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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님의 서재입니다.

두윤이의 무림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8.05.20 22:25
최근연재일 :
2019.01.11 21:06
연재수 :
1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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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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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42,547

작성
19.01.10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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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이별이란 슬퍼요 -143

DUMMY

천존 사마광이 떠난 후 천존궁은 해체되었다. 일부 사람들은 산으로 들어가 수도 생활을 이어갔지만, 대부분 제자들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무공을 잃은 사황은 공식적으로 행방불명 상태였다. 몇몇 사람들이 궁금해하자, 마왕은 이렇게 답했다.


‘내가 좋은 곳으로 보내버렸어. 그러니까 더 이상 찾지 말도록. 뭐 찾으려 해도 헛고생이겠지만!’


배신을 때렸던 잔혼신마와 무적신마는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했다. 사황의 협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협력했다는 변명이 통했던 것이다.


특히, 잔혼신마는 마왕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으며 애걸복걸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눈물겹던지 수라도제 마저 용서해주라 허락을 했다.



용서는 해주었으나 마왕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사파 세계에서 배신이란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일!


해서 처벌이 내려졌는데, 앞으로 회식이나 잔치가 있으면 무조건 술을 사야 하는 벌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당차게 술판이 벌어졌는데 그만 술에 취한 잔혼신마가,


‘이참에 차라리 구천주련(九天酒聯)으로 개칭을 하시지요.’


라고 비아냥댔다가 한바탕 매타작을 당했다. 배신자의 비참한 말로였으니.



구천마련은 크게 개편되었다. 사황부가 제명되었고, 천존궁에 등을 돌린 일부 문파들도 쫓겨났다. 그 외에 자잘한 일이 많았는데 하나 눈에 띄는 건 만독림의 부활이었다.


가장 아프게 배신을 때렸지만, 가족들의 무고와 흑아루 사건에서 정상참작이 인정된 것이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동백운은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렸다나 뭐라나.



또 하나, 구천마련의 책사로 있던 천기수사 임사군은 비공식적으로 책사 직에서 물러났다. 비공식적이란 뜻은,


‘다시 돌아갈 수도 있는데, 특별한 일이 없으면 부름에 응하지 않겠다.’


라고 임사군이 직접 설명했다. 이에 마왕과 다른 장로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이제야 잔소리꾼이 사라졌다면서.


책사 직에서 물러난 임사군은 여유를 즐길 겨를이 없었다. 무림서원 원주 제갈진현이 집법당의 당주 자리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무림맹주인 설무백 역시,


‘서원의 모든 법과 질서를 주관하는 집법당의 당주로 천기수사 만한 사람이 없다’


라며 적극 찬성하였다. 결국, 당주 자리에 오른 임사군은 첫날부터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첫째, 초급반 인원을 지금의 세 배로 늘리고, 나머지 학급도 그만큼 학생 수를 늘린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고급반은 포함되지 않았다.


둘째, 기초 및 교양 과목의 확대였다. 모든 학생은 하나 이상의 악기를 다룰 수 있어야 하며, 시를 쓰고 글을 지을 수 있어야 했다. 시험에 반드시 나온단다.


셋째, 모든 학생은 학회 결성의 자유가 있었다. 소위 취미 활동을 인정한다는 의미였는데, 과도한 경쟁을 피하고 자립심과 상상력을 배양하자는 취지였다.

단, 학회 결성은 사전에 집법당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서원이 휴관하거나 수업이 끝난 뒤에만 활동할 수 있었다.


이에 많은 무림인이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무관이 무슨 앉아 노는 곳이냐?’


라는 의견이 많았는데, 의외로 각파의 장문인과 전대의 고수들이 찬성표를 던졌다. 무공 수련에 있어서 인성 함양이 얼마나 중요한지 지난 일을 반추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무림대회 역시 폐지되었다. 과도한 경쟁과 서열화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의 탈출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내려진 결론은 대회 규모의 축소였다. 대회는 서원 무관에서만 열리며 시기는 가을, 우승하여도 소정의 상금만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대회 규정은 단 하나였다.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면 패배였다. 이 때문에 무림대회라기보다는 잔치에 가깝지 않냐는 비판도 감수해야 했으니.



