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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님의 서재입니다.

두윤이의 무림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8.05.20 22:25
최근연재일 :
2019.01.11 21:06
연재수 :
144 회
조회수 :
362,869
추천수 :
3,806
글자수 :
842,547

작성
18.12.14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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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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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글자
12쪽

선물을 사러가요 -125

DUMMY

마차가 급히 멈춰 선다. 마부석에 앉아 있던 셋째 남궁창은 놀람에 입을 더듬었다.


“형님이 여길 어떻게...”


관도 한가운데 둘째 형 남궁진이 우두커니 서 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마차 쪽으로 다가와 벌컥 문을 열었다. 미혼약을 먹은 주상이가 기절해있고, 맞은편에는 남궁현웅이 푹 고개를 숙이고 있다.


“왜 그러고 계십니까?”


남궁현웅은 질끈 이를 악물며 감았던 눈을 떴다.


“말리러 온 거라면 포기해라.”


“전 주상이를 보호하기 위해 온 겁니다.”


“나 역시 주상이는 보호할 것이다.”


‘쾅!’


마차 문이 거세게 흔들린다. 남궁진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거짓말! 형님은 주상이를 놈들에게 넘길 작정입니다. 제 말 틀렸습니까?”


“······.”


“왜 이러십니까. 대체 왜 이렇게 변한 겁니까! 그 알량한 가주 자리 때문입니까?”


“닥쳐! 닥치란 말이다.”


검을 움켜쥐고 목 쪽을 겨누는 남궁현웅. 날카로운 검날이 세차게 흔들린다.


“주상이는 내가 보호한다고 하잖느냐. 그거로 충분해.”


남궁진은 얼굴 가득 비웃음을 머금었다.


“그럼 저는 어쩌실 겁니까? 제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너 이 녀석...”


“베십시오. 저를 베야 형님께서는 가주가 될 수 있습니다.”


남궁현웅은 검을 겨눈 채로 맞은편에 쓰러진 주상이의 얼굴을 응시했다.


“난 가주가 되고 싶다. 그리하여 남궁세가의 부흥을 이끌고 싶단 말이다.”


“예. 그러시겠지요. 그런 분께서 단 한 번이라도 주상이를 형제로 대한 적 있습니까?”


“그건...”


“그런 형님께 주상이는 어땠습니까. 불만조차 내비친 적 없잖습니까. 가주가 되시겠다고요?”


남궁진은 분노에 찬 시선으로 쏘아봤다.


“이런 짓을 해서라도 가주가 되겠다는 겁니까? 남궁세가의 부흥을 위해서라면 주상이의 희생쯤은 대수롭지 않다는 겁니까!”


“그만해라. 나 역시 주상이를 누구보다도...”


남궁현웅은 뒷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어릴 적부터 주상이는 홀로 지냈다. 친척 아이들과도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다. 상냥하고 심성이 고운 마음씨 때문만은 아니다. 녀석에게는 무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경쟁심이나 질투심 자체가 없었으니까.


무림은 잔혹한 곳이다. 약자는 강자에게 잡아먹혀 도태된다. 어린아이도 아는 논리다. 그렇기에 녀석은 언제나 혼자였다.



어느 날,


혼자 흙장난을 하고 있던 어린아이를 다그쳤다. 무공 수련을 등한시하는 녀석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해주었다.

그 일로 아이는 온종일 울음을 터트리며 괴로워했다. 그렇지만 울음을 그친 아이는 엄하디엄한 형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형을 원망하지 않아요. 다 제가 잘되라고 걱정하셔서 그런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든든해요. 제 곁에는 언제나 형님이 계실 테니까요.’



‘쩔그렁.’


쥐고 있던 검이 마차 바닥을 나뒹군다. 남궁현웅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내,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


“내가 미쳤구나. 욕심에 눈이 어두워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어.”


“아니 돌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은 산책을 조금 멀리 나온 것뿐이니까요.”


남궁현웅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남궁진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검을 내려놓는다.


“세가에는 아직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게 가족에 대한 마지막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아...”


“그거 아십니까?”


남궁진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팥 찐빵을 집어 들었다.


“주상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야채 빵입니다.”


남궁현웅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마차를 돌리십시오. 무관에서 곧 생일잔치가 열릴 겁니다.”


“그래, 그래야겠다. 어서 선물을 사야겠어. 처음 주는 선물이니까 대충 고르면 안 되지.”


‘퍼억!’


“크악!”


강렬한 굉음과 함께 마차가 크게 흔들린다. 남궁현웅은 급히 검을 움켜쥐고 마차 밖으로 뛰쳐나갔다. 길바닥 옆에 처박힌 셋째가 입에서 피를 토하고 있다.


