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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님의 서재입니다.

두윤이의 무림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8.05.20 22:25
최근연재일 :
2019.01.11 21:06
연재수 :
1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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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719
추천수 :
3,806
글자수 :
842,547

작성
18.12.21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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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3
추천
15
글자
12쪽

빨리 사과하세요! -129

DUMMY

두윤이는 동굴 입구 쪽을 바라보다 활짝 웃었다. 죽립을 쓴 복면인들 앞에 할아버지가 서 있다.


“할아버지! 절 도우러 오셨군요.”


뱃사공 할아버지가 쓰고 있던 죽립을 벗는다.


“글쎄, 그 반대야.”


‘부욱’하고 인피면구가 찢어지자 할아버지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뱀처럼 번들거리는 눈빛을 하고 차가운 조소를 머금고 있는 노인, 다름 아닌 사황이다.


“앗! 당신은...”


“당신? 크크큭, 네놈이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사황의 두 눈에서 붉은 기운이 일렁인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 같았던 십이 원로의 태도가 온순하게 변한다.


“그래, 얌전히 있어. 긴장들 풀라고.”


“크으으...”


조용히 무릎을 꿇는 독고진천과 십이 원로. 사황이 잔인한 웃음을 터트린다.


“보았느냐? 이것이 바로 진정한 아수라천강시다. 이제 나는 네놈을 제물 삼아 천하를 발아래 둘 것이다.”


사황의 몸에서 살기가 뻗쳐 나오자 뒤쪽에 서 있던 복면인들이 신음성을 삼키며 물러난다.


“와, 진짜...”


두윤이가 허리에 양손을 척 걸친다.


“진짜 치사하시네요. 그 일 때문에 그러시죠?”


“무슨 일?”


“흑아루 일 때문에 우리 막내한테 무안을 당했잖아요. 그래서 저한테 복수하시는 거죠?”


“······.”


“그때 목격자가 아무도 없었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사황은 비릿한 조소를 머금었다.


“크크큭, 네놈 짓인 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백운이가 그러더군요. 할아버지가 가족을 인질로 붙잡고 나쁜 짓을 시켰다고요. 물론 무슨 일이었는지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다 거짓말이었다면서요?”


“내가 대신 말해주지. 무슨 일을 시켰냐면...”


“듣고 싶지 않아요! 또 거짓말을 할 게 뻔하니까요. 그것 때문에 백운이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아세요?


사황이 어깨를 으쓱하며 뒷짐을 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말 뻔뻔하시네요. 그런 심한 거짓말을 해놓고 어떻게 눈 하나 꿈쩍 안 하실 수 있어요. 뱃사공이란 것도 거짓말이고, 여기서 생일잔치를 한다더니 그 말도 거짓이었어요.”


두윤이는 양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커다란 눈망울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인다.


“이젠 어쩌실 거예요! 할아버지 때문에 절친의 생일잔치가 엉망이 됐잖아요.”


“크큭, 바라던 바다.”


“전 망했어요. 망했다고요! 하나뿐인 절친의 생일을 챙겨주지 못하다니. 이런 가혹한 운명이 어디 있을까요. 그러니까요, 이제부터 할아버지께 마구 화내겠어요!”


번쩍하고 두윤이의 눈에서 붉은빛이 뿜어진다. 그럼에도 십이 원로는 미동조차 않는데.


“네 놈의 혈마안은 통하지 않는다. 오직 내가 이들의 주인이다.”


혈마안이 무력해지자 두윤이는 화가 치밀었다.


“역시 할아버지는 치사해요. 저기 뒤에 서 계신 아저씨들이 불쌍할 지경이네요.”


뒤쪽에 서 있던 복면인들이 어깨를 움찔한다.


“아저씨들도 참 피곤하시겠어요. 저렇게 속이 좁고 예의 없고 바싹 마른 나물처럼 무미건조한 두목 밑에서 어떻게 지내요? 제가 다 애처롭네요.”


사황이 정색을 한다.


“다 지껄였느냐?”


“아니요. 아직 한참 남았어요. 이 편지도 할아버지가 꾸민 짓이죠?”


품에서 종이 한 장이 나온다. 동정십팔채로 오라는 서찰이다. 두윤이는 서찰을 와락 구겨버렸다.


“거짓말쟁이 같으니라고. 이 옥수실은 대체 어디서 구한 거예요?”


손에 들린 주상이의 옥수실.


“그건 네 친구 것이 맞다. 지금쯤 녀석은...”


말끝을 흐리자 두윤이가 휘둥그레 눈을 치뜬다.


“서, 설마 주상이까지······. 걔한테 뭔 짓 했어요!”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녀석의 얼굴을 보며 사황은 통쾌하다는 듯 웃어젖혔다.


“무슨 상상을 하는지 모르겠다만, 아마 네 예감이 맞을 게다.”


“제 예감이 맞을 거라고요?”


“크크크, 그래!”


