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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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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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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8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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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8

DUMMY

“이보게, 샬릭. 우리가 친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이건 좀 아니지.”


테레모는 슬그머니 샬릭에게서 멀어졌다.


“다짜고짜 남의 집에 쳐들어오는 것도 좀 그런데, 심지어 손님들까지 데리고 오다니? 게다가 그 손님들을 왜 내가 대접하나?”


“너 이런 거 잘하잖아. 지난번에도 부랑자들 받아주고 그랬지 않나?”


“그땐 그랬지. 그런데 내 분명히 말하는데 그때 그건 그냥 변덕이었어. 그 사람들 좀 받는다고 도시가 망하는 게 아니니까 그냥 변덕 좀 부린 거였다고.”


“그럼 지금도 변덕 좀 부려. 별로 어려운 일 아니잖아.”


테레모는 체통 없이 자기 가슴을 퍽퍽 두드리고 싶은 기분을 애써 참으며 말했다.


“그래,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지. 끽 해봤자 도시에 사람 몇 명 좀 늘어나는 것뿐이니까. 다만 내가 걱정하는 건 그다음이야. 자네가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매번 이러면 곤란해. 사람들을 구해다가 쓰레기 버리듯 나한테 던지고 도망가면 곤란하다고.”


“자, 진정해. 나도 맨입으로 이런 부탁하는 거 아니야. 이 사람들 받아달라고 선물도 가져왔다고.”


샬릭이 차원문 너머에서 산적들에게 빼앗은 보물이며 식량을 꺼내왔다. 대영주인 테레모 입장에선 그리 많은 돈이 아니지만 사람들 좀 받아달라고 내미는 뇌물치곤 제법 많았다.


테레모가 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이런다고 내가 사람들을 받아줄 것 같나?”


“나라면 그냥 이 돈 받고 받아줄 것 같은데. 한 대 맞고 받아주는 것보다는 돈 받고 받아주는 게 더 모양새가 살 테니까.”


테레모가 울컥했다. 저 용 사냥꾼이 무시무시한 존재임은 맞다. 그러나 자신 역시 제국공으로서 그에 못지않은 힘을 지녔다.


지금껏 샬릭이 오만방자하게 굴어도 가만히 뒀던 건 그가 무서워서가 아니요, 단지 싸움으로 인해 입을 손해가 신경 쓰였을 뿐이다.


그런데 감히 날 겁박하려 들어? 아무리 용 사냥꾼이라고 해도 더는 봐주기가 힘들다. 테레모가 슬그머니 몸 안의 마력을 끌어올릴 때였다.


“테레모 공! 부탁드립니다, 갈 곳 없는 자들에게 부디 자비를!”


간절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거기엔 요정이 있었다. 체내의 마력을 보아하니 마법사인 것 같았다.


테레모가 물었다.


“그쪽은?”


“제리얀이라고 합니다! 위대한 불사공 전하를 뵙습니다!”


제리얀이 공손히 허리를 숙이는 걸 보고 테레모는 흡족함을 느꼈다. 그래, 자신을 만났다면 저런 태도를 보이는 게 옳지.


“제리얀? 잠깐, 제리얀이라······.”


테레모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곧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


“그래, 제리얀이라고 했나? 보아하니 마법사인 것 같은데 그럼 내 후배님쯤 되겠군. 내가 자비를 보여주길 원하나?”


테레모는 불사공다운 위엄을 되찾았다. 제리얀이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로 답했다.


“부디 부탁드립니다! 이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불사공 전하께서 거두어주지 않는다면 길가를 떠돌다 괴물들의 한 끼 식사가 되고 말 것입니다!”


테레모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샬릭을 상대하다가 제리얀을 상대하니 기분이 몹시 흡족하다.


“글쎄······. 내가 저들을 왜 받아들여야 하지?”


“저는 아크툴에 한 번 와본 적이 있습니다. 훌륭한 도시더군요. 모두가 불안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전란의 시대임에도 아크툴의 사람들만은 항상 웃으며 살고 있더군요. 그럴 수 있는 것도 전부 불사공 전하의 노력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전 불사공 전하의 자비에 호소하고 있는 겁니다. 부디······.”


테레모는 영적인 기쁨을 느꼈다. 그래, 이거지. 이 맛에 제국공 노릇을 하는 거지.


