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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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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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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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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DUMMY

“어쨌건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는군. 밤도 늦었으니 오늘은 일찌 자고 내일 출발하자.”


샬릭의 말에 제리얀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식사를 마치고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대륙을 떠돌고 있는 샬릭은 원래부터 노숙에 익숙했는데 그건 제리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바닥에 머리를 대자마자 곧장 잠에 빠져들었고 잠시 뒤엔 코까지 골았다.


저 시끄러운 놈의 코를 막아버릴까 생각하던 중에 샬릭도 슬그머니 잠에 빠졌다.


단잠은 긴 듯하면서도 짧았고 얼마 자지도 않은 것도 같지 않은데 머리 위에서 새 지저귀는 소리가 났다.


샬릭은 그 소리에 반응해 얼른 몸을 일으켰고 이슬에 맞은 갑옷을 손으로 툭툭 털었다. 고개를 돌려 제리얀을 보니 그도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늦잠 자면 버리고 가려고 했더니 일찍 일어났군?”


“마을 사람들 목숨이 걸린 일인데 잠이나 자고 있을 순 없지.”


두 사람은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서 주변을 정리했다. 가는 길에 마침 작은 개울이 있어 수통의 물을 보충한 뒤 길을 떠났다.


“영주가 있는 곳까진 얼마나 걸리지?”


“그리 멀진 않아. 이 속도로 가면 오늘 저녁에는 도착할 수 있을걸.”


그럼 정말 멀진 않군. 샬릭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뒤에 물었다.


“영주의 거처에 도마뱀 인간들도 같이 있나?”


“그래. 내가 알기로 주변의 도마뱀 인간들이 영주에 대한 소문을 듣고 몰려들어 그 숫자가 이백은 된다고 하더라고.”


도마뱀 인간은 강하다. 그들은 북부인과 마찬가지로 타고난 전사이며 두려움을 모르는 성격 덕에 용병으로서 인기 있다.


그들이 무려 이백 명이나 모여 있다면 그건 특기할 만한 위협이다. 거기에 그들의 주인이 용이라는 걸 생각하면 주변 마을들은 감히 반항할 생각조차 못 했으리라.


‘그런데 용이라······. 용이라는 게 보기 드문 생물은 아니지만 이런 곳에 있을 만큼 흔한 생물도 아닌데.’


영주가 용이라는 것 자체는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샬릭이 알기로 옛 제국이 건재하던 시절엔 황제에게 작위를 받고 충성을 맹세한 용이 제법 있었다.


지금이야 옛 제국이 몰락하고 본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 버렸지만 영영 숨어버린 건 아니었다.


당장 북부에만 가도 용을 만날 수 있고 무너진 옛 제도(帝都)를 차지한 제국공 역시 용이다.


그러니 이 근방에 용이 있을 수야 있다. 하지만 용 정도 되는 생물이 고작 이런 자그마한 영지나 다스리고 있다니?


‘제리얀이 용이라고 했으니 진짜 용이긴 하겠지. 아무래도 좀 덜떨어진 놈인가 봐.’


용이라고 다 잘난 놈은 아니다. 적어도 샬릭이 알기론 그랬다. 애초에 진실이야 영주 놈을 만나서 확인하면 될 일이다.


“이 속도로 가면 오늘 저녁에나 도착한다고? 그럼 너무 늦는데. 속도를 좀 올리자고.”


저녁에 도착해서 싸움 벌이고 나면 늦은 밤이나 돼서 끝날 텐데 그럼 저녁은 언제 먹고 잠은 언제 자나?


야간 근무는 건강에 나쁜 법이다. 샬릭은 저녁 먹기 전에 도착해서 밤이 되기 전에 싸움을 끝내길 원했다.


사실 이런 일을 질질 끌어야 할 이유는 없었으므로 제리얀도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까? 뛰어서 가면 시간을 제법 줄일 수 있을 텐데 다만······.”


“다만?”


제리얀이 건방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요정의 속도를 따라올 수 있을지 모르겠네. 아, 그쪽을 무시하는 건 아니야. 다만 알잖아? 요정의 신체는 인간보다 월등해서 더 빨리, 그리고 더 오래 달릴 수 있다는 거. 혹시나 달리다가 힘들면 말해. 잠시 쉬었다 갈 테니까.”


샬릭도 웃었다. 이 건방진 요정 놈이?


제리얀의 말대로 요정의 신체가 인간보다 우월한 건 맞다. 그들은 자연 속에서 태어나며 산과 들을 질주하며 사는 생물이니까.


아무리 북부인이라고 해도 요정만큼 재빠를 수는 없다. 하지만 용 사냥꾼이라면? 그럴 수 있다.


