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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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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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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DUMMY

기사가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었으면 그딴 소리가 나오나? 내 부탁하는데 제발 조용히 돌아가게. 용이 깨어나기라도 하면 이 일대는 쑥대밭이 되는 거야. 그러니 제발 조용히 돌아가. 죄 없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꼴을 보기 싫으면.”


기사의 간절한 부탁에도 샬릭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네가 용 숭배자인지 아닌지는 일단 제쳐두고서, 그럼 언제까지고 용이 깨지 않길 기도만 하고 있을 건가?”


“뭐?”


“용은 한 번 잠들면 짧게는 몇 달이고 길게는 몇 년 동안 잠만 자지. 하지만 영원히 잠들어 있는 건 아니야. 내가 깨우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깨어날 텐데, 그럼 그땐 어쩔 셈이지? 제발 잡아먹지 말아 달라고 빌 건가? 아니면 제물을 바칠 테니 자기는 살려달라고 할 셈인가?”


기사가 입을 다물었다. 샬릭의 말대로 용은 언젠가 깨어날 것이다. 몇 달 뒤에 깨어날 수도 있고 어쩌면 바로 내일 깨어날 수도 있다.


결국 용의 잠을 방해하지 않는 건 문제의 해결에 대한 유보에 불과하다. 문제를 해결하길 원한다면 문제로부터 눈을 돌려선 안 된다.


그걸 알고 있지만······.


“물론 너희 같은 일개 병사들에게 용을 죽이라는 건 가혹한 요구지. 쥐 보고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라는 걸 넘어서 그 목을 물어 죽이라는 요구 아닌가?”


샬릭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 내가 대신해주지. 너희는 고작해야 쥐새끼지만 난 고양이 죽이는 사냥꾼이거든. 아, 혹시나 죄 없는 고양이는 왜 사냥하냐고 할까 봐 말하는데 고양이 어쩌고 하는 건 그냥 비유고 난 고양이 혐오하거나 그런 건 없어.”


마지막은 누구한테 하는 설명인지 모르겠다. 가만히 입을 벌리고 선 기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래선 안 돼. 우리가 하는 게 비겁한 도망이라는 건 알고 있다. 그래도 당장은 안전하잖나? 우리가 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위험에 몸을 던져야 하나? 난 그럴 수 없어.”


기사의 태도는 완고했다. 그는 위험한 도박에 목숨을 걸기보다는 비겁한 안전을 택했다. 사실 그 결정을 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샬릭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가. 안 된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


샬릭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의외로 순순히 돌아가는군? 기사가 안심하며 가슴을 쓸어내릴 때였다.


콱 하는 소리와 함께 시야가 암전했다. 그는 자신에게 뭔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기도 전에 바닥으로 쓰러졌다.


“안 되면 되게 해야지. 제리얀!”


가볍게 주먹을 턴 샬릭이 멍하니 있던 병사를 한 명 더 때려눕혔다. 제리얀은 눈치껏 마법으로 병사들을 속박했다.


두 사람은 쓰러진 기사와 병사들을 구석진 곳으로 치워버리고는 상단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뭘 봐? 서로 갈 길 가자고.”


상단주는 이 상황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길이 열렸으니 저들을 따라서 가야 하나? 아니면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셈치고 얌전히 돌아가야 할까?


그도 아니면 가까운 도시로 가서 저 미친놈들이 용을 깨우러 간다고 신고라도 해야······.


“······가자.”


상단주는 결심을 내렸다. 일단은 자리를 떠나자. 그리고 가능한 멀리 도망치자.


“이럇!”


마부가 고삐를 흔들자 멈췄던 마차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샬릭은 도망치듯 떠나는 상단을 쳐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럼 우리도 가자고.”


“얼떨결에 병사들을 때려눕히긴 했는데, 이게 잘한 짓인지 모르겠네······.”


제리얀이 머리를 긁적이며 샬릭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통제 때문에 한적한 길을 따라서 걷고 또 걸었다. 아마 멀지 않은 곳에 용의 둥지가 있을 터다.


“저쪽에 병사들이 있는데?”


요정은 눈이 밝다. 제리얀은 저 멀리 떨어진 곳에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샬릭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봤어.”


봤다고? 요정도 아니면서 저 먼 거리를 봤다는 건가? 그것도 용의 심장을 먹은 덕분에 가능한 일일까.


