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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님의 서재입니다.

두윤이의 무림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8.05.20 22:25
최근연재일 :
2019.01.11 21:06
연재수 :
1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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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42,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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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04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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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완전 신나! -137

DUMMY

수라도제의 상대는 일 원로였다. 십이원로를 이끄는 대원로였으며 궁주를 보좌하는 지고 무상한 존재다. 금색 장포가 펄럭이고 손에는 장검이 들려 있다. 햇볕에 반사된 검날이 금빛으로 번들거린다.


수라도제와 대원로의 대결, 말 그대로 경천동지할 사투다. 도풍과 검풍이 휘몰아치니 연무장이 남아나질 않는다. 단단한 청석이 가루가 되고 가까이에서 구경하던 관중들은 멀리까지 피신해야 했다.



여기저기 폭탄이 터진 것처럼 난장판이 된 연무장. 그 한가운데 대원로가 우뚝 서 있다. 수라도제는 반으로 부러진 도에 의지한 채, 숨을 헐떡였다.


“죽어라.”


대원로가 검을 치켜들자 관중들이 헛바람을 들이킨다. 절체절명의 순간, 심판을 맡은 매화선인이 연무장 위로 내려선다.


“멈춰라!”


매화선인은 대원로의 앞을 막아섰다.


“상대는 이미 패하였다. 어찌 살수를 쓰려 하는가.”


물러날 줄 알았던 대원로가 검을 휘두른다. 금빛 물결이 파도처럼 밀려오자 매화선인은 검집을 움켜잡았다. 놀랍게도 검집과 부딪친 물결이 천 폭처럼 찢어져 나간다.


“물러나라고 하였다.”


천신처럼 당당한 매화선인의 모습에 관중들이 환호성을 내지른다. 그런데도 대원로는 검을 꼬나 들 뿐이다.


“죽어.”


검 끝에서 기류가 생겨나더니 하나로 뭉쳐진다. 검붉게 빛나는 구체,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무공이다.


“쯧쯧,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매화선인이 검집을 수평으로 부여잡는다. 다른 손으로 검 손잡이가 있어야 할 곳을 움켜쥐자, 검집에서 빛이 뿜어진다. 눈부신 백색 광채를 발하는 검이 이글이글 타오르며 뽑혀 나오니.


“저, 저건!”


관중들은 물론 상석에 앉은 무림인들마저 놀라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천검의 무형검강이다!”


매화선인이 손을 떨치자, 은빛 도어처럼 반짝이던 무형검강이 미끄러지듯 바닥을 활공한다. 가속이 더해져 소용돌이 기류가 생성되자 연무장 바닥이 갈기갈기 찢겨 나간다. 나선형의 빛줄기가 곧장 대원로의 구체와 부딪치고.


‘콰콰쾅!’


거대한 굉음과 함께 잘게 부스러진 청석 파편이 허공으로 치솟는다. 뿌연 먼지가 내려앉자, 장내의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펼쳐진다. 바닥에 쓰러진 대원로는 움직일 줄을 모른다.


“그러게 심판 말을 들었어야지.”


심판이 좋은 건 딱 하나, 첫 번째 규칙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덕분에 마음껏 능력을 뽐낸 매화선인은 척하고 검집을 밀어 넣었다. 관중은 물론 화산파 무인들마저 놀람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크르륵!’


순간, 짐승의 으르렁거림이 연무장을 메아리친다. 수라도제를 부축하려던 매화선인은 슬쩍 뒤를 돌아봤다.


대원로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다. 두 눈에서는 혈광이 뻗쳐오르고 장포가 찢어질 듯 펄럭인다. 양발은 땅에서 한 자쯤 떠 있는데 그 사이로 뿌연 먼지가 와류를 일으킨다.


“드디어 정체를 드러내셨군.”


매화선인은 표정을 굳힌 채 대원로와 마주했다. 진정한 아수라천강시의 재림이니.


“크아아!”


흉성을 토한 대원로가 득달같이 달려든다. 방어를 도외시한 육탄 공격이다. 매화선인은 비웃음을 머금으며 무형검강을 뽑아 들었다.


이 세상 물건이 아닌 다음에야 무형검강이 베지 못할 것은 없다. 눈부시게 빛나는 검강이 떨어져 내리자 대원로가 손날을 휘두른다.


‘서걱.’


대원로의 손짓에 무형검강이 두부처럼 잘려나가고.


“이런!”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매화선인이 물러나자, 대원로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온다. 날카로운 손톱이 떨어져 내릴 찰나, 붉은 도기가 대원로의 가슴을 강타한다.


‘쩡’하는 굉음이 울려 퍼지고 대원로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도를 휘두른 수라도제는 신음성을 삼켰다. 금강불괴조차 단칼에 베어버리는 수라도법이 먹히지 않는다.


“천강시보다 더하군.”


