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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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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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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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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DUMMY

“···무슨 왕?”


샬릭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와 그리 긴 시간을 보냈다곤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몇 번이나 생사를 건 전투를 함께 했던 제리얀은 지금 샬릭의 기분이 몹시 언짢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기분이 언짢을 땐 항상 무슨 일이 생긴다는 것도 알았다. 주섬주섬 망토를 몸에 걸치고 있자니 북부인 하나가 말했다.


“북부의 왕! 너 정말 북부인이 맞는 거냐? 갈로스 가문도 몰라, 북부의 왕도 몰라. 대체 아는 게 뭐지?”


“지금 네가 한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어야 할 거다. 북부의 왕이라고 했지.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있나?”


“무슨 의미긴? 왕이 왕이지, 다른 뜻도 있나? 북부의 왕이라 하면 이 넓은 설산의 주인이요, 또한 전사 중의 전사라는 뜻이다!”


그래, 그거야 잘 알고 있지. 북부의 왕이 어떤 의미인지는 다른 누구보다 샬릭이 제일 잘 알고 있다. 그는 설산의 칼바람보다 더욱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북부에는 왕이 없다. 북부를 통일한 첫 왕이 사라지고 난 이후로 항상 그랬지. 그런데 뭐? 북부의 왕? 감히 누가 이 땅의 왕을 주장한다는 거냐?”


샬릭의 목소리를 들은 북부인들이 순간 몸을 움찔거렸다. 그 목소리가 너무나 차갑다 못해 듣는 것만으로 귀가 베일 것 같았기에.


“그, 그러니까 갈로스 가문의 주인이신······.”


“그래, 그 듣도 보도 못한 가문의 주인이 감히 북부의 왕을 칭한다 이거지. 그래서 그놈은 용을 죽여본 적 있나?”


“용?”


“용 모르나? 거대한 덩치를 가졌고, 입에서 불을 뿜으며, 한 쌍의 날개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놈 말이야. 그놈을 죽인 적이 있느냐고.”


“그, 그건······.”


샬릭이 투구 속에서 웃었다. 반응을 보아하니 용을 죽여본 적이 없는 것 같군. 그런 놈이 감히 북부의 왕을 칭해? 건방지다 못해 오만하다.


“안내해. 북부의 왕인지 뭔지 하는 놈의 낯짝 좀 봐야겠다.”


북부인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더니 무기를 손에 꽉 쥐었다. 그것만 봐도 그들의 대답이 뭔지 알 수 있었다.


“북부의 왕을 뵙길 원하나? 그럼 북부의 방식대로 하자고.”


북부의 방식이라면 뻔하다. 샬릭이 껄껄 웃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


“아까부터 자꾸 입으로만 쫑알거리길래 가짜 북부인인가 했더니 아니었군? 그래, 북부인이라면 이래야지.”


상황을 지켜보던 제리얀은 북부의 방식이 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는 북부인이 아니지만 진짜배기 북부인과 함께 다닌 시간이 제법 길었으므로.


북부의 방식이 어쩌고 해봤자 결국 싸움질일 게 분명하다. 지금까지 만난 북부인은 전부 그랬다.


“칼 안 뽑나?”


손에 도끼를 든 북부인이 묻자 샬릭이 어깨를 으쓱였다.


“물어볼 게 있는데 죽일 순 없잖아.”


“하, 후회하지 마라!”


북부인이 달려들었다. 과연 위협적인 공격이었지만 샬릭은 여유롭게 피한 뒤에 그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억 소리와 함께 북부인이 쓰러지고 다음 북부인이 달려왔다. 그는 손에 창을 들고 있었는데 긴 거리를 이용해 샬릭에게 접근하지 않고서 공격을 시도했다.


북부인 특유의 뛰어난 근력 덕분에 지치지 않고 연속으로 창을 내지르는데 그게 제법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샬릭은 공격을 몇 번 눈으로 보더니 대충 알겠다는 듯 오히려 북부인 쪽으로 뛰었다. 다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돌격에 북부인이 당황하는 게 보였다.


그는 재빠르게 창을 내질렀지만 그 공격은 샬릭의 손에 붙잡히고 말았다. 창대를 붙잡힌 북부인이 어어 소리를 내며 창을 뒤로 잡아당겼으나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샬릭이 힘을 주어 창대를 자신 쪽으로 잡아당기자 북부인이 휙 날아왔다. 넘어질 뻔한 걸 겨우 균형을 잡고 똑바로 서니 그 얼굴 위로 발차기가 직격했다.