제리얀이 놀라움을 감추고서 말했다.


“아마 용의 둥지를 지키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처럼 통제를 뚫고 몰래 숨어들어온 놈들이 있을까 봐 그러는 거겠지.”


“용이라 싸우기 전에 저 친구들이랑 드잡이질하면서 괜히 힘 빼긴 싫은데. 혹시 멀리서 쓰러트릴 수 있나?”


제리얀이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그거야 내 전문이지. 맡겨만 두라고.”


제리얀은 병사들과 적당히 거리를 좁힌 뒤에 몸을 숨기고서 마법을 준비했다. 넘치는 마력이 바람으로 변하더니 재빠른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려 나간 바람은 힘껏 휘두른 망치와 같았다. 병사들은 영문도 모른 채 몸을 얻어맞고 바닥을 나뒹굴었고 겁에 질려 소리쳤다.


“뭐, 뭐야!”


“용이 깨어났다! 용이 깨어난 거야!”


그들은 이 공격이 용의 분노라고 생각한 것인지 무기도 내버리고 도망쳐버렸다. 덕분에 제리얀은 애꿎은 사람을 괴롭힐 필요가 없어졌다.


“가자.”


병사들이 모두 도망친 걸 확인한 후에 샬릭과 제리얀이 움직였다. 그들은 곧 거대한 동굴의 입구에 도착했다.


걀라토르스가 그랬던 것처럼 이곳의 용 역시 동굴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동굴은 몹시 컸는데 이만한 크기의 동굴이 자연적으로 생겼다고 보긴 어려웠다. 아마 용이 자신의 힘으로 동굴을 만들어냈겠지.


샬릭은 동굴의 크기를 바탕으로 용의 덩치를 대략 가늠했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동굴은 더 넓어질 테니 용의 크기는 걀라토르스의 두 배쯤 될 터다.


“확실히 성체라 그런지 덩치가 크군. 그럼 뇌도 크겠지? 거기 뒤에 붙은 용의 심장도 클 테고.”


투구 때문에 보이진 않으나 샬릭은 아마 입맛을 다시고 있을 것이다. 제리얀이 말했다.


“징그러운 소리 좀 안 할 수 없나?”


“실례. 나도 모르게 그만.”


두 사람은 시답잖은 잡담을 나누며 동굴 안을 걸었다. 제리얀은 용의 둥지라고 해서 뭔가 무시무시한 장소이리라 생각했는데 그냥 보기엔 보통 동굴과 다를 게 없었다.


“안에 아무도 없네. 동굴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이라도 있을 줄 알았더니만.”


“도마뱀 인간들? 걔네가 용에게 충성하는 건 맞는데 모든 용이 도마뱀 인간을 부하로 거느리고 있는 건 아니야. 사람으로 치면 원숭이가 사람을 지켜줄 테니 먹을 것 좀 주십쇼 하는 상황인데 모든 사람이 원숭이를 부하로 데리고 있는 건 아니잖아?”


제리얀이 그런가? 하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용 사냥꾼이 하는 말이니 맞겠지 하고 대충 넘겼다.


“덕분에 괜히 힘 뺄 필요는 없으니 다행이네. 그래서 용은 어디에······.”


동굴 안은 지나칠 정도로 넓었다. 용에게 있어선 그리 크지 않을지 몰라도 조그마한 사람이 돌아다니기엔 너무 넓었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동굴 안을 돌아다녔고 삼십 분이나 지나서야 겨우 용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엄청 크군······.”


제리얀이 용을 만나는 건 이번이 두 번째다. 그는 동굴 안에 잠들어 있는 저 용을 보고서 걀라토르스가 얼마나 어린 용이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덩치는 물론이고 날개도 몹시 크다. 비늘은 녹색으로 빛나는데 저기에 칼이 들어가기나 할지 의심스러웠다.


가짜 용인 아르샨데오나 어린 용인 걀라토르스가 떼로 덤벼도 저것 하나를 당하내지 못할 것 같다. 제리얀은 덜컥 겁이 났고 저도 모르게 헉 하고 숨을 삼켰다.


그다지 크지 않은 소리였는데도 용이 듣기엔 아니었던 모양이다. 죽은 듯 잠들어 있던 용이 슬며시 고개를 드는 게 보였다.


“설마 나 때문에 깬 거야?”


