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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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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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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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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DUMMY

“후우······.”


샬릭이 긴 숨을 토해냈다. 그는 꼿꼿이 선 채로 죽은 무적공을 향해 다가갔다.


전사에겐 전사다운 마지막이 필요한 법이다. 여기가 북부였다면 그 용맹함을 노래로 만들어 널리 알렸을 테지만 애석하게도 여긴 북부가 아니었다.


그러니 샬릭은 자신다운 방법으로 그의 죽음을 기억하기로 했다. 무적공의 영혼을 먹어 치움으로써 그 기억을 영원토록 간직하는 것이다.


그가 무적공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북부인들은 전사의 시체를 태우면 그 영혼이 천상에 가리라 여겼다. 그래서 누군가 싸우다가 죽으면 그 몸에 불을 붙여 망자의 넋을 애도했다. 육신이 타오르며 나오는 희끄무레한 연기가 곧 전사의 영혼이라 여기며.


무적공은 북부인이 아니었으나 전사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샬릭은 그를 북부의 방식대로 애도했다.


화르륵. 손끝에서 시작된 불꽃이 무적공의 몸을 감쌌다. 불꽃은 육신을 불사르고 영혼을 태웠다. 위대한 전사의 몸은 차츰 재로 변했고 바람을 따라 흩날리던 그것은 샬릭의 몸속으로 들어왔다.


샬릭은 웃었다. 그는 자신의 영혼이 충만해지는 걸 느꼈다. 그만큼 무적공이 가진 영적인 힘이 컸기 때문인데 그건 그가 그만큼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걸 뜻했다.


열심히 살았군. 확실히 넌 천상에 갈 자격이 있다.


샬릭은 무적공이 부디 천상에 오르길 기도했다. 그리하여 칼록이 그를 돌보기를 소원했다. 무적공이 칼록 신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정의의 신이 위대한 전사를 내치진 않겠지.


“샬릭!”


줄곧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제리얀이 샬릭에게 다가왔다.


“괜찮은 거야? 생각 외로 고전했네. 하기야 상대가 제국공이니까······.”


샬릭은 이미 무적공을 이겼던 적이 있다. 심지어 그때보다 더 강해졌으니 이 싸움의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이 싸움의 승리는 샬릭이 가져갔다. 다만 그 결과가 조금 달랐을 뿐이다.


무적공은 샬릭을 상대로 선전했다. 그럭저럭 잘 싸운 게 아니라 유효타까지 내면서 잠깐이나마 샬릭을 압도하기까지 했다.


제리얀이 알기로 무적공은 일곱 제국공 중에서 가장 약했다. 그런 그가 이 정도로 샬릭을 몰아붙였다는 건 놀랄 만한 일이었다.


“용병왕 그 양반, 저번보다 더 강해졌더라고.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게 거짓말은 아니었나 봐. 게다가 싸우는 도중에 깨달음을 얻어 한층 더 성장하다니? 만약 그때 용의 심장을 먹었더라면 제국공 중에서 상위권에 들 정도로 성장했을걸.”


샬릭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리고 이건 치졸한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난 인간보다는 용을 상대로 더 잘 싸워. 그도 그럴 게 난 용 사냥꾼이잖나? 용도 죽이는 놈이 그깟 인간 상대로 쩔절매는 게 말이 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북부인이라서 그런가? 제리얀은 저 말이 진짜 변명인지 아니면 사실인지 의아스러웠다.


샬릭의 말대로 용보다 인간을 죽이는 게 더 쉬운 일 아니었던가? 용도 죽이는 존재가 인간이 상대하기 더 어렵다고 말하는 건 좀······.


“설명하긴 어려운데, 일단 난 그래. 만약 용병왕이 아니라 용이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싸웠을걸.”


제리얀은 그냥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샬릭 정도 되는 존재가 자기 자존심 때문에 허접한 거짓말을 할 리는 없으니까.


“그래서 무적공의 힘을 흡수한 거야? 그 영적인 힘인가 어쩌고 하는 것 말이야.”


샬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대답을 하는 대신에 손가락을 튕겨 불꽃을 일으켰다. 불꽃의 크기야 촛불 정도에 불과했지만 중요한 건 크기가 아니라 그 색깔이었다.


본래 주홍색으로 빛나던 불꽃이 황금처럼 빛났다.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광경이었다.


제리얀은 입을 벌리고 헤 소리를 냈다. 불꽃의 색깔이 바뀌었다는 건 그만큼 샬릭의 힘이 더 강해졌다는 걸 뜻했다.


