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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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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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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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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DUMMY

“아니, 그거······.”


샬릭은 차마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그거 그냥 장난이라고, 내가 너 놀리려고 쓴 거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일흔이 다 된 노인이 침침한 눈으로 정성스레 저걸 일곱 장이나 쓰고 있었을 걸 생각하면 그럴 수 없다. 샬릭이 아무리 북부인이라도 그건 너무 잔인한 일이다.


“······그래, 잘했군. 저주가 두렵다면 열심히 써야지.”


“아, 역시 이건 저주의 일종이었군? 무시하지 않길 잘했어.”


샬릭의 투구 속에서 측은한 눈빛을 보냈다. 물론 무적공은 몰랐겠지만.


“어쨌건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이제부터 내가 널 죽일 건데, 혹시 불만 있나?”


무적공의 도발에 샬릭이 껄껄 웃었다.


“물론 없지. 그런데 괜찮겠나? 이길 자신은 있고?”


“내가 너한테 지고 나서 놀고만 있던 줄 아나? 난 단 하루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승산이 없더라도 해봐야지. 나한테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


인간의 수명은 기껏해야 80년 정도다. 요정이나 악마, 용 따위는 수백 년을 살지만 인간은 그만큼 오래 살 수 없다.


아무리 제국공이라도 정해진 수명으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는 법이다. 차라리 테레모처럼 인간성을 버린다면 모를까.


하지만 용의 심장을 먹으면 수명이 늘어날지도 모른다. 무적공은 거기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물론 샬릭은 용이 아니라 용 사냥꾼이지만, 어쨌건 용이랑 별로 다를 게 없는 놈이니 먹으면 어디든 도움이 되겠지.


“그 정도로 급했다면 직접 용 사냥에 나서지 그랬어. 백룡공이 그리 무섭나? 참 섭섭하군. 그놈은 무서워하면서 나는 안 무섭다 이거지. 오히려 날 더 무서워해야 할 텐데.”


“시끄럽다. 오늘 널 죽이고 몸보신 좀 해야겠다. 이리 와.”


무적공이 바닥에 침을 뱉더니 샬릭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역시나 공작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천박한 행동거지였다.


샬릭은 껄껄 웃더니 제리얀에게 뒤로 물러나라고 말했다.


“부하라도 좀 데리고 오지. 내가 봤을 땐 협동해야 그나마 승산이 있을 것 같은데.”


“그건 네 생각이고, 이 자식아. 아까부터 말이 많아. 겁이라도 먹은 게냐? 그게 아니라면 쫑알거리지 말고 얼른 덤벼.”


무적공이 씩 웃었다. 그러나 샬릭이 보기에 그건 초조함이 가득한 웃음이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르겠지만, 무적공의 손은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원래 겁먹은 개가 더 요란하게 짖는다고 했다. 무적공은 지금 긴장하고 있었다. 이미 한 번 자신을 이겼던 상대에게 도전하는 게 얼마만큼의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잘 알고 있기에.


“빨리 죽는 게 소원이라면 들어드려야지.”


샬릭이 칼자루를 고쳐 잡으며 전투 자세를 잡자 무적공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 역시 허리춤에 찬 칼을 뽑았다. 그것도 한 자루가 아니라 무려 두 자루나.


“쌍칼? 너 원래 쌍칼을 썼던가?”


샬릭이 기억하기로 무적공은 원래 칼 한 자루만을 썼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지금은 칼을 두 자루나 들고 있었다.


무적공이 두 자루의 칼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말했다.


“너에게 졌던 날, 난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왜 졌을까? 내 어떤 점이 부족해서 졌을까? 난 몇 달을 칩거한 채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다 결국 답을 찾아냈지.”


“그 답이 뭔데?”


“부족했던 거야.”


“부족하다니, 어떤 게? 실력?”


무적공이 큭큭 웃더니 갑작스레 땅을 박차고 뛰었다.


“칼이 부족했던 거다! 인정하마! 칼 한 자루로는 널 이길 수 없다. 그럼 두 자루는 어떨까!”


아니, 저놈은 칼을 두 자루 들면 두 배로 강해진다고 생각하는 건가? 단지 그따위 이유만으로 쌍칼을 들고 싸우는 걸 연습했다고?


샬릭은 어이가 없어졌다. 저놈이야말로 북부에서 태어났어야 했는데.


“그동안 수련한 내 칼맛을 봐라!”


무적공은 빨랐다. 지금까지 먹은 나이가 무색하게 눈으로 쫓기도 어려울 만큼 빠르게 움직였다.