만약 테레모에게 얼굴 가죽과 근육이 남아 있었다면 그는 체면도 잊고 입이 찢어져라 웃었을 것이다.


테레모는 속으로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그래, 내 자비라······. 내가 좀 자비롭긴 하지. 내 장담하는데 제국공이 다스리는 영지 중에서 아크툴만한 곳도 없을걸. 여기선 적어도 굶을 일은 없을 테니 말이야.”


“과연 대단하십니다.”


“우리 후배님이 과찬이 심하시군. 보아하니 재능 있는 마법사인 것 같은데 내 특별히 부정한 불사의 축복을 내려줄 수도 있어. 후배님도 알겠지만 시체 마법사가 되는 건 극히 어려운 일이야. 하지만 내 도움을 받으면······.”


“헛소리는 거기까지만 해. 그래서 받아줄 거냐고.”


신나서 떠들던 테레모가 쯧 하고 혀를 찼다. 그는 샬릭을 한 번 봤다가 제리얀을 한번 보고서 말했다.


“원래라면 거절할 일이지만······ 우리 후배님 얼굴을 봐서 한 번만 부탁을 들어주지.”


“뭘 선심 쓰는 듯 꺼드럭대는 거지? 너 애초에 나한테 빚진 거 하나 있잖아.”


“빚이라니? 내가 너한테?”


“그래, 아르샨데오 말이야. 너 다 알고 있었잖아.”


테레모가 뜨끔한 듯 잠깐 침묵했다. 그러나 곧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뭔 소린지 잘 모르겠군. 어쨌든 저 사람들은 내가 잘 돌봐주도록 하겠다.”


“그래야지. 돌봐주기 귀찮다고 시체 병사로 만들고 그러면 넌 내 손에 죽어.”


“전에도 말했지만 그런 짓은 안 한다니까. 자, 일단 저 사람들은 잠깐 내보내도록 하지. 지금까지 대체 뭔 일이 있었길래 나한테 이러는지 궁금하니까 말이야.”


테레모가 뼈만 남은 손가락을 튕기자 시체 기사 하나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겁먹은 사람들을 데리고 방을 나가자 테레모가 말했다.


“말해봐. 용 죽이러 간다던 놈이 대체 뭔 바람이 불어서 사람들 데리고 여기까지 왔는지.”


“궁금하다니 말해주지. 귀 크게 열고 똑똑히 들어. 아, 넌 귀가 없지?”


왜 꼭 쓸데없는 소리를 덧붙일까. 테레모가 쯧 하고 혀를 찼다.


“그러니까 난 원래 용을 죽이러 갔었는데······.”


샬릭이 용을 죽이기 위해 여행을 떠났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느 마을에 들려 도마뱀 인간들을 죽이고 그 주인인 아르샨데오까지 죽였던 이야기, 알고 봤더니 그건 진짜 용이 아니라 가짜였고 진짜 용은 따로 있었다는 이야기.


그 뒤에는 걀라토르스에게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또 다른 용을 죽이러 갔다는 이야기. 그러다가 산적 놈들과 만나게 됐다는 이야기를 했다.


조용히 듣고 있던 테레모가 말했다.


“강도한테 강도질을 하다니, 과연 대단해. 자네한테 천직일 정도로 잘 어울려.”


“난 제국공한테도 강도질할 수 있으니까 비꼬지 말아.”


“···제길, 어쩌면 자네와 알게 된 게 내 인생 최대의 실수일지도 모르겠어.”


테레모가 구시렁거리다 말고 말했다.


“그런데 이번 일로 자네는 용을 또 죽였군. 좀 더 강해진 게 체감이 되나?”


“글쎄, 내가 죽인 게 어린놈이라 전과 별 차이는 없는 것 같은데. 다만 새로 얻은 능력이 하나 있긴 하지.”


“그게 뭔가? 설마 등에서 날개라도 꺼낼 수 있게 됐나?”


“아니, 용들이 그러하듯 사냥감의 심장을 먹고 영적인 힘을 얻을 수 있게 됐지.”


“그건······.”


테레모가 말문이 막힌 듯 가만히 있었다. 제리얀은 그가 지금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분명 자신이 했던 것과 같은 생각을 했겠지.


“······참으로 끔찍한 소리로군. 이 세상에 악영향을 미칠 만한 일이야. 이대로 용을 몇 마리 더 죽이다 보면 대체 뭔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하기 싫어져. 이러면 오히려 내가 나서서 용 보호 운동을 벌여야 할지도 모를 것 같군.”