남궁현웅은 마차를 에워싼 복면인들을 보며 신음성을 삼켰다. 맨 앞에 선 복면인이 키득 웃는다.


“눈물겨운 형제애로군. 이거 외아들은 서러워서 살겠나.”


“네놈은 조무원이구나!”


“용케도 알아보셨군.”


복면을 벗어 던진 조무원이 검을 치켜든다. 검날 전체에서 붉은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나자, 그의 낯빛이 흥분과 살기로 채워진다. 한눈에 봐도 예사 검이 아니었는데.


“아, 이 검 말인가? 이대천존께서 직접 내리신 검이지. 꼴사납게 징징대는 네놈들을 베어버리라고 말이야.”


“이놈...”


남궁현웅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마차를 보호했다. 둘째 남궁진이 주상이 옆을 지킨다.


“조무원! 넌 무당의 후기지수였다. 어찌 사황과 손을 잡는단 말이냐.”


“남 말하고 앉아 있네. 네놈도 만만치 않아. 더러운 가식과 허세에 물들더니, 결국 동생을 팔아먹었군.”


“이, 이놈이!”


분노에 몸을 떨던 남궁현웅은 더욱 세게 검을 움켜쥐었다.



순간,


옆에 있던 복면인이 엄청난 속도로 쇄도한다.


붉은 기운이 이글거리는 장력이 퍼부어지지만, 남궁현웅은 피할 수가 없었다. 바로 뒤에 주상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콰쾅!’


남궁현웅의 몸이 뒤로 날아가 마차와 부딪친다. 바퀴 한쪽이 허공으로 들릴 만큼 엄청난 충격이었다.


“크윽...”


남궁현웅은 피를 토하며 상체를 일으켰다.


“내 동생은 안 된다!”


죽립을 쓴 복면인이 다가온다. 가슴 위로 사(邪)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죽여주마.”


복면인이 검을 들어 올리니 뒤쪽에서 차가운 외침이 들려온다.


“시간이 없다. 천무가 목표임을 잊었더냐?”


몸을 움찔한 복면인이 급히 마차 위로 올라탄다. 그리고 막 주상이의 허리에 매어진 노리개를 움켜쥘 찰나, 안쪽에서 검날이 튀어나온다.


‘퍽!’


어깨를 꿰뚫린 복면인이 뒤로 고꾸라지자, 남궁현웅은 온 힘을 쥐어짜 장력을 날렸다. 미약한 기운이었지만, 말들을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하다. 흥분한 말이 앞다리를 치켜들더니 무서운 속도로 달려나간다.


“이런 젠장!”


마차가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관도를 내달리고, 조무원은 검을 치켜들었다.


“네놈이 감히!”


남궁현웅의 가슴으로 검이 떨어져 내릴 찰나, 복면인이 나선다.


“어리석은 놈.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어서 마차부터 쫓아라.”


“죄송합니다. 사황대주님.”


조무원이 흠칫 몸을 떨며 마차를 쫓는다.


“너희도 가라. 놈이 살아 있을 필요는 없다.”


“알겠습니다.”


복면인들이 몸을 날린다. 사황대주는 멀찍이 물러나 어깨를 감싸고 있는 복면인에게 다가갔다. 그가 손에 쥐고 있던 노리개를 건넨다.


“대주님! 놈들이 사라졌습니다.”


사황대주는 휙 몸을 돌려 주변을 살폈다. 남궁세가의 형제들이 보이지 않는다.


“쥐새끼 같은 놈들.”


“놈들을 추격하겠습니다.”


“그럴 시간 없다. 어차피 놈들은 제 할 일을 다 했어. 악양으로 돌아간다.”


텅 빈 관도에 세찬 바람만 불어온다.





두윤이는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시내에서 제일 큰 서점이라더니, 참 책이 많기도 많다. 책장에 꼽힌 수많은 책들, 제목을 읽는 데만도 한참이 걸린다.


“미치겠네. 바빠 죽겠는데...”


과연 어느 책을 골라야 할까. 멋진 진법책을 구해야 하는데 제목만 봐서는 도통 모르겠다. 결국, 책방 아저씨한테 도움을 요청했는데.


아저씨가 고개를 모로 꼰다.


“멋진 진법책?”


“네!”


“그 멋지다는 의미가 대체 뭐냐?”


“그게 그러니까...”


대답을 못 하고 얼버무리니 아저씨가 한숨을 내쉰다.


