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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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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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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7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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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DUMMY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영적인 힘을 얻겠답시고 아무나 죽이고 그러진 않을 거지?”


제리얀의 불안한 목소리에 샬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사람 가려가며 죽여야 하나?”


그래야 하지 않나? 영적인 힘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 잘은 몰라도 그것 좀 얻자고 아무나 죽여도 될 것 같진 않은데.


제리얀은 슬쩍 샬릭이 들고 있는 칼을 쳐다봤다. 저놈이 갑작스레 자신에게 칼을 휘두르면 내가 반응할 수나 있을까? 이제 저놈 눈에는 모든 생물이 다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쯤으로 보일 텐데······.


“그 눈은 뭐야? 내가 널 죽이기라도 할까 봐?”


“솔직히 말하면······ 약간 걱정은 되는데.”


“하하, 설마 그러려고.”


샬릭이 웃었지만 제리얀은 영 안심할 수 없었다. 이놈은 악마를 보고 용이라고 주장하며 기어코 죽여버렸지 않나.


모든 북부인은 정신병자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심지어 샬릭은 진짜 중의 진짜 북부인 아닌가.


제리얀이 슬쩍 거리를 벌리며 말했다.


“그래서 그 산적 놈들은 어쩔 거야? 악마를 죽인 덕분에 사람들이 목숨을 구하긴 했지만 언제까지고 그러진 않을 텐데······.”


산적들의 뒤를 봐주던 악마가 죽었다는 사실은 늦든 빠르든 결국 알려지게 될 것이다. 그럼 산적들이 자신들이 납치해온 사람들을 그냥 둘까?


사람들을 데리고 있는 건 돈이 드는 일이다. 먹을 입을 줄이기 위해 죄 죽여버리거나 아니면 정말로 인신매매를 할지도 모른다.


그러기 전에 구해야 하는데 과연 샬릭이 도와줄까? 제리얀이 슬쩍 쳐다보니 샬릭이 말했다.


“일단 가볼까.”


“가본다고? 아깐 반대했으면서?”


“궁금한 게 생겨서.”


칼자루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걸 보니 뭘 궁금해하는지 알 것 같다. 과연 산적들을 죽였을 때 얼마만큼의 영적인 힘을 얻을 수 있는지가 궁금할 테지.


어쨌건 그런 이유에서라도 도와주겠다니 고마울 따름이다. 다만 산적들을 다 죽이고 나면 그다음은?


“인제 와서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런데, 산적들을 구하고 나면 납치됐던 사람들은? 마을로 돌려보내려 해도 그럴 수 없잖아. 그들을 받아줄 마을을 찾는 것도 마땅치 않을 거고.”


제리얀의 질문에 샬릭이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차원문 열 줄 아나?”


차원문이라면 특정 지역으로 통하는 문을 만드는 마법이다. 제법 고등한 마법이라 그걸 익힌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다.


제리얀은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열 줄 알지. 그런데 그건 왜?”


“잘 됐군. 그럼 일 다 끝나고 나면 차원문 좀 열어. 사람들 맡길 곳이 있으니까.”


살기 힘든 세상이다. 자기 먹을 것도 없는데 남 먹일 건 더더욱 없다. 그런 세상에 아무런 쓸모도 없는 사람들을 수십 명이나 받아줄 곳이 있기나 한가?


제리얀은 의아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샬릭이 저리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걸 보면 뭔가 방법이 있겠지.


“그럼 갈까.”


두 사람은 어둠 속을 달려 산채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이미 늦은 밤이건만 산채 곳곳이 횃불로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샬릭이 칼을 뽑아 들고 목책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하암, 지루해 죽겠네.”


“오늘따라 왜 이리 늦게 오는 거야······.”


목책 뒤에선 산적들이 잡담을 나누고 있다. 그들은 어둠 속에 숨어든 침입자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했고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시시한 잡담을 하고 있던 머리가 하늘을 날았다. 웃는 얼굴 그대로 잘렸다가 툭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자기 머리에 뭔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어?”


그러나 몇 발자국 멀리 떨어져 있던 산적은 방금 일어난 일을 봤다. 뭔가 어둠 속에서 빛이 번쩍이는 듯하더니 머리가 날아갔다.


그리고 그 검은 물체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습······!”


말을 끝맺기도 전에 그 머리가 날아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가 죽는 걸 본 사람이 많았다. 산적들은 당황하면서도 크게 소리쳤다. 습격이다, 습격이야!


그 소리에 놀란 산적들이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졸지에 산적들에게 둘러싸이게 됐지만 샬릭의 태도는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음, 죽여봤자 간에 기별도 안 가겠는데.”


