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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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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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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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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UMMY

샬릭은 용 사냥꾼이다.


물론 용 사냥꾼이라고 해서 용만 사냥하는 건 아니고 돈 되는 것이라면 이것저것 죽인다. 그럼 그냥 용병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굳이 용 사냥꾼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의 출신 때문이다.


그는 북부 출신으로 그곳에는 매해 겨울마다 용 사냥에 나서는 전통이 있다.


용은 몹시 강대한 생물로서 아무리 강력한 전사라도 그걸 사냥하는 건 어렵다. 당연히 남들 보기엔 무모하기 짝이 없는 짓이며 실제로도 사냥에 성공한 적도 몇 번 없다.


그런데도 북부인들은 매해 용 사냥에 나서는데, 그건 그들이 용 사냥을 하나의 축제쯤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용 사냥에 나섰다가 다 뒈져버리더라도 그건 영웅적인 싸움을 했으니 천상에 오를 만한 자격을 얻는 일이요, 용 사냥에 성공한다면 그 또한 천상에 오를 만한 위대한 업적을 세우는 셈이다.


어느 쪽이든 득 될 일이니 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나?


고작 그따위 이유로 용 사냥에 나선다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짓거리지만 북부인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은 위대한 전사에겐 위대한 죽음이 있어야 한다고 믿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몇 명의 북부인을 만나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용 사냥꾼 샬릭은 어두컴컴한 지하실에 있었다. 일 때문이었다. 벽에 달린 횃불이 흔들리자 그를 따라 그림자도 춤췄다.


“모든 북부인은 정신병자라는 거야.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샬릭은 북부인을 모욕하는 말을 들었지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저 묵묵히 책상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남자가 샬릭의 얼굴을 쳐다봤지만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얼굴이 회색 투구로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내 말에 과장은 있을지라도 틀리진 않았을 걸세. 내 듣자 하니 북부에는 용 사냥이라는 전통이 있다지? 그게 말만 용 사냥이지, 실은 일종의 자살 행렬 아닌가? 북부인은 전장에서 죽어야만 천상에 갈 수 있다고 믿으니까 말이야.”


이번에도 샬릭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는 적당한 각도로 고개를 숙인 채, 여전히 책상만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그 무미건조한 태도에 질렸다는 듯 말을 이었다.


“게다가 용 사냥이 일종의 인구 조절 역할도 한다던데. 겨울이 되면 식량이 줄어드니 괜히 머릿수만 차지하는 노인이나 부상자들을 사지로 내몰아 먹을 입을 줄인다더군. 그러면서 용에게 죽으면 천상에 갈 수 있다고 꼬드기는 게 참 악질이야.”


샬릭은 여전히 말이 없다. 그는 팔짱을 낀 채로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뱉고 있을 뿐이었다. 남자는 이제 슬슬 저 과묵한 북부인이 그냥 졸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됐다.


“···정말 우스운 건, 너희의 그 웃기지도 않은 짓거리가 용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이야. 용은 겨울이 되면 겨울잠에 빠지는 습성이 있는데 그때마다 너흰 용에게 쳐들어가 창으로 쿡쿡 찔러대지. 사람으로 치면 낮잠 자고 있는데 웬 개미 새끼가 발을 무는 셈이야.”


남자는 목이 타는지 차 한 모금을 마시고 말을 이었다.


“북부의 용들은 너희에게 얼마나 시달렸는지 늙고 병든 용 한 마리를 그냥 내주겠다고 했다던가? 그걸 죽이고 용 사냥의 위업을 달성하라고, 그 대신 용 사냥을 멈추라고 말이야. 그런데 너희 북부인들은 뭐라고 했지?”


남자는 샬릭의 대답을 기대하고 물은 게 아니었다. 지금껏 혼자만 지껄였기에 이번에도 그러리라 여겼는데 묵직한 저음이 지하실 안에 울렸다.


“북부인을 모욕했으니 그 창자를 뽑아 항문에 꽂아주겠다고 했다.”


샬릭의 목소리를 들은 남자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졸고 있던 게 아니었나? 저 과묵한 북부인은 의외로 모든 이야기를 다 듣고 있던 모양이다.


“······난 눈알을 뽑아 콧구멍에 꽂아주겠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샬릭이 어깨를 으쓱였다. 회색 갑옷이 움직이며 절그럭 소리를 냈다.


“그런 말도 했을걸.”


“······어쨌건 내가 북부인을 정신병자 취급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용을 죽일 기회를 얻었는데 대체 뭐가 불만이지? 말해봐라, 용 사냥꾼.”