“그런 것 같은데. 좀 조용히 하지 그랬어.”


“아니, 그게 뭔······.”


제리얀이 쩝 소리를 냈다. 용을 죽이려면 잠들어 있을 때를 노려 기습해야 하는데 자기 때문에 깨버렸으니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미안해. 나 때문에 용이 깨버려서.”


“왜 사과해? 설마 내가 용이 잠든 틈을 노려 비겁하게 기습이라도 할 줄 알았나? 난 안 그래. 난 진짜배기 북부인이거든.”


하기야 용 사냥에 미친 북부인이 비겁하게 기습이나 할 것 같진 않다. 샬릭이 당당하게 용에게 걸어가며 외쳤다.


“일어나! 널 죽이러 왔다!”


두 눈을 꼭 감고 있던 용이 슬며시 눈을 떴다. 용은 겁도 없이 자기 둥지에 들어온 침입자를 보고서 스산한 목소리를 뱉어냈다.


“넌 누구냐?”


“알면 깜짝 놀랄걸. 난 북부인이다. 용 사냥꾼이지. 네 아들을 죽이고 너도 죽이러 왔다.”


용의 얼굴은 사람과 다르지만 그래도 제리얀은 지금 저 용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당혹감, 그리고 짜증스러움.


“···북부인이라고? 북부의 미치광이들이 여긴 대체 왜? 제기랄, 그 빌어먹을 놈들 때문에 일부러 여기로 도망친 건데 기어코 날 쫓아와?”


제리얀은 샬릭이 어째서 걀라토르스에게 부모가 없냐고 물어봤는지 이해했다. 그러니까 원래라면 저게 일반적인 반응이라는 거군.


“널 쫓아오다니? 그거 자의식 과잉이야.”


샬릭의 말에 용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날 쫓아온 게 아니라고? 그럼 여긴 어떻게 알고 왔지?”


“내가 아까 말했지. 네 아들을 죽이고 너도 죽이러 왔다고. 네 아들이 친절하게도 어미가 있는 곳을 알려주더군.”


“······내 아들?”


용이 뭔가를 생각하더니 아 소리를 냈다.


“어쩌다 보니 생긴 자식이었지. 별로 소중하게 생각한 적은 없다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기 어미를 팔아? 배은망덕한 놈 같으니라고.”


어미를 파는 자식이나 자식더러 어쩌다 생겼다고 말하는 어미나, 둘이 쌍으로 막돼먹었군.


샬릭이 쯧쯧 소리를 내며 말했다.


“싸우려면 저승 가서 싸워라. 내가 곧 자식 곁으로 보내줄 테니까 말이야.”


“흥! 고작 어린 용 하나를 죽였다고 기고만장한 모양인데, 너는 날 죽일 수 없다! 나는 용이다! 죽음이요, 또한 불꽃의 지배자노라!”


용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 몸이 워낙 큰 탓에 동굴 안이 꽉 차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샬릭은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덩치가 저토록 크면 동굴 안을 날아다니진 못하겠군. 덕분에 날개를 자를 필요가 없어졌으니 잘된 일이다.


저 정도 덩치를 자르려면 칼을 얼마나 휘둘러야 할까. 샬릭이 칼자루 위에 손을 올린 채 견적을 내고 있을 때 용이 말했다.


“날 죽이겠다더니 왜 가만히 있나? 어서 덤벼봐라, 이 멍청한 북부인아!”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니 가만히 있어. 그래서 널 죽이기 전에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용이 흥 소리를 냈다.


“뭐냐?”


“혹시 근처에 아는 용 없나? 너 죽이고 나면 다음에 찾아가서 죽이게.”


용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과 함께 말했다.


“없다.”


“없다고? 친구 하나 없는 불쌍한 용이었군. 그럼 어쩔 수 없지.”


샬릭이 없다면 됐다는 듯 칼집에서 칼을 뽑자 제리얀이 무심코 말했다.


“친구는 없어도 부모는 있을 거 아니야? 부모가 있냐고는 왜 안 물어봐? 저놈 자식인 걀라토르스가 부모를 판 걸 보면 그 어미인 저놈도 별다르진 않을걸.”


대답한 건 샬릭이 아니라 용이었다.


“내 부모는 살해당했다. 북부인한테.”


“아······ 살해당했어요?”


제리얀이 당황했다. 순간 샬릭을 쳐다보니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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