수라도제의 중얼거림에 매화선인이 정신을 차리며 노기를 내뿜었다.


“이놈!”


다시금 무형검강을 움켜쥐는 매화선인, 손에 들린 검이 이전보다도 더욱 밝게 빛난다.


‘퍽!’


거센 발길질에 땅이 움푹 꺼지자 그 반동으로 대원로의 몸이 활처럼 쏘아진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와 맹수처럼 휘둘러지는 손아귀. ‘캉’하는 굉음에 정신을 차려보니 무형검강이 대원로의 손에 붙잡혀 있다.


혼비백산한 매화선인이 급히 뒤로 물러났으나, 다른 손이 앞섬을 할퀴어 버린다. 붉은 핏물이 튀고, 매화선인은 비틀비틀 뒷걸음질 치다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저게 사람이란 말인가!”


대원로가 손아귀에 힘을 주자 ‘쩌저정’하고 유리 깨지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밝게 빛을 뿌리는 무형검강이 산산이 부서져 허공으로 흩어지는 광경, 지켜보던 사람들마저 절망감에 몸을 떤다.



가슴을 움켜쥔 매화선인에게로 천천히 대원로가 걸어간다. 보다 못한 일부 무림인들이 몸을 날리려는 순간.


‘슈아앙!’


거센 파공성과 함께 묵빛으로 이글거리는 도 한 자루가 날아든다. 시선조차 돌리지 않고 손으로 도를 받아내던 대원로.


‘캉!’


철벽을 내리치는 굉음과 함께 그의 몸이 연무장 바깥으로 처박혀 버린다. 옷자락을 날리며 표표히 떨어지는 검은 장포의 중년인. 관중들은 물론 황실 사람들까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드디어...”


“천하제일인이 출전했다!”


천마 궁독이 연무장에 나타난 것이다. 그는 뚜벅뚜벅 매화선인에게로 걸어갔다.


“다음 상대는 나요.”


쓰러져 있던 매화선인은 쓴웃음을 머금은 채 몸을 일으켰다.


“허면, 대련을 계속 이어가야지.”


대련이 속개되자, 천마는 등을 돌렸다. 이미 대원로는 실격을 당한 상태. 다시 달려들 거라 예상했지만 연무장 밖에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다. 뭔가를 기다리는 눈치였는데.


‘스으으’


음산한 바람이 불어오자 연무장 위로 냉기가 휘몰아친다. 그 바람을 가르며 금빛 장포에 금색 복면을 쓴 누군가가 걸어 나온다. 그의 몸 주위로 금빛 기류가 너울대자 연무장 주위로 핀 꽃이 한순간에 시들어 버린다.


관중들은 헛바람을 들이켰다. 복면 사이로 보이는 외눈이 살기로 번뜩인다.


“저자는 천존궁의 이대천존이 틀림없다!”


독고진천의 등장. 뚜벅뚜벅 연무장 위로 올라오는 그를 보며 천마는 양 주먹을 와락 움켜쥐었다.


“오랜만이다.”


독고진천의 눈빛이 더욱 살벌하게 변한다.


“크으...”


제대로 대답도 못 한 채 짐승의 으르렁거림을 내는 독고진천. 그를 바라보던 천마의 시선에 아픔이 배어난다.


“어쩌다 그리된 것이냐. 대체 어쩌다가...”


“크크큭.”


그의 입가에서 시작된 웃음이 어깨로 번져간다. 떨림이 극에 이를 무렵, 한쪽밖에 없는 눈에서 혈광이 치솟는다. 천마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 끝내자.”


착각이었을까. 독고진천의 고개가 살짝 끄덕여진 찰나, 공격이 시작된다.



대련을 지켜보던 은경이는 손을 꼭 맞잡았다. 연무장 위에서는 악전고투가 벌어지고 있다.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릴 만큼 무시무시한 대련. 묵빛 기운과 금빛 기운이 뒤섞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콰콰쾅!’


두 기운이 충돌하자 거대한 폭발음이 울리고, 지켜보던 관중들이 혼비백산해서 뒤로 물러난다.


“위험하오. 더 물러나시오!”


무사들이 나서서 사람들을 뒤로 물린다. 은경이는 힘없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먹구름이 밀려와 사위가 점점 어두워진다. 해는 보이지 않았지만, 시간이 얼마 없음은 확실하다.


‘제발...’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사람의 얼굴만 떠올라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시일이 아주 많이 흐른 건 분명하다. 두윤이는 바닥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주상이의 생일도 지나버렸고 무림대회 참가도 물 건너갔다.


“모든 게 끝났어.”


다시 혼자가 된 것처럼 쓸쓸하기만 하다. 두윤이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주상이가 얼마나 실망해 할까.”


절친,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진정한 친구다.


‘바다와 친구가 되면 물속에서도 자유롭게 숨을 쉴 수가 있어.’


