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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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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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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9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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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9

DUMMY

도마뱀 인간들은 당황했다. 사장 나오라니? 저놈은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고나 있는 건가?


저 동굴 안에 있는 것은 도마뱀 인간 따위가 아니다. 그들보다 훨씬 더 고등하며 압도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서 그 이름은 용이다.


군대가 몰려와도 용을 상대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데, 고작 두 명으로 뭘 어쩌겠다고?


“이봐,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지금 누구한테 싸움을 거는 건지 알고는 있는 거겠지?”


도마뱀 인간 중 하나가 그리 묻자 샬릭이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알다마다. 용이잖아. 내가 그놈 좀 죽이려는데 혹시 불만 있나? 있으면 나와.”


나오라는 도발에 선뜻 나서는 도마뱀 인간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무리의 대장이 저놈의 도발에 당해 주먹 맞고 죽지 않았나.


도마뱀 인간들은 이성적으로 행동했다. 저 정체 모를 놈이 강한 건 맞지만 어쨌건 고작 두 명 아닌가? 그에 비해 이쪽은 열 명도 넘으니 수적 우위를 이용하면 쉽게 이길 수 있다.


도마뱀 인간들은 따로 신호하지 않아도 알아서 자리를 잡고 섰다. 그들이 전투태세를 갖추자 제리얀이 신음했다.


“샬릭. 여기까지 따라와서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확실히 이건 좀 아니군. 사장 나오라고 한 지가 언젠데 아직 코빼기도 안 비치잖아.”


“······됐다, 내가 너랑 무슨 말을 하겠어? 작전대로 하자고.”


샬릭이 고개를 끄덕이며 칼을 뽑았다. 흑색의 칼날이 불길한 기운을 뿜어냈다.


“왼쪽? 오른쪽?”


“오른쪽.”


“그럼 내가 왼쪽이군.”


남들 듣기에 맥락 없는 대화지만 두 사람에게는 그걸로 충분했다. 샬릭은 왼쪽으로 뛰었고 제리얀은 오른쪽으로 마법을 날렸다.


기습에 가까운 공격에 도마뱀 인간들이 아차 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들이 뭔가 하기도 전에 쾅 소리와 함께 땅이 울렸다.


제리얀의 마법이 대지를 뒤흔들었고 그와 동시에 샬릭의 칼날이 도마뱀 인간들의 머리를 하늘로 날려버렸다.


“크악!”


“당황하지 말고 침착히 대응해! 상대는 고작 둘······.”


도마뱀 인간들은 수적 우위를 이용하면 쉽게 승리를 점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이 세상엔 혼자서 전장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초인이 존재했고 샬릭은 바로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가 칼을 휘두를 때마다 도마뱀 인간들은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무기라도 맞대면서 제대로 합이라도 몇 번 나누어 보고 죽었다면 억울하지나 않을 텐데, 샬릭의 무자비한 칼날은 그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대개 북부인이라고 하면 야만인이고, 야만인이라고 하면 피에 굶주린 전사를 떠올리는 법이지만 샬릭은 달랐다.


그의 칼질은 북부의 차가운 바람처럼 더없이 침착하며 서늘했다. 또한 끔찍할 정도로 효율적이었다. 칼의 본질은 뭔가를 죽이는 것, 샬릭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커억!”


“도망쳐! 가서 안쪽에 상황을 알려!”


도마뱀 인간들은 싸움이 시작된 지 일 분도 지나지 않아 전멸의 위기를 맞았다. 그들 중 한 명은 무기를 내버리고 동굴 안으로 도망쳤다. 안쪽에 있는 다른 도마뱀 인간들에게 위기 상황을 알리기 위해서일 터다.


그러나 샬릭은 그쪽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는 그저 무심하게 적을 베어넘기고 있을 뿐이었다.


도망치던 도마뱀 인간은 그 사실에 안도하며 동굴 안에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크게 외치려고 입을 벌리는 순간 그 몸이 불타올랐다.


“끄아아악!”


생물이 느끼는 고통 중 가장 끔찍한 게 불에 타죽는 고통이라던가? 과연 그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저놈이 저토록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는 걸 보면.


“이걸로 끝이군.”


제리얀이 후 하고 숨을 불어 검지에 붙은 불을 껐다. 샬릭이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끝은 아니지. 안에 더 있을 테니 말이야. 용도 죽여야 하고.”


