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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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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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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6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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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6

DUMMY

“내가 악마로서 이런저런 놈들을 다 먹어보긴 했지만 이런 놈은 처음이군. 정신이 이상한 것 같은데 먹어도 되나? 괜히 상한 걸 먹었다가 배탈이라도 나는 게 아닐까 걱정이야.”


악마가 흐음 소리를 내며 팔짱을 꼈다. 샬릭을 먹어도 될지 말지 고민하는 모양새였는데 사람을 그저 식량으로만 생각하는 그 모습이 끔찍하기 그지없다.


가만히 있던 제리얀이 말했다.


“이봐, 하나 물어볼 게 있다!”


악마가 제리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여전히 팔짱을 낀 채로 고민스러워하는 얼굴이었다.


“상자에 썩은 사과가 하나 있으면 그놈 때문에 다른 놈도 다 썩어버린다던데, 너도 혹시 저 정신 이상한 놈 때문에 상해버린 게 아닐까 걱정스러워. 감히 악마에게 소리를 지르는 걸 보면 확실히 정신 제대로 박힌 놈은 아닌 것 같다만······.”


“물어볼 게 있다니까!”


“꽥꽥 소리 지르지 않아도 다 들린다. 물어볼 게 있으면 물어봐라.”


“아까 산적 놈들한테 제물을 받는다고 했지? 이런 일이 자주 있었나?”


악마가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답했다.


“자주 있었냐고? 글쎄, 거의 한 달에 한 번씩은 제물을 받았던 것 같은데.”


“그럼 산적 놈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마을을 약탈하며 사람들을 납치했다는 소리인가?”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크려면 몇 년은 걸린다던데, 그런 걸 보면 놈들이 직접 먹을 걸 키워냈을 것 같진 않군. 아마 주변을 돌아다니며 사냥하지 않았겠나.”


제리얀이 이를 부득 갈았다.


“사람은 먹을 게 아니야.”


“글쎄, 관점의 차이 같은데. 너희도 소나 양을 먹잖아. 악마 입장에서도 크게 다를 게 없어.”


“다를 게 없다니? 말조심······.”


“왜, 사람은 말할 줄 아는 지성체니 먹으면 안 되고 소나 양은 말할 줄 모르니 먹어도 된다고? 세상에 먹히기 위해 태어난 존재도 있나? 보아하니 너도 지금 고기를 먹은 것 같은데 그게 뭔 고기인지는 몰라도 그놈 역시 너한테 먹히긴 싫었을 거야.”


제리얀은 말문이 막혔다. 그 말에 반박하려 해도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보다 철학적인 용이로군? 그 말이 맞아. 세상에 먹히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어디 있겠어?”


그 말을 한 건 샬릭이었다. 그가 칼자루 위에 손을 올린 채로 악마를 똑바로 쳐다봤다.


“오, 정신 이상한 놈인 줄 알았더니 의외로 머리가 돌아가는 모양이야. 아니면 머리가 돌다 못해 한 바퀴 빙 돌아서 제자리로 돌아온 건가?”


“식생활은 생명 활동의 근간인데 거기에 생명의 소중함을 들이밀어선 안 되지. 남 생명이 소중하다면 내 생명도 소중해야 말이 되지 않나. 다 먹고살려고 하는 일인데 나 굶어죽으면 그게 뭔 의미가 있어? 모든 생명은 먹고 먹히기 위해 태어났다. 하지만 오로지 죽기 위해 태어난 생명도 있지. 그건 바로 용이야.”


잘 가다가 갑자기 웬 개소리일까. 악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사이에 샬릭이 칼을 뽑으며 말했다.


“넌 오늘 뒈졌다.”


악마는 이젠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당장 식사를 하러 가야 하는데 웬 정신 이상한 놈에게 붙잡혀 시간 낭비나 하고 있지 않나.


갑옷으로 제법 단단히 무장하긴 했지만 그래봤자 고작 인간이다. 강력한 힘을 가진 악마로서 그리 위험한 적은 아니다.


그나마 위협이 될 만한 존재라면 저기 있는 요정 정도일까. 악마는 일단 샬릭부터 죽인 다음에 제리얀을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더 상대하기 귀찮다. 일격에 죽여주마.”


악마가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러 샬릭의 머리를 날려버리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샬릭의 모습이 흐릿해지는 듯하더니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요정 놈이 뭔가 수작을 부렸나? 모든 요정은 타고난 요술쟁이니 마법으로 놈을 이동시켰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지만······.


“음?”