서원은 대대적인 개축이 이루어졌다. 전각을 새로 짓고, 학생들이 기거하는 숙소도 넓혔으며 식당도 한 곳이 더 생겼다. 그렇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매서운 겨울바람이 물러가고 얼었던 호수도 사르르 녹아내렸다.


늘 그렇듯, 화사함을 듬뿍 머금은 봄이 찾아온 것이다.



집법당에 앉아 서찰을 읽던 임사군은 지그시 눈살을 찌푸렸다. 서찰은 초급반 사부 지원서다. 학생 수가 늘었기에 새로 사부님을 모셔 와야 했는데 눈에 띄는 이름이 보인다.


매화선인을 필두로 검성 자천진인과 수라도제가 초급반 사부에 지원서를 냈다. 특히 수라도제는 나를 뽑지 않을 시 응분의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협박도 적혀 있다. 그 의도는 안 봐도 뻔했으니.


임사군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찻잔을 집어 들었다.


“뭐, 그건 그거고...”


맨 위에 놓인 추천서 한 장이 머리를 아프게 한다.


“청 사부, 어찌 되었는가?”


기찰영주란 직위를 버리고 본래의 이름을 되찾은 청풍이 공손히 답한다.


“알아본 바에 따르면 헛소문인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역시 그랬군.”


청풍은 서원에서 보안 업무를 담당하는 기밀각의 수장이다.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의 정보는 믿을 만했다. 임사군은 찻잔을 내려놓고 다시금 서찰에 쓰인 이름을 응시했다.


‘구천마녀, 명월.’


수라도제가 적극 추천한 인물이다. 악기를 다루는데 그녀보다 뛰어난 사람은 없단다. 명월(明月)은 과거 기루에서 불렸던 이름으로 본명은 끝까지 밝히길 거부했다. 도제의 추천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오래전 그녀가 행한 혈겁의 진상을 파악하는 일이다. 죄 없는 아이까지 죽이고 집을 불태웠다는 소문 말이다.


“당시 그 지역에 돌림병이 창궐했답니다. 마을이 초토화되고 거리에는 시체들이 즐비했다는군요. 관이 나서서 마을 전체를 소각했는데 그 가문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희생자가 워낙 많아서 아직도 흉흉한 소문이 나돌고 있더군요.”


“소문이 모두 오해였군.”


“그렇습니다. 하지만 요마혈관의 광기에 사로잡혀 살육을 일삼은 건 사실 아닙니까?”


요마천문이 몰락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혈관을 빼앗으려다 수많은 요마천문의 제자들이 죽거나 다쳤다. 애초에 요마천문의 악행이 도를 넘었는지라, 당시 정파에서는 특별히 신경 쓰거나 동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엄밀히 따지면 집안싸움이었고.


“자네 의견은 어떤가?”


청풍이 고개를 갸웃한다.


“도제께서는 괜찮다 하셨지만, 주의가 필요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글쎄, 당분간 지켜보도록 하지.”


임사군은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창밖을 돌아봤다. 어느새 날이 저물고 있다.


“신입생들은 어떤가?”


이제까지 무표정을 유지했던 청풍이 심각한 얼굴을 한다.


“아직은 특별한 문제가 없습니다만, 벌써부터 학생들 간에 파벌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그냥 둬도 될지 걱정입니다.”


“그럴 만도 해. 학생 수도 많아진 데다가 세력 균형이 얼추 잡혔으니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만.”


임사군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적당한 긴장은 오히려 도움이 될 거야. 물론 과열되면 곤란하겠지.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는 아닐세. 적절한 제재와 함께 계속 설득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해.”


“많이 바빠지겠군요.”


그의 얼굴에 불만이 가득하다. 임사군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창가 쪽으로 다가갔다. 새로 지은 전각들에 불빛이 환히 밝혀져 있다. 아직 토목공사가 한창이다. 지난겨울 내내 공사를 서둘렀는데 시일이 부족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아이는 왔는가?”