그가 양손에 든 칼이 서로 다른 각도로 움직이더니 일시에 샬릭을 향해 달려들었다. 빠르기도 빠르지만 묵직하기까지 한 공격이었다.


첫 공격을 막아낸 샬릭이 호오 소리를 냈다. 하루도 빠짐없이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게 빈말은 아니었던 모양이군.


무적공의 공격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칼과 칼이 부딪칠 때마다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고 사방으로 불씨가 튀었다.


공격은 빨랐다. 일 초에 수십 번에 달하는 공격이 양쪽에서 번갈아 가며 날아왔는데 아무리 샬릭이라도 그 모든 공격을 전부 막아낼 수는 없었다.


다행히도 그에겐 단단한 갑옷이 있었다. 무적공의 공격이 아무리 날카롭더라도 갑옷을 벨 수는 없었다.


샬릭은 갑옷을 믿고서 반격에 나섰다. 두 사람의 칼이 서로 엉켰다. 그대로 힘겨루기에 들어가려는 찰나에 무적공의 왼쪽 칼이 날아왔다.


그 공격이 어찌나 묵직했는지, 갑옷을 입고 있음에도 몽둥이에 얻어맞은 것처럼 몸이 얼얼했다. 만약 샬릭이 지금 입고 있는 게 운철로 만든 갑옷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갑옷 채로 베였으리라.


“봐라!”


무적공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샬릭이 윽 소리를 내고 있을 때 갑작스레 발차기가 배에 꽂혔다. 그 몸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그러고도 날아가는 힘이 완전히 죽지 않아 샬릭의 몸이 바닥을 한 바퀴 구르고서 그대로 벽에 부딪혔다. 원래부터 약해져 있던 벽이 그대로 무너져 샬릭 위로 쏟아졌다.


“날 봐!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똑똑히 보라고!”


무적공이 울부짖듯 소리쳤다. 뒤에서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제리얀이 헉 하고 숨을 삼켰다.


과연 이 세상에 단 일곱 명뿐인 제국공이다. 샬릭은 무적공이 제국공 중에서 제일 약하다며 무시했는데 어쩌면 그건 지나친 오만이었을지도 모른다.


하기야 무적공은 북부인도 아닌 주제에 용을 죽일 뻔했던 자가 아닌가. 그때 샬릭에게 진 이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수련했으니 지금은 훨씬 더 강해졌으리라.


설마 지는 건 아니겠지. 지금이라도 내가 끼어들어야 하나? 그런 식으로 이기면 샬릭이 화를 낼 것 같은데······.


제리얀이 걱정에 빠져 있을 때였다. 무너졌던 벽이 들썩거리는 듯하더니 무적공을 향해 돌덩이가 휙 하고 날아갔다.


당연히 무적공은 그 공격에 반응했다. 가볍게 칼을 휘둘러 돌덩이를 잘라버리고는 두 눈을 부릅뜰 때였다.


어느새 샬릭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그가 힘껏 휘두른 칼을 보고서 무적공이 다급히 두 자루의 칼을 머리 위로 들었다.


챙! 머리 위에서 강하게 내려치는 공격에 무적공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분명 공격을 막았는데 손목이 저리다.


샬릭이 다시 한번 칼을 휘둘렀다. 무적공은 공격을 막으면서 약하게 신음을 내뱉었다. 그는 힘으로 찍어누르려는 샬릭의 의도를 깨닫고서 칼날을 비스듬히 기울였다.


손목을 흔들어 칼날을 흘려낸 뒤에 곧장 반대쪽 손의 칼을 내질렀다. 샬릭도 재빨리 자세를 바꾸려 했지만 그보다 무적공의 공격이 한 박자 더 빨랐다.


갑옷 덕분에 몸이 뚫리진 않았지만 명치를 찔려 순간 호흡이 답답해졌다. 샬릭이 투구 속에서 입술을 깨물고 있자니 무적공의 칼날이 머리를 후려쳤다.


깡 소리가 나며 샬릭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다음 공격이 샬릭의 어깨를 때리더니 바로 반대쪽 칼이 따라붙으며 또 한 번 얼굴을 후려치려 했다.


그러나 이번엔 샬릭도 반응했다. 그는 건틀릿 낀 손으로 무적공의 칼날을 붙잡고서 그를 향해 자기 칼을 내질렀다.