“요정 나리의 배려에 몸 둘 바를 모르겠군. 내 걱정일랑 하지 말고 달려도 괜찮아. 뛰다 지치면 알아서 쉴 테니까.”


“그래도 되나 모르겠네. 하지만 한시가 급하니 어쩔 수 없나.”


제리얀은 은근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걷는 속도를 조금씩 올렸다. 처음엔 빨리 걷는 수준이더니 몇 초가 지나기도 전에 달리기로 바뀌었다.


확실히 요정답게 빨랐다. 아마 요정 중에도 저만큼 빠른 자는 몇 없지 않을까? 과연 준족이로군.


샬릭은 픽 웃더니 제리얀의 뒤를 따라 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먼저 가던 제리얀을 금세 따라잡았는데 그는 별로 놀란 기색이 아니었다.


“아, 왔나? 속도는 이 정도면 적당할까?”


여유를 부리는 걸 보면 이게 전력은 아닌 모양이다. 샬릭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대로 가보자고!”


제리얀이 신나게 뛰어갔다. 샬릭은 묵묵히 그 뒤를 따랐고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달리고 또 달렸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 정도 달렸으면 점점 숨이 가빠져 와야 하는데 제리얀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요정답게 재빠르게 내달렸고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일반적으로 마법사라고 하면 체력이 약한 법인데 제리얀은 달랐다. 요정이라 그런가? 샬릭은 흠 소리를 내며 뒤를 따랐다.


“후우······.”


달리기 시작한 지 한 시간. 이쯤 되면 아무리 강철 같은 체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지치는 법이다.


그럼 요정이라고 다를까? 아무리 인간보다 신체 능력이 월등해도 그러진 않을 텐데. 몸 튼튼하고 잘 달리기로 유명한 생물인 말도 한 시간쯤 달리면 지치는 법 아닌가.


혹시나 해서 제리얀의 얼굴을 보니 과연 땀을 비오듯 흘리고 있었다. 그는 달리면서 흘끔 뒤를 쳐다보곤 했는데 샬릭이 이제쯤 쉬어주길 바라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샬릭은 멈추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달리고 있었다.


“후우, 생각보다, 후우, 잘 뛰는걸? 인간치곤 제법이야······.”


제리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슬슬 호흡이 달린다는 증거였다. 샬릭이 웃으며 말했다.


“나 신경 쓸 필요 없다니까. 더 빨리 달려도 돼.”


“아니, 그럴 수야 없지······.”


제리얀은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쳤는데 여기서 더 빨리? 저놈이 허세를 부리는 건지 아니면 진짜 여유가 넘치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만약 정말 아직 여유가 넘치는 거라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자신이야 가벼운 경장이지만 저쪽은 갑주로 무장했지 않나?


종족의 차이, 그리고 장비의 차이를 생각하면 이쪽이 먼저 지치는 건 말이 안 된다······.


“많이 지쳐 보이는군. 좀 쉬었다 갈까.”


샬릭의 말에 제리얀이 저도 모르게 반색했다가 곧 헛기침을 했다.


“괜찮아.”


“그러면 쭉 가자고.”


제기랄, 그냥 자존심 부리지 말걸. 제리얀은 속으로 욕을 내뱉으면서도 뒤처지지 않도록 이를 악물었다.


그리 고생한 보람이 있었을까. 제리얀은 탈진하기 직전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기, 바로 저기······.”


땀으로 흠뻑 젖은 손을 들어 정면을 가리켰다. 거기엔 웬 마을 하나가 있었는데 그 안에서 도마뱀 인간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저놈들이 있는 걸 보면 제대로 찾아오긴 한 것 같은데 이런 곳에 영주가 머물고 있다는 게 영 미심쩍었다.


그러니까 저 마을 안에 용이 있다는 건가? 용이라고 하면 으레 자신만의 둥지를 짓는 법인데 영주 놈은 이 마을을 자기 둥지랍시고 만든 건가?


어지간히 덜떨어진 놈이 아니고서야······.


“허윽, 허윽······.”


“고작 그거 뛰고 엄살은? 숨 쉬어. 할 일 해야지.”


숨차서 죽겠는데 무슨 할 일? 제리얀은 창백해진 얼굴로 꺽꺽거리다가 샬릭에 의해 강제로 도마뱀 인간 마을을 향해 던져졌다.


“으악!”


크게 지른 비명에 도마뱀 인간들의 주의가 그쪽으로 쏠렸다. 생각해보니 저 안에 도마뱀 인간이 무려 이백 명이나 있던가?


이거 잘하면 죽겠는데······.


“저건 또 뭐야?”


“침입자인가? 일단 잡아!”


입구 쪽에 있던 도마뱀 인가들이 우르르 달려오기 시작했다. 제리얀은 슬쩍 샬릭을 쳐다봤지만 그는 팔짱을 끼고 섰을 뿐 도와줄 기색이 아니었다.


