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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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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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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8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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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DUMMY

제리얀은 잠깐 말문이 막혔다가 샬릭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용의 심장을 먹는다고?”


“그래. 모르나? 용의 심장엔 특별한 힘이 있어서······.”


“용은 덩치가 아주 크니까 심장도 아주 클 텐데, 그걸 혼자서 다 먹을 수가 있나? 며칠은 먹어야 할 것 같은데.”


고민하는 게 그 부분이었나? 생뚱맞은 소리에 샬릭이 저도 모르게 웃었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서 저런 반응을 보인 사람은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이 요정 놈도 어딘가 엉뚱한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용의 심장은 두 개야. 생물학적인 의미에서 말하는 심장은 네 말대로 아주 크지. 내가 장담하는데 혼자서 먹으려면 정말 며칠은 그것만 먹어야 할걸. 하지만 내가 말하는 심장은 그 정도로 크진 않아. 주먹보다 조금 더 크던가? 애초에 그건 심장이라 불리긴 해도 진짜 심장은 아니야.”


“그럼 뭔데?”


“용이 가진 강력한 힘의 결정체지. 넌 용이 어떻게 하늘을 나는 건지 생각해본 적 있나?”


“그거야 날개로 날겠지?”


제리얀이 뭘 그런 걸 묻느냐는 듯 대꾸하자 샬릭이 웃었다.


“그래. 날개로 날지. 하지만 원래라면 그럴 수 없어. 용의 직접 본 적 있나? 한 번이라도 직접 봤으면 뭔가 이상함을 느낄걸. 용은 말이야, 아주 커. 그에 비해 날개는? 물론 그것도 크긴 하지만 그 거대한 몸을 하늘에 띄우기엔 부족하지.”


제리얀은 용을 직접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아르샨데오의 거대한 몸을 보면 그것보다 더 크다는 용이 얼마나 거대할지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확실히 이상하긴 했다. 저 거대한 생물보다도 더 큰 존재가 하늘을 난다고? 고작 날개 한 쌍을 가지고?


“용이 하늘을 나는 건 원래라면 불가능한 일이야. 절벽 위에서 뛰어내린 뒤에 바람을 타고 활강하는 식으로 나는 거야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제자리에서 날아오르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용의 심장이 그걸 가능케 해.”


샬릭이 말을 이었다.


“또 용이 어떻게 불을 뿜는지 아나? 신체 안에 발화 기관이 있기라도 한 거 아니냐고? 설마 그럴 리가. 용이 불을 뿜는 것도 심장의 힘이야. 이제 알겠나? 용이 가진 모든 강력한 힘의 근원은 심장이야. 그리고 그걸 먹으면 용이 아닌 존재도 용과 같아질 수 있지.”


제리얀이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용의 심장을 먹으면 하늘을 날 수도 있나? 용처럼?”


“그건 못하지. 용이 날 수 있는 건 심장의 힘 덕분이라고 해도 어쨌건 날개가 있긴 해서 그런 거니까. 그런데 사람한테는 날개가 없잖아.”


“그럼 불은?”


“그거야 할 수 있지. 보여주랴?”


보여주겠다니, 뭘? 제리얀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가운데 샬릭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그 손에서 뜨거운 불길이 일었다가 사라졌다.


아마 마법을 좀 부린 것 같은데 확실히 그건 북부인이 보여주기엔 너무나 신기한 재주였다.


북부에는 마법사가 별로 없는데 그건 책을 읽는 걸 싫어해서라던가? 책 읽기 싫어하는 북부인이 마법이라는 재주를 익혔으니 자랑할 만한 일이다.


제리얀이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래, 마법도 쓰고 장하네. 그런데 나도 그런 거 할 줄 아는데, 그럼 나도 용인가?”


제리얀이 손가락을 튕기자 불꽃이 튀었다.


샬릭이 말했다.


“그건 그냥 마법이잖아.”


“네가 한 것도 그냥 마법이고. 설마 불 좀 쓴다고 네가 용이라고 주장할 셈은 아니지? 네가 용이면 난 요정공(妖精公)의 숨겨진 아들쯤 될걸.”


요정공이라고 하면 일곱 제국공 중 한 명이다. 이름 그대로 요정 군주이며 강력한 마법사이자 전사로 유명하다.


샬릭은 제리얀이 왜 저리 비꼬는지 모르겠다는 듯 말했다.


“왜 안 믿지?”