샬릭은 혼자서 중얼거리더니 뒤로 고개를 돌렸다.


“제리얀? 네가 처리해. 혹시나 해서 몇 명 좀 죽여봤는데 잔챙이들로는 별 도움이 안 되네.”


제리얀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한숨을 내뱉더니 손끝에 마력을 모았다.


“그러지. 잠깐 쉬고 있어.”


제리얀이 손끝에 모인 마력을 가볍게 휘두르자 거센 바람이 불었다. 무기를 들고 달려들던 산적들은 칼바람에 몸을 베어 바닥을 나뒹굴었다.


공격은 한 번으로 끝이 아니었고 몇 분 지나지도 않아 산적들 수십 명이 피를 토하며 죽어갔다.


지금까지 샬릭의 압도적인 무력에 묻혔지만, 제리얀 역시 그리 약한 마법사가 아니었다. 만약 그가 어느 세력에 들어갔다면 그 안에서 상당한 대우를 받을 만한 실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실력은 산적들을 상대로 오롯이 발휘됐다. 손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바람이 불어 사람 몸을 갈라버리고 땅속에서 튀어나온 바위 손이 사람을 짓뭉개버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헐레벌떡 뛰어나온 건 산적 두목이었다. 그는 자신의 부하들이 전부 죽어있는 걸 보고 허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그 미친놈······?”


“미친놈이라니, 말이 심하군. 북부인이라고 해.”


그게 그거 아닌가. 산적 두목이 분노에 찬 목소리를 토해냈다.


“왜 이러는 거요! 돈과 식량이라면 받아 갔잖아!”


제리얀이 뻔뻔하게 소리치는 산적 두목을 향해 바람을 날리며 말했다.


“그랬지. 그런데 너 하는 꼴 보니 그냥 두고 볼 수가 없겠더라고. 이 역겨운 놈. 사람들을 납치해다가 악마에게 제물로 바쳐?”


산적 두목은 바닥에 쓰러진 채 악 소리를 내고 있었다. 팔이 잘려 나간 왼쪽 어깨가 허전했다.


“···이런 씨발. 그건 또 어떻게?”


“가다가 만났으니까 알지. 혹여나 악마 놈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일랑 말아라. 그놈은 우리 용 사냥꾼 나리께서 죽이셨으니까.”


샬릭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산적 두목이 피를 토하며 외쳤다.


“자, 잠깐! 다 설명해주겠소! 나도 협박을 당해 어쩔 수 없이······.”


그 말이 끝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바람의 칼날이 그 목을 잘라버렸으므로.


“안 궁금해, 이 자식아.”


제리얀이 목이 잘려 죽은 산적 두목의 시체에 퉤 하고 침을 뱉었다.


“목을 잘라 죽이다니, 너무 잔인하지 않나?”


그건 북부인이 할 말이 아닌 것 같은데. 제리얀은 샬릭의 헛소리를 무시하고서 말했다.


“이제 잡혀간 사람들을 찾아야지. 아마 저 뒤쪽에 있을 것 같은데.”


“아, 그거라면 네가 데리고 와. 나는 할 일이 있어서.”


할 일이라니? 지금 사람들 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다고? 제리얀은 의아했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그가 창고로 가니 과연 그 안에는 붙잡혀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갑자기 들어온 제리얀을 보고 겁에 질린 듯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안심하세요, 구하러 온 겁니다.”


사람들은 그제야 안심했다. 제리얀이 그들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오니 저 멀리 샬릭이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이제 왔나? 나 혼자 이거 다 옮기느라 힘들었는데 빨리 좀 오지.”


바닥에 뭘 저토록 많이 가져다 놨나 하고 보니 지금껏 산적들이 모아뒀던 보물이며 식량 따위였다. 이걸 왜? 제리얀이 눈으로 묻자 샬릭이 답했다.


“남의 집에 갈 땐 선물을 가져가야 할 것 아니야. 이제부터 거기서 신세 좀 져야 하는데 맨손으로 가면 집주인이 곤란하지 않겠나.”


말이야 맞는 말이다. 샬릭이 어디로 가려는 건지는 몰라도 빈손으로 가서 사람들 좀 받아달라고 하는 건 염치없는 짓이다.


“그래서 어디로 가면 되는데? 혹시 북부로 가는 건 아니지? 아, 물론 북부가 나쁘다는 건 아니야. 다만 이 사람들 살기엔 너무 혹독한 환경이 아닌가······.”


“당연히 아니지. 거기 보내는 건 그냥 가서 다 얼어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인걸.”


