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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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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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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4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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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DUMMY

“······용 사냥꾼?”


그것도 지나가던?


남자가 멍하니 있는 사이에 샬릭이 멈췄던 걸음을 옮겼다. 남자가 다급히 외쳤다.


“자, 잠깐만!”


샬릭은 남자의 외침을 무시하며 가던 길을 갔다.


“잠깐 기다려보라니까!”


남자의 말을 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 샬릭은 성큼성큼 걸어서 마을 입구까지 갔고 남자는 다급히 그 뒤를 따랐다.


“기다리라고 했잖나!”


자신을 쫓아온 남자를 보며 샬릭은 조용히 생각했다. 그런데 얜 뭔데 자꾸 쫓아오지.


“내가 멋진 남자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리 막무가내로 굴면 곤란하지. 순서 지켜. 내 손이라도 한 번 잡아보려는 사람들 줄 세우면 마을 한 바퀴하고도 반 바퀴야.”


순서는 뭔 놈의 순서?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하는 샬릭을 보며 남자가 말했다.


“내가 댁 손을 왜 잡아? 그보다 이름이 샬릭이라고 했나? 정말 영주를 죽이러 갈 셈인가?”


“그럼.”


너무나 당당한 대답에 남자가 당황했다.


“···왜?”


“내 맘이지.”


“···겨우 그런 이유로? 영주를 그냥 두면 저 마을 사람들이 위험해질 테니까, 뭐 그런 이유가 아니라?”


“내가 저 마을 사람들을 지켜줘야 할 이유가 뭔데? 두려움에 길들어져 반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사는 저 버러지 놈들을 내가 왜?”


지극히 북부인다운 발언이었다. 모든 북부인은 전사고 그들은 비겁하게 살아남을 바에야 당당하게 죽길 원했다.


그건 전사로서 칭찬할 만한 태도지만 모든 사람이 그들과 같이 살 수는 없다.


마을에 있던 사람 중 절반은 여자와 아이, 그리고 노인이었다. 그들에게 비겁하게 살지 말고 당당하게 죽으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건 부당한 일이다.


남자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 말은 그냥 흘려들을 수 없겠군.”


“그냥 흘려들어. 귀담아듣는다고 네가 뭘 어쩔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그거야······.”


······어쩔 도리가 있는 건 아니긴 하지. 남자가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한 뒤에 말했다.


“일단 너에게 내 정체를 밝혀야겠군.”


“아냐, 안 그래도 돼.”


“난 제리얀이다.”


“밝히지 말라니까.”


제리얀은 샬릭과 나란히 걸으며 말했다.


“샬릭, 너는 강하다. 그런 네가 보기에 저 마을 사람들은 비겁자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약자에게는 약자의 방식이 있다. 강자가 보기에 아무리 한심해 보이더라도 그걸 비웃을 수는······.”


“이봐.”


샬릭이 제리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너 요정이지?”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알긴? 후드를 써도 뾰족귀가 다 보이니까 알지.”


제리얀이 아차 소리를 내며 자기 귀를 만졌다. 이미 정체를 다 들킨 상황이니 더 숨겨봤자 소용없다고 여긴 것인지 그가 한숨과 함께 후드를 벗었다.


“그래. 난 요정이다. 그런데 그게 뭐 문제라도 되나?”


“문제가 될 수도 있지. 혹시 성이 어찌 되시나?”


갑자기 웬 통성명? 제리얀은 미간을 좁히면서도 성실하게 대답했다.


“하이록. 난 하이록의 제리얀이다.”


“하이록······.”


샬릭이 갑자기 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냈다. 겉장이 너덜너덜한 걸 보면 제법 오랫동안 사용한 것 같았다.


“제리얀 하이록은 없군. 적어둬야겠어.”


“잠깐, 그 수첩은 뭐지?”


“날 배신했던 요정의 이름을 적어두는 수첩.”