두윤이가 크게 한숨을 내쉰다.


“휴, 제 예감이 맞아서 정말 다행이에요.”


“뭐?”


“전 지금 할아버지가 또 거짓말을 치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거짓말이 맞다고 인정하셨으니 다행이라고요.”


사황은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뒤를 돌아봤다. 병풍처럼 서 있던 사황대가 움찔 물러난다.


“저놈이 지금 뭐라고 씨불이는 거야?”


“그, 글쎄요...”


두윤이는 막대기를 높이 쳐들었다.


“아무튼, 전 집에 갈 거예요. 절친에게 빨리 생일선물을 전해줘야 해요.”


“넌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다. 왜냐하면, 친구를 따라 곧 죽게 될 테니까.”


“뻥까지 마요!”


‘슈아아앙!’


세상을 가로지르는 단 한줄기의 선, 사황은 눈을 치뜨며 물러났다. 저 선에 닿으면 끝장이다. 모든 무공이 파훼 될 것인데.


‘쾅!’


도끼날처럼 내려 찍히는 손날, 퍼져나가던 선이 싹둑 끊어진다. 두윤이는 불만 어린 표정으로 앞을 가로막은 독고진천을 응시했다.


“할아버지가 잘못한 게 또 생각났어요. 천이 아저씨께 몹쓸 짓을 했잖아요. 용서할 수 없어요. 아무리 사과해도 받아주지 않을 거라고요!”


막대기를 꽂아 넣는 두윤이! 투명한 막이 밀려온다. 독사출동이 펼쳐진 것이다. 사황과 복면인들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서 있었다. 저건 도저히 피할 길이 없었는데.


‘쩌쩡!’


귀를 찢어발기는 굉음과 함께 막이 깨져 나간다. 파편들 사이로 독고진천이 쇄도해 들어와 수도를 휘두른다.


두윤이는 혼비백산한 표정으로 나려타곤을 펼쳤다. 검붉은 기운이 이글거리는 손날이 호랑이 석상을 파괴하고 벽에 꽂혀 버린다. ‘쩌저적’ 금이 가며 벽 일부가 무너져 내리고.


“크하하! 네 놈도 천강시 앞에서는 별수 없구나.”


두윤이는 양 볼을 부풀리며 어깨를 털었다. 뿌연 돌가루가 사방으로 날린다.


“오늘 이곳이 네놈의 무덤이 될 것이다.”


“흥! 무덤에는 할아버지가 먼저 들어갈걸요? 전 아직 어린애라서 한참은 멀었죠.”


“······.”


사황은 줄기줄기 살기를 내비치며 말을 씹어뱉었다.


“네놈이 어떤 녀석인지는 이미 파악이 끝났다. 이제 그 잘난 절대삼검의 마지막 초식을 펼치겠지?”


“그래야 할 것 같네요.”


“내가 말하지 않은 게 있는데, 사실 이곳에는 화약이 묻혀 있다. 섬 전체를 붕괴시키고도 남을 양이지.”


두윤이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네가 그 초식을 펼친다면 화약이 폭발할 것이다. 그럼 같이 죽는 거지.”


“그럼, 할아버지도 죽게 될 텐데요?”


사황의 눈이 뱀처럼 번들거린다. 입가에는 황량하고 메마른 웃음을 지어져 있다.


“죽음이 두려운가 보구나. 나는 두렵지 않아. 네 놈은 어떠냐?”


두윤이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막대기를 들어 올렸다.


“제가 지금 무슨 생각 하고 있게요?”


“갑자기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서, 설마!”


사황의 표정이 사색이 된다. 두윤이는 히죽 웃으며 막대기 끝을 돌렸다.


“거짓말쟁이 말은 안 믿어요!”


‘콰콰콰콰!’


엄청난 소용돌이가 석실 내부를 휘몰아친다. 사황은 벽을 부여잡은 채 괴성을 내질렀다.


“그만! 이러다간 화약이 폭발할 거다!”


“궁색한 변명은 듣고 싶지 않아요.”


“진짜라니까. 이러다간 모두 죽을 거야!”


소용돌이의 힘이 더욱 거세진다.


“다 같이 죽자 메요. 방금 한 말도 거짓말이었군요. 이제 더는 할아버지랑 대화하기 싫어요!”


소용돌이의 압력에 지축이 흔들리며 무너져 내린다. 일부 사황대 대원들이 속절없이 휩쓸려 땅바닥을 나뒹군다.


“끄아아! 살려줘.”


‘콰콰쾅!’


그때, 귓가로 거대한 폭음이 들려온다.


소용돌이보다 더 큰 진동이 석실을 뒤흔들고 천정이 쫙쫙 갈라지기 시작한다. 두윤이는 돌이 떨어져 내리는 천정을 바라보다 멍하니 입을 벌렸다.


“으악! 진짜 화약이 터졌나 봐요. 어떻게 해요!”


