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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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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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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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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DUMMY

* * *


북부의 왕이 죽었다.


데반의 죽음을 지켜봤던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 소식은 북부 전역으로 빠르게 알려졌다. 수많은 북부인이 그 소식을 접하고서 충격을 받았지만 단 두 사람만은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들의 이름은 제리얀과 고드릭이다.


“결국 샬릭이 해냈군.”


“샬릭 님은 북부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니까요. 북부의 왕 자리에 어울리는 건 오히려 그분이지요.”


“힘의 논리에 따르면 다음 왕은 샬릭이 돼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샬릭은 별로 안 내켜할 것 같긴 한데.”


두 사람이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고 있을 때 샬릭이 고아원으로 돌아왔다. 그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자 샬릭이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큰일 났어.”


큰일? 뜬금없는 소리에 제리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인데? 북부의 왕을 죽였다며? 그걸로 다 끝난 것 아니야?”


“북부의 왕이라고 자칭하던 놈 이름이 데반인데, 내가 그 친구 죽이고 나서 몇 가지 좀 물어봤거든? 그랬더니 놈의 뒤에 누가 있는지 알게 됐지.”


“뒤에 누가 있는데?”


“혈석공. 그 양반이 곧 군대를 이끌고 북부를 침공할 것 같아.”


그건 확실히 큰일이다. 그런데 무슨 그런 말을 저토록 무심하게 말하나? 제리얀이 어이없어 하는 사이에 고드릭이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군대를 소집해야겠군요. 맞서 싸워야 합니다. 북부는 침략할 뿐, 침략당해선 안 됩니다.”


자기들은 필요할 때마다 약탈하러 다니면서 반대로 적이 공격해 온다니까 발끈하는 모습이 참으로 북부인답다.


제리얀이 물었다.


“북부에도 군대가 있습니까? 각 가문이 거느린 사병 정도야 있을 테지만 북부를 지키기 위해 조직된 군대는 없을 것 같은데요.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군대를 통솔할 왕이 없었으니까.”


“물론 없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만들어야지요.”


북부는 참 대책 없는 곳이군. 하기야 지금까지 제대로 된 침략이 없었으니 군대를 만들 필요성도 못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혈석공이라고? 나도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 난쟁이 군주잖아. 아마 그 영지가 북부 바로 아래에 있었던가. 그런데 갑자기 왜 북부를 공격한대?”


제리얀의 질문에 샬릭이 데반과 나눴던 이야기를 간략히 설명했다.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고드릭이 후 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역시나 흑철과 대장장이 때문이었군요. 저는 어르신과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겠습니다.”


“싸우지 못하는 자들은 전부 겨울궁에서 보호하기로 했다. 나도 그쪽으로 가기로 했으니 다 같이 가자고.”


“알겠습니다. 잠깐만 기다려주시지요.”


고드릭은 아이들에게 각자 짐을 챙기라고 말한 뒤에 대장장이를 데리고 나왔다. 제리얀은 그 얼굴을 처음 봤을 때처럼 발작하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지금은 정신인 돌아온 듯 멀쩡해 보였다.


“샬릭 님? 북부로 돌아오셨습니까?”


대장장이는 샬릭을 알아보았다. 샬릭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대장장이가 웃으며 말했다.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오셨군요.”


“글쎄, 뭔 소리인지 잘 모르겠군. 그보다 이야기는 대충 들었지? 댁 노리는 친구들이 있으니까 얌전히 잘 숨어 있어.”


“도움이 되지 못해 송구스럽습니다. 이런 싸움에 끼어야 천상에 갈 수 있을 텐데요.”


“자책할 필요 없어. 그리고 천상에 오르는 것도 그리 집착할 필요 없고.”


샬릭과 대장장이는 몇 마디 더 대화를 나누다가 고드릭을 따라 겨울궁으로 향했다. 산세가 험한데도 아이들은 힘든 내색 없이 묵묵히 어른들을 따라왔다.


그걸 보고서 제리얀은 과연 북부인은 북부인이라고 생각했다. 하기야 어렸을 때부터 이런 곳에서 살아왔을 테니······.


