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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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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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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DUMMY

“내 말 맞지? 타지에서 만나는 북부인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니까.”


샬릭이 턱을 까딱거리자 제리얀이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 네 말이 맞는 것 같네. 그래서 저놈들이 왜 갑자기 우리를 죽이겠다는 건데?”


“우리가 용을 죽였으니까.”


“그게 다짜고짜 사람을 죽일 만한 이유가 되나?”


“이유가 돼. 북부인이 용 사냥을 하고 다니는 건 위대한 업적을 세움으로써 천상에 오를 자격을 얻기 위해선데, 그럼 용을 죽인 사람을 사냥하면? 용을 죽이는 것보다 더한 업적을 세우는 셈이지.”


제리얀은 고작 그런 이유로 사람을 죽이러 드냐고 묻지 않았다. 북부인은 고작 그런 이유로 용에게 덤벼드는 미친 족속들 아닌가?


“납득이 안 되는데 무슨 말인지 일단 머리로 이해는 했어.”


“그럼 됐어. 저 친구들이 기다리는 것 같으니까 일단 할 일부터 하자고.”


샬릭이 어깨를 빙글빙글 돌리며 북부인 무리를 향해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보며 제리얀이 얼른 따라붙자 샬릭이 손을 흔들었다.


“됐어. 혼자서도 충분해.”


그건 오만함이 아니었다. 샬릭은 사실상 혼자서 걀라토르스를 때려잡았으니 북부인 몇 명이 달려든다고 해서 그의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제리얀도 그 사실을 알지만 싸움을 맡겨두고 혼자 뒤에서 구경만 한다는 게 그리 기껍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 싸움에 끼어들 자신도 없었다. 부끄럽지만 자신은 이미 걀라토르스와의 싸움에서 마력을 대부분 소진하고 말았으니까.


이 상태로 싸움에 끼어봤자 도움이 되기는커녕 되려 짐이나 될 게 분명하다. 제리얀은 얌전히 샬릭이 시키는 대로 했다.


“미안하군. 제법 기다리게 한 것 같은데 사과의 의미로 선수를 양보해줄까?”


샬릭이 웃으며 말하자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는 없소. 그보다 하나 묻겠는데, 동족이신가?”


“보면 알잖나? 세상에 갑옷 입고 용 잡으러 다니는 미친놈은 북부인 말고 없을걸.”


북부인 전체를 모욕하는 발언이지만 남자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이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천상에 오르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지. 미쳐야만 그럴 수 있소.”


“그래. 난 그게 별로 마음에 들진 않지만······ 감히 내가 왈가불가할 일은 아닌가. 그래서 어쩔래? 연전으로 할까? 그런 식으로 하기엔 좀 부담스러울 것 같은데. 원한다면 다 같이 덤벼도 괜찮아.”


남자가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등 뒤의 도끼를 손에 쥐었다.


“그래도 된다면 감사히.”


“시작할까?”


상대의 숫자는 다섯이다. 고작 그 정도로 숫자로 용을 죽이려 했냐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모든 북부인은 타고난 전사로서 그 근력부터가 남다르니까.


당장 같은 북부인인 샬릭부터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북부인 다섯이면 마을 하나쯤은 손쉽게 약탈해버린다.


“그럼 선수를 양보할······.”


샬릭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갑자기 날아온 화살이 그의 투구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기습이 무위로 돌아간 걸 본 북부인 궁수는 별로 아쉬워하지도 않고 바로 다음 화살을 시위에 올렸다.


나머지 네 명은 각자 무기를 들고 샬릭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샬릭이 껄껄 웃었다.


“그래, 이게 북부인이지.”


북부인은 기사가 아니다. 그들은 용을 죽이기 위해 싸우는 용 사냥꾼이고 정직하게 싸워봤자 용에게 아무런 타격도 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이용할 수 있는 건 모두 이용한다. 설령 그게 남들이 보기에 비겁하다고 느껴질 만한 수단이라고 해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전에 북부인 친구를 한 명 만난 적이 있는데 말이야······.”


네 명의 북부인이 사방에서 무기를 휘두르며 달려들지만 샬릭의 태도는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그는 눈이 여러 개 달린 것처럼 사각에서 날아오는 공격까지 전부 반응했다.


칼로 쳐내고, 건틀릿으로 막고, 발로 차서 쓰러트리고, 몸을 비틀어 피하고, 그 모든 동작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해내는 모습은 그가 숙련된 전사라는 것을 의미했다.


