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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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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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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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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DUMMY

테레모가 싸늘한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명심하게, 샬릭. 문제가 생기면 난 자네를 물고 늘어질 거야. 알겠나? 나만 죽는 게 아니라 자네도 죽는 거라고.”


기껏 한다는 협박이 저런 건가. 샬릭은 껄껄 웃더니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왜 화를 내? 그냥 장난이었다니까. 설마 내가 염치도 없이 나 몰라라 할 리 없잖아. 흑암공이라면 죽일 만한 가치가 있지. 용은 아니지만 말이야.”


테레모는 제국 대학 시절을 떠올렸다. 남 괴롭히는 나쁜 놈들이 꼭 저런 말을 했지. 장난이었다고? 당하는 사람은 장난이 아니었단 말이다!


“난 이만 간다. 원래라면 밤도 늦었으니 여기서 하루 자고 갈까 했는데, 반응 보니 그랬다가는 진짜 칼 맞겠네. 다음에 또 만날 때까지 몸 건강히 있어라, 테레모.”


다음은 무슨? 테레모가 으르렁대듯 말했다.


“다음은 없어! 또 오기만 해봐라! 그땐 가만히 두지 않을 테니까!”


“화가 단단히 났군. 괜히 뭔 일 생기기 전에 얼른 도망쳐야겠어. 가자, 제리얀.”


샬릭이 제리얀을 데리고 얼른 자리를 떴다. 그들은 차원문을 통과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이런저런 일 때문에 잠은 다 잤군. 그래도 먼 길 가려면 조금이라도 눈 붙여야 할 거야.”


샬릭의 말에 제리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원래 있던 야영지로 돌아가는 대신 산채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사방에 시체가 즐비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전부 다 자신들이 만든 참상 아닌가.


두 사람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잠깐이나마 눈을 붙였다. 별로 잔 것 같지도 않은데 따스한 햇살이 얼굴 위로 비추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햇살 때문에 눈이 부셨기에 제리얀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샬릭은 이미 출발할 준비를 마친 뒤였다.


“아침 식사는 가면서 간단히 먹자고.”


두 사람은 염장 고기를 질겅질겅 씹으며 길을 떠났다. 짭짤하다 못해 혀가 따가울 정도로 짠 고기를 씹다 보니 물 생각이 간절했다.


제리얀이 수통의 뚜껑을 열다 말고 문득 샬릭을 쳐다봤다.


생각해보니 저놈은 단 한 번도 투구를 벗은 적이 없군. 북부인이 항상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채 돌아다닌다는 건 알지만 저토록 철저하게 투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경우는 없다.


혹시나 얼굴에 남들에게 보여주기 흉한 상처라도 있는 걸까? 어쩌면 커다란 화상을 입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식사 시간에 투구를 약간 들어 올릴 때 보니 그런 상처가 있는 것 같진 않았는데.


제리얀은 남 얼굴에 대해 왈가불가하는 게 무례한 짓임을 알고 있기에 궁금증은 그냥 가슴속에 묻어두기로 했다.


“용이 있는 곳까지 걸어갈 생각을 하니 몹시 짜증스럽군. 차원문 마법으로 한 번에 갈 수는 없나?”


한참 걷던 중에 샬릭이 물었다. 제리얀이 고개를 저었다.


“차원문 마법은 만능이 아니야. 내가 가본 적 있는 장소여야만 그쪽으로 문을 열 수 있어.”


“그럼 우린 꼼짝없이 며칠 동안 걷고 또 걸어야 한다는 소리군?”


“말이라도 타면 하루나 이틀 정도는 줄일 수 있겠지만······.”


다음 마을에 들리면 말이라도 구해야 할까. 하지만 사람도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 말을 키우고 있는 마을이 있을 것 같진 않다. 말을 구하려면 아마도 도시로 나가야 할 테지.


그럼 당분간은 쭉 도보로 이동해야 한다는 소리다. 물론 샬릭과 제리얀은 원래부터 걸음이 빠르고 체력에 자신 있었으므로 크게 문제 될 일은 아니었다.


“도착할 때까지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새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걷던 중에 제리얀이 중얼거렸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였다. 당장 며칠 사이에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나?


용을 죽이고, 악마를 죽이고, 바로 어제는 제국공의 거처에 쳐들어갔다 왔다. 남들한테 그런 일이 있었다고 설명하면 그게 뭔 미친 소리냐고 욕을 먹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그런데 조금 걱정인걸.”


“또 뭐가?”


참 주절주절 말도 많군. 샬릭이 속으로 생각하는데 제리얀이 말했다.