악마는 순간 등 뒤에서 뭔가 통증이 느껴진다는 걸 깨달았다.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쿵 하고 바닥에 무거운 게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저게 뭐지? 박쥐의 날개를 닮은 듯한 저건······.


“크아아아악!”


인지는 고통보다 한 발자국 늦게 찾아왔다. 그리고 고통의 근원을 인지하는 순간 정신적인 충격이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악마는 자신의 양 날개가 잘려 나간 걸 보고 산이 떠나가라 비명을 내질렀다. 시끄러운 비명 속에서 샬릭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울렸다.


“용 사냥을 할 때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 뭔지 아나?”


악마가 그딴 걸 내가 어찌 아냐고 성을 내는데 흑색 칼날이 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날개를 자르는 거야. 너희 용들은 조금만 불리해지면 하늘로 날아서 도망치거든. 그리곤 입에서 불을 뿜지. 그러니까 용 사냥을 할 땐 제일 먼저 날개부터 잘라야 해.”


“닥쳐!”


궁금하지도 않은 지식을 주절거리는 꼴이 몹시 짜증 난다. 악마가 성을 내며 오른쪽 손을 크게 휘두르자 샬릭이 뒤로 물러났다.


그 틈에 흐읍 하고 기합을 내지르자 등 뒤의 상처가 부글부글 끓더니 새로운 날개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악마가 크게 웃으며 날갯짓했다.


“멍청한 놈! 그깟 날개야 몇 번이고 재생할 수 있다! 날개 좀 잘랐다고 네가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그리 외치며 하늘로 날아오르려 할 때였다. 빛이 번쩍이는 듯하더니 등 뒤로 뜨거움이 번졌다.


“아, 그래. 용 사냥을 할 땐 날개부터 잘라야 한다는 말이지?”


이번엔 또 누구 짓인가 하고 봤더니 제리얀이었다. 그의 손에서 불길이 이글거렸다.


“배우는 게 빠르군. 확실히 넌 명예 북부인이 될 자격이 있어.”


“그런 자격 필요 없어. 그것보다 일단 저놈부터 죽이자고!”


제리얀이 씩 웃으며 마법을 난사했다. 까악 소리를 내며 날아오는 불새가 악마를 집어삼키려 했다.


“이 버러지 같은 놈이!”


악마는 맨손으로 불새의 목을 잡아 비틀었다. 그 순간 불새의 몸이 불꽃으로 화하더니 악마의 손을 타고 뻗어나갔다.


재빨리 불새의 목을 놨지만 이미 붙은 불은 어깨까지 타고 올라왔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 불이 몸 전체로 번지는 일은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어깨가 잘렸다는 점이다.


“크악!”


샬릭의 칼이 악마의 심장을 노렸다.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나자 등 뒤에서 불꽃이 튀어나왔다. 등이 타오르는 고통에 연신 비명을 내지르자 더 듣기 싫다는 듯 샬릭의 칼이 배를 찔렀다.


“끄억······.”


아무리 악마라도 이만한 공격을 당하고도 무사할 수는 없다. 샬릭이 배에 박힌 칼을 뽑자 상처에서 피가 왈칵 쏟아져 내렸다.


악마는 핏발 선 눈으로 샬릭에게 달려들었다. 하나 남은 팔을 휘둘러 그 몸을 붙잡으려 했지만 칼날에 손가락이 모두 잘려 나가는 게 먼저였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날아온 칼날에 뱃가죽이 잘렸다.


죽 그어진 상처에서 내장이 쏟아져 나가는 게 느껴졌다. 악마는 너무 큰 고통이 느껴지면 머리가 그걸 인식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됐다.


분명 길쭉한 내장이 바닥에 쏟아져 내리고 있는데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급속하게 몸이 식으며 오한이 드는 기분이었다.


악마는 뭔가 말하려고 했으나 혀가 꼬여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는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나를······.”


“이 독한 놈 같으니라고. 기어코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겠다 이거지?”


이 미치광이 녀석, 난 용이 아니라니까. 악마는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었지만 몸이 차갑게 식어 그럴 수 없었다.


이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느껴졌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후, 후회할 거다······.”


“후회하다니, 뭘? 널 건드린걸?”


“그래, 나는 악마 군주······.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아느냐?”


“더 강한 용?”


악마가 웃었다.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고 웃었다.


“흑암공(黑暗公)······.”


그 이름이 왜 거기서 나오나. 샬릭이 묻기도 전에 악마의 몸에서 거대한 힘이 터져 나왔다. 이 사악한 용 녀석, 자기 목숨을 대가로 날 길동무로 데려가려 하는군.