그래, 그 빌어먹을 작전대로 하자 이거지. 제리얀은 입술을 깨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의 몸에서 강렬한 마력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타올라라!”


마력은 곧 거대한 불새로 변했다. 날카로운 괴성을 지르며 날아간 불새가 달려오던 도마뱀 인간들을 불태우며 지나갔다.


아무리 갑옷을 껴입어도 불을 상대론 어쩔 수 없는 법이다. 몸에 불이 붙은 도마뱀 인간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주문쟁이다!”


“습격이야! 다들 나와!”


입구의 소란을 눈치챈 도마뱀 인간들이 무기를 들고 우르르 달려 나왔다. 제리얀은 그 숫자를 보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으나 도망치진 않았다.


그는 화염 마법의 달인이었고 다수를 상대하는 데는 화염 마법만큼 효과적인 게 없었다. 그가 흩뿌린 화염이 도마뱀 인간들을 태우는 걸 넘어서 마을에까지 옮겨붙었다.


그건 사실 제리얀이 의도한 행동이었는데 마을에 불을 붙임으로써 저들을 당황하게 할 목적이었다.


“확실히 잘 싸우는군. 도움이 되니 어쩌니 하던 게 허세는 아니었던 모양이야.”


샬릭이 칭찬하자 제리얀이 식은땀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말했다.


“칭찬은 고마운데 이제 슬슬 도와주지 않을래? 마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어서······.”


“그 정돈 근성으로 이겨내.”


“아니, 이러다가 나 진짜 큰일 나!”


자기가 하겠다고 해서 시킨 일인데 왜 인제 와서 큰 소리인가? 하여튼 요즘 애들은 근성이 없어서 문제야.


샬릭이 쯧쯧 혀를 차며 한 발자국 나섰다. 이미 도마뱀 인간을 제법 죽였지만 아직도 많은 숫자가 남아 있었다.


그가 보기에 제리얀의 실력으론 그 많은 숫자를 혼자 감당하긴 어려울 듯했다. 도와주겠다고 설친 주제에 별 도움은 안 되는군.


샬릭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칼자루 위에 손을 올리고 칼을 뽑으려 할 때였다.


“이게 대체 무슨 소란이지.”


쿵쿵! 갑자기 땅이 울리며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의 시선이 일순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향했다.


마을 뒤쪽엔 커다란 동굴이 있었는데 샬릭이 보기에 목소리가 난 곳은 바로 저기였다. 그럼 저곳에 용이 있나?


마을의 소란을 눈치채고 이제야 모습을 드러내는 듯하여 약간의 기대를 했다. 그래, 용이라고 했지. 어떤 놈인지 얼굴이나 볼까.


쿵쿵! 연신 땅 울리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덩치를 가진 존재가 동굴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요, 용이다!”


제리얀의 새된 목소리가 울렸다. 아르샨데오, 이 일대를 지배하는 영주이자 강력한 용. 그 명성에 걸맞게 우러러봐야 할 정도로 덩치가 크다.


육중한 두 다리와 두꺼운 허벅지, 쭉 뻗은 목과 다리, 쩍 벌어진 입 안에서 반짝거리고 있는 날카로운 이빨, 거대한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앙증맞은 앞발까지······.


“···용?”


북부인은 책을 읽으면 힘이 약해진다고 믿어 대개 배움이 짧은 편이지만 샬릭은 온 대륙을 떠돌아다닌 덕분에 제법 아는 게 많다.


그가 가진 잡다한 지식 중에는 용 사냥꾼답게 용에 관한 것도 있다. 정확히는 용의 종류에 대한 것인데, 지금이야 용이라고 하면 하나뿐이지만 정보가 부족하던 먼 옛날에는 온갖 것이 용이라고 불렸다.


가령 사람을 한입에 꿀꺽 삼킬 만큼 거대한 뱀도 용이라 불렸고, 입에서 독 뿜는 도마뱀도 용이라 불렸으며 바닷속에서 불쑥 튀어나와 배를 습격하던 바다뱀도 용이라 불렸다.


지금 저기 있는 것도 한때는 용이라 불렸다. 날개만 없을 뿐, 진짜 용과 닮은 용모에 지성이 있어 몇몇 지역에선 용으로 모셔지곤 했었다.


그러다가 감히 용 행세를 하는 게 괘씸하다는 이유로 용들에게 집단적 사냥을 당해 멸종한 걸로 아는데.


그때 불리던 이름이 아마 ‘공포스러운 용’이었던가?


작가의말

요새 날이 너무 덥군요. 휴가 끝나고 출근해보니 끔찍하던데 다들 온열질환으로 인한 피해 없길 바라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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