다시금 선녀님의 말씀이 뇌리를 스쳐 지난다.


“그래, 해보자. 친구가 되어달라고 계속 부탁하는 거야. 그럼 호수도 마음을 돌리고 친구가 되어 줄 거야.”


두윤이는 막대기를 움켜쥐고 연못으로 뛰어들었다. 살을 에는 한기가 등골을 저미지만, 기쁜 마음으로 감수했다.


‘캑!’


또다시 콧속으로 물이 밀려든다. 매워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너 정말 이러기야? 계속 그러면 나 화낼 거야.”


타일러도 보고 잔뜩 토라져 봐도 호수는 친구가 되어주길 거부했다. 두윤이는 화가 치밀어 연못에 막대기를 꽂아 넣으려 했다. 그렇지만, 차마 친구를 때릴 수는 없었으니.


“좋아, 한 번만 봐주겠어. 다신 그러지 마.”


턱밑까지 물에 담그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물 밑으로 잠수하니 아른거리는 저편으로 야광주가 반짝인다. 두윤이는 고개를 갸웃하고서 다시 물 밖으로 나왔다.


“물속에서는 숨을 쉴 수가 없지만...”


물 밖에서는 숨을 쉴 수가 있다. 그 당연한 이치가 생소하게 다가온다.


“그렇구나!”


두윤이는 손바닥을 내리쳤다.


“세상의 기는 우리와 친구였던 거야. 그래서 숨을 쉴 수 있는 거라고.”


숨쉬기 운동은 세상의 기를 다스린다. 어찌 보면 내공과도 같았다. 하지만 기를 이용하는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두윤이는 멍하니 호숫물을 응시했다. 소년이 보인다.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렇게만 여겨지지 않았다.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친구를 이용해 먹을 생각만 하다니...”


그럼에도 세상의 기는 아낌없이 힘을 나누어주었다. 이제 깨달았다. 친구가 되길 거부한 것은 오히려 자신이었음을.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사과할게.”


스르르 눈을 감고 바람을 느꼈다. 동굴 내부지만 분명 살랑이는 미풍이 느껴진다. 본능적으로 바람결 사이에 손을 밀어 넣었다.


“우리 이제 친하게 지내자.”


뭔가가 바람을 밀며 저 멀리 흩어진다. 눈을 뜨지 않아도 기가 투영된다. 손끝에서 세상의 기가 너울대고 있다.


“우와, 그럼 막대기도 그동안 친구였던 거로구나.”


두윤이는 바닥에 놓인 막대기를 응시했다. 그런 후, 고개를 들어 세상을 돌아봤다. 딱딱한 돌과 나무, 땀을 식혀주는 바람, 그 모든 것들은 세상의 기로 이루어져 있었다. 단지, 형태만 다를 뿐이니.


“애초에 모두가 친구였어. 나만 그걸 몰랐다니.”


외톨이가 되어버린 듯해 마음이 아프다.


“아니야.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이잖아.”


두윤이는 활짝 웃으며 모든 세상의 기와 인사를 나눴다.


“앞으로 잘 부탁해!”


인사에 화답이라도 하듯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피부에 닿은 기운이 아무런 방해 없이 몸속으로 퍼져나간다. 숨쉬기 운동 같은 건 필요 없었다.


‘퐁’


발가락을 담그니 시원한 기운이 느껴진다. 바람과 물이 서로 만나 이야기꽃을 피운다. 두윤이는 주저 없이 물속으로 몸을 날렸다. 이번에는 숨을 참지 않았다.


차갑던 기운이 온화하게 바뀌었다. 싱그러운 물기운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반겨준다. 상상 속에서 물과 대화를 나누던 두윤이는 피식 웃고 말았다.


‘넌 수다쟁이로구나.’


물속 가득한 세상의 기운이 피부와 호흡을 시작한다. 숨을 쉬지 않아도 전혀 답답하지 않고 오히려 상쾌하다. 두윤이는 물 밖으로 나와 큰 환호성을 내질렀다. 얼마나 기쁜지 힘껏 물장구도 쳤다.


“하하핫! 호수야, 고마워. 드디어 친구가 되어주었구나.”


세상의 기를 깨우친 자, 결국 만물과 친구가 될 수 있음이니.


“선녀님. 정말 고마워요. 덕분에 모두와 친구가 될 수 있었어요. 저 이제 외롭지 않아요. 이렇게 친구가 많이 생겼는데 어떻게 외로울 수 있겠어요.”


두윤이는 이야기책을 소중히 간직했다. 다른 것은 하나도 필요치 않았다.


“이제 가봐야겠어요. 주상이가 기다리고 있다고요. 그럼, 모두 안녕히 계세요.”


동굴에 있는 모든 기와 작별인사를 끝낸 두윤이는 ‘퐁’하고 연못 속으로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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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선물을 사러가요 -124 18.12.12 1,446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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