북부인들은 무기를 몇 번 맞대보는 것만으로도 샬릭의 실력을 쉽게 가늠했다. 자신들에게 승산이 거의 없다는 것도 잘 알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것처럼 달려들었다. 사실이 그랬다. 그들은 죽기 위해 싸웠다.


“그 친구는 북부인치고 실력이 영 별로더군. 그런데 댁들은 달라. 칭찬할 만한 실력이야.”


샬릭의 창찬에도 기뻐하는 사람은 없었다. 북부인들은 치열하게 싸웠다.


“컥!”


칼을 들고 달려들던 북부인 하나가 샬릭의 주먹에 맞고 쓰러졌다. 그는 다시 일어나려 했으나 머리가 너무 흔들려서 바닥에서 허우적거렸다.


이제 남은 건 셋. 무식하게 큰 대검을 휘두르며 달려든 북부인을 향해 샬릭의 칼이 움직였다. 날과 날이 부딪치자 쨍 소리가 울렸다.


북부인의 체격은 샬릭보다 훨씬 더 컸고 무기 역시 그랬으므로 힘 싸움을 한다면 그가 더 유리할 터였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는 샬릭에게 힘에서 밀렸고 변칙적으로 칼날을 비틀어 밀어내자 어어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졌다.


그의 머리 위로 샬릭의 발차기가 날아왔다. 머리가 크게 흔들리더니 북부인이 혀를 빼물고 기절했다.


“용을 죽였다더니 과연 훌륭한 솜씨다! 싸울 만한 가치가 있어!”


북부인 하나가 양손에 칼을 들고 덤볐다. 그 역시 다른 두 명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결말을 맞았는데 샬릭이 몇 번 칼을 맞대는가 하더니 순식간에 쓰러트렸다.


슉! 그새 날아온 화살 하나가 샬릭의 몸에 부딪혔지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 마치 벌레가 물었나 하는 태도로 어깨를 털어낸 샬릭이 바닥을 박차고 뛰었다.


분명 북부인 궁수와 제법 거리가 있었음에도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달려온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날린 주먹은 마치 공성추와 같았다.


빡 소리가 나며 북부인 궁수의 투구가 찌그러졌다. 샬릭은 가볍게 손목을 털었고 마지막으로 남은 북부인을 향해 몸을 돌렸다.


북부인 무리의 대장쯤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그가 도끼를 든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무슨 속셈이오?”


“무슨 속셈이냐니? 아무 속셈도 없는데.”


북부인이 부득 이를 갈며 말했다.


“왜 우리를 봐주지? 우리가 그리 우습나? 제대로 상대할 가치가 없어 보이는 거요?”


“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나도 나름대로 목숨 걸고 싸우는 중인데.”


“목숨 걸고 싸우는 것치곤 남 목숨 신경 써 줄 여유도 있으신가 보오.”


그것마저 모르는 체하긴 어려웠다. 북부인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먼저 쓰러졌던 북부인들이 있었는데 그들 모두는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물론 샬릭에게 호되게 당한 탓에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 것 말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어쨌건 살아있긴 했다.


제리얀이 보기에 그건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샬릭이 누군가를 살려주다니? 그는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지 않지만 이유가 있다면 누구든 죽인다.


당장 마을에서도 도마뱀 인간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학살하지 않았나. 그런 그가 이번엔 자신에게 먼저 덤벼든 북부인들을 죽이지 않고 제압만 했다.


왜 그랬을까. 설마 같은 북부 출신이라서? 혹여나 애향심이 샘솟기라도 했나? 설마 그러려고······.


“이런, 저 친구들 안 죽었어? 생각보다 끈질기네. 난 죽일 각오로 때렸는데 말이야.”


“시치미 떼는 것도 거기까지 하시지. 우릴 모욕하려는 게요? 아니면 같은 북부인이라고 봐주는 건가? 설마 그런 거라면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해두지. 당신도 북부인이라면 알 것 아니오?”


샬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알지.”


샬릭은 전에 칼미쉬라는 북부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와 뭔가 악연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의뢰 때문에 싸웠고 죽이기까지 했다.


그전에도 북부인을 몇 명이고 죽인 기억이 있다. 이미 여러 명의 북부인을 죽였는데 인제 와서 동족이 어쩌고 하면서 살려주고 그럴 이유 따윈 없다.