“용병왕 그 양반의 몸에 있던 영적의 힘이 상당하더군. 솔직히 이 정도 양이면 어지간한 용보다도 많아. 불쌍한 양반, 일단 아무 용이나 죽이고 봤어야지. 아무리 백룡공의 보복이 두려웠어도······.”


“내가 봤을 때 무적공은 백룡공이 두려웠던 게 아닐걸.”


“백룡공이 두려웠던 게 아니라고? 그럼 나한테 덤빌 게 아니라 그냥 용 죽이면 되잖아.”


제리얀이 큼 하고 목을 가다듬은 뒤에 말했다.


“제국공의 강함은 일신의 무력만으로 정해지는 게 아니야. 거느리고 있는 세력도 영향을 미쳐. 그런데 백룡공의 세력은 무적공의 세력보다 월등하거든? 백룡공이 무적공에게 결투라도 신청하면 모를까, 보복은 분명 전쟁의 형태로 이루어질 텐데 그러면 무적공의 승률은 극히 낮아져.”


샬릭이 가만히 듣고 있으니 제리얀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에 비해 넌 혼자잖아. 만약 무적공이 너에게 덤볐다가 지면? 그럼 그냥 거기서 끝이야. 네가 무적공의 영지로 돌아가서 그 많은 사람을 전부 학살할 것도 아니고 그냥 무적공 하나 죽고 끝이라고.”


샬릭은 왜 무적공이 혼자서 자신에게 덤볐는지 알 것 같았다. 솔직히 자신의 부하들을 전부 동원해도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미지수인데, 괜히 부하들을 동원했다가 지기라도 하면 전부 개죽음이 아닌가.


물론 이미 부하 몇 명이 죽긴 했지만 그건 샬릭의 실력을 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전보다 더 강해졌는지 어땠는지 알아보기 위한 정찰이다.


“그런데 이제 아스트도 큰일이군.”


“무적공이 죽었으니까?”


“그래. 아스트가 지금까지 번영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무적공의 무력 덕분이었으니까. 약하면 빼앗기는 게 당연한 시대야. 이런 시대에서 아스트를 다스리던 무적공이 죽었으니 모두가 군침을 흘리고 있겠지.”


아마 테레모는 안 그러고 있을걸. 그 소시민적인 시체 마법사는 오히려 이번 일 때문에 거대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서로 으르렁대기만 할 뿐, 적극적인 정복 활동이 없었지만 무적공이 죽음이 전쟁의 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


하나뿐인 제위를 노리는 싸움에서 중립 따윈 없다. 테레모는 싸움을 원하지 않더라도 제위를 노리는 싸움에 등 떠밀리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영지를 사랑하는 군주니까.


빼앗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키기 위해서 죽일 것이다. 훌륭한 애민 군주다. 그러니 만약 누군가 제위에 올라야 한다면······.


“그래도 당장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걸. 아스트에선 무적공의 죽음을 숨기려 할 테니까. 그리고 무적공은 나이가 많으니 자기 뒤를 이을 사람도 정해뒀을걸. 그에게 아들이 있던가?”


“아마 없는 걸로 아는데. 그래도 누군가 있긴 하겠지. 다만······ 그가 다른 제국공만큼이나 강할지는 모르겠어. 그 정도 강자가 있다면 분명 소문이 났을 테니까.”


어쨌든 아스트의 미래는 어둡군. 이것도 다 내가 무적공을 죽인 탓인데 책임을 져야 하나? 샬릭이 가만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테레모가 무적공을 죽였다고 소문낼까?”


제리얀이 기겁했다.


“왜 그런 소문을?”


“두 가지 이유가 있지. 첫 번째는 그래야 아스트가 안전할 테니까. 두 번째는 테레모가 죽였다고 소문이 나야 사람들이 나한테 관심을 안 가질 것 아니야.”


결국 일은 자기가 저지르고 뒤처리는 테레모에게 맡기겠다는 소리 아닌가. 제리얀은 북부인의 뻔뻔함에 질색했다.


“그랬다간 불사공이 노발대발할걸.”


“왜 화를 내지? 자기 경쟁자도 제거해줘, 땅도 거저 얻게 해줘, 다 해줬는데 왜?”


“해달라고 안 했으니까······.”


“그냥 제국공 싹 죽이고 그 친구 황제 만들어줄까? 그게 나을 것 같은데.”