“야 이 미친놈아! 진짜라니까 사람 말을 왜 이렇게 못 믿어?”


“그러게 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세요. 이건 할아버지가 잘못한 거예요.”


복면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어서 피해라! 동굴이 무너진다.”


지진이 일어나며 돌덩이가 떨어져 내리는 와중, 사황은 마지막 힘을 발휘해 손을 내저었다. 우두커니 서 있던 독고진천이 번개같이 쏘아져 나간다. 잔뜩 당황하며 어쩔 줄을 모르는 두윤이에게 가공할 장력이 뿜어지고.


‘펑!’


북이 터져 나가는 굉음과 함께 녀석의 몸이 제단 쪽으로 처박힌다.


“크크큭, 됐어. 이제 나를 보호해라. 여기서 빠져나간다.”


십이 원로가 둥글게 모여 호신강기를 펼치고, 독고진천이 사황의 몸을 부여잡고 번개같이 몸을 날린다. 사황은 비릿한 조소를 머금은 채 뒤쪽을 돌아봤다. 동시에 거대한 폭발과 함께 천정이 무너져 내린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한 척의 배가 물살을 가른다. 자욱한 안개가 걷히고 드디어 섬의 윤곽이 나타나는 순간.


지축을 흔드는 거대한 굉음과 함께 대폭발이 일어난다. 뱃머리에 서 있던 일행은 놀람에 눈을 치떴다. 절벽이 통째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집채만 한 바위들이 굴러떨어져 호수에 큰 파도를 일으킨다.


“두윤아, 안 돼!”


금소령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날린다. 은경이는 얼른 붙잡았다.


“언니, 안돼요. 위험하다고요.”


“가야 해. 두윤이가 저 안에 있단 말이야!”


“제발요. 보내드릴 수 없어요.”


필사적으로 부여잡는 은경이, 털썩 소령이의 무릎이 꺾인다.


“두윤아, 우리 두윤이 어쩜 좋아...”


슬픔이 너무나 컸던가. 소령이는 애절하게 울부짖다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빗방울이 튀어 오르는 흰 뺨으로 눈물이 흘러내린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제갈은경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가요, 언니 말대로 빨리 가자고요!”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는 섬을 보며, 임사군은 와락 미간을 좁혔다.


“배를 붙여라. 상륙할 것이다.”




섬의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다. 대나무가 정신없이 쓰러져 있고, 바위들이 굴러떨어져 아예 지형이 바뀌었다.


영욕의 세월을 견뎌낸 동정십팔채의 장원도 무사할 수 없었으니. 그나마 형체를 간직하고 있던 건물은 폭삭 주저앉아 버렸다.



거센 비바람이 불어오고, 지난 세월 이곳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넋을 기리는 천 조각이 세차게 펄럭인다.


금소령이 번개같이 뛰어간다. 은경이는 얼른 뒤를 따랐다. 동굴이 있었을 본채 건물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잔해를 거둔 다해도 내부 역시 온전하지 못할 터. 임사군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니야. 아직 살아 있어!”


“언니...”


금소령의 양손에서 검붉은 손톱이 튀어나온다.


“은경아, 나 느껴져. 두윤이가 살아 있는 게 느껴진다고.”


“언니, 이러지 마세요. 이미 이곳은...”


“구해야 해. 우리 두윤이를 구해야 한다고!”


미친 듯이 잔해를 헤집는 금소령, 이내 손에서 줄줄 피가 흘러내린다. 바닥에 고여 있던 빗물이 핏빛으로 변한다.


“제발 그만 하세요. 이제 그만하시라고요.”


“놔, 이거 놓으란 말이야!”


“제발...”


소령이를 말리던 은경이가 철퍼덕 주저앉아 버린다.


“두윤아, 조금만 기다려. 이 누나가 빨리 구해줄게!”


커다란 나무 기둥이 치워지고, 날카로운 잔해들이 손바닥을 찢어놓는다. 소령이는 멈추지 않았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놀랍게도 동굴 입구가 보인다. 하지만 지하로 이어지는 입구는 이미 무너져 내렸다.


“아니야. 바로 앞에 있어. 저기 앞에 있다고!”


소령이가 거칠게 흙바닥을 파헤친다. 핏물이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임사군은 뒤쪽을 돌아봤다. 기찰영주가 번쩍 몸을 움직여 소령이의 수혈을 짚어 버린다. 털썩 앞으로 고꾸라지는 그녀를 기찰영주가 받아든다.


“죽일 거야. 다 죽여 버릴 거라고요!”


엎드려 있던 제갈은경이 와락 주먹을 움켜쥔다. 손가락 사이로 진흙이 밀려나온다. 임사군은 그 자리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비가 쉬지 않고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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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생일잔치가 기대돼요 -126 18.12.15 1,492 14 12쪽
125 선물을 사러가요 -125 18.12.14 1,385 16 12쪽
124 선물을 사러가요 -124 18.12.12 1,441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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