“일단 희귀해야 한다는 뜻이구나. 좋아, 그런 책이 한 권 있다.”


책장 구석을 뒤적거리던 아저씨가 뭔가를 가지고 온다.


“이게 여기서 제일 귀한 책이다.”


책 겉면에서 먼지가 풀풀 날린다. 한눈에 봐도 고서처럼 보였는데.


“우와, 진짜 희귀한 책 같아요. 아마 제갈세가에서도 이 책을 구하고 싶어 안달을 하겠죠?”


아저씨가 어깨를 으쓱한다.


“그 정도는 아니지.”


“아니 뭐에요? 그 정도도 부족하단 말이에요!”


“에이, 그런 책은 여기 없다. 있었으면 내가 벌써 팔아 먹었...”


“안사요!”


두윤이가 쏜살같이 도망가 버린다.


“저놈이!”





벌써 해가 진다. 시장 곳곳에 불이 켜지자 불안감은 극에 달했는데.


“저, 아줌마! 여기 책방이 어디 있어요?”


지나가던 아줌마 왈.


“누구보고 아줌마래? 콱 그냥!”


“우이씨...”


두윤이는 골목에 쪼그려 앉아 머리를 싸쥐었다. 머릿속에서 은경이가 깔깔대고 웃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온다.



‘주상아, 이거 선물로 줄게. 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책이야.’


‘은경아! 정말 고마워. 역시 넌 하나뿐인 내 절친이야.’


기뻐하던 주상이가 와락 인상을 찡그린다.


‘그런데 두윤아, 넌 뭘 준비했어. 설마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거야?’


두윤이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흥! 넌 내 친구로서 자격이 없는 것 같아. 이제 너랑 절교야!’



“으아악!”


괴성을 질러대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혼비백산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 난 망한 거야. 망했다고!”


발작을 일으키던 두윤이, 골목 한쪽을 바라보다 눈을 치떴다. 웬 할아버지가 앉아 계시는데 그 앞에 책들이 잔뜩 쌓여 있다. 두윤이는 얼른 할아버지께로 달려갔다.


“할아버지! 이 책들은 다 뭐에요?”


골목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있던 할아버지가 심드렁한 표정을 짓는다.


“뭐긴, 책이지.”


“그럼 진법책도 있나요?”


책을 휙 둘러보던 할아버지.


“없어.”


“흐윽! 역시 전 망했어요.”


울상을 지으며 나동그라지는 두윤이.


“대체 무슨 일이냐? 사연이나 들어보자.”


두윤이가 훌쩍거리며 생일 이야기를 해주자, 할아버지는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고작 그런 거로 질질 짜기나 하고...”


“고작 그런 거라니요! 할아버지는 정말 무정하세요. 제게는 생사가 달린 일이라고요.”


“안 그런 것 같은데?”


“훌쩍! 전 주상이 없이는 못살아요. 선물을 주지 않으면 절교를 선언할지도 몰라요.”


할아버지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뭐야, 그럼 나쁜 놈이잖아. 세상천지에 선물 안 줬다고 절교하자는 놈이 어디 있냐?”


“어떻게! 어떻게 주상이 보고 나쁜 놈이라고 하실 수 있어요. 주상이가 얼마나 착한데요. 그런 모진 말씀을 거리낌 없이 하시다니, 할아버지가 미워지려 해요!”


“이놈아, 선물이라는 것은 말이다. 마음을 담아야 한다.”


토라진 얼굴을 하고 있던 두윤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음이요?”


“그래.”


“마음이 담긴 선물이라니, 그게 뭘까요?”


할아버지는 인자하게 웃으셨다.


“넌 지금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선물하려는 거지?”


“네.”


“생각해봐라. 네 진심을 알리려면 어떤 선물을 해야 할까?”


두윤이는 눈을 말똥말똥 떴다.


“글쎄요.”


“나라면 말이다.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선물로 줄 것이다.”


“제게 가장 소중한 것을 선물로...”


“그래. 이 세상에 그보다 값진 선물이 또 어디 있겠느냐?”


두윤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할아버지, 고마워요! 이제 주상이에게 뭘 선물할지 알았어요.”


웬 동전을 내려놓고는 얼른 사라져 버리는 녀석. 할아버지는 동전을 내려다보다 눈을 치떴다. 책 위에 반짝반짝 은화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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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빨리 사과하세요! -128 18.12.19 1,434 1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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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생일잔치가 기대돼요 -126 18.12.15 1,497 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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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선물을 사러가요 -124 18.12.12 1,445 13 11쪽
123 선물을 사러가요 -123 18.12.10 1,500 1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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