“저기가 겨울궁이야? 북부에도 의외로 제대로 된 건물도 있네.”


숨 쉬듯 무례한 발언을 내뱉는 제리얀을 무시하고서 일행은 겨울궁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은 몹시 소란스러웠다.


싸우지 못하는 노약자들도 많았지만 싸우기 위해 찾아온 전사들은 그보다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을 통솔하는 자가 없었던 탓에 사방에서 시끄러운 고함이 울렸다.


때때로 저들끼리 시비가 붙어 싸우기도 했는데 북부인들은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싸움을 부추겼다.


제리얀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혈석공의 군대는 잘 훈련된 것으로 유명한데 과연 북부가 당해낼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도 서로 뭉치기는커녕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는데?


“저는 어르신과 아이들을 데리고 안쪽으로 가보겠습니다. 샬릭 님은?”


“난 강철 왕좌로 가겠다. 가주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말이야. 나도 이번 사태에 약간이나마 책임이 있으니 힘을 보태야겠지.”


“알겠습니다. 그럼 무운을 빌지요.”


샬릭은 고드릭과 헤어져 강철 왕좌 쪽으로 향했다. 그 뒤를 따르던 제리얀이 물었다.


“뭔가 작전이 있는 거지?”


“글쎄.”


“천하의 샬릭이 왜 약한 소리를 하지? 늘 하던 것처럼 하자고.”


“늘 하던 거라니?”


제리얀이 웃었다.


“네가 혈석공을 맡는다, 그리고 내가 난쟁이 군대를 맡는다.”


샬릭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그런 식으로 하면 되겠지. 두 사람은 낄낄거리면서 강철 왕좌로 향했다.


복도를 통과해 넓은 광장에 들어서니 거기엔 대가문의 가주들, 그리고 수십 명의 전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모든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렸다. 제리얀은 몸을 움찔거렸으나 곧 침착을 되찾았다. 샬릭이 함께 있는데 무서울 게 뭐 있다고.


“다들 나 기다렸나? 바쁜데 먼저 시작해도 되는데.”


샬릭의 말에 가주 중 한 명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야 없지. 자, 그럼 모일 사람 다 모였으니 회의를 시작합시다.”


회의 시작을 알리자 기다렸다는 듯 전사 하나가 크게 외쳤다.


“난쟁이 놈들을 다 죽입시다! 북부의 무서움을 보여줍시다!”


그 의견에 동조하듯 몇몇 전사들이 크게 함성을 내질렀다. 그 때문에 주변이 소란스러워지자 가주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난쟁이 놈들을 다 죽이자고? 그것참 마음에 드는 소리군. 그런데 뭔 수로? 혈석공의 군대는 우리보다 훨씬 많을 텐데.”


전사는 그 말에 대꾸하지 못했다. 그도 이쪽이 수적으로 훨씬 열세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전쟁이라는 건 기세만으로 할 수 없는 법이다.


“저 친구의 말이 다소 대책 없이 들리기는 하나 틀린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 우리가 뭘 할 수 있습니까? 싸우는 것 말곤 없지 않습니까? 불리하다가 가만히 있다가 다 죽을 것도 아니고 싸우다 죽어야지요.”


또 다른 전사가 그런 말을 하자 다시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가주는 못마땅한 듯 그를 쳐다봤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사실 싸우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었으니까. 애초에 이쪽에서 싸우기 싫다고 한들 저쪽은 생각이 다를 터다.


“그러면 다들 혈석공의 군대와 맞서 싸울 각오가 돼 있나?”


가주의 물음에 전사들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의지를 확인한 가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북부에는 왕이 없었지. 왕이 없으니 군대도 없었고. 모든 북부인은 전사지만 군인은 아니야. 개개인의 무력은 난쟁이 전사보다 뛰어날지 몰라도 조직력은 훨씬 떨어진다.”


그 말에 발끈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북부인은 전사일 뿐 군인이 아니다. 그들은 소규모 인원으로 약탈에 나선 적은 많지만 군대끼리의 싸움은 경험해본 적이 없다.


