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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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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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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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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0

DUMMY

“아니, 이게 이해가 안 가나? 그러니까 발라트라는 성기사가 있어. 내가 걔를 죽였는데······.”


“아니요, 제가 이해가 안 가는 건 당신의 그 당당한 태도입니다. 결국 반지를 뺏지는 않아도 성기사를 죽인 건 맞잖아요. 게다가 신을 섬기는 성기사가 시체 기사로 되살아났다니?”


샬릭이 아차 소리를 내며 제리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발라트를 죽였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았어야 했나?”


북부인은 대체로 어디 좀 모자라나? 제리얀이 뭘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듯 대답했다.


“그게 아니라 시체 기사로 되살아났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았어야지.”


“아, 그런가?”


속삭이듯 대화하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남자가 한숨과 함께 말했다.


“성기사를 죽인 것도 문제고, 시체 기사로 되살린 것도 문제입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둘 다 북부인입니까?”


제리얀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북부인이라니? 전 요정입니다. 봐요, 귀가 길쭉하잖아요.”


“북부인은 종족이 아니잖습니까. 북부인으로서 자라면 그 모두가 북부인이지요.”


제리얀이 입을 다물었다. 그런 관점은 좀 신선한데.


샬릭이 껄껄 웃었다.


“북부인에 대해 잘 아시는군? 그 말대로야, 북부인은 종족이 아니지.”


남자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신전에 있다 보면 이런저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지요. 북부인도 여러 명 만난 적이 있습니다. 다들 특이한 분들이더군요.”


“북부인이니까 말이야.”


“특이한 사람이 전부 북부인은 아니지만 북부인은 전부 특이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은 북부인이 맞군요. 신전에 와서 성기사 죽인 이야기를 대체 왜? 저였다면 꼭꼭 숨겼을 텐데요.”


샬릭이 당당하게 답했다.


“사실인데 숨길 게 뭐 있나?”


“그 일 때문에 신전이 당신에게 복수하려 들면요?”


“감히 어떤 놈이?”


샬릭이 칼자루를 쥐자 남자가 한숨을 내뱉었다.


“정말 북부인이 맞군요. 들어오십시오. 여기 서서 이야기하긴 좀 그러니 안쪽에서 이야기합시다.”


성기사를 죽였다는 사실 때문에 당장 쫓겨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런 일은 없었다. 아니면 이야기를 빌미로 신전 안으로 불러들여 붙잡으려는 걸까?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샬릭은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그 당당한 태도를 보니 제리얀 역시 긴장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하기야 수틀리면 칼 들고 죄다 썰어버리면 되지 않나? 신전의 사람들이 떼로 덤벼도 샬릭에게 상처 하나 못 낼 것 같은데······.


제리얀은 무심코 그런 생각을 했다가 앗 소리를 냈다. 내가 대체 무슨 소리를? 이건 북부인이나 할 법한 발상이 아닌가?


‘제기랄, 샬릭이 명예 북부인이 어쩌고 하더니 정말······.’


끔찍한 일이다. 이러다가 정말 북부인이 돼버릴 수도. 제리얀이 슬쩍 샬릭과 거리를 둔 채로 걸었다.


“이쪽으로.”


남자가 어느 방으로 안내했다. 샬릭과 제리얀이 그 안으로 들어가자 남자가 찻주전자를 들고서 말했다.


“차라도 한 잔 하시겠습니까? 향이 제법 괜찮습니다.”


“술은 없나? 북부인은 차 안 마셔.”


“······있어도 안 드리죠. 술 마시고 뭔 짓을 저지를 줄 알고?”


확실히 저 남자는 북부인을 여러 번 만나본 게 맞다. 북부인에게 술을 내주지 않는 걸 보면.


“먼저 인사하겠습니다. 전 요나입니다. 이 신전의 사제이지요.”


“나는 샬릭이고 이 친구는 제리얀. 둘이서 용을 죽이러 다니고 있지.”


다른 사람이 용 사냥을 하러 다닌다고 하면 미친놈 취급했을 텐데, 북부인이 용 사냥을 하러 다닌다고 하니 요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북부인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반갑습니다. 그럼 이제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해볼까요. 발라트라는 성기사를 죽였다고 하셨지요?”