“아니, 손에서 불씨 좀 튕겼다고 용이면 세상 모든 마법사는 다 용이게?”


“믿어야 할 텐데.”


“왜?”


샬릭이 건틀릿 낀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내 말을 믿을 때까지 내가 널 때릴 수도 있잖아.”


“······.”


제리얀이 탄식했다. 다른 건 몰라도 성질 더러운 건 용이랑 똑같군.


“···쓸데없는 소리는 거기까지 하자고. 우리의 목적을 잊지 마.”


“용 죽이기? 그거야 어려울 것 없지.”


“제기랄, 내가 왜 이 미친 짓거리에 동참한 거지? 북부인과 마법사 하나가 대체 용을 뭔 수로 죽인다고?”


“내가 죽여봐서 아는데, 혼자서도 충분하니까 안 따라와도 돼.”


“게다가 함께 가는 북부인 놈은 제정신도 아니고. 모든 북부인은 정신병자라더니, 이놈은 증상이 아주 심각해.”


“나도 인격이라는 게 있는데 그런 말은 속으로 해줄래?”


샬리과 제리얀은 시답잖은 소리를 지껄이며 길을 떠났다. 용이 있는 곳까지 가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테니 부지런히 걸어야 할 터였다.


‘그런데 의외군.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런데, 용 죽이러 간다고 따라올 미친놈은 북부인 말곤 없을 줄 알았더니.’


샬릭은 슬쩍 제리얀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 젊은 요정 놈이 대체 뭔 생각으로 자신을 따라오는지 모를 일이었다.


놈은 약자의 보호가 어쩌고 지껄였지만 그따위 이유로 자기 목숨을 내버리는 사람은 세상에 없는 법이다.


설마 정말 정의감 하나 때문에 용을 죽이러 간다면 그건 어떤 의미에서 북부인보다 더한 정신병자가 아닌가?


북부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용 사냥에 나서는 건 설령 죽더라도 영광스러운 싸움을 했으니 천상에 오를 수 있다는 정신승리에 가까운 논리가 있기 때문이지만 요정에겐 그런 것도 없다.


‘용을 죽일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마법사라서 그런가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샬릭은 마법사가 아니지만 대륙을 유랑하면서 여러 마법사를 만난 덕에 눈대중으로도 그 실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가 보기에 제리얀은 제법 강력한 마법사지만 용과 대적할 정도는 아니다.


‘이유가 어찌 됐든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닌가. 거기서 죽으면 그것도 제 운명이지 뭘.’


아무 싸움에나 끼어드는 걸 보면 언젠가 죽을 놈이었는데 강도한테 칼 맞아 죽을 바에야 용한테 먹히는 게 오히려 호상이다.


샬릭이 그리 생각하면 걷고 또 걸었다.


“문득 든 생각인데.”


한참 걷던 중에 제리얀이 말했다.


“용을 죽이고 그 심장을 먹는다고 했지. 그걸 먹어서 뭘 하려고?”


뜬금없는 질문이다. 샬릭이 뭘 그런 걸 묻느냐는 듯 심드렁하게 답했다.


“또 용 죽이러 가겠지.”


“···네 목적은 이 세상의 모든 용을 죽이는 거냐? 실은 그 힘으로 제국공의 자리를 노리는 건 아니고?”


“그건 하라고 해도 안 해.”


“왜? 제국공이 되면 언젠가 제위에 오를 수도 있잖아. 황제의 자리가 탐나지 않나?”


“황제? 나라면 안 해. 그런 거 해봐야 귀찮기만 하거든.”


서로 죽고 죽이는 시대에서 강력한 무력은 곧 강력한 권력을 동반하는 법이다. 힘 있는 자는 필연적으로 남들 위에 서는 법인데 그러길 원하지 않는다고?


본래 자기는 권력에 관심 없다고 하는 사람일수록 권력에 미친 법이다. 그럼 이 북부인도 그럴까?


알 수 없다. 애초에 당장 뭔 생각을 하며 사는 놈인지도 모르지 않는가.


“되려 내가 묻겠는데.”


샬릭의 목소리에 제리얀이 상념에서 깼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샬릭이 물었다.


“넌 제국공의 자리에 관심 없나? 나와 함께 용을 죽이고 그 심장을 먹었다고 생각해봐. 그럼 넌 충분히 강력해질 텐데 제국공의 자리가 탐나지 않을까? 물론 그거 하나 먹었다고 요정공보다 강해지진 않을 테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거 아니야?”


