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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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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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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6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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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DUMMY

“진작 멸종한 줄 알았더니 아직 남아있는 놈이 있었나?”


샬릭이 중얼거리자 제리얀이 반응했다.


“멸종하다니? 용이 왜 멸종해?”


“네 눈에는 저게 용처럼 보일지 몰라도 내가 보기엔 아니야. 애초에 저게 용일리가 있나? 용은 저것보다 훨씬 더 크고 강해. 내가 죽여봐서 알아.”


죽여봤다니, 뭘? 설마 용을 죽였노라 주장하는 거면 대단한 허언증이다. 제리얀이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저게 용이 아니라고? 무슨 근거로?”


“내 지식을 근거로. 애초에 난 북부인이고, 용이라면 북부에서 질리도록 봐왔는데 용이 뭔지 모르겠나? 아까도 말했지만 용은 저것보다 더 커. 그리고 날개도 달렸고 입에서 불도 뿜는데 저건 아니잖아.”


제리얀은 용을 직접 본 적 없다. 단지 이야기로 들어서 그 외형을 어렴풋이 상상할 뿐이다. 진짜 용은 저것보다 더 크다고? 지금도 충분히 큰 데?


그리고 날개도 있다고 했던가? 확실히 저놈은 날개가 없다. 불을 뿜는지 아닌지는 당장 확인할 수 없지만 샬릭의 주장대로라면 저놈은 용과는 조금 다르게 생긴 셈이다.


“하기야 용에 대해서라면 북부인이 나보다 더 잘 알겠지만······.”


제리얀은 여전히 긴가민가한 얼굴이었다. 저게 용이 아니라면 저걸 영주랍시고 섬기고 있는 도마뱀 인간들은 대체 뭐가 되나?


“주절주절 말이 많군. 무슨 말을 지껄이나 가만히 듣고 있자니 순 엉터리뿐이야. 내가 용이 아니라고? 용을 질리도록 봐서 잘 알아? 웃기는 소리! 나는 용이다! 내가 용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용이라는 말이냐!”


아르샨데오가 입을 쩍 벌리고서 크게 소리쳤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제리얀은 저도 모르게 손으로 귀를 막았을 정도였다.


그러나 샬릭은 여전히 태연했다. 그는 저 가짜 용을 상대로 여유를 잃지 않았다.


“아까 내가 하는 말을 들었다고? 그럼 내가 어디 출신인지도 알겠군?”


아르샨데오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답했다.


“북부인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래, 난 북부인이지. 그럼 날 보고 뭔가 할 말은 없나?”


“네가 건방진 거짓말쟁이라는 것?”


이번에는 샬릭이 웃었다.


“거봐, 가짜 용 맞잖아.”


대체 방금 문답에서 뭘 보고 가짜 용이라고 주장하나? 아르샨데오가 이해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자 샬릭이 웃으며 말했다.


“용이 제일 무서워하는 게 뭔지 아나? 북부인이야. 걔네는 북부인이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켜. 우리가 정말 시도 때도 없이 괴롭혀대거든. 그래서 진짜 용이라면 북부인에 대해 모를 수가 없는데 너는 북부인이라는 말을 듣고도 별 반응이 없지. 진짜 용이라면 그럴 수가 없어.”


그게 뭔? 아르샨데오는 여전히 샬릭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영문 모를 대화를 나누는 게 짜증스럽다는 듯 쿵 하고 세게 발을 굴렀다.


“그게 뭐 어쨌다고? 난 그저 너희 침입자들을 잡아먹기만 하면 그만이다!”


아르샨데오가 입을 쩍 벌리고 샬릭을 삼키려 들었다. 그걸 신호로 멈춰 있던 도마뱀 인간들도 공격을 개시했는데 제리얀이 뜨악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났다.


샬릭이 칼을 뽑으며 외쳤다.


“작전대로 해!”


작전대로 하라니? 그 대책 없는 작전? 제리얀은 제기랄 하고 중얼거리며 몸 안의 마력을 끌어모았다. 죽기 싫으면 무엇이든 해야 했다.


“한입에 집어 삼켜주마!”


아르샨데오의 거대한 아가리가 샬릭을 향해 다가왔다. 저게 진짜 용은 아니더라도 사람 하나 정도는 뼈째 씹어버릴 힘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샬릭은 아르샨데오의 정면으로 달려가다가 급작스럽게 방향을 바꾸었다. 아르샨데오의 입이 허공에서 딱 소리를 내며 닫혔고 그새 샬릭의 칼이 놈의 발목을 찔렀다.


“크아아악!”


흑철로 만든 칼은 용의 비늘도 자를 수 있다. 가짜 용 따위의 비늘이야 종잇장 자르는 것처럼 쉽다.


“놈!”


아르샨데오가 벌레를 털어내듯 발을 휘둘렀고 샬릭은 잠깐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달려들었다.


놈은 아가리를 쩍 벌렸는데 그 안에서 불꽃이 튀어나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진짜 용이라면 진작 불을 뱉었을 텐데도.