샬릭은 용 사냥꾼이 북부인을 뜻하는 멸칭임을 알고 있다. 용 사냥에 성공한 적은 없지만 어쨌건 매년 용 사냥에 나서는 것 자체는 사실이기 때문에 모든 북부인은 용 사냥꾼이다.


“북부인을 잘 모르시는군.”


남자는 콧방귀를 뀌었다. 북부인을 잘 모른다고? 그들의 본질이 죽지 못해 안달 난 정신병자라는 것만 알아도 남들만큼은 아는 셈일걸.


“북부인이라 그런지 북부의 생태에 대해 잘 아는 모양이군? 그럼 말해보게. 북부인들은 왜 그러지?”


“그거야 나도 모르지.”


“···뭐?”


어처구니없는 대답에 남자가 미간을 좁혔다. 샬릭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북부인은 원래 그래. 이해하려고 하니까 이해를 못 하는 거다. 북부인이 왜 용 사냥에 집착하냐고? 원래 그런 거야. 거기에 이유가 어딨나?”


그게 대체 뭔? 남자가 당황해서 입만 어물거리고 있으니 샬릭이 말했다.


“이제 쓸데없는 이야기 그만하고 일 이야기 합시다. 댁 이야기 듣느라 깜빡 졸았어. 북부인한테 뭔 놈의 관심이 그리 많으시나? 그냥 관심 끊어, 이해하려고도 하지 말고. 원래 그런 족속들이니까.”


이 무례한 북부인 놈, 진짜 졸고 있었군. 남자는 한숨과 함께 말했다.


“그래, 그러면 일 이야기 하지. 용 사냥꾼 샬릭. 난 네가 왜 날 찾아왔는지 알고 있다.”


남자의 시선이 책상으로 향했다. 거기엔 웬 머리 하나가 있었는데 방금 막 잘린 것인지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무로 만든 책상이 피를 빨아들여 붉게 변했다. 남자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체의 공허한 눈을 보며 입술을 세게 짓씹었다.


“···날 죽이러 온 거겠지. 오는 길에 내 부하도 하나 죽이고 말이야. 누가 보내서 왔나? 아니,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짐작 가는 곳이 하나 있거든.”


샬릭은 건틀릿 낀 손으로 탁자를 툭툭 두드렸다. 남자는 중무장한 전사가 자신을 죽이러 왔다는 사실에도 전혀 겁을 먹지 않은 듯 보였다.


그것도 일종의 관록이라면 관록일 것이다. 저 남자는 이 어두컴컴한 지하의 제왕으로서 제 손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였을 테니까. 이 자리에 오를 때까지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겨 왔을 것이다.


샬릭은 그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죽일 만한 가치가 있는 적이 아닌가.


“누구 사주인지 안 궁금하다니 마음에 드는군. 일단 칼부터 뽑아라, 로만. 끝장을 보자.”


이름을 불린 남자가 부득 이를 갈았다.


“이 멍청한 용 사냥꾼 놈. 네가 실력 있는 용병인 건 알지만 아무리 그래도 혼자서 이만한 숫자를 당해낼 수 있을 것 같나? 가능할 것 같으냐고!”


로만이 벌컥 성을 내자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들의 숫자는 열 명도 넘었고 모두 무장하고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자라도 저만한 숫자를 홀로 상대하는 건 어렵다. 로만이 자신을 죽이러 온 샬릭과 여유롭게 대화나 하고 있던 것도 자신의 부하들을 믿기 때문이었다.


샬릭은 숫자 따윈 상관없다는 듯 건틀릿 낀 주먹을 꽉 쥐었다. 분명 허리춤에 칼을 추고 있음에도 그걸 뽑지 않는 게 의아했다.


“맨손으로 싸우려고? 무기도 들지 않고 이만한 숫자를 감당할 수 있나?”


“감당은 너희가 해야지.”


저 멍청한 북부인 놈,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다 못해 헛소리를 지껄이는군. 하기야 매해 이기지도 못할 용 사냥에 나서는 북부인이니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로만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샬릭을 노려봤다. 전투에 미친 북부인답게 잿빛 갑주로 야무지게 몸을 감쌌다. 저 단단한 갑주가 그의 몸을 지켜줄 순 있겠지만 영원하진 않을 것이다.


저 정신 나간 북부인과 쓸데없이 시간이나 낭비하고 있을 이유는 없다. 로만은 자신의 부하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죽여버려!”


그 명령에 로만의 부하들이 샬릭을 향해 달려들었다.