“요정공의 자리라니. 글쎄, 난······.”


샬릭은 바로 대답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러나 제리얀은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 태도가 대단히 진지하여 샬릭은 조금 당황했다.


이 녀석 혹시 자기가 제국공이 됐을 때의 모습이라도 망상하고 있나? 그럴 성격으로는 안 보였는데.


뭔가 무안해져서 샬릭은 입 다물고 걸었다. 제리얀도 생각에 잠겨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한동안 침묵 속에서 걸어갔다.


그러다가 적당한 곳에서 쉬었다가 식사를 하기도 하며 부지런히 용의 거처로 향했다.


그런 식으로 이틀쯤 걸었을까. 샬릭이 손을 들어 저 멀리 있는 동굴을 가리켰다.


“도마뱀 인간들이로군.”


도마뱀 인간의 거주지는 일정치 않다. 그들은 뭔가를 죽이는 건 잘해도 생산적인 능력은 거의 없기에 대부분 용병으로서 떠돌이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이 한곳에 모여 있다는 건 여기에 일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그럼 이 일대에서 도마뱀 인간에게 일거리를 줄 만한 존재는 누가 있는가?


“그럼 저 동굴 안에 용이 있겠군?”


제리얀이 침을 꿀꺽 삼켰다. 여기까지 제 발로 따라오긴 했지만 다시 생각해도 미친 짓이다.


고작 두 명이서 용을 사냥한다고? 용이라는 건 군대가 몰려와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생물인데.


“저놈들이 저기 모여서 축제라도 벌이고 있는 게 아니라면.”


“···갈 거냐?”


“안 갈 거면 여기까진 뭐하러 와?”


하기야 그 말도 맞군. 제리얀이 속삭이듯 말했다.


“작전대로?”


“우리가 뭔가 작전 같은 걸 짰던가?”


“그거 있잖아. 아르샨데오를 상대할 때 했던 거.”


“네가 도마뱀 인간을 상대하고 내가 용을 상대하는 거?”


“그래.”


샬릭이 말했다.


“그딴 건 작전이 아닌데.”


“···아니, 네가 말했던 작전이잖아!”


“그러면 일단 그대로 할까. 자, 가자고.”


바위 뒤에 숨어서 도마뱀 인간들을 지켜보고 있던 샬릭이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서 제리얀이 기겁하며 말했다.


“바로 간다고? 제기랄, 같이 가!”


샬릭은 무섭지도 않은 것인지 도마뱀 인간들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저쪽에서도 누군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넌 뭐냐?”


도마뱀 인간 무리 중 대장으로 보이는 놈이 창을 들고 나섰다.


“보면 모르나?”


“봐도 모르니까 물어보지, 새끼야.”


“도마뱀 주제에 공용어가 능숙하시군? 그래, 모른다고 하니 알려주지. 가까이 와.”


도마뱀 인간은 참 순진하게도 시키는 대로 순순히 다가왔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그랬던 건 아니고 샬릭을 제압하려고 그랬던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은 잘못됐다. 만약 그가 살릭의 정체를 알았다면 가까이 다가갈 게 아니라 부하들을 시켜 활을 쏘게 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 직접 접근했으니 그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는 컸다.


“왔다. 그래서 뭐 어쩔······ 컥!”


멍청하게 다가왔던 도마뱀 인간의 얼굴에 주먹이 꽂혔다. 인간의 근력을 초월한 타격이 도마뱀 인간의 단단한 머리뼈를 박살 냈다.


도마뱀 인간은 뭔가 유언을 남기지도 못하고 죽었다. 본래 북부의 관습대로라면 유언을 들어줘야 할 테지만 사실 별 문제는 아니었다.


어차피 듣는다고 들어줄 것도 아닌데 뭘.


“어쩔 거냐고? 이럴 건데 불만 있나?”


물론 불만 따윈 없다. 죽었으니까.


샬릭은 멍하니 선 도마뱀 인간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누구냐고 물었지. 용 사냥꾼이다. 여긴 왜 왔냐고? 용 죽이러 왔다. 대충 뭔 상황인지 알겠지? 뭘 해야 하는지도 알겠고?”


알긴 뭘 아나? 도마뱀 인간들이 황망한 얼굴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을 때 샬릭의 목소리가 울렸다.


“뒈지기 싫으면 가서 사장 나오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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