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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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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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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DUMMY

“이상하네. 왜 부모가 있지?”


헛소리를 하는 건 용만으로도 충분히 어지러운데 이젠 용 사냥꾼까지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제리얀이 타박하듯 말했다.


“지금 그게 할 소리야?”


“못할 소린 아니지? 난 그냥 부모가 왜 있냐고 물어봤을 뿐인데.”


“그러니까 그게 못할 소리라고. 부모가 왜 있긴? 그럼 저놈이 부모가 없어야 한다는 소리야?”


“혹시 애 키워봤나?”


뜬금없는 물음에 제리얀이 답했다.


“애 키워본 적은 없고 동네 애들이라면 몇 번 봐준 적 있는데. 그건 왜?”


“부모가 애 바깥에 내보낼 때 낯선 사람 조심하라고 교육하지. 그냥 내보냈다가 모르는 사람한테 해코지라도 당할까 봐 그러는 건데 용도 마찬가지야. 용은 자기 새끼 바깥에 내보낼 때 북부인 조심하라고 교육해. 북부인이 용 죽일 힘은 없어도 용 괴롭힐 힘은 있거든.”


“그래서?”


“용이라면 당연히 북부인 이야기만 들어도 끔찍해 하는 법인데 저놈은 안 그러지. 부모가 있다면 그럴 수가 없어. 부모가 자식을 버린 게 아니고서야 북부인에 대해 안 가르칠 리가 없거든.”


말만 들으면 북부인이 무슨 사람이 아니라 끔찍한 병균처럼 느껴진다. 제리얀이 잘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걀라토르스가 말했다.


“······왜 그런지 대답해주지. 나는 부모가 있지만 그들과 그리 사이가 원만하지 않다. 나는 내 아비가 누구인지 모르고 내 어미는 내가 알에서 부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나버렸지. 사실상 지금까지 홀로 자라온 셈인데, 만약 내가 사슴이나 토끼 따위였다면 진즉 죽었을 거다.”


역시나 그랬군. 샬릭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말대로라면 넌 네 부모와 별로 친하지 않은 것 같군? 그럼 뭔 수로 약점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지? 그냥 살려고 아무 말이나 지껄인 것 아닌가.”


“내가 어미와 함께 지냈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그 몸에 어떤 약점이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게 뭐지?”


“그걸 지금 말해줄 수야 없지. 그랬다간 네가 날 죽일 것 아니냐?”


똑똑하군. 샬릭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널 살려달라고?”


“아까 북부의 관습이 어쩌고 했지? 그 관습대로 내 마지막 부탁을 들어다오. 내 부모의 약점을 알려줄 테니 날 살려줘.”


제리얀이 미간을 좁혔다. 다른 용의 심장을 내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고작 부모의 약점을 알려주는 대가로 목숨을 살려달라니, 그건 좀 너무한 부탁이 아닌가.


걀라토르스의 부모는 그보다 훨씬 더 강한 용일 게 분명하다. 그런 존재를 고작 약점 하나 안다고 손쉽게 해치울 수 있을까?


“이봐, 샬릭. 저 말 들어줄 필요 없어. 뭐하러 그런 짓을 해?”


제리얀이 말하자 걀라토르스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넌 입 다물고 있어라, 마법사. 이번 싸움에서 아무 도움도 안 된 주제에 말만 많군.”


“아니······.”


시무룩해진 제리얀이 입을 다물었다. 샬릭이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약점에 대해서 듣고 널 살려주는 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 약점이 진짜인지 아닌지 내가 어찌 믿지?”


“그거야 저 마법사의 도움을 받아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하면 될 일 아닌가?”


생각해보니 제리얀에게는 상대의 말이 진짜인지 알아내는 마법이 있었다. 샬릭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말했다.


“그럼 말해봐.”


“샬릭! 정말 저놈을 살려주려고?”


샬릭이 제리얀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어를 잡을 기회 아닌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용 잡을 때 너한테 도와달라고 안 하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그래서 걀라토르스? 그 약점이라는 게 뭐냐?”


걀라토르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건 말이지······.”


걀라토르스가 제 어미의 약점에 대해 말했다. 제리얀이 그 진위 여부에 대해 확인했고 곧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야.”


“그런가. 그런 약점이 있었다는 말이지······.”


샬릭이 흠 소리를 내고 있자 걀라토르스가 말했다.


“그럼······ 이제 날 살려주는 거겠지?”