“불사공 말이야. 우리가 흑암공의 부하인 악마를 죽였잖아? 그리고 그놈의 제물이 될 뻔한 사람들을 구출해서 불사공에게 맡겼고. 이번 일로 흑암공과 불사공의 사이가 틀어질 수도 있는데 불사공이 과연 우리가 맡긴 사람들을 가만히 둘까? 어쩌면 죄다 죽여버릴 수도 있잖아.”


“그럴 일은 없을걸.”


“무슨 근거로 그리 확신해?”


샬릭이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그럴 인간이 아니니까. 애초에 인간이 아니긴 하지. 시체 마법사니까. 어쨌건 그놈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겁쟁이야. 내가 몇 번 대화해보니 알겠더라고. 아무렴 내가 자기 짜증 난다고 사람 죽여버리는 미치광이한테 사람들을 맡겼을까.”


불사공이 겁쟁이라고? 거느린 세력으로만 따지면 일곱 제국공 중 제일이라 여겨지는 그가?


제리얀은 그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자신보다야 샬릭이 테레모에 대해 훨씬 더 잘 알지 않겠나.


“그리고 흑암공도 당장 움직이진 못할걸. 내가 알기로 그놈도 적이 제법 많다고 하더군? 테레모와 전쟁을 벌이면 그 기회를 틈타 다른 놈들이 달려들 텐데 경거망동하긴 어려울 거야.”


“하기야 그런가······. 어쨌건 우리가 구한 사람들이 위험해질 일은 없다는 거지?”


“아마도.”


세상에 확실한 건 없다. 그들이 테레모의 비호 아래에 있다고 해서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리라는 확신은 없으니까.


그러나 당장은 아무 일도 없으리라는 것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 제리얀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걱정일랑 그만하고 좀 더 빨리 걸어. 이러다가 또 길바닥에서 노숙하겠어.”


“그러지. 자, 힘차게 가보자고.”


두 사람은 산꼭대기까지 올랐다가 다시 아래로 향했다. 옛 제국이 남긴 유산인 대로를 따라 걷고 또 걷다 보니 어느새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그러나 그조차 잠깐이었고 금세 어둠이 몰려왔다. 새까만 어둠 속에서 주홍색 빛이 반짝이며 주변의 훈훈한 훈기를 흩뿌렸다.


샬릭과 제리얀은 능숙하게 야영 준비를 했고 짧은 잠을 청한 뒤에 다시 일어나 길을 걸었다.


제리얀은 가는 길에 아무 일도 없길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그 소원을 이루어지지 않았다.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길 위를 걷던 중에 갑작스레 강도들이 튀어나왔고 그들은 진짜배기 강도에게 모든 걸 잃고 죽음을 맞이했다.


또 얼마 정도 가다 보니 이번에는 들개를 닮은 괴물 무리가 달려 나왔다. 그들은 몹시 굶주렸는지 입에서 끈적한 침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 숫자가 무려 열 마리나 되는 데다가 굶주림으로 흥분해있어 매우 위험한 상대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건 북부인과 요정 마법사에겐 별로 상관없는 문제이기도 했다. 칼이 번쩍이고 불길이 타오를 때마다 들개 괴물이 몇 마리씩 죽어 나갔다.


오 분도 지나지 않아 들개 괴물이 전부 죽었다. 제리얀은 손가락에 붙은 불을 후 하고 불어 끄며 말했다.


“끔찍한 세상이야. 한때 제국의 위대함을 상징하던 대로 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원래라면 이곳은 제국의 부가 흐르고 있어야 해. 그런데 지금 있는 거라고는 남 등쳐먹을 생각 외엔 없는 강도와 굶주린 괴물들뿐이군.”


전부 다 제국의 멸망 때문이지. 샬릭이 보기에 제리얀은 그 사실에 뭔가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아 보였다. 웃기는 놈. 자기 때문에 제국이 멸망한 것도 아닌데 거기에 왜 책임감을 느끼나?


“혼란을 수습해야 할 제국공들은 그저 제위를 두고 다투기 바쁘지. 그래선 안 돼. 힘 있는 자라면 그래선 안 된다고. ”


“그 친구들에게 이 세상을 바로 잡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군?”


“아닌가? 애초에 제국공은 그러라고 있는 자리잖아. 황제가 광할한 제국의 영토를 전부 다스릴 수 없기에 힘 있는 자들에게 책임과 권리를 나누어 줬으니 그게 바로 제국공이야. 그러니 그들에겐 책임이 있어. 비록 제국이 멸망했다고 해도 그들이 제국공이라 불리는 이상은.”


사실 샬릭으로서는 별 관심도 없는 이야기였다. 다른 지역이야 제국공이라도 있으니 나름대로 질서가 잡혔지만 북부는? 거긴 제국공이 없는 유일한 지역이라 질서랄 게 없다. 그냥 다들 알아서 살다가 죽는다.