샬릭은 농담처럼 말했지만 전혀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게 무섭다. 이미 여러 마리의 용을 죽였고 무적공의 영혼까지 흡수한 그는 충분히 그럴 만한 힘이 있었다.


물론 다른 제국공 전부의 세력을 혼자서 감당하긴 어렵다. 아무리 강하더라도 수적 우위는 무시할 수 없으니까.


그러나 제국공을 한 명씩 쓰러트려 나간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뒤를 봐줄 세력이 필요했다. 가령 테레모라거나······.


“무시무시한 소리는 거기까지 하자. 황제가 어쩌고 그런 건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제리얀은 누가 들을까 겁난다는 듯 목을 움츠렸다. 샬릭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래,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아니지. 우린 우리 할 일이나 하자고.”


“이제 어쩔 거야? 차원문도 닫혔겠다, 아스트로 돌아갈 수는 없는데. 애초에 돌아갈 이유도 없긴 하지만.”


“그때 칼록의 대신전에 대해 말했던 것 기억하나?”


“거기로 가려고?”


“칼록 그 양반이 날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잖아. 얼른 내가 와서 이 썩어빠진 세상을 쓸어버리길 원하고 있을걸.”


장담하는데 그건 착각일 것이다. 제리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쨌든 그리로 가자. 무적공 덕분에 거리가 제법 단축됐네. 칼록의 대신전은 아스트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까 말이야.”


두 사람은 일단 자리를 떠나려 했다. 차원문은 닫혔지만 여기서 어물쩍거리고 있다간 무적공의 부하들이 찾아올 수도 있었다.


그들이 두려운 건 아니지만 괜한 싸움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무적공의 영혼을 흡수한 덕분에 기운도 넘치겠다, 머뭇거릴 새 없이 당장 떠나려고 할 때였다.


“과연 아버님의 말씀대로군.”


어디선가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어디 숨어있다가 나타난 놈이야? 샬릭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돌리니 거기엔 은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가 있었다.


인간이지만 어딘가 이질적인 생김새였다. 사람들은 너무 아름다우면 오히려 어색함을 느낀다던데 과연 그 말대로였다. 조각처럼 빛나는 외모를 가진 남자는 조금도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다.


또한 그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일개 인간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강렬한 존재감이다.


샬릭이 반사적으로 칼자루 위에 손을 올렸다.


“제국공 사이의 지루한 대치를 끝낼 자가 있다면, 그건 바로 네놈이라고 했지. 이 땅을 진정 전쟁의 구렁텅이 속에 빠지게 할 자는 너뿐이라고 했다.”


“이 새낀 날 언제 봤다고 반말이지? 너 나 아냐?”


“알다마다? 용 사냥꾼 아니더냐. 우리의 원수지.”


내가 그쪽의 원수라고? 샬릭이 어 소리를 내더니 말했다.


“내가 워낙 죽인 사람이 많아서 그런데, 혹시 누구 아들 되시나?”


남자가 흥 소리를 내며 말했다.


“날 보고도 내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거냐?”


“글쎄, 미안한데 내 특기가 누구 고아 만드는 거라서 얼굴 봐도 잘······. 혹시 아버지 곁으로 보내드려?”


샬릭이 칼자루를 매만지자 남자가 부득 이를 갈았다.


“내 이름은 아콘드리엘이다. 그리고 내 아버지는 위대한 존재이자 제도의 수호자, 또한 진정한 왕 될 자이니라. 사람들은 경외를 담아 그분을 백룡공이라 부른다.”


아버지가 백룡공이라고? 제리얀은 물론이고 샬릭도 깜짝 놀랐다.


“그놈한테 아들이 있었다고? 그것보다 넌 용이 아닌데?”


용의 자식은 용이다. 그런데 아콘드리엘은 용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럼 양아들쯤 되나?


아콘드리엘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그건 또 아닌 모양이었다.


“물론 난 완전한 용이 아니다. 내 어머니는 인간이었으니 난 반인반룡이라 할 수 있겠군.”


“어머니가 인간이라고···?”


샬릭이 그답지 않게 우물쭈물했다. 그는 한참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러니까 백룡공이랑 너희 어머니가 서로 사랑을 나누어 네가 생겼다는 소리냐?”


“그래.”


샬릭이 몹시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그 진짜 궁금해서 묻는데······ 아버지가 용이고 어머니가 인간이면······ 들어가긴 하나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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