뿌드득,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고개가 돌아갔다. 북부인은 바닥에 쓰러진 채 몸을 부들거렸다. 그가 다시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아, 이런. 다 쓰러트리면 안 되는데.”


샬릭이 쯧 하고 혀를 찼다. 지켜보던 제리얀이 이제 어쩔 거냐고 묻자 샬릭이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도 여긴 내 고향인데 아는 사람 하나 없을까? 정보를 구할 데가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어. 그것보다 제리얀? 일단 너 옷부터 갈아입자.”


“옷은 왜? 추울까 봐? 물론 춥긴 하지만 망토를 두른 덕에 아까보다는 좀 나은데.”


“그게 아니라 이놈들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북부에서 갑옷 안 입고 다니면 칼 맞아.”


북부인들은 모두 갑옷을 입고 다닌다. 이곳의 환경이 몹시 험해서 갑옷을 입지 않으면 언제든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리얀은 쓰러진 북부인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남들 다 갑옷 입고 다니는데 웬 요정이 그냥 돌아다니면 눈에 띌 게 분명하다.


“갑옷 입는 거야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그럼 갑옷 뺏긴 놈은? 여기서 갑옷 벗고 누워 있으면 얼어 죽는 거 아니야?”


“북부인은 그래도 돼. 안 죽어.”


아니, 죽을 것 같은데. 제리얀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샬릭을 도와 북부인의 갑옷을 벗겼다.


갑옷을 벗기고 보니 북부인 하나의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서늘하게 변한 게 보였지만 애써 무시했다.


“갑옷 입는 건 내가 도와주지. 아무래도 처음 입는 거라면 혼자서 입긴 힘들 테니까.”


제리얀은 샬릭의 도움을 받아 갑옷을 입었다. 몸을 짓누르는 무거운 무게에 순간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북부인들은 이런 걸 입고 돌아다닌다고? 제정신이 아니군.


“어우, 무거워. 그래도 확실히 껴입으니 따뜻하긴 하네, 그래서 우린 어디로 가는데?”


“내 친구가 북부에서 고아원을 하거든. 그쪽으로 가려고.”


샬릭은 번 돈의 일부를 주기적으로 고아원에 보낸다. 용 사냥 때문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부족함 없이 자라 훌륭한 북부의 전사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그곳이라면 갑작스레 나타난 손님을 받아줄 것이다. 물론 그 손님이 여기 오기 전에 갈로스 가문의 하수인을 때려눕힌 사고를 치고 왔다고 하더라도.


“그건 어디에 있는데? 길은 알아?”


“알 것 같아.”


“알면 아는 거지, 알 것 같아는 대체 무슨······.”


제리얀은 뭔가 믿음직스럽지 못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으므로 샬릭의 뒤를 따랐다. 익숙하지 않은 갑옷을 입은 데다가 눈 때문에 발이 푹푹 빠져서 아주 죽을 맛이었다.


“용의 불꽃으로 주변의 눈을 다 녹여버리면 안 되나? 그럼 냉기도 가시고 더 나을 것 같은데.”


제리얀의 질문에 샬릭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짓을 했다가 누가 보기라도 하면 귀찮아져.”


“하기야 그런가.”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은 쏟아지는 눈 속을 헤치며 산을 올랐다. 제리얀이 한참 걷다가 느낀 게 있다면 대체 이런 곳에 사람이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해야 짐승이나 괴물 따위를 사냥하는 것뿐일 터다. 당연히 그건 몹시 위험한 일이다.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이런 곳에서 나고 자라니 하나 같이 제정신이 아니게 되지. 제리얀이 쯧쯧 혀를 찼다.


“얼마나 남았어?”


“내 기준으로 삼십 분.”


“그럼 내 기준으로는?”


“두 시간은 더 가야 할걸.”


제리얀이 입에서 나오려는 욕을 애써 참았다. 이 빌어먹을 눈보라 속을 지나 두 시간이나 더 가야 한다고?


게다가 점점 위로 올라가면서 공기가 희박해지는 느낌이다. 제리얀이 요정이니까 버텼지, 그냥 인간이었다면 산소 부족으로 벌써 쓰러졌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 고아원에 가는 거 맞아? 고아원이 뭐 이런 곳에 있어? 실은 고아원이 아니라 훈련소 같은 거 아니야?”