샬릭이 뭘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콰직! 눈 깜짝할 새에 뽑힌 칼이 걀라토르스의 미간을 찔렀다. 칼은 단단한 비늘을 부수고 들어가 용의 뇌를 박살 냈다.


아무리 강력한 생물이라도 뇌가 박살 난 상태에서 생존할 수는 없다. 걀라토르스의 몸이 축 늘어지면서 억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왜?”


“진짜 북부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군? 북부의 관습이라고 해서 그걸 진짜 지키는 줄 아나? 그거 그냥 하는 소리야.”


걀라토르스의 숨이 끊어졌다. 그 얼굴에는 억울함이 가득했다. 내가 왜 죽어야 하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저승 가면 아르샨데오한테 안부 전해라.”


샬릭은 그리 말하고서 머리에 박힌 칼을 뽑았다. 그가 칼날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선 걀라토르스의 머리 위로 올라갔다.


손으로 칼에 맞은 상처를 쫙 벌리자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는 게 보였다. 제리얀이 윽 소리를 내며 말했다.


“머리는 왜 쪼개?”


“용을 죽였으니 심장을 먹어야지.”


“심장이라면 거기가 아니라 좀 더 아래에 있는 것 아닌가?”


샬릭이 웃었다.


“그건 생물학적 의미의 심장이나 그런 거고. 내가 찾는 건 머리에 있어. 정확히는 뇌 뒤쪽인데······.”


샬릭이 걀라토르스의 머릿속을 손으로 뒤적거렸다. 용의 머리가 큰 만큼 그 안에 든 뇌도 컸는데 보고 있자니 욕지기가 치미는 듯했다.


제리얀이 끅끅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나자 잠시 뒤에 샬릭이 용의 머릿속에서 뭔가를 잘라냈다.


“찾았다.”


그건 붉은색으로 빛나는 무언가였는데 얼핏 보기엔 보석처럼 보이고 달리 보면 고깃덩어리처럼 보였다.


확실히 일반적인 신체 기관과는 결이 달랐다. 심장이라고 하지만 심장 같은 생김새는 전혀 아니었다.


“그게 용의 심장이야? 아무리 봐도 심장 같진 않은데. 애초에 머리 안에 있는데 왜 심장이야?”


“심장만큼 중요한 기관이니까. 용은 심장이 없어도 죽지만 이게 없어도 죽어.”


샬릭은 용의 심장을 손에 들고서 말했다.


“그런데 확실히 작군. 아직 덜 여물었어. 이래서야 먹어봤자 별 도움도 안 될 것 같은데······.”


샬릭은 용의 심장을 이리저리 쳐다보다가 제리얀을 향해 물었다.


“그래서 너도 이번 싸움에 제법 공적이 있는 셈인데, 어쩔래? 만약 용의 심장에 대한 지분을 주장한다면 좀 떼어줄 수도 있어.”


용의 심장을? 제리얀은 용의 심장을 먹으면 용과 같은 힘을 얻게 된다는 전설에 대해 알고 있다. 그 일부라고 해도 먹기만 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질 텐데 그걸 그냥 내주겠다고?


탐이 나지 않는다면 솔직히 거짓말이다. 제리얀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멈췄다.


“아니, 그럴 수야 없지. 내 공적이 있긴 해도 거의 없다는 걸 잘 알아. 고작해야 도마뱀 인간 좀 죽인 것뿐인데 그것 가지고 지분을 주장하는 건 염치 없는 짓이야.”


샬릭이 놀랐다는 듯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설마 이 유혹을 떨쳐낼 줄이야? 확실히 특이한 놈이군.


“그래? 그럼 잠깐 실례하지.”


제리얀은 문득 용의 심장을 어떤 식으로 섭취하는지 궁금해졌다. 설마 생으로 그냥 먹나? 하기야 저걸 또 요리해서 먹는다고 하면 웃길 것도 같은데.


가만히 샬릭을 쳐다보고 있으니 그가 두 손으로 용의 심장을 쥐었다. 그리고 가만히 기도하는 듯하더니 붉은빛이 번쩍였다.


용의 심장은 그대로 빛줄기가 되었고 쏟아지듯 샬릭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마치 그 힘을 흡수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어, 그런 식으로 먹는 거였어?”


“그럼 생식이라도 할 줄 알았나 봐?”


샬릭이 놀리듯 말하자 제리얀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그럴 줄 알았지.”


“그럴 리가? 익히지도 않은 걸 그냥 먹으면 배탈 나.”