“쥐새끼처럼 잽싸구나!”


이번에도 아르샨데오의 공격은 빗나갔다. 샬릭은 바닥을 박차고 뛰었고 아르샨데오의 콧잔등 위에 착지했다.


역수로 쥔 칼을 콧잔등에 내리꽂자 아르샨데오가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뒤흔들었다. 샬릭은 그대로 칼을 뽑아 아르샨데오의 정수리까지 올라가려 했지만 그 전에 놈이 머리를 흔들어버렸다.


샬릭의 몸이 공중에 붕 떴다. 그는 공중에서 몸을 비틀어 한 바퀴 회전하더니 그와 동시에 아래로 떨어지며 아르샨데오의 얼굴을 크게 베었다.


덩치가 큰 만큼 상처도 컸고, 거기서 터져 나오는 핏물도 많았다. 비릿한 냄새에 순간 후각이 둔해질 정도였다.


후두둑 떨어지는 피와 함께 광분한 아르샨데오가 샬릭을 향해 질주했다. 그는 육중한 꼬리를 휘둘렀지만 샬릭은 오히려 그 위에 올라탔다.


칼을 손에 든 채로 꼬리를 밟고 달려 등허리까지 달려온 그가 적당한 지점을 골라 칼로 베었다. 허리가 끊어질 듯한 고통에 아르샨데오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겨우 자세를 바로 잡으니 또 어디선가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샬릭은 아르샨데오의 몸 위에서 종횡무진으로 날뛰며 쉴 새 없이 칼을 휘둘러댔다.


그때마다 살이 뭉텅이로 잘려 나오니 어느새 바닥이 피로 흥건해질 정도였다. 아르샨데온느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며 몸을 흔들어댔다.


“그만, 그만! 제발 그만······.”


비명은 점차 흐느낌으로 변해갔다. 이 일대를 지배하는 영주이자 강력한 용으로서 보여줄 만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 추태에 당황한 건 도마뱀 인간들이었다. 그들은 한참 제리얀과 싸우던 중이었는데 귀를 울리는 흐느낌에 무기를 휘두르던 걸 멈췄다.


“주인님······?”


도마뱀 인간은 용에게 충성한다. 달리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용모가 비슷한데다 용에게 충성하면 그 대가로 든든한 뒷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도마뱀 인간이 용에게 충성하는 건 지극히 실리적인 이유 때문인데, 그건 달리 말하면 충성의 대상이 원하는 걸 줄 수 없게 되면 더는 충성할 이유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바로 지금처럼.


“그 위대한 용이 고작 인간 하나에게······.”


도마뱀 인간들이 술렁대고 있다. 그들은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제리얀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에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저 아르샨데오가 비명을 지르며 날뛰는 모습을 멍하니 보고만 있을 뿐이었는데 그들의 목소리에서 대단한 실망감이 느껴졌다.


그들이 알기로 용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강력한 존재일 텐데 고작 인간 하나에게 쩔쩔매다니? 심지어 추한 비명까지 내지르고 있으니 실망감은 더더욱 커졌다.


도마뱀 인간들이 보기에 아르샨데오는 위대한 용이 아니었다. 그저 목숨을 구걸하는 사냥감일 뿐.


그들이 섬기는 건 위대한 용이지, 약해빠진 사냥감이 아니다. 그리고 저게 용이 아니라면 더는 목숨 걸어가며 충성할 이유가 없다.


자신들을 괴롭히던 마법사를 죽여봤자 아르샨데오가 죽으면 저 무시무시한 칼잡이가 자신들을 도륙 낼 것이다. 그러면 여기 있어봤자 남는 건 개죽음뿐이다.


“도망가!”


도마뱀 인간들은 셈이 빨랐다. 머릿속으로 숫자를 이리저리 맞춰보더니 더는 이 싸움을 이어갈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들은 기껏 제리얀을 궁지에 몰았으면서도 그 목숨에 관심 없다는 듯 마을을 떠나 도망치기 바빴다.


도마뱀 인간의 습성에 대해 모르는 제리얀은 이 상황이 어리둥절할 뿐이었고 순간 샬릭이 자기 모르게 뭔가 마법을 부리기라도 한 줄 알았다.


“어딜 가는 거냐! 네 주인을 구해! 날 구하라고!”


아르샨데오가 크게 외쳤으나 그 말을 듣는 도마뱀 인간은 없었다. 그들은 사방으로 뛰쳐나갔고 곧 마을 안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됐다.


부하들이 자신을 버리고 간 광경에 아르샨데오는 좌절했다. 너무 많은 상처를 입었고 피를 잔뜩 흘린 탓에 시야가 흐려졌다.


샬릭이 뭔가 하지도 않았건만 아르샨데오는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가 연신 거친 숨을 내뱉었다.


“이럴 수가······. 정말 혼자서 아르샨데오를 쓰러트리다니.”