“전장은 바로 이 북부가 될 테니 지리적인 이점은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우린 다 함께 싸우는 법을 배워야 해.”


그러니 지금부터 뭘 해야 하겠나? 가주의 물음에 전사 하나가 손을 들고 말했다.


“훈련해야겠군요.”


“그래, 우린 이제부터 군대로서 싸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혈석공의 군대가 북부까지 오려면 제법 시간이 남았어. 혈석공이 얼마나 많은 군대를 이끌고 올지는 모르겠다만 고작해야 수백 명을 끌고 오진 않겠지. 그러니 그만한 숫자가 여기까지 오려면 적어도 한 달은 넘게 소요될 터.”


그게 북부에 남은 마지막 기회였다. 지금까지 자기 잘난 맛에 살던 북부인들이 하나로 뭉쳐 군대로서 싸우는 법을 배울 마지막 기회.


전사들은 기세가 올라서 발을 구르거나 무기로 벽을 치면서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전쟁을 두려워해야 할 텐데 오히려 즐거운 축제쯤으로 여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제리얀은 그 모습을 보고서 질렸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슬쩍 샬릭을 쳐다보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있을 뿐이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북부인들의 성장에 흐뭇해하고 있나? 그도 아니면 그냥 별 생각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요.”


시끄러운 소란 속에서 전사 하나가 손을 들었다. 가주가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알기로 군대라는 건 응당 지휘자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지금까지야 약탈에 나서면 그냥 우르르 몰려가서 알아서 싸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요. 지휘자든 장군이든, 명칭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어쨌건 군대를 통솔할 자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전사는 지극히 상식적인 선에서 한 말일 뿐이지만 설마 그게 전사들을 자극하리라곤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북부에는 군대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 북부군이 생기게 됐으니 그들을 지휘할 영광을 가질 자가 누구인가?


“그거라면 이 몸이 하겠다!”


“아니, 내가 하겠어!”


“결투다! 결투로 정하자!”


“싸워라, 싸워라!”


북부인은 위대한 싸움 끝에 죽으면 천상에 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한 믿음 때문에 용을 사냥할 정도가 아닌가.


혈석공과의 싸움 역시 몹시 격렬할 테지만 그것만으로는 천상에 가기 좀 부족할 듯하다. 그런데 그냥 일개 잡졸로서 싸우는 게 아니라 북부군의 대장으로 싸우다 죽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천상에 오르기 적합한 싸움이다.


지금 여기 모인 북부인들은 모두 한가락씩 하는 전사들이고 위대한 죽음에 목말라 있었다. 그러한 이유에서 서로 자기가 대장을 하겠다고 날뛰기 시작했다.


싸움을 지켜보던 가주들의 반응은 제각기 달랐다. 어떤 가주는 이 상황이 지긋지긋하다는 듯 고개를 젓고 있었고 어떤 가주는 이 와중에 자기 가문의 전사를 대장으로 삼으려고 하고 있었다.


회의장에서 수많은 사람이 제각기 떠들어대기 시작하자 시장통처럼 시끄러워졌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제리얀이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난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 가네. 북부군 대장을 누구로 할 것인지로 왜 싸우는 거야? 그거야 당연히 북부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 해야지.”


별로 크지 않은 목소리임에도 어째서인지 모두에게 잘 들렸다. 자기들끼리 싸우던 북부인들의 시선이 모두 제리얀에게 모였다.


제리얀은 그 모든 시선을 덤덤히 받으며 말했다.


“왜,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북부군 대장은 북부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 해야 맞는 거잖아. 그래서 누가 제일 강하냐고? 그거야······.”


제리얀은 대답하는 대신에 고개를 돌렸다. 시선 끝에는 샬릭이 있었다.


“내가 알기로 이 친구가 제일 강한데, 혹시 불만 있나? 있으면 덤벼. 나 말고, 이 친구한테.”


이놈이? 졸지에 북부군 대장 노릇을 하게 생긴 샬릭이 어이없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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