“재밌는 농담이로군. 제국공이 실은 용 애호가라는 소문이 퍼지면 아주 볼만하겠어.”


“농담 아니야. 그보다 내가 자네를 도와주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일세. 더는 이런 식으로 막무가내로 굴면 곤란해. 알겠나? 이번에는 우리 후배님 얼굴을 봐서 넘어가지만 다음에는 어림도 없다는 소리일세.”


“이거 섭섭한걸. 난 우리가 제법 친한 줄 알았는데. 그래, 정 그러길 원한다면 더는 나타나지 않도록 하지. 원한다면 각서라도 써주랴?”


“그럴 필요는 없어. 그저 이제 좀 사라져주면 고맙겠군.”


샬릭은 의외로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귀찮은 짐 덩어리를 남에게 떠넘겼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한 걸까.


어쩌면 저러고 또 나타나서 사람 속을 뒤집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지금 당장은 저놈을 안 봐도 되니 그것만으로 기쁘다.


“아, 깜빡하고 말 안 한 게 있는데.”


차원문을 통과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려던 샬릭이 몸을 돌려 말했다.


“아까 그 악마 놈 말이야.”


“악마 놈이 왜?”


“죽을 때 되니 자기 뒷배가 있다고 지껄이더라고. 그게 누구랬더라. 아마 너도 아는 사람일 텐데······. 제리얀, 그게 누구였지?”


가만히 있던 제리얀이 테레모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흑암공일걸······.”


“아, 맞아. 흑암공이 자기 뒷배라고 막 자랑을 하던데? 자길 죽이면 분명 후회할 거라고, 제 주인이 반드시 복수하러 온다고 말하던데 그냥 알아만 두라고.”


순간 테레모의 몸이 굳었다. 흑암공이라면 자신과 같은 일곱 제국공 중 한 명이다. 초대 황제에게 충성했던 대악마로서 제국공으로 활동했던 기간으로 따지자면 일곱 명 중 제일 길다.


샬릭이 그런 존재의 부하를 죽였다고? 심지어 흑암공이 부하의 복수를 하러 온다고 말했다고?


테레모에게 땀샘이 있었다면 분명 식은땀을 흘렸을 것이다. 물론 악마를 죽인 건 샬릭이지만 악마를 죽이고 구해낸 사람들을 보호하는 건 테레모다.


흑암공에게 뭔가 오해가 있다고 말해봤자 그가 들어줄 것 같진 않다. 애초에 그는 대악마가 아닌가? 전쟁을 일으킬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텐데 오히려 이걸 기회 삼아 아크툴을 침공할지도 모른다.


그럼 지금이라도 사람들을 버려야 하나? 그 목을 베어 길거리에 효수해야 하나? 하지만 그 불쌍한 자들한테 그럴 수야······. 애초에 그런다고 흑암공이 오해를 거둘 것 같지도 않다.


이대로면 위험한데. 테레모가 다급히 샬릭을 불러세웠다.


“샬릭?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지.”


“내가 뭘?”


“흑암공이 오해하잖나. 내가 일부러 그 부하를 죽이고 자길 도발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내가 봤을 때 그게 오해라고 설명해도 그놈이 이해해줄 것 같진 않아. 그러니 당당하게 굴어. 그게 오해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라는 말이야.”


미친놈, 지금 그걸 해결책이라고 말하나? 테레모가 이빨을 부딪쳐 딱딱 소리를 냈다. 그는 애써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만약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다른 제국공들이 날 견제할 걸세.”


“견제하라고 해. 차라리 제위를 노린다고 선언하지 그래? 그럼 다른 놈들도 겁먹고 가만히 있을걸.”


하여튼 생각 없이 말을 내뱉는군. 테레모는 이제 거의 애원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샬릭, 자네에게 부탁 하나 함세. 인제 와서 흑암공의 오해를 없던 걸로 만들 수는 없을 거야. 하지만 오해로 인한 화를 면할 수는 있지. 만약 전쟁이 벌어지면 날 도와주게. 돈이라면 달라는 대로 주겠어.”


샬릭이 껄껄 웃더니 말했다.


“내가 왜? 너 나랑 친하냐?”


미친놈인가? 테레모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그 모습을 보던 샬릭이 말했다.


“물론 농담이야. 설마 내가 그 정도로 염치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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