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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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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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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7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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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7

DUMMY

다소 충격적인 사실이다. 저 말대로라면 아르샨데오는 진짜 용에게 협박을 당해 용 행세를 하며 마을을 수탈하고 있었다는 뜻인가?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제쳐두고서, 진짜 용이 왜 그런 수작을 부렸는지 얼른 이해가 가질 않는다.


부하를 부려 재물을 모아 오라고 하는 일이야 있을 법도 하지만 왜 굳이 아르샨데오를 대역으로 세웠단 말인가?


자신의 악행이 남에게 알려질 게 두려워서? 설마 용이 그러려고.


“네 말을 어찌 믿지? 살기 위해서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걸 수도 있잖아.”


샬릭의 말에 아르샨데오가 다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할 수만 있다면 제 머릿속이라도 보여드릴 텐데요. 그럼 제 진심을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래? 그럼 머릿속 좀 볼까? 머리 쪼개서 보면 되겠네.”


아르샨데오가 기겁했다.


“그러다 제가 죽으면요?”


“네가 죽으면 나쁜 마음을 숨기고 있던 걸 들켜서 자살한 셈이고, 안 죽으면 진심을 보여줄 수 있으니 잘된 일 아닌가?”


그게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머리를 쪼개서 안 죽는 생물이 있기나 한가? 설령 있다고 한들 머리를 쪼갰다면 다시 봉합해야 할 텐데 그럴 재주는 있고?


이러나저러나 죽게 생긴 아르샨데오가 뒤로 물러나기 위해 억지로 몸을 버둥거릴 때였다. 제리얀이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


“그럴 필요 없다니? 너 설마 이놈 말을 믿는 건가?”


“물론 안 믿지. 하지만 저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가려낼 방법은 있어.”


“머리를 안 쪼개고도?”


제리얀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럴 필요 없다니까. 난 마법사야. 마법을 쓰면 저놈이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알아낼 수 있어.”


“그걸 어떻게 믿어? 주문쟁이는 죄 거짓말쟁이인데.”


종족 차별도 모자라 이젠 직업 차별까지? 제리얀이 상처 입은 얼굴로 말했다.


“난 정직해.”


“하기야 거짓말쟁이니까 남 거짓말도 잘 알아보겠지. 어쨌건 저놈 머리를 쪼갤 필요는 없다 이거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나.”


그게 왜 아쉽나? 아르샨데오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럼 저놈의 생각을 읽는 것에 동의하나?”


“그래.”


샬릭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르샨데오가 반색하며 말했다.


“귀한 재주를 가진 분이군요. 과연 귀인이십니다. 그럼 얼른 제 생각을 읽어주시길······.”


아르샨데오가 머리 쪼개지기 전에 하라는 듯 제리얀에게 머리를 들이밀었다.


제리얀이 그 머리 위에 손을 올리고서 주문을 외웠다.


“흐음······.”


기이한 빛이 발하더니 아르샨데오의 몸이 축 늘어졌다. 제리얀은 그 머릿속에서 뭔가 읽고 있는지 혼자서 음음 소리를 반복했다.


잠시 뒤에 빛이 꺼지고서 제리얀이 말했다.


“거짓말은 아니군.”


“문득 든 생각인데,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검증하려면 네 머리도 쪼개 봐야 하지 않나?”


이놈은 왜 자꾸 머리 쪼개기에 집착할까. 북부인이라서 그런가? 어쩌면 북부에는 진실을 알아내겠답시고 애꿎은 머리를 쪼개는 일이 자주 있을지도 모른다.


끔찍한 상상을 하던 제리얀이 몸을 부르르 떨자 샬릭이 말했다.


“농담이야.”


“···그것참 다행이군.”


농담이 아니었을 것이다, 분명. 제리얀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는 사이에 아르샨데오가 늘어졌던 몸을 일으켰다.


“그래서 제 결백은 증명됐습니까?”


“아마도? 난 네 말을 믿는데 이 친구가 내 말을 믿는지는 모르겠군.”


제리얀이 눈을 흘기자 샬릭이 말했다.


“눈을 뽑아달라는 뜻인가? 하기야 두 개는 많지. 하나만 있어도 충분할걸.”


“······제발 무시무시한 소리 좀 그만할 수 없나? 이야기가 진행이 안 되잖아.”


“네가 안 까불면 나도 이럴 일 없어.”


제리얀은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샬릭은 그제야 만족한 듯 아르샨데오를 향해 말했다.