위로 올라가면서 점차 산소가 희박해진 탓인지 제리얀이 아무 소리나 지껄이기 시작했다. 샬릭이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여기까진 애들도 웃으면서 돌아다녀. 어른이 됐으면 애들보다 못한 걸 부끄러운 줄 알아.”


“아니, 이걸 웃으면서 돌아다닌다고? 북부인은 무슨 괴물이냐?”


“애들한테 못 하는 말이 없군. 거의 다 왔다.”


제리얀은 여전히 헛소리를 지껄이며 샬릭의 뒤를 따라왔다. 몇십 분 정도 더 걷고 나서 눈보라 사이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저기야?”


“그래, 저기다. 내가 후원하는 고아원이 있는 곳이지.”


제리얀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어찌어찌 죽기 전에 도착했군.


두 사람은 불빛을 따라 걸었다. 점차 선명해지는 불빛을 따라 걷다 보니 거대한 동굴이 나타났다.


여기가 고아원? 애들 정서에 아주 나쁠 것 같은데. 제리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북부의 척박한 환경을 생각해보면 집을 짓는 것보단 동굴에 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샬릭과 제리얀이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그래도 동굴 안이 바깥보다는 훨씬 더 따뜻했다.


덕분에 제리얀도 안도의 한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조금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니 안쪽에서 막대기를 가지고 훈련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고아원을 지키는 병사들인가? 그런 것치고 키가 좀 작은데. 제리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다가 헉 소리를 냈다. 병사들이 아니라 아이들인데?


“쟤네 애들 아니야?”


“그래.”


“고아원이라며? 그런데 왜 저러고 있어? 역시 여긴 훈련소였나?”


샬릭이 뭔 소리를 하냐는 듯 말했다.


“그럼 북부에서 덧셈 뺄셈이나 가르치고 있을 줄 알았나? 북부는 저게 맞아.”


제리얀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북부에서 덧셈 뺄셈할 줄 아는 건 아무런 도움도 안 될 것이다. 차라리 싸우는 법을 배우는 게 더 낫지.


“어이!”


샬릭이 크게 소리치자 열심히 훈련에 매진하고 있던 아이들이 이쪽을 쳐다봤다. 그들을 가르치고 있던 남자 역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실내라서 그런지 투구를 벗고 있었는데 상당히 험상궂게 생긴 인상이었다. 그런 남자가 샬릭을 발견하고서 성큼성큼 다가오자 제리얀이 저도 모르게 헉 소리를 냈다.


설마 싸움이라도 나려나? 긴장하고 있으니 남자가 환하게 웃었다.


“샬릭 님! 여긴 어쩐 일입니까?”


“고드릭. 오랜만이군.”


두 사람이 가볍게 포옹하더니 껄껄 웃었다. 샬릭이 제리얀에게 말했다.


“인사해. 이쪽은 고드릭이라고, 고아원의 원장이야.”


저 얼굴로? 훈련소의 교관이 아니고?


제리얀은 자기가 투구를 쓰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무례한 생각을 들키지 않았을 테니까.


“반갑습니다, 고드릭. 전 제리얀입니다. 샬릭의······ 동료 같은 거죠.”


“샬릭 님의 동료라면 무척 강한 분이겠군요. 나중에 한 번 붙어보고 싶습니다.”


대체 왜? 제리얀이 큼 소리를 내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기회가 된다면요······.”


“부디 그런 기회가 있길 바라겠습니다. 그런데 샬릭 님? 여긴 어쩐 일로 오신 겁니까?”


샬릭이 답했다.


“칼록 그 양반이 시켜서.”


“네? 칼록이 누굽니까? 감히 샬릭 님에게 이래라저래라하다니, 제가 가서 손 좀 봐줄까요?”


제리얀이 경악했다. 아무리 북부인이라도 이건 좀······.


“됐어. 천상에 있는 양반이라 칼도 안 먹혀. 그것보다 내가 오면서 들었는데 좀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더군?”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면······ 아, 북부의 왕 말씀입니까?”


“그래. 뭐 하는 놈이냐, 그건?”


“설명하자면 좀 깁니다. 갈로스 가문이라고 아십니까? 놈은 본래 그리 유명하지도 않던 한미한 가문 출신이었는데······.”


“짧게 말해.”


“어마어마한 씹새끼입니다.”


너무 짧게 줄였잖아. 제리얀이 어이없어하는 것과 반대로 샬릭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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