“···고맙다, 덕분에 힘이 쭉 빠지네.”


제리얀이 투덜대며 샬릭과 함께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은 용이 거처로 삼기에 충분할 정도로 컸는데 저 안에 얼마나 많은 도마뱀 인간이 우글거리고 있을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바깥의 소란을 듣고 몰려오는 모양이군.”


동굴 안을 걷고 있자니 저 멀리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났다. 대충 보기에도 한둘이 아니었다. 잔뜩 화가 난 도마뱀 인간들이 한 무더기로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제리얀이 한숨을 내뱉었다.


“제기랄, 오늘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까.”


“용과 싸우다 죽으면 천상에 갈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건 북부인들이나 그렇게 믿는 거고.”


“용 죽이러 가자니까 냉큼 따라온 걸 보면 너도 명예 북부인쯤 될걸.”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제리얀이 정색했다.


“침입자다! 죽여!”


“죽여! 죽여!”


도마뱀 인간들이 무기를 들고 달려오고 있다. 샬릭과 제리얀은 자기 할 일을 했다. 칼을 휘두르고 마법을 날리기.


기세등등하게 달려오던 도마뱀 인간들이 비명을 지르며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제리얀도 제법 죽였지만 대부분은 샬릭의 손에 죽었다.


연신 마법을 날리던 제리얀은 슬쩍 샬릭을 쳐다봤다.


그는 사무적이라고 할 정도로 묵묵히 도마뱀 인간들을 죽이고 있었는데 대체 무슨 인생을 살아야 저토록 무감정하게 적을 죽일 수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가자.”


한바탕 싸움이 끝나고 샬리과 제리얀은 동굴 안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다가 또 도마뱀 인간들을 만나면 그들과 싸웠다가 다시 전진하길 반복했다.


그런 식으로 한 시간쯤 이동했을 때였다. 저 멀리 거대한 형체가 보였다. 그게 무엇인지 알아보긴 어렵지 않았다.


“······용.”


제리얀이 침을 꿀꺽 삼켰다. 아르샨데오가 가짜 용이었으므로 진짜 용을 두 눈으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어째서 샬릭이 아르샨데오가 가짜라는 걸 한눈에 알아봤는지 알 것 같았다. 비슷하게 생겼어도 그 위압감이 전혀 다르다.


“좀 작은데.”


샬릭의 말에 제리얀이 깜짝 놀랐다.


“저게 작다고?”


“날개 때문에 좀 더 크게 보이는 거지, 실제 크기는 아르샨데오랑 비슷해. 성체라면 저것보다 훨씬 더 커.”


자세히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아마 진짜 용이 보여주는 위압감 때문에 지레 겁을 먹은 탓이리라.


“쥐새끼들이 멀리서 조잘거리는군. 거기 숨어 있지 말고 가까이 와라.”


거리가 제법 있는데도 용은 침입자들의 존재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도망칠 생각은 없었으므로 두 사람은 순순히 용 가까이 다가갔다.


“바깥에서 무슨 소란이 있었는지 대강 짐작했다. 내 부하들을 다 죽이고 온 모양인데 무슨 용건으로 찾아온 거냐?”


용은 똬리를 튼 채로 머리를 묻고 있었다. 그래서 목소리가 울렸는데 가만히 들어보면 자다 일어난 것 같기도 했다.


“무슨 용건으로 찾아오긴? 한가하게 차라도 마시자고 찾아왔겠나? 그랬으면 네 부하들도 안 죽였지.”


샬릭이 말하자 용이 끅끅 웃었다.


“하기야 그럴 테지. 그래서 날 죽이기라도 하려고? 어리석은 놈들. 제법 실력에 자신 있는 것 같은데 그래봤자 고작 둘 아니냐? 너희가 날 무슨 수로 죽이지?”


“칼 안 맞아봤나? 용도 칼 찌르면 죽어, 인마.”


“자신감이 넘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정신이 나간 건지 모르겠군.”


용이 그 거대한 몸을 일으켰다. 제리얀이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는 가운데 용이 말했다.


“내 이름은 걀라토르스다. 너흰 이름이 뭐냐?”


“샬릭.”


샬릭은 짤막하게 대답한 후에 제리얀을 손으로 툭 쳤다. 제리얀이 어어 소리를 내자 샬릭이 말했다.


