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덧붙임

용 찢는 북부인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새글

덧붙임
작품등록일 :
2024.07.14 13:28
최근연재일 :
2024.09.12 20:05
연재수 :
53 회
조회수 :
680,646
추천수 :
25,560
글자수 :
294,682

작성
24.08.13 12:35
조회
13,478
추천
565
글자
12쪽

23

DUMMY

제리얀은 대체 저 남자가 왜 저토록 당당하게 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훔친 게 아니라 뺏었다는 말은 도둑질을 한 게 아니라 강도질을 했다는 소리가 아닌가?


누가 봐도 후자가 더 질 나쁜 범죄다. 도둑이라 불리는 건 기분 나쁘고 강도라 불리는 건 괜찮다는 걸까.


“음, 훔친 게 아니라 뺏었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더 어처구니없는 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북부인의 태도다.


“모든 북부인은 전사라고 하지. 당신은 과연 훌륭한 전사요.”


어쩌면 북부에선 훔치는 건 잘못이라도 빼앗는 건 죄가 되지 않는지도 모른다. 살금살금 어둠 속에 숨어 남의 것을 가져가는 건 비겁한 짓거리지만 목숨을 걸고 투쟁을 통해 뭔가를 얻어내는 건 오히려 본받아야 할 행동쯤으로 여기는 것일 수도 있다.


사실 그게 아니라 그냥 약탈을 즐기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느 쪽이든 크게 상관은 없다. 제리얀은 북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그만두기로 했으니까.


“그래서 그 보물이라는 게 뭔데? 북부의 보물이라니, 녹지 않는 얼음이라도 되나?”


그 말에 북부인과 샬릭이 동시에 제리얀을 쳐다봤다. 두 사람의 시선을 받은 제리얀이 어어 소리를 내며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두 명의 북부인이 말했다.


“우릴 너무 무시하는군? 북부에 널린 게 얼음인데 그게 보물이겠소?”


“녹지 않는 얼음이라니? 얼음은 원래 안 녹아. 그딴 게 보물일 리가 없잖아.”


제리얀이 어물어물 말했다.


“아, 미안해. 무시하려던 건 아니었어. 그런데 얼음은 원래 녹지 않나? 북부에서나 안 녹는······.”


“또 북부 무시하네? 입만 열면 지역 차별이 술술 나오는 게 역시 요정이라 그런가?”


“그럴 수도 있소. 요정은 원래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난 줄 아는 족속들 아니오?”


그러는 자기들이 하는 건 종족 차별이 아닌가? 제리얀은 어이가 없었지만 수적으로 불리했으므로 얼른 말머리를 돌렸다.


“그래서 그 보물이라는 게 뭔데? 일단 녹지 않는 얼음 따위가 아닌 건 알겠어.”


“뭐야, 지금까지 내가 늘 들고 다녔는데 아직 눈치 못 챘나? 하여튼 요정의 심미안은······.”


“쯧쯧, 보물을 보고도 그 가치를 모르다니.”


제리얀은 점차 몰려오는 짜증을 애써 억눌렀다.


“모르겠으니까 말해 봐.”


샬릭과 북부인이 거의 동시에 답했다.


“칼이지.”


“갑옷이오.”


동시에 말했는데 서로 다른 답이 나왔다. 북부인이 샬릭을 쳐다보며 말했다.


“칼이라고?”


“그래, 칼. 이거 흑철로 만든 건데 모르나?”


북부인이 허어 소리를 냈다. 칼이 새까만 것을 보고 흑철로 만들었겠거니 생각은 했지만 설마 북부의 보물이었다니?


“그것도 뺏었다고? 아니, 그건 또 대체 언제? 그 칼이 정말 북부의 보물이라면, 내가 알기로 그 칼의 소유자는 본래······.”


“무슨 부족의 누구였는데 이름은 까먹었어. 길 가는데 칼 자랑하길래 때리고 뺏었지.”


“과연······. 전사로군.”


북부인은 남이 칼 자랑했다고 때려서 뺏었다는 이야기에 몹시 감명을 받은 듯했다.


제리얀은 그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저 북부인이라면 그럴 수 있지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흑철이라면 북부에서만 난다는 광물이지? 그걸로 만든 칼이 아주 귀하다는 건 알았어. 확실히 보물이라고 할 만하네. 그럼 갑옷은? 그 갑옷도 흑철로 만들었나? 회색인 걸 보면 아닌 것 같은데.”


제리얀의 질문에 북부인이 답했다.


“저건 운철로 만든 거요. 저걸 입고 있으면 용의 화염 숨결로부터도 몸을 지킬 수 있다고 하더군.”


흑철 역시 귀할 테지만 운철은 그보다 더 귀할 터다. 북부인의 말대로라면 샬릭은 아주 귀한 것들로 무장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 귀한 가치를 생각하면 칼과 갑옷으로 성 하나를 살 수 있을 텐데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샬릭은 걸어 다니는 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다.


“그런데 그만한 보물을 원래 주인으로부터 뺏어서 도망쳤으면 뭔가 문제가 생기지 않나? 북부인 성격에 보물 뺏기고도 가만히 있을 것 같진 않은데.”