청풍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직 입니다.”


“돌아오겠지?”


“가을에도 새로 신입생을 뽑지 않습니까. 저는 그때쯤으로 예상합니다.”


임사군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럴 땐 바쁜 것도 괜찮군. 시간이 빨리 갈 테니······.”


어느새 휘영청 달이 떴다. 홀로 외로이 빛나는 달님을 선녀 별님들이 살며시 감싸준다.




가을 즈음에도 공사가 계속 이어졌다. 언제나처럼 예산이 문제였다. 하나 다행인 점은 학생들이 이용하는 편의시설 공사는 얼추 마무리된 것이다. 이제야 한숨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툭’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발 앞에 떨어진다. 임사군은 걸음을 멈추고 땅바닥을 내려 봤다. 생각보다 시간은 빨리 흐르지 않았다.


“하하핫!”


어디선가 티 없이 맑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흠칫 고개를 들었지만, 초급반 백의를 입은 소년들이 짤랑거리며 뛰어갈 뿐이다.


“난 천존이다!”


“그럼 난 천무 할 거야. 고금제일인, 천무 말이야!”


“야, 치사해! 그건 내가 하려고 했단 말이야.”


“난 누가 뭐래도 환상공자가 좋아. 그런 절친은 아마 없을 거야.”


“그건 그래. 아까 은 사부님께서 이야기하실 때 막 가슴이 뛰었다니까. 나도 그런 친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는 아이들. 임사군은 피식 미소 짓고 말았다. 대연무장으로 향하는 길가에는 꽃이 활짝 폈다. 멀리 푸른 버드나무 그늘에서는 칠현금의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 퍼진다.


나무 둥치에 몸을 싣고 칠현금을 타는 백의 여인. 한 폭의 옅은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현 위에서 춤을 출 때마다 아이들이 넋을 잃는다.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그만 일어나자.”


연주가 끝나니, 아이들이 환호성을 내지르며 박수갈채를 보낸다. 수업을 구경하던 다른 반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여인의 수줍은 얼굴에는 행복감이 깃들어 있다.


“월 사부님! 한 곡만 더 들려주세요. 제발요!”


“나야 괜찮지만, 곧 점심시간이잖니. 너희들 배 안 고파?”


“절대 안 고파요!”


특히 소녀들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그럼, 힘을 내서 한 곡만 더 연주해볼까.”


“와아!”


아까와는 다르게 밝고 명랑한 곡조가 연주된다. 통통 튀는 선율이 얼마나 경쾌하던지 절로 어깨가 들썩여진다.


한때, 무림쌍흉으로 불리며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존재가 어떻게 저런 연주를 할 수 있을까. 도저히 동일인물이라 믿어지지 않는다. 이젠 서원에서 은 사부와 더불어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부로 꼽힌다.


물론 아직 일반 무인들에게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아이들에게는 언제나 상냥하고 친절한 월 사부였다.


‘근심거리 하나는 덜었군.’


임사군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대연무장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여름이 가기 전에 많은 아이들이 학업을 포기한다. 애초부터 무공이 적성에 안 맞거나 혹은 잔뜩 실망을 안고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경우다.


그래도 무관을 떠나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처연해 보이진 않았다. 누구나 각자의 길이 있으니. 꿈과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오늘의 선택은 포기가 아닌 새로운 시작점이 될 것이다.



대연무장에는 제법 많은 수의 학생이 모여 있다. 이번 가을에 새로 들어온 신입생들이다. 임사군은 학생들의 면면을 주의 깊게 살폈다.


벌써 눈에 띄어야 하건만, 아무리 꼼꼼히 살펴도 없다. 사실 이곳까지 걸어오면서 녀석이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챘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 틈에 숨어 있어도 대번에 알아볼 수 있었으니까.


임사군은 뒷짐을 진 채 동쪽 하늘을 응시했다.


‘이번 겨울도 유난히 춥겠어.’


청명한 하늘 위로 뭉게구름이 두둥실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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