생각보다 상식이 있어서 다행이다. 제리얀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어디로 갈 건데? 미리 말하는데 차원문은 좌표를 알아야 열 수 있어. 아무데나 열 수는 없으니까 잘 생각해보고 말해.”


“그럼 아크툴에 열 수 있나?”


“아크툴? 거기라면 한 번 가본 적 있는 데다가 그리 먼 곳도 아니니까 열 수야 있지만······. 설마 거기 가려고? 내가 알기로 거긴······.”


샬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테레모가 있는 곳이지. 괜찮아. 그 친구 착해서 이 사람들 받아줄 거야.”


“아니, 정말로? 테레모라면 불사공인데? 그 사람과 개인적인 친분이라도 있는 거야? 혹시 다짜고짜 찾아가서 칼 들고 사람 받으라고 협박하는 건 아니겠지?”


“괜찮아. 나 그 친구랑 친해.”


정말로? 테레모는 무려 일곱 제국공 중 한 명인데? 그리고 아크툴은 시체가 우글거리는 곳인데 거기 데려가도 괜찮나?


제리얀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아크툴로 차원문을 열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일이 틀어지면 샬릭이 칼 들고 잘 해결하겠지.




* * *




테레모 베르쟈, 일곱 제국공 중 한 명이자 아크툴의 대영주. 불사공이라는 이명으로 불리는 그는 요즘 앓던 이가 빠진 듯 기분이 상쾌했다.


그동안 칼록의 성기사 하나가 주제도 모르고 설쳐댔으나 이제 그는 죽고 없다. 일이 복잡해지는 걸 막기 위해 남의 손을 빌리긴 했지만 어쨌건 문제가 해결됐으니 기쁘기 그지없다.


근심거리가 하나 사라진 덕분인지 요즘 몸이 날아갈 듯 가볍다. 원래부터 뼈만 남은 몸이라 지나칠 정도로 가벼웠지만 어쨌건.


“이대로 아무 일도 없으면 좋으련만······.”


남들이 자주 오해하지만 테레모는 전쟁에도 관심 없고 제위에도 관심 없다. 그가 제국공의 자리에 오른 건 어쩌다 보니 그런 일일 뿐이고 뭔가 야심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그가 원하는 건 무사안일. 이대로 아무 일도 없이 매일이 조용히 흘러가기만을 원한다. 제위? 그런 거야 아무나 가지라고······.


“아우, 머리 어지러워. 차원문 좀 제대로 열 수 없어?”


그런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집무실의 공간이 일그러졌다. 차원문 마법? 대체 어떤 놈이 감히 겁도 없이?


분노로 안광을 빛내던 테레모가 차원문에서 기어 나온 사람을 보고 헉 숨을 삼켰다.


“난 최선을 다했다고. 애초에 차원문은 내 전공이 아닌 걸 어떡해? 그리고 너만 어지러운 거야. 다른 사람들 다 멀쩡한데 뭘.”


“하긴 난 어렸을 때부터 차원문 멀미가 있긴 했지.”


시답잖은 소리를 지껄이며 차원문에서 나온 사람의 안면이 눈에 익다. 정확히는 그가 쓰고 있는 투구가.


“샬릭?”


테레모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저쪽에서 반색했다.


“오, 테레모. 잘 있었나? 또 보게 되서 반갑기 그지없어.”


난 아닌데. 테레모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긴 어떻게? 아니, 애초에 여긴 왜? 게다가 그 뒤에 딸려온 사람들은 또 뭐고?”


차원문에서 나온 건 샬릭과 요정 하나만이 아니었다. 척 보기에도 수십 명은 돼 보이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만약 테레모에게 눈이 있었다면 거의 주먹만 하게 커졌을 것이다. 저 사람들은 대체 뭐야?


샬릭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아, 이 사람들은 난민인데 네가 좀 받아.”


테레모가 반사적으로 말했다.


“내가 왜?”


여기가 무슨 난민 수용소인 줄 아나? 저 사람들을 내가 왜 받아야 하는데? 테레모가 어이없어 하자 샬릭과 함께 있던 요정이 속삭였다.


“친하다며? 반응 보니까 안 친한 것 같은데?”


“아니야, 친하다니까. 야, 테레모. 너랑 친구 맞지? 우리 친하잖아?”


샬릭이 테레모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힘으로 꾹 눌렀다. 순간 테레모는 자신이 아직 살아있는 인간이었을 적의 기억을 떠올렸다.


제국 대학에서 마법을 배우던 시절, 힘 있는 애들이 약한 애들 괴롭히는 모습이 딱 이랬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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