샬릭은 껄껄 웃더니 손을 뻗어 악마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당장이라도 터져 나갈 듯 거칠게 날뛰던 힘의 기세가 약해졌다.


무언가 강력한 억지력에 의해 붙잡힌 것처럼 바깥으로 나아가려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한 점에서 머물렀다.


좀 더 시간이 지나니 힘의 기세가 약해지고 악마의 두 눈에서 안광이 꺼져가기 시작했다. 결국 샬릭이 심장을 완전히 뭉개버리자 날뛰던 힘은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


악마의 마지막 발악은 그걸로 끝이었다. 순간 죽음을 각오했던 제리얀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내 마법으로 막을 수 있을지 없을지 장담할 수 없었는데······. 혹시 그것도 용의 능력인가? 하기야 용은 마법이 거의 안 통하니까.”


“그냥 힘으로 찍어누른 거야.”


그게 가능한 일인가? 용 사냥꾼이니까 가능할지도 모른다. 제리얀이 대충 납득하고서 말했다.


“그런데 흑암공이라니? 내가 알기로 흑암공이라면······.”


“들어본 적 있나?”


“당연히 알지. 일곱 제국공 중 한 명이잖아. 초대 황제가 굴복시킨 대악마로서 대대로 제국에 충성했지. 지금은 제국의 멸망 이후 악마들의 주인으로서 유명해.”


그러니까 흑암공은 불사공이라 불리는 테레모와 동격의 존재다. 확실히 그 정도면 뒷배랍시고 자랑할 만하다.


샬릭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그런데 용이 왜 대악마한테 충성하지?”


“···이놈이 용이 아니니까. 아니, 그 용 타령은 그냥 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이놈이 용이라고 믿었던 거야?”


“용이 아니었다고? 난 이놈이 이 악물고 자기 정체를 숨긴 건 줄 알았는데.”


목숨 걸고 싸우는 상황에서 자기 정체를 숨겨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나. 제리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단 급한 불은 껐군? 이놈을 죽였으니 사람들이 당장 죽을 일은 없을 것 아니야. 그런데 넌 이놈이 진짜 용인 줄 알고 심장 먹을 생각에 들떴을 텐데 아니라서 어째······.”


“그거라면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왜? 샬릭 성격에 악마가 자길 속였다고, 물론 악마는 속인 적 없다, 길길이 날뛸 만한 일인데 어째서인지 침착하다.


제리얀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샬릭의 몸 주변으로 빛이 떠다니는 걸 발견했다. 붉은색 빛, 저건 아마······.


“용이 왜 강한지 아나?”


뜬금없는 질문에 제리얀이 반사적으로 답했다.


“그냥 날 때부터 강한 것 아닌가? 거대한 덩치에 단단한 비늘, 입에서 뿜는 불까지······.”


“용은 말이야, 용의 심장에서 생성된 막대한 양의 힘 덕분에 뭔가를 먹을 필요가 없어. 생식 활동을 하지 않아도 생존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말이야. 그런데 그들이 왜 뭔가를 사냥해서 먹는 줄 아나? 놈들은 사냥감의 심장으로부터 영적인 힘을 섭취해.”


제리얀은 용의 생태에 대해 잘 모르므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왜 지금?


“사냥감으로부터 영적인 힘을 섭취하고 또 섭취하다 보면 용의 심장이 점점 더 커져. 그래서 용의 심장이 더 커지면? 수명이 늘어나고 더 강력한 힘을 휘두를 수 있게 되지. 용이 강한 건 그 덕분이야. 심장을 먹고 영적인 힘을 흡수하니까.”


“어, 그래서······?”


“난 용의 심장을 먹고 용과 같은 힘을 얻었지. 물론 그래봤자 결국 인간인지라 진짜 용이 된 건 아니야. 그런데 용의 심장을 몇 개나 먹다 보니 점점 더 용과 비슷해지고 있거든? 그리고 난 얼마 전에 어린 용 하나를 사냥하고 그 심장을 먹었지.”


잠깐, 뭔가 무시무시한 소리가 나올 것만 같은데. 제리얀이 긴장하는 가운데 샬릭의 말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그 덕분인지 용과 같은 능력을 하나 더 얻은 것 같다. 그러니까 나도 용과 마찬가지로 사냥감의 심장을 먹으면 영적인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소리야.”


샬릭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던 빛이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제리얀이 멍하니 말했다.


“그거······.”


······굉장히 안 좋은 소식이군.


그러니까 이제 이 용 사냥꾼 놈이 영적인 힘을 얻겠답시고 용 말고 다른 것도 사냥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소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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