“뭐해? 네 이름 뭐냐고 묻잖아.”


제리얀이 고개를 돌려보니 걀라토르스가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 굳어버린 제리얀이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샬릭이 대신 말했다.


“이 친구는 제리얀이라고 하는데, 아주 유명한 용 혐오자야. 네놈 하는 짓거리가 몹시 역해서 못 봐주겠으니 오늘 당장 찢어 죽여주겠다는군?”


미친놈인가? 제리얀이 눈을 부릅뜨고 샬릭을 노려봤다.


“내가 그런 말을 언제 했어?”


“여기까지 따라왔으면 그런 말을 한 거나 다름없어.”


“아니, 물론 용과 싸우려고 온 건 맞아. 그런데 내가 용 혐오자라고? 난 오늘 태어나서 용을 처음 보는데 뭔 놈의 용 혐오자?”


“그럼 넌 용을 싫어하지도 않으면서 굳이 죽이러 왔다는 거야? 그게 더 끔찍한데.”


“그게 뭔······.”


샬릭과 제리얀이 투닥거리고 있으니 걀라토르스가 크릉 소리를 냈다.


“그만! 잡담은 거기까지 해라. 너희가 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잘 알겠다. 아무래도 정의의 용사 행세를 하려는 것 같은데 참으로 어리석군. 아르샨데오 같은 가짜 따위를 이기고서 기세가 등등해졌나? 내 분명히 말하지. 너흰 날 이길 수 없다. 왜냐하면 난 위대한 존재니까.”


위대한 존재라 하면 용이 자신을 칭하는 말이다. 그들의 강력함을 생각하면 그런 오만한 칭호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건방 떨기는? 여기 와서 이러고 있는 걸 보니 가출이라도 한 모양인데 헛짓거리 그만하고 얌전히 집에 돌아가.”


샬릭이 빈정거리자 걀라토르스가 코웃음을 쳤다.


“건방이라면 네놈이 떠는 것 같은데. 물론 내가 아직 완전히 성장한 것은 아니나 일개 인간 따위에게 지겠느냐?”


“이봐, 여기 요정도 있어.”


난 왜 자꾸 물고 늘어지지? 제리얀이 기겁했다.


“그래, 요정도 있지. 제법 강력해 보이는 마법사지만 고작 그뿐 아니냐? 인간 기사와 요정 마법사, 너희 둘이서 뭘 할 수 있지?”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해. 인간 기사와 요정 마법사가 아니라 북부인과 요정 마법사야.”


걀라토르스는 그게 대체 뭔 차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북부인이면 이야기가 달라지나?”


“달라지지. 왜냐하면 난 북부인이고 진짜배기 용 사냥꾼이니까.”


“용 사냥꾼? 그럼 네가 용을 사냥하고 다닌다는 거냐?”


샬릭이 고개를 끄덕이자 걀라토르스가 크게 웃었다.


“용 사냥꾼? 으하하하!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인간 따위가 용을 사냥해? 그럴 수는 없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구나!”


걀라토르스의 노성은 천둥과 같았다. 동굴 안이 울리고 바닥이 세차게 흔들렸다. 제리얀은 넘어지지 않도록 애써야 했고 용의 분노에 주눅 들지 않도록 이를 악물어야 했다.


그래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용은 그 존재 자체가 재앙이다. 그 사실을 이 자리에서 뼈저리게 실감했다.


“이상한데.”


용의 기세에 눌린 제리얀과 달리 샬릭은 멀쩡했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흠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상하다니, 뭐가 말이야?”


제리얀이 속삭이듯 묻자 샬릭이 답했다.


“저놈은 북부인이라는 말을 듣고도 왜 안 놀라지? 용이라면 그럴 수가 없는데?”


제리얀도 북부인에 대해서 안다. 그들의 특이하다 못해 괴상한 풍습에 대해서도 알고.


하지만 그게 뭐? 북부인들이 용 사냥에 나선다고 해서 용이 북부인을 두려워해야 하나? 어차피 거의 다 실패하는데 용이 대체 왜 북부인을 두려워하나?


샬릭이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친구는 부모가 없나? 부모님이 있었으면 북부인을 조심하라고 안 가르쳤을 리가 없는데? 불쌍한 것······.”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한 목소리에 제리얀은 그냥 두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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