샬릭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두 명의 남자 중 한 명의 발을 걸어 자세를 무너트렸다. 그리고 그대로 뒤통수를 잡고 테이블에 머리를 찍은 후, 남은 한 명의 목을 붙잡아 부러트렸다.


그걸 본 로만의 눈이 커졌다. 대체 얼마나 강한 괴력을 가졌길래 저런 짓을?


로만이 놀라고 있는 사이에 샬릭은 부지런히 적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는 또 달려드는 병사의 턱에 주먹을 꽂았다. 그가 머리가 흔들려 몸을 휘청거리자 멱살을 붙잡아 그대로 얼굴부터 바닥에 꽂았다.


“가서 싸워! 저 새낀 결국 혼자야! 몰아붙이면 우리가 이겨!”


로만의 외침에 도적들은 용기를 내서 샬릭에게 달려들었다. 그에 대한 샬릭의 대응은 아주 간단했다. 제자리에 발이 붙은 것처럼 가만히 서서 먼저 달려드는 놈들부터 하나씩 때려눕히는 것이다.


목을 부러트리고, 어깨를 박살 내고, 바닥에 넘어트리고, 머리를 짓뭉개고, 배를 후려치고, 멱살을 잡아내던지고.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그거면 충분했다. 싸움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일방적인 것은 금세 끝이 났다.


샬릭이 말했던 대로 그는 정말 주먹 하나만으로도 병사들을 전부 쓰러트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한 일인가? 실제로 일어났으니 정말 가능한 일이긴 한 모양이지만 인간의 몸으로 대체 어찌······.


로만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다행스럽게도 문 바깥에는 그의 부하들이 더 있었다. 그는 이 지하의 지배자였고 충실한 부하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설령 그들이 샬릭을 이기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도망칠 시간 정도는 벌어줄 수 있었다······.


“저놈을 죽여!”


로만이 문을 벌컥 열자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하들이 안쪽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와 반대로 로만은 부하들을 헤치고 뛰쳐나가 복도를 달렸다.


방 안으로 들어간 병사들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잠깐 움찔했으나 곧 망설임 없이 샬릭에게 덤벼들었다.


로만은 도망치느라 그들의 싸움을 보지 못했으나 그 결과가 어땠는지는 알 것 같았다. 복도를 달리고 있는 와중에 저 멀리서 자꾸만 뼈 부러지는 소리와 끔찍한 비명이 울리고 있었으니까.


로만은 그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지하의 주민들은 그가 창백한 얼굴로 거리를 달리고 있는 걸 보고 의아해했으나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한참을 달린 끝에 로만은 지상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도착했다. 이제 사다리를 타고 올라 문을 열기만 하면 환한 태양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럼 그 괴물 놈도 더는 쫓아오지 못하겠지. 지하의 악마가 태양 아래에 서지 못하는 것처럼. 근거 없는 희망이지만 아마도······.


“멀리도 갔군.”


그리고 그 희망은 너무나도 쉽게 깨졌다.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들어본 적 있는 것이었다. 로만이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온몸에 피를 잔뜩 묻힌 샬릭이 있었다.


장담컨대 몸에 묻은 피 중 샬릭의 것은 단 한 방울도 없으리라. 그는 정말 조직 하나를 맨손으로 몰살하고서 여유롭게 자신을 쫓아온 것이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아무래도 저 괴물 놈에게는 가능한 일인 모양이다, 제기랄.


로만은 더는 저항할 의지를 잃었다. 그는 사다리를 타려던 것도 멈추고 허탈하게 웃었다.


“···어떻게?”


“뭘?”


질문에 로만이 우는 듯 웃었다.


“혼자서 그만한 숫자를 다 때려죽인 건가? 대체 어떻게? 모든 북부인은 전사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난 용 사냥꾼이다.”


로만은 샬릭이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다. 용 사냥꾼이라고? 그건 그냥 북부인을 비하하는 멸칭일 뿐이잖아.


샬릭은 로만의 생각을 읽은 듯 낮은 웃음소리를 뱉어냈다. 그가 허리춤의 칼을 뽑으며 천천히 다가왔다.


로만은 저 새까만 칼이 북부에서만 나는 희귀한 광물로 만들어졌음을 안다. 흑철(黑鐵)이라고 하던가? 듣자 하니 흑철로 만든 칼만이 용의 단단한 비늘을 가를 수 있다고 하던데······.


“그것도 정말로 용을 죽인 몇 안 되는.”


로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목은 이미 바닥을 구르고 있었으므로.



작가의말

고철더미에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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