그런데도 샬릭이 지금 자신에게 덤벼든 북부인들을 죽이지 않은 이유가 있다.


“나는 말이야, 너희 같은 친구들을 잘 알아. 용을 잡겠답시고 무장한 채로 여기저기 쏘다니고 다니는 놈들에 대해서 잘 안다고.”


“···당신이 우리에 대해 뭘 안다는 게요?”


“많이 알지. 나도 같은 북부인이니까. 너희는 용이라는 강력한 존재에 도전하는 용맹한 전사인 양 굴지만 실은 비겁하기 짝이 없는 겁쟁이야.”


“뭐요?”


“너희는 죽을 각오로 싸우는 게 아니라 죽으려고 싸우지. 이 세상을 멋지게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 멋지게 죽는 것에 집착해. 죽음으로서 이 땅을 떠나 천상으로 도망치려 한다고.”


“닥―쳐!”


북부인이 발작적으로 소리치며 샬릭에게 달려들었다. 머리 위로 크게 도끼를 들었다가 내리쳤다. 샬릭이 뒤로 뛰어 피하자 그 자리에 불꽃이 튀었다.


단단한 동굴 바닥이 박살 난 걸 보면 아무리 갑옷을 입었어도 저 공격에 당하면 크게 다칠 게 분명했다.


북부인이 다시 도끼를 휘둘렀다. 그러나 그 맹렬한 공격은 샬릭의 손끝에 의해 막혔다.


“너흰 마치 처음부터 죽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살아. 그럴 수가 있나. 세상에 죽으려고 태어난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샬릭이 건틀릿 낀 손으로 도끼날을 잡았다. 힘껏 힘을 주자 유리 깨지듯 산산이 부서져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북부인이 헉 소리를 냈다.


“내가 왜 너희를 안 죽이는지 아나? 너희는 강적과 싸우다 죽는 것보다 살아남는 걸 더 수치스럽게 여기기 때문이야. 나보고 너희를 죽이라고?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너희가 기뻐할 일을 내가 왜 하겠어.”


북부인이 이익 소리를 내며 맨손으로 덤볐다. 그러나 무기를 들었어도 상대가 되지 않는데 고작 맨손으로 덤빈다고 뭔가 해낼 수 있을 리는 없었다.


샬릭의 주먹이 똑바로 날아가며 북부인의 얼굴을 때렸다. 북부인은 그래도 쓰러지지 않고 버텼으나 뒤이어 날아온 주먹까지 버티진 못했다.


그의 몸이 크게 휘청이는 순간 묵직한 발차기가 허리에 직격했다. 악 소리와 함께 북부인의 몸이 날아가 바닥을 크게 굴렀다.


“크억······.”


투구 사이로 핏물이 흘러나왔다. 샬릭에게 얻어맞은 갑옷 부위가 전부 우그러진 걸 보면 내상이 심했을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는 죽지 않았다. 그가 강인해서가 아니라 샬릭이 죽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왜 용 사냥을 하고 다니는 줄 아나? 너희 같은 놈들 때문이야. 내가 용을 다 죽여버리면 너희도 그 개짓거리를 그만두게 될 테니까.”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제리얀이 흠 소리를 냈다. 샬릭이 대체 왜 용을 죽이고 다니는가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을 줄이야.


마냥 정신 나간 북부인인 줄로만 알았는데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당신······.”


바닥에 쓰러진 북부인이 쿨럭쿨럭 기침했다. 그럴 때마다 투구에서 핏물이 쏟아져 나왔다.


“진짜배기로군. 정말로 용을 죽인 몇 안 되는······.”


“그래서 왜? 갑자기 존경심이라도 드나?”


“존경심이라. 그래, 용 사냥꾼이라면 존경할 만한 존재지······. 이름을 알려주시오. 감히 그 존귀한 이름을 듣길 원하오.”


“그거야 어려울 것도 없지. 난 샬릭이다. 원한다면 사인이라도 해주랴?”


“샬릭, 샬릭······. 샬릭?”


입에서 샬릭의 이름을 굴려보던 북부인이 불현듯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샬릭이라면······ 북부의 보물을 훔쳐 갔다는 그 용 사냥꾼?”


“훔치다니, 말조심해. 난 안 훔쳤어. 내가 좀도둑도 아니고 남의 물건에 손을 댈 리가?”


“그럼?”


샬릭이 당당히 말했다.


“뺏은 거야.”


작가의말

tesy11 님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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