제국공의 지배를 받아본 적도 없는 샬릭에게 있어서 제국공의 책임이 어쩌고 하는 말은 그리 와닿지 않았다.


“제국공 그 친구들한테 불만이 많은 모양이군.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래서 그 친구들이 다툼을 멈추고 세상의 혼란을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당연하지.”


“아니야. 그 친구들이 해야 하는 건 그런 게 아니야.”


아니라고?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다고? 제리얀이 의아한 얼굴을 하자 샬릭이 답했다.


“그 친구들이 해야 할 건 서로 죽고 죽여서 단 한 명의 황제를 탄생시키는 거야. 그래야만 이 혼란은 끝난다. 내 생각은 그래.”


과격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샬릭은 황제라는 구심점이 다시 생겨나야만 이 모든 혼란이 종식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주 틀린 관점은 아니지만······.


“저기 마을이 있군. 다행이야, 오늘은 노숙하지 않아도 되겠어.”


제리얀이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에 마을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샬릭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마을이 있었는데 그 규모가 제법 돼 보였다. 어쩌면 말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런 생각을 하며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 경비병이 말을 걸어왔다.


“여행자들인가?”


“그래.”


“조용히 있다 가게. 마을에서 괜한 소란 일으키지 말란 말이야.”


외지인을 그리 반기지 않는 모양이군. 샬릭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여기 여관 있나? 하룻밤 자고 갈 생각인데.”


“여관이라면 있지만 지금은 방이 다 찼을걸. 상인들이 와서 머물고 있어서 말이야. 정 잘 곳이 없다면 신전으로 가봐. 거기 가면 헛간이라도 빌려줄 테니까.”


경비병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마을 끄트머리에 있는 언덕이었는데 그 위에는 신전이 있었다.


샬릭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친절한 도움에 감사하지. 그럼 우리는 이만.”


샬릭과 제리얀은 경비병과 헤어져 언덕으로 향했다. 조금 걷다 보니 신전의 모습이 점차 선명해졌다.


“보아하니 칼록의 신전 같은데.”


칼록은 대륙에서 가장 대중적인 신앙이다. 그런 만큼 신전이라고 하면 대개 칼록의 신전인 경우가 많았다.


“다행이네. 칼록은 길 잃은 여행자를 만나면 먹을 것과 잠잘 곳을 내주라고 가르쳤지. 문전박대 당할 일은 없겠어.”


제리얀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언덕 위를 올라 신전의 입구에 섰다. 입구에서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있던 남자가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당신들에게 칼록의 은총이 함께하길. 보아하니 여행자이신 것 같은데 하룻밤 머물 곳을 찾아오셨습니까?”


샬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염치없지만 하룻밤 신세 좀 질 수 있을까? 맨입으로 부탁하긴 좀 그러니 칼록에게 공양이라도 좀 할 생각이야.”


“아니요,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는 칼록의 가르침에 따를 뿐인걸요. 그럼 이쪽으로 오시지요. 마침 방 하나가 비었습니다.”


샬릭과 제리얀이 남자를 따라 신전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갑작스럽게 하얀 빛이 반짝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고개를 돌려보니 빛은 샬릭의 몸에서 나오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가 허리춤에 찬 주머니에서.


“뭐야?”


샬릭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손에 들고 보니 반지였다.


“반지? 그건 왜 들고 다녀?”


제리얀의 물음에 샬릭이 어 소리를 냈다. 이게 왜 여기 있더라.


“그 반지는······.”


남자가 반지와 샬릭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말했다.


“칼록을 섬기는 성기사의 반지로군요. 칼록에 대한 신앙심의 증거로서 죽기 전까지는 절대 뺄 수 없는 반지인데, 이걸 왜 당신이?”


생각해보니 발라트를 죽이고 이 반지를 받았지. 샬릭이 기억 속에 묻혀 있던 발라트의 이름을 끄집어냈다.


“오해할까 봐 말하는데 뺏은 건 아니야.”


“뺏은 건 아니라는 말씀은···?”


“이 반지 주인이 발라트라는 놈인데, 내가 걔를 죽인 건 맞아. 그런데 반지를 뺏지는 않았어. 그놈이 죽고 나서 시체 기사로 되살아났는데 갑자기 반지를 주더라고.”


“그러니까 죽인 건 맞는데 반지를 뺏지는 않았다? 성기사는 죽고 나서 시체 기사로 되살아나더니 갑자기 반지를 줬고? 그게 대체 무슨?”


듣고 있던 제리얀이 가만히 생각했다. 해명하는 게 오히려 역효과 같은데 그냥 입 다물고 있는 게 낫지 않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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