“물론 문제가 생겼을 거요. 분명 추격자들이 있었을 테지. 그 때문에 손에 동족의 피를 제법 묻혔을 거고.”


북부인이 샬릭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용 사냥꾼의 실력을 생각하면 추격자들이 얼마나 몰려오든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왜 당신이 북부가 아니라 대륙을 떠돌고 있는지 알겠소. 북부에 있었으면 하루도 빠짐없이 몰려오는 북부인을 죽였어야 할 테지.”


샬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덤비는 놈들 손 봐주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 그러니까 귀찮더라고. 북부를 떠나서도 얼마간은 끈질기게 쫓아오더군. 여기까지 와서는 추격이 끊겼는데 어쩌면 아직도 날 쫓고 있을지도 모르지.”


“북부인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그들은 전사니까.”


샬릭과 북부인이 웃었다.


“그래서 몸은 어때? 혼자 일어날 수 있겠나?”


“갈비뼈가 몇 개 부러진 것 같긴 한데, 이 정도는 침 바르면 낫소.”


제리얀이 기겁하며 말했다.


“그 정도면 신전에 가봐야 하는 것 아닌가? 침 발라서 나으려면 침샘 마르도록 발라야 할 것 같은데.”


“또 북부인을 무시하는 거요? 누가 갈비뼈 부러진 정도로 신전에 가나.”


저 친구한테 신전은 언제 가는 곳일까. 죽어서 염할 때?


“북부인은 몸이 튼튼해서 괜찮아. 애초에 북부인은 남들과 같은 인간인 것처럼 보여도 종이 달라.”


샬릭의 말이 그냥 하는 소리인 건지,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 건지 모르겠다. 제리얀은 자기가 괜찮다는데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친구들 데리고 돌아가. 혹시 배웅 필요하나?”


“괜찮소. 결국 우린 오늘도 위대한 죽음을 맞이하지 못했군. 하지만 괜찮소. 인생은 기니까. 언젠가는 죽을 수 있겠지.”


“쓸데없이 긍정적이시군. 내 말했지. 죽으려고 살지 말라니까.”


“우린 그럴 수 없소. 북부인이니까.”


샬릭은 더 말하기 싫다는 듯 가볍게 고갯짓했다. 북부인이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갈비뼈가 부러졌다는 게 엄살이 아닌 듯 걸을 때마다 자세가 불안정하고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는 꿋꿋이 혼자 걸었다. 쓰러져 있는 북부인들을 깨우고 땅에 떨어진 무기를 챙겨 돌아갈 채비를 했다.


북부인들은 서로 부축하면서 천천히 동굴 바깥으로 나갔다. 샬릭은 그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제리얀이 물었다.


“우리도 이제 나가야 하지 않나?”


“저 친구들 다 나가고 나서. 안 친한 사람끼리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만큼 무안한 일이 없어.”


“그건 또 뭔······.”


제리얀은 어이없어했지만 샬릭의 말대로 얌전히 기다렸다. 용과의 싸움으로 마력도 바닥났겠다, 명상을 통해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으니 잘된 일이긴 했다.


그가 자리를 잡고 명상에 들어가자 샬릭도 대충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했다.


제법 시간이 흐르고 나서 제리얀이 눈을 떴다. 바닥 났던 마력이 제법 회복된 게 느껴졌다.


“그래서 언제 출발할 거야?”


“출발하다니, 어딜?”


제리얀이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말했다.


“용 죽이러 안 갈 거야?”


“가야지. 그런데 그걸 네가 왜 물어?”


“나도 같이 가야지?”


샬릭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니까 그걸 네가 왜 같이 가는데?”


샬릭은 북부인이며 또한 용 사냥꾼이다. 그런 그가 용 죽이러 다니는 거야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제리얀은? 북부인도 아니고 용 사냥꾼도 아닌데 대체 왜 이 위험천만한 여정에 따라오려 한다는 말인가?


이번 싸움이야 마을 사람들 목숨 구하려 그런 거지만 걀라토로스의 어미를 죽이러 가는 건 제리얀과 아무 연관이 없지 않나.


설마 용의 심장이 탐나서 그러는 걸까. 만약 그랬다면 용의 심장을 나누어 주겠다고 했을 때 얼른 받았을 것이다.


샬릭이 별 이상한 놈 다 본다는 듯 제리얀을 쳐다봤다. 그 시선에 제리얀이 울컥했다. 누구보다 이상한 북부인한테 그런 시선을 받다니.


“왜, 따라가면 안 되나?”


“안 될 거야 없지. 마음대로 해.”


샬릭이 의외로 선선히 동행을 허락했다. 제리얀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걀라토르스의 어미가 있는 곳까지 가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텐데 마을로 다시 돌아가야 하지 않나?”


“마을에는 왜?”


“용을 죽였다고 알려주기도 해야 하고, 또 거기서 보급도 해야 하니까. 넌 어떨지 모르겠지만 난 식량이 제법 떨어졌어.”