샬릭이 당당히 답했다.


“죽일 만한 이유가 있었어.”


“성기사가 죽은 걸 떠나서, 사람이 죽은 건 몹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죽이지 않으면 죽는 세상에서 사람 좀 죽인 걸로 남을 비난할 수는 없지요. 제가 오늘 살아있는 것도 누군가 죽은 덕분일 테니까.”


사제치고 대단힌 염세적이군. 샬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군. 비난할 줄 알았는데.”


“발라트라면 저도 누군지 압니다. 몇 달 전에 이곳에서 머물렀던 젊은 성기사지요. 그는 불사공을 아주 싫어하는 듯 보였습니다. 어쩌면 발라트의 죽음에 그 사실이 어떠한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지요.”


요나는 눈치가 빨랐다. 발라트를 죽일 만한 사람이 테레모 외엔 없다는 걸 바로 알아차린 걸 보면.


샬릭은 짐짓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말을 이었다.


“글쎄, 그럴 수도 있지. 그래서 칼록의 성기사를 죽인 내게 죄를 물을 생각인가?”


“그럴 리가요. 제가 대체 뭔 권리로 그런 짓을 합니까? 설령 정당한 권리가 있다고 해도 무슨 능력으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사람을 죽이고 도망쳤다고 한들 그를 잡을 힘이 없다면 처벌할 권리도 없다.


요나는 그 사실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보면 볼수록 사제답지 않게 염세적인 남자였다.


“댁이야 그럴 능력이 없지. 아, 무시하는 건 아니고.”


“저도 압니다. 괜찮아요.”


“하지만 댁한테는 그럴 능력이 없어도 신전에는 있을 텐데. 웬 북부인이 칼록의 성기사를 죽였다고 알리면 성기사들이 벌떼처럼 달려들걸. 발라트 그놈이 그러더라고.”


“그럴 수야 없지요.”


“어째서?”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그런 일을 했다가는 성기사들이 무더기로 죽어 나갈 테니까.”


요나의 손가락이 하나 접혔다. 샬릭은 저도 모르게 투구 속에서 미소를 지었다. 이 친구 생각보다 사람 보는 눈이 있군.


샬릭은 일개 북부인이 아니다. 그는 용 사냥꾼이며 용을 죽이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다. 그런 사람에게 성기사들이 얼마나 달려들든 그 결과는 정해져 있다.


“둘째로는 그런 짓을 했다가는 불사공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테레모가?”


다소 뜬금없는 소리다. 물론 요나는 테레모가 샬릭에게 발라트의 살해를 사주했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지만 갑자기 그의 입장을 걱정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저는 발라트가 불사공을 몹시 혐오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사실 그건 이유 없는 혐오지요. 단지 그가 부정한 불사를 받아들였으며 시체들을 부린다는 이유만으로 싫어했으니까요. 물론 시체들을 부리는 건 죽은 자의 대한 모욕일 수도 있습니다만 분명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필요한 일이었다는 게 무슨 뜻이지?”


“만약 불사의 군세가 없었다면 도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건 아크툴의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그들을 대신해서 죽어줄 불사의 군세가 있기에 아크툴의 사람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지요. 전란의 시대에서 그만큼 자기 백성을 아끼는 제국공이 어디 있겠습니까? 누군가는 불사공이 악신의 종복이라고 욕하지만 전 생각이 다릅니다.”


확실히 요나는 칼록의 사제치고 특이한 구석이 있었다. 정의의 신을 섬기는 자가 시체 마법사인 테레모를 옹호하다니.


물론 그의 말의 틀린 점은 없다. 샬릭이 생각하기에도 테레모는 제국공 중에서 썩 괜찮은 축에 속하지 않나.


“내가 이런 말을 하긴 좀 뭣하지만, 그런 생각은 속으로만 하는 걸 추천하지. 남들이 들으면 칼록의 사제가 아니라 데르하의 추종자냐고 오해하겠어.”


“충고 감사합니다. 제가 조금 흥분했군요.”


요나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면 발라트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인가?”


“애초에 제가 뭘 어쩔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겐 당신을 처벌할 권리도 없고 능력도 없으니까요.”