정신을 차린 제리얀이 마을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는 엉망진창이 된 채 쓰러진 아르샨데오를 보며 말했다.


“그래서 이게 진짜 용은 아니었단 말이지? 놀랍군, 난 정말 용인 줄 알았어. 도마뱀 인간 놈들도 그런 줄 알고 이놈한테 충성했던 거 아닌가?”


샬릭이 몸에 묻은 피를 툭툭 털어내며 말했다.


“진짜 용인지 아닌지는 칼로 한 번 찔러보면 바로 알지. 진짜 용의 비늘은 너무 단단해서 칼이 박히지도 않거든. 그런데 이놈은 살이 말랑한 게 식칼을 가져와도 박혔을걸.”


제리얀이 아르샨데오를 가만히 쳐다봤다. 가만 보니 가죽이 몹시 두꺼운 게 식칼로는 생채기 하나 못 낼 것 같다.


“대단해. 이놈이 진짜 용은 아니라고 해도 강력한 괴물인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야. 그런데 이놈을 혼자서 상처 하나 없이 제압하다니? 북부인은 전부 다 그리 강한가?”


“그럴 리가. 내가 유독 강한 거지. 애초에 난 진짜배기 용 사냥꾼이라니까.”


농담도 참. 제리얀이 껄껄 웃었다.


“하하, 재밌는 농담이군.”


“농담 아니야.”


제리얀이 입을 다물고 샬릭을 쳐다봤다. 이 성격 이상한 북부인이 확실히 강하긴 하지만 정말로······?


설마 그러려고.


“어쨌건 이놈은 어쩔 셈이지? 아직 숨이 붙어있는데.”


아르샨데오는 많은 상처를 입었지만 아직 살아 있었다. 물론 이대로 가만히 두면 곧 죽겠지만.


샬릭이 허공에 칼을 휘둘러 칼날에 묻은 피를 털어내곤 말했다.


“어쩌긴 뭘 어째? 죽여야지.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잖아.”


“하기야 그런가. 그런데 이놈 고기도 먹을 수 있나? 죽이면 고기가 제법 나올 것 같은데. 맛은 있으려나?”


“용 심장은 먹어봤는데 별로 맛은 없더라고.”


“살점은 또 맛이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놈은 딱 봐도 고기가 질긴 게 굽는 것보다는 국물로 승부를 봐야 해.”


아르샨데오가 몸을 꿈틀거렸다. 그는 끔찍한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샬리과 제리얀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이 빌어먹을 놈이······.”


샬릭이 말했다.


“고기가 얼마나 신선하면 말까지 하는군?”


“이 싸움이 이대로 허무하게 끝날 것 같으냐······.”


“곧 죽을 놈이 허세는? 괜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마지막으로 남길 말 있으면 그거나 해.”


아르샨데오가 으르렁댔지만 샬릭이 보기엔 별 위협도 되지 않았다. 그가 정말 유언을 들어주겠다는 듯 가만히 있자 아르샨데오가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 내가 졌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나는 진짜 용이 아니야. 그냥 용 흉내를 냈을 뿐이지. 설마 이런 식으로 당할 줄은 몰랐는데, 원통하지만 어쩌겠나. 약한 놈이 죽는 건 순리인 것을.”


“유언이나 하라니까. 북부의 관습에 따라 난 마지막 유언을 들어줄 의무가 있어.”


아르샨데오가 잠깐 침묵했다.


“정말 그럴 의무가 있나?”


“있다니까.”


“그러면······.”


아르샨데오가 고민하는 듯 말이 없었다. 제리얀은 그가 무슨 유언을 남길까 생각했다. 고통 없이 일격에 죽여달라고 할까? 진짜 용은 아니지만 마지막은 용처럼 당당하게 죽으려 할지도.


“그럼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 하지.”


아르샨데오가 비장하게 말했다.


“······살려주시면 안 됩니까?”


샬릭이 웃었다.


“되겠나?”


“그러지 마시고······. 한 번만 살려줄 수 없겠습니까?”


방금까지 건방지게 굴었던 주제에 지금은 너무나도 비굴하다. 가짜 용이라 그런지 자존심도 없는 걸까.


샬릭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가 널 살려줄 이유가 없는데.”


“자비는 강자의 덕목이지요. 제가 불쌍하지 않습니까? 저도 원해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건 내 덕목이 아니고 네가 불쌍하지도 않다. 그리고 네가 원해서 이러고 있는 것 아니었나? 도마뱀 놈들을 부려서 마을을 수탈하라고 누가 목에 칼이라도 들이밀던?”


비꼬는 말이었으나 아르샨데오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목에 칼을 들이밀진 않았지만 이빨을 들이밀긴 했지요. 저도 협박을 당해서 이러고 있는 겁니다!”


협박을 당하다니, 대체 누구한테? 어처구니없는 소리에 샬릭이 묻자 아르샨데오가 답했다.


“용이요. 저 말고, 진짜 용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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