“그래서 네 말대로라면 넌 진짜 용의 사주를 받아 영주 행세를 하고 있었다는 거군? 왜 그랬지? 용의 협박을 받아서? 내가 보기에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두 가지 이유가 있지요. 첫 번째는 용의 협박을 받아서고 두 번째는······.”


아르샨데오가 한숨을 내뱉고서 말했다.


“···용이 되길 원해서입니다.”


“용이 돼? 네 종족이 용 행세를 하다가 진짜 용들의 분노를 사 멸종할 뻔했다는 걸 모르는 거냐? 그런데도 용 행세를 하려 해?”


“아니요, 용 행세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저는 진짜 용이 되길 원한 겁니다. 거대한 날개로 하늘을 날며 입에서 불을 뿜는 진짜 용이요.”


샬릭은 가만히 생각했다. 용이라는 게 후천적으로 될 수 있는 건가? 인간이 어느 날 갑자기 요정이 될 수 없는 것처럼 가짜 용이 진짜 용이 될 수는 없다.


“네가 뭔 수로 용이 되나? 용의 부탁을 들어주면 없던 날개가 갑자기 솟나? 아니면 입에서 불을 뿜게 돼?”


“그거야 저도 모르지요······. 그런 방법이 있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했을 뿐인데요.”


생각보다 더 덜떨어진 놈이다. 그런 방법이 있다면 세상 사람 전부 다 용이 되려 했을 것 아닌가?


샬릭이 쯧 하고 혀를 찼다.


“너한테 헛소리를 한 용이 누구냐? 대체 뭔 목적으로 그런 짓을 했다던?”


“그분은 전쟁을 원하더군요. 광산에서 캐낸 철로 무기와 갑옷을 만들어 용에 대한 소문을 듣고 몰려든 도마뱀 인간들을 무장시키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충분한 숫자가 모이면 전쟁을 일으켜 거대한 영지를 일구라고 하더군요.”


도마뱀 인간은 강하다. 그들을 무장시켜 전쟁에 내보낸다면 크나큰 전력이 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샬릭이 알기로 이 일대는 제국공인 테레모의 영향 아래 있다.


물론 아크툴에서 제법 떨어진 곳이기에 그 영향력이 그리 크진 않지만 어쨌건 테레모의 영역권인 것만은 확실하다.


만약 그런 곳에서 전쟁을 벌인다면 테레모가 가만히 있을 것인가? 도마뱀 인간으로 이루어진 군대가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불사의 군세를 이기긴 어려울 텐데. 이기기는커녕 되려 불사의 군세의 새로운 일원으로 받아들여질 게 뻔하다.


“멍청한 놈이로군. 대체 뭔 자신감으로 그런 짓을? 이 일대가 테레모의 영역권인 걸 모르나?”


“글쎄요, 저는 그런 쪽으로는 잘 몰라서······. 그냥 자신만만하길래 뭔가 수가 있는 줄 알았지요.”


“그래서 그놈은 어디에 있지? 괘씸해서 손 좀 봐줘야겠는데.”


“여기서 좀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정확히 어디냐면······.”


아르샨데오가 용이 있는 위치를 설명했다. 가만히 듣던 샬릭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거기라면······ 테레모가 말했던 곳과 같은데.”


그럼 테레모가 말한 용과 아르샨데오가 말한 용이 서로 같은 존재인가? 만약 그게 맞다면······.


‘테레모 이 자식, 왜 나한테 용이 있는 곳을 알려줬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군?’


샬릭이 추측하기로 테레모는 용이 뭔가 수작을 부리고 있다는 걸 진작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기 영역 내에서 불온한 움직임이 보이고 있으니 대책을 세우긴 해야 할 텐데, 자기가 직접 하기엔 귀찮으니 일단은 가만히 두고 보자고 생각했을 게 뻔하다.


그러다 용 사냥꾼이 나타났으니 일부러 정보를 흘렸으리라. 용 사냥꾼에게 용이 있는 장소를 알려주면 당장 달려가서 작살을 내버릴 테니까.


하여튼 건방진 놈, 내 정체를 알면서도 그런 수작을 부리나? 샬릭이 실실 웃고 있자 아르샨데오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제가 아는 대로 다 말했는데 혹시 살려주십니까?”


“살려줄 수야 있는데 살려줘봤자 다를 게 있나? 보아하니 그냥 두면 곧 죽겠는데.”