“그런가. 그럼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지. 그래서 이 반지는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샬릭이 아직도 빛나고 있는 반지를 가볍게 흔들었다. 빛은 신전 안에 들어오자 아까보다 더 환해져서 이젠 정면에서 바라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글쎄요. 제가 알기로 저 반지는 원래 성기사의 증표일 뿐, 뭔가 특별한 힘은 없다고 하던데요. 혹시 발라트가 무슨 말을 하진 않았습니까?”


“그 친구는 죽은 뒤에 시체 기사가 됐다니까. 시체가 무슨 말을 하겠어?”


“발라트를 시체 기사로 되살린 건 불사공이겠지요? 그분은 아무 말도 없었습니까?”


“신앙심이 주인의 명령을 이길 수 있는 건가 하고 신기해하던데.”


“신앙심이라······. 혹시 그 반지를 잠깐 줄 수 있겠습니까?”


샬릭이 반지를 건네자 요나가 조심스레 받았다. 그 순간 방금까지 환하게 반짝이던 빛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켜보던 제리얀이 음 소리를 냈다. 드디어 빛이 꺼졌나? 요나가 다시금 샬릭에게 반지를 건네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빛이 반짝였다.


요나는 그걸 보고 생각에 잠긴 듯 흠 소리를 냈다. 한참 동안 골똘히 고민하던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아직 수행 중인 몸이고 신학적 지식이 부족합니다. 그러니 이건 그저 제 부족한 추측일 뿐인데······.”


“말해봐.”


“만약 이 반지가 반짝이는 게 뭔가 마법적인 조화가 아니라면 가능성은 하나뿐입니다. 신께서 이 반지를 통해 뭔가를 알리려는 거지요.”


“경고인가? 한 번만 더 성기사를 죽이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경고?”


제리얀은 그럴듯한 추측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나는 생각이 다른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 같진 않군요. 경고를 하려면 좀 더 직접적이고 위협적으로 하지 않았을까요.”


“하기야 반지에서 빛 좀 난다고 겁먹을 것 같진 않아.”


“아까도 말했지만 전 아직 수행이 부족한 몸인지라 정확한 답을 드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발라트는 이곳이 아니라 대신전 소속이었으니 그쪽에 가보는 건 어떨까요. 분명 답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거기 가면 싸움 날 것 같은데. 어쨌든 알겠다. 대신전으로 한 번 가보지. 그러기 전에······.”


샬릭이 요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쪽 생각이 궁금해지는데. 자꾸 점잔빼지 말고 머릿속에 있는 걸 말해봐. 아까부터 뭔가 하려던 말이 있는 것 같거든.”


요나는 고민하는 듯 입을 우물거렸다. 그러나 샬릭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쳐다보자 결국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칼록께선 지상의 존재들에게 관심이 많으십니다. 그분이 다른 신들과 달리 지상에 자주 신탁을 내렸다는 게 그 증거지요. 하지만 그분은 이제 더는 신탁을 내리지 않습니다. 제국이 멸망하고, 사람들을 지키고 다스려야 할 제국공들이 저들끼리 싸우기 시작한 뒤부터지요. 저는 그 이유가 칼록께서 지상의 사람들에게 실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샬록이 더 말해보라는 듯 고갯짓했다.


“그런데 그간 줄곧 침묵하던 칼록께서 지상에 그분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제가 감히 추측하자면······.”


요나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분께서 당신에게 뭔가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게 아니겠습니까? 가령 이 땅의 정의를 바로 세울 대전사로 당신을 택했다던가······.”


샬릭이 입을 다물었다. 칼록이 자신에게 뭔가를 기대하고 있다고? 그 양반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런 짓을?


잠깐 생각하던 샬릭이 아하 소리를 내며 말했다.


“뭔 소린지 알겠어.”


“알았다고? 정말?”


제리얀이 미심쩍은 눈빛을 보내자 샬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니까 칼록은 세상 돌아가는 꼴이 마음에 안 드니까 나보고 싹 쓸어버리라는 소리잖아.”


아마 아닐걸. 제리얀이 조용히 고개를 내저었다.


작가의말

우리 애가 30화가 됐군요. 조만간 시집을 보내야 할 텐데 열심히 해보겠습니다.(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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