그딴 걸 왜 만드는 거지? 제리얀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허 소리를 냈다.


“아니, 잠깐만! 난 아직 배신한 적 없는데 내 이름은 왜 적는 거야?”


“모든 요정은 늦든 빠르든 언젠가는 배신해.”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내 오랜 경험에 의한 사실이야.”


제리얀이 그건 다분히 종족 차별적인 발언이라고 항의했지만 샬릭은 듣지 않았다. 그는 수첩의 목록을 하나 더 채운 것에 만족했다.


“그런데 왜 자꾸 따라오시나?”


“네가 영주를 죽이러 간다고 하니까.”


“그럼 우린 적이군.”


“우리가 왜 적이야?”


“너도 나랑 같은 사냥감을 노리고 있는 거 아닌가? 그럼 적이지.”


그게 뭔······. 제리얀은 어이가 없어서 자꾸만 한숨을 내뱉었다.


“우린 적이 아니야. 난 널 도우러 가는 거라고.”


“네가?”


너 따위가? 그런 얼굴로 쳐다보는 샬릭 때문에 제리얀은 약간 짜증이 치솟았다. 그러나 억지로 화를 억누르며 대답했다.


“···그래.”


“왜?”


“네가 일을 저질렀으니 같이 수습해주려는 거다. 네 영문 모를 비유에 따르면, 네가 싼 똥을 같이 치워주는 거지.”


“남의 용변에 관심이 많으시군. 취미가 독특한 모양이야.”


“······아니야, 이 자식아.”


샬릭이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돕겠다니 고마운 일이지만 요정의 친절은 영 믿을 수가 없는데.”


“···그냥 좀 믿어.”


샬릭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꺼지라고 하진 않았기에 제리얀은 그걸 암묵적인 동행 허락으로 받아들였다.


“뭐야, 왜 자꾸 따라와?”


······허락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제리얀이 한숨과 함께 말했다.


“내가 널 도와주겠다고 했잖아.”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제리얀은 대답하는 대신에 손가락을 튕겨 작은 불꽃을 만들었다. 그는 마법사였다.


“나는 제법 강한 마법사야. 분명 너한테 도움이 될 거다.”


“너 내가 아까 한 말 못 들었냐?”


“네가 뭐라고 했는데?”


샬릭이 칼자루 위에 손을 올렸다. 단지 그것뿐이었는데 마치 검이 우는 것처럼 웅웅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용 사냥꾼이라고 했잖아.”


“···그래, 그랬었지. 용 사냥꾼이라면 북부인이라는 뜻이겠군. 북부인은 전부 뛰어난 전사지만 아무리 그래도 혼자서 영주를 이길 수는 없어.”


글쎄, 가능할걸. 샬릭이 말했다.


“영주가 혹시 제국공이라도 되나? 그럼 좀 위험하겠는데.”


“아니. 하지만 이 땅의 영주는 몹시 강해. 무려 용이니까.”


순간 샬릭이 홱 고개를 돌렸다.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방금 무슨 말을 했지?”


“뭔 말을 하긴? 영주가 용이라니까? 용 모르나? 북부인이면 모를 수가 없는데?”


당연히 용이 뭔지 안다. 북부인이니까 너무나도 잘 안다. 그런데 용이라니? 용이 왜 영주 행세를 하고 있나?


“그 말 진짜인가?”


“영주가 용이라는 말? 당연히 진짜지. 왜 이 근방의 도마뱀 인간들이 영주에게 복종한다고 생각하나? 영주가 용이니까 그런 거지. 도마뱀 인간들은 본능적으로 용에게 충성하잖나.”


샬릭은 테레모가 알려줬던 정보를 떠올렸다. 용이라, 분명 그걸 찾아서 가고 있긴 했지만 테레모가 알려줬던 곳과 위치가 좀 다른데.


“그래서 내 도움을 받을 마음이 들었나? 아무리 너라도 혼자서 용을 상대하긴 어려울걸.”