샬릭이 고개를 저었다.


“용이 죽었는지야 며칠 지나면 그놈들도 자연히 알게 되겠지. 촌장 놈에게 받아야 할 돈이 있긴 하지만 그런 마을에서 돈 받아봤자 얼마 되지도 않을걸. 괜히 시간만 낭비야.”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럼 보급은? 내가 알기로 다음 마을까지 며칠은 가야 할 텐데?”


“그거라면 해결할 곳이 있지. 따라와.”


샬릭이 걷기 시작하자 제리얀이 그 뒤를 따랐다. 샬릭은 동굴을 나와 갈 곳이 있다는 듯 성큼성큼 걸었는데 가는 방향을 보니 산 쪽이었다.


다음 마을로 가든, 걀라토르스의 어미가 있는 곳을 가든, 어쨌건 저 산을 넘어야 했으므로 제리얀은 별 말없이 샬릭을 따라갔다.


그런데 이 산을 넘으려면 하루가 꼬박 걸릴 텐데 여기서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나?


언덕을 넘으며 제리얀이 물었다.


“혹시 여기서 사냥이라도 하려고? 하기야 용 사냥꾼이니까 사냥도 잘하나.”


“사냥을 하다니? 설마 불쌍한 토끼나 사슴을 잡아먹자는 소리야? 하여튼 요정은 야만적이라니까.”


진짜 야만인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 짜증이 샘솟는다. 제리얀이 애써 화를 참으며 말했다.


“그럼 어쩌려고? 약초나 캐 먹자는 것도 아닐 테고.”


“물론 아니지. 잠깐만 기다려봐. 조금만 더 가면 나올 텐데······.”


샬릭이 산을 오르고 또 올랐다. 고된 등산 탓에 점차 몸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이쯤인 것 같은데. 어디서 사람 발걸음 소리 안 들려?”


산 중턱쯤 왔을 때일까. 샬릭이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봤다.


“글쎄, 잠깐만.”


요정의 귀는 장식이 아닌지라 그들은 멀리 있는 소리도 잘 들을 수 있었다. 제리얀이 두 눈을 감고 청각에 정신을 집중했다.


샬릭의 말대로 어디선가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한두 명은 아닌 것 같다.


“들려. 이쪽으로 오는 것 같은데?”


“그럼 됐어. 그 친구들한테 도움 좀 받자고.”


설마 산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는 걸까. 제리얀이 얌전히 기다리자 오른쪽에서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험악한 인상을 하고 있었는데 대략 숫자가 열 명쯤 될 것 같았다.


제리얀이 물었다.


“저 친구들한테? 누군데? 상인이야?”


“이런 곳에 상인이 어딨어?”


“그럼 쟤넨 뭔데?”


“강도.”


강도? 으슥한 곳에 매복하고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 돈 뜯는 놈들?


제리얀이 자신이 뭔가 잘못 들었나 하고 멍하니 있자 강도 중 한 명이 으흐흐 웃으며 말했다.


“그래, 잘 아는군. 우린 강도다. 목숨이 아깝다면 뭘 해야 하는지 알겠지?”


“알지.”


샬릭이 주먹으로 남자의 얼굴을 후려쳤다.


“우리도 강도다. 돈 내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용 찢는 북부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유료화 안내 +12 24.09.10 1,189 0 -
공지 연재 시간 변경 안내 +4 24.09.05 2,797 0 -
53 53 NEW +19 4시간 전 1,695 153 12쪽
52 52 +38 24.09.11 4,221 279 11쪽
51 51 +26 24.09.10 4,969 290 12쪽
50 50 +56 24.09.09 5,265 336 13쪽
49 49 +29 24.09.08 5,515 328 12쪽
48 48 +30 24.09.07 5,739 307 12쪽
47 47 +32 24.09.06 5,834 353 12쪽
46 46 +31 24.09.05 6,231 317 13쪽
45 45 +48 24.09.04 6,639 349 12쪽
44 44 +37 24.09.03 7,062 357 11쪽
43 43 +40 24.09.02 7,718 353 12쪽
42 42 +37 24.09.01 7,894 388 12쪽
41 41 +39 24.08.31 7,983 356 12쪽
40 40 +32 24.08.30 8,225 353 12쪽
39 39 +33 24.08.29 8,463 402 12쪽
38 38 +28 24.08.28 8,840 422 12쪽
37 37 +31 24.08.27 9,386 416 13쪽
36 36 +46 24.08.26 9,710 464 12쪽
35 35 +30 24.08.25 9,420 442 11쪽
34 34 +22 24.08.24 9,432 416 12쪽
33 33 +22 24.08.23 9,842 405 13쪽
32 32 +46 24.08.22 9,956 472 12쪽
31 31 +35 24.08.21 10,372 459 14쪽
30 30 +31 24.08.20 10,548 458 12쪽
29 29 +16 24.08.19 11,169 433 13쪽
28 28 +37 24.08.18 11,309 488 12쪽
27 27 +32 24.08.17 11,691 477 13쪽
26 26 +38 24.08.16 11,896 516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