지극히 정상적인 발언을 하니 뭔가 기분이 이상해졌다. 제리얀이 머쓱하게 자기 머리를 긁적이고 있으니 샬릭이 말했다.


“그럼 이제 바깥으로 나갈까? 시체야 가만히 놔두면 언젠가 다 썩어 없어질 테지. 생각해보니 마을 촌장한테 돈도 받아야 하는데 거기까지 다시 돌아가야 하나? 그 돈 받자고 돌아가는 것도 좀 귀찮은데······.”


혼자서 지껄이던 샬릭이 갑작스레 조용해졌다. 제리얀이 왜 그러냐고 묻자 조용히 하라는 듯 검지를 들어보였다.


잠시 뒤에 제리얀도 그가 왜 그러는지 알게 됐다.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명.


제리얀이 속삭이듯 말했다.


“도마뱀 인간?”


“아닌 것 같은데.”


도마뱀 인간이 아니면 여기 들어올 사람이 없을 텐데. 제리얀은 긴장했으나 곧 그럴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여기엔 사실상 혼자서 용도 때려잡는 북부인이 있는데 뭘 두려워해야 하나? 도마뱀 인간이 아니라 일개 군대가 몰려오더라도 샬릭 혼자서 다 때려잡을 수 있을 텐데.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샬릭도 별로 긴장한 태도가 아니었다. 그는 허리띠에 손가락을 끼운 채로 삐딱하게 섰다. 대체 어떤 놈들이 오는 건지 한번 보자는 듯한 모습이었다.


점차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저 멀리 횃불이 보이기도 했다. 대충 숫자로 보면 다섯 명쯤 될까? 형체로 봐서 인간인 것 같고 전부 무장했다.


“저 친구들은 뭐지? 설마 길 잃어버려서 온 건 아닐 테고. 아니면 용이 고용한 용병들인가?”


“글쎄, 내 생각이 맞다면 이거 상황이 나쁜데······.”


상황이 나쁘다니? 고작해야 병사 다섯 명이 찾아왔을 뿐인데 대체 왜?


제리얀이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저 친구들 전부 북부인이야.”


“북부인이라고? 보면 아나?”


샬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면 알지. 저 친구들, 전부 다 갑옷 입었지?”


“그런 것 같네.”


“투구도 잘 썼고.”


“그래서?”


“당당한 걸음걸이 보면 딱 봐도 길 잃어버려서 여기까지 온 것 같지도 않아. 그럼 저놈들은 용 잡으러 왔다는 건데, 갑주로 무장한 채로 용 잡으러 다니는 놈들은 십중팔구 북부인이야.”


그런가? 제리얀은 봐도 잘 모르겠지만 북부인이 샬릭이 그렇다니 그런가 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뭐 문제가 되나? 북부인이면 동족이잖아. 잘은 몰라도 타지에서 동족 만나면 반갑고 그러지 않아?”


“글쎄, 타지에서 만나는 북부인만큼 위험한 것도 별로 없어.”


“왜 그런데?”


샬릭은 대답하지 않고 고갯짓만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보라는 듯한 태도였다.


“당신들은 누구시오?”


가까이 다가온 북부인 무리 중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샬릭은 보면 모르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고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바탕 전투가 있었던 것 같은 모습이다. 뒤쪽엔 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용이 보인다.


이곳에서 뭔 일이 있었는지 추측하긴 어렵지 않았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용을 죽이셨군?”


“그러는 댁들은 용을 죽이러 왔고 말이야.”


“의뢰를 받았소. 사악한 용이 이 동굴 안에 숨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고 하기에 말이야. 그런데 벌써 다른 사람 손에 죽었을 줄은 몰랐군.”


남자의 태도는 점잖기 그지없었다. 샬릭은 타지에서 만난 북부인만큼 위험한 게 없다고 했지만 제리얀이 보기에 저들은 그리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모든 북부인이 정신병자라고 주장하지만 그건 용을 상대로만 그런 게 아닌가? 아무리 저들이 위대한 전투에 미쳐 있다고 해도 다짜고짜 아무나 죽이려 들진 않을 터다.


샬릭이 물었다.


“그래서 이만 돌아갈 셈인가?”


“아니.”


“그럼?”


남자가 덤덤히 말했다.


“너희를 죽이겠다.”


제리얀은 일 분도 지나지 않아 제 생각을 정정했다. 모든 북부인은 정신병자가 맞다.


작가의말

지식채널2 님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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