여겨주세요.”


임 사부가 울상을 지은 채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본격적으로 선물교환이 이루어진다. 은경이는 품에서 책 한 권을 꺼내놓았다.


“남궁주상. 이건 내가 주는 선물이야.”


책을 받아든 주상이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이거 귀한 책인데, 내가 받아도 돼?”


“걱정 붙들어 매셔. 아버지께 허락 맡고 주는 거니까, 마음껏 고마워만 해주면 돼.”


푹 고개를 숙이는 주상이. 정말 책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하긴, 제갈세가에서도 중요시하는 책이니 그럴 만도 했는데. 두윤이도 활짝 웃으며 무언가를 꺼내놓는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고서다.


“주상아, 이거 너 줄게. 생일 선물이야.”


“응? 이건 뭐야.”


모두가 흥미로운 눈길로 바라보자, 두윤이는 자랑스럽게 외쳤다.


“아까 보여준 거 있잖아. 그거 다 여기서 배운 거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제갈은경과 임사군은 헛바람을 들이켰다. 아까 뭘 보여줬던가? 이제까지 그 누구도 올라선 적 없는 경지, 바로 극초월의 단계. 그걸 이 책에서 배웠단다.


주상이는 환하게 미소 지을 뿐이다.


“고마워 두윤아, 그런데 이거 나한테 줘도 돼? 소중한 책이잖아.”


“별로 안 소중해. 난 이미 배웠...”


두윤이가 화들짝 놀라며 양손을 내젓는다.


“아니야. 그런 뜻이 아니었어. 나한테는 목숨처럼 소중한 책이라고!”


새빨갛게 얼굴을 붉히는 녀석을 보며 사람들은 즐겁게 웃었다.


“그런데 무슨 책이에요?”


은경이가 안절부절못하며 책을 바라본다. 세상에 이런 책이 또 있을까?


무림에는 전설처럼 전해지는 절세의 무공비급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그 어떤 무공도 극초월의 경지는 아니다. 그런 경지에 오른 자가 없기에 책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 이 책은 대체 뭐란 말인가? 이것이 진정 극초월의 무공비급이라면 세상은 발칵 뒤집힐 것이다.


주상이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책장을 넘겨본다. 바로 옆에 은경이가 딱 달라붙고. 한동안 책을 읽던 은경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아니 뭐 이런······.”


“왜, 재미없어? 난 재밌게 읽었는데.”


주상이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뭐에요. 이 책에서 무공을 배웠다고요?”


은경이가 잔뜩 흥분해 하며 막말을 해댄다.


“이건 그냥 동화잖아! 내용은 또 뭐가 이따위야. 무슨 말이 되는 소리를 써놔야지!”


“내용이 뭐가 어때서?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잖아.”


“으이그, 내가 못 살아! 선녀님이 나올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은경이가 머리를 싸쥐며 물러난다.


“주상아, 너한테만 가르쳐줄게. 빨리 손 내밀어봐.”


두윤이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허공으로 손짓을 한다.


“자, 이렇게 바람을 쓰다듬는 거야. 그리고 진심으로 친구가 되어주길 부탁하면 돼. 참 쉽지?”


주상이는 무심코 손을 올리다 우뚝 멈춰 세웠다. 맞은편에 앉은 임 사부와 은 사부가 재밌는 구경거리라도 난 듯 쳐다보고 있다.


“두윤아, 나중에 하면 안 돼? 지금은 좀······.”


“아이참! 빨리 따라 해보라니까.”


은경이가 냉큼 따라 한다. 연신 허공을 매만지다가 와락 주먹을 움켜쥐고 마는데.


“뭐야 이게! 안 되잖아. 좀 제대로 가르쳐 달란 말이에요.”


“진심으로 부탁했어야지. 바람이 거부하는 걸 나보고 어쩌라고?”


“아니 뭐에요?!”


푸근했던 생일잔치가 난장판이 되어 버린다.




약 냄새가 폴폴 풍기는 의원. 하얀 침대에 독고진천이 누워있다. 몸에서 침을 뽑아내던 의원이 깊은 한숨을 내쉰다.


“다행히 독은 제거되었으나 무공을 되찾을지는 미지숩니다.”


애초에 무공은 기대하지 않았다. 가공할 독성이 혈맥은 물론 장기까지 오염시켰기 때문이다. 두윤이가 독을 제거하지 않았다면, 그마저도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침대 가까이 다가간 사마광이 손을 들어 천이의 이마를 쓰다듬는다.


“그래, 다행이구나. 이마저도 정말 다행이야.”


궁독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토록 보고 싶던 친구를 만났지만, 끝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안대를 비집고 나온 눈의 상처가 가슴을 후벼 판다.


의원이 남은 한쪽 눈을 살핀다. 의식은 있으나 보거나 대화할 수도 없다. 독기가 눈과 입의 혈맥까지 굳혀 버린 것이다. 치료하면 나을까?



궁독은 힘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공으로 혈맥을 뚫을 수도 있지만, 그러다간 녀석의 몸이 버텨내지 못할 게다.


“다시 걸을 수는 있겠는가?”


사마광의 걱정스러운 질문에 의원은 눈살을 찌푸렸다.


“침과 뜸으로 굳은 혈맥을 풀어준 후, 재활 치료를 병행한다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의원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지금은 극도의 안정이 필요합니다. 대화를 자제하고 환자를 쉬게 해주십시오.”


의원이 물러가고, 궁독은 친구의 얼굴을 응시했다. 세상 모든 걱정에서 해방된 듯 편안한 표정이다.


“옛날 생각이 나는구나. 그래, 그때가 좋았지.”


사마광이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너희들을 언제나 아들처럼 생각했다.”


“저 역시...”


궁독은 힘겹게 마른 침을 삼켰다.


“당신을 아버지로 여겼습니다.”


“고맙구나. 가족이 있으니 이렇게 든든해.”


난생처음 그에게서 따뜻한 말을 들었다. 마음 깊이 자리한 딱딱한 무언가가 사르르 녹아내리는 느낌이다.


“이제 나도 쉬고 싶구나. 아들과 함께 그곳으로 돌아가야겠어.”


“천이도 분명 좋다 할 겁니다.”


“그렇겠지.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니까.”


궁독은 고개를 들어 창밖을 응시했다. 어느새 겨울이 코앞이지만, 따사로운 봄 햇살을 만끽하듯 가슴이 설레어온다.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며 온화했던 감성이 와장창 깨져 나간다.


“아이참! 걱정하지 말래도.”


“안 돼! 지금은 환자가 안정을 취해야 해. 소란을 피우면 큰일 난다고!”


“괜찮다니까. 인사만 하고 바로 나올 거야.”


문 앞에 사고뭉치 녀석들이 서 있다. 궁독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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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선물을 사러가요 -124 18.12.12 1,441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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