무적공은 멍청하게 있지 않았다. 붙잡힌 칼은 바로 버리고 뒤로 물러나 공격을 피했다. 잠깐 거리가 벌어지는 듯하더니 무적공이 다시 거리를 좁혔다. 그가 칼을 휘둘러 샬릭의 손목을 강하게 때렸다. 그 충격으로 붙잡고 있던 칼이 튕겨 나가자 무적공이 바닥을 박차고 위로 뛰었다.


마치 서커스라도 하는 것처럼 공중에서 칼을 잡아챈 그가 샬릭의 뒤로 떨어졌다. 착지와 동시에 몸을 돌려 등 뒤를 강하게 그었다.


“······인정하마.”


물론 갑옷 덕분에 상처는 없었다. 그러나 샬릭은 정말 칼에 베인 것처럼 등 뒤가 욱신거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제아무리 용이라도 이만한 성과는 내지 못하리라.


“확실히 강해졌군. 나도 전력으로 싸우지 않으면 위험하겠어.”


샬릭이 뻐근한 어깨를 이리저리 돌리며 자세를 고쳐잡았다. 무적공은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큭큭 소리를 냈다.


“내가 말했지, 이 자식아. 옛날의 내가 아니라고. 그래, 나도 강해졌다 이거야······.”


그는 웃는 건지 아닌 건지 모를 얼굴이었다. 한참 동안 끅끅거리며 웃던 그가 양손의 칼을 빙글빙글 돌렸다.


샬릭이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래도 넌 나한테 안 돼. 왜인 줄 아나?”


화르륵! 갑작스레 공기가 뜨거워지더니 샬릭의 몸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마법사 놈이 뭔가를 했나? 무적공이 재빨리 제리얀을 향해 고개를 돌리니 그가 내가 아니라는 듯 세차게 손을 흔들었다.


그럼 저건 대체?


“난 용 사냥꾼이거든. 그것도 진짜배기지.”


불타고 있음에도 샬릭의 목소리는 덤덤했다. 그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는 듯 보였고 오히려 저 불을 자유자재로 다뤘다.


샬릭의 손을 움직이자 몸을 감싸고 있던 불꽃이 손끝으로 물 흐르듯 이동했다. 자연스럽게 손끝에 모인 불꽃은 칼자루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고 이젠 칼날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흑색의 칼날은 따스한 불길 속에서 신비롭게 빛났다. 무적공은 저 칼이 용조차 죽일 수 있는 무기라는 걸 안다.


“······용의 힘이냐?”


용의 심장을 먹은 자는 용과 같은 힘을 얻게 된다. 용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화염 숨결이니 용과 같아진 자는 그 힘을 다룰 권리가 있다.


지금까지의 샬릭이 그저 북부인으로서 싸웠다면 이제부터 그는 용 사냥꾼으로서 싸울 것이다. 그 두 단어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무적공은 타오르는 불꽃을 보고서 끅끅 웃었다. 지금 불타고 있는 건 저 칼날만이 아니었다. 늙은 용병의 두 눈에서도 시뻘건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호승심인가, 아니면 마지막 생명을 불사르는 발악인가.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저 짜증 나는 놈을 죽일 수만 있다면.


무적공이 호흡을 가다듬더니 칼자루를 고쳐 잡았다. 오른쪽에 잡고 있던 칼날이 은은한 녹색으로 빛났다.


“그래, 불타는 칼 멋있네. 근데 어쩌라고? 나도 이런 거 할 줄 안다.”


샬릭은 저게 뭔지 안다. 오러다. 저 힘을 다룰 수 있으면 일반적인 칼 따위로도 용의 비늘을 벨 수 있다. 무적공이 용 사냥에 성공할 뻔했던 것도 저 힘 덕분 아닌가.


“하나 묻지.”


“어떻게 했냐고? 안 가르쳐줘, 새끼야.”


“너 그 칼 휘두르면 나한테 무조건 뒈진다. 그래도 할 거냐? 죽음이 두렵진 않아?”


무적공이 자기 칼을 내려다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놈을 이기는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 뿌연 안개가 머릿속을 잠식한 것처럼 그 장면이 보이지 않는다.


무적공이 고개를 돌려 왼쪽 칼을 보았다. 오러가 맺히지 않은 칼날. 그걸 보고 있자니 다시금 머릿속이 깨끗해졌다.


내가 왜 왼손에도 칼을 쥐었더라. 왜 잘 돌아가지도 않는 왼손으로 미친 듯이 칼을 휘둘렀던가.


그 답이 저기에 있다.


무적공이 웃었다.


“멍청한 놈, 세상에 자기가 진다고 생각하고 싸우는 놈도 있더냐?”


아무것도 맺혀 있지 않던 왼쪽 칼날이 불그스름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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