“그래도 살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몸 고치는 거야 제가 알아서 해보지요.”


기적이라도 부릴 줄 아는 게 아닌 이상에야 직면한 죽음으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을 텐데. 차라리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보다는 단칼에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다른 사람의 입장일 뿐이고 본인이 생각하기엔 고통스럽더라도 좀 더 살길 원할 것이다.


샬릭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라고 말하자 아르샨데오가 감격한 듯 고개를 꾸벅였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군요.”


나 때문에 죽을 뻔했으면서 저런 인사를 하니 우습다. 샬릭이 어깨를 으쓱이고서 몸을 돌릴 때였다.


갑작스럽게 아르샨데오의 몸이 움찔거렸다. 마치 독이라도 삼킨 것처럼 입에서 피를 왈칵 쏟아내더니 두 눈을 까뒤집고 경련했다.


그 모습을 보고 제리얀이 화들짝 놀라 가까이 다가갔으나 뭔가 해보기도 전에 아르샨데오의 숨이 끊어졌다. 그는 혀를 길게 빼물고 죽었는데 척 보기에도 당황스러운 광경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제리얀이 당황하는 사이에 샬릭이 말했다.


“괜한 말 못 하게 죽어버렸군. 아마 네가 마법으로 머릿속을 헤집은 것 때문에 저쪽에서 눈치챈 것 같은데.”


“눈치채다니? 대체 누가?”


“누구겠어? 이놈 부려 먹던 용이겠지.”


용? 그러니까 저 멀리 숨어 있던 그놈이 아르샨데오가 괜한 말을 하지 못하도록 죽어버렸다는 말인가?


이러면 나 때문에 죽은 셈인데. 제리얀이 당황해서 눈만 껌뻑이고 있을 때였다. 분명 숨이 끊어졌던 아르샨데오가 바닥에 처박힌 대가리를 쳐들었다.


설마 시체로서 부활했나? 다행히도 그런 건 아니었다.


“똑똑한 놈이군? 눈치가 아주 빨라. 그래, 내가 이놈을 죽였다. 이미 할 말은 다 하고 죽은 것 같지만 어쨌든.”


분명 아르샨데오의 입으로 말하는데 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좀 더 젊고 미성인 남자 목소리였다.


“네가 용이냐? 시체 뒤에 숨어서 그러고 있지 말고 한 번 붙자. 설마 겁이라도 먹은 건 아니겠지?”


샬릭의 도발에 용이 웃었다.


“겁도 없는 놈이군. 당장은 이 몸으로 목소리만 전할 뿐이라 네 얼굴을 못 본 게 아쉬워. 대체 어떤 건방진 놈이길래 감히 나에게 도발하는지 궁금할 지경이야.”


“그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다. 내가 곧 찾아갈 테니까.”


“그래야 할 거다. 네가 도망이라도 가버리면 내 군대가 마을을 쓸어버릴 테니 말이야. 너도 그걸 원하진 않을 테지? 그러면 날 찾아와라. 와서 내 손에 죽어.”


용이 껄껄 웃더니 다시 아르샨데오의 머리가 바닥에 처박혔다. 아마도 그 몸에 접촉했던 용의 정신이 사라진 탓이리라.


무거운 얼굴을 하고 있던 제리얀이 말했다.


“그래서 정말 저 용을 찾아갈 셈이냐?”


“그래야지. 그런다고 했잖아.”


“그냥 허세 부리려고 한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용은 강해. 도마뱀 인간이나 이런 가짜 용에 비할 수 없이 훨씬 더.”


“나도 알아. 그래도 간다고 했으니 가야지.”


그 말에 제리얀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가 무언가 결심한 듯 굳센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나도 같이 가야겠군. 네 의지는 잘 알았다. 우리 둘이서 용을 죽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가야지.”


“아니, 안 와도 돼.”


“혼자서 무거운 짐을 짊어지려 할 필요 없어. 난 네가 왜 용을 만나러 가는지 알아.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지? 그들을 보고 겁쟁이가 어쩌고 욕했지만 실은 그들을 걱정하고 있잖아?”


이놈은 대체 뭔 헛소리를 하는 거지. 샬릭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약 먹었나? 아니면 약을 먹어야 하는데 안 먹은 건가?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 용과 싸우는 게 아니라고? 그럼 왜 위험을 자처하지?”


샬릭이 당당히 답했다.


“난 그냥 용 죽이고 심장이나 좀 먹으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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