샬릭은 제리얀을 가만히 쳐다봤다. 사실 영주가 정말 용이라 할지라도 크게 위험하지는 않았다. 자신은 용 사냥꾼 아닌가.


하지만 구태여 돕겠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다. 영주의 거처엔 도마뱀 인간들이 우글거릴 텐데 그들만 정리해줘도 싸움에 큰 도움이 될 터다.


“뭘 어떻게 도와주시려고?”


“샬릭, 아르샨데오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지?”


“그게 누군데.”


“···네가 지금부터 죽이러 갈 영주의 이름이다. 아니, 뭐 아무것도 모르면서 뭘 죽이러 가겠다는 거냐?”


“이름 모르면 목에 칼 안 들어가나? 이름 몰라도 죽일 수는 있어.”


“···이 무식한 놈.”


“내가 진짜 무식한 놈이었으면 네 머리에 구멍부터 냈을걸.”


제리얀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잘 들어, 샬릭. 아르샨데오는 우습게 볼 상대가 아니야. 무려 용이라니까.”


“아니, 우습게 봐도 돼. 난 무려 용 사냥꾼이니까.”


제리얀은 샬릭이 도마뱀 인간 병사를 학살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인간의 몸으로 그런 무용을 보여주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아르샨데오는 용이다. 도마뱀 인간 따위와는 격이 다르다.


북부인이라서 두려움이 없는 걸까, 아니면 그냥 소문대로 모든 북부인은 정신병자인 걸까. 제리얀이 한숨과 함께 말했다.


“···아르샨데오의 거처는 여기서 한나절 정도 떨어진 곳에 있어. 이제 금방 어두워질 테니 오늘은 근처에서 야영하고 내일 아침 일찍 떠나야 할 거다.”


샬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제리얀과 함께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노을이 졌던 하늘에 어느새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땔감을 좀 모아오지.”


제리얀이 여기저기서 땔감을 모아왔다. 그리고 딱 소리가 나게 손가락을 튕겨 불꽃을 일으켰다.


“어때?”


화르륵! 온기를 내뿜으며 타오르는 모닥불을 보며 제리얀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가?”


“내 마법이 어떠냐는 말이야. 일행 중에 마법사가 있고 없고는 정말 큰 차이가 있지. 벌써 내 존재가 감사하게 여겨지지 않나?”


글쎄, 별 대단한 재주는 아니지 않나? 용을 죽이고 그 힘을 얻은 샬릭에게 있어서 불꽃 좀 일으키는 건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다.


샬릭은 무심하게 말했다.


“식사나 해.”


샬릭은 가방에서 딱딱한 빵과 말린 고기를 꺼냈다. 그리고 꼬챙이에 자른 빵과 고기를 꽂더니 모닥불에 구웠다.


“······.”


그리고 혼자 맛있게 먹고 있는데 제리얀이 쳐다봤다. 샬릭이 입에 묻은 기름을 손등으로 훔치며 말했다.


“왜?”


“아, 아니야. 난 단지 식사하라길래 같이 먹자는 소리인 줄 알았지.”


“구걸도 참 창의적으로 하시는군.”


제리얀은 한숨을 내뱉더니 자기 가방에서 먹을 것을 주섬주섬 꺼냈다.


“···샬릭. 내일 정말 영주를 죽일 생각이라면 우린 이제부터 작전을 짜야 해.”


제리얀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샬릭은 구운 고기를 질겅질겅 씹으며 말했다.


“작전이라면 있지.”


“···뭔데?”


“네가 아르샨데오의 부하들을 맡는다.”


마법사의 진가는 다수와의 싸움에서 나타난다. 그러니 제리얀이 아르샨데오의 부하를 맡는 게 이치에 맞다.


“그리고 내가 아르샨데오를 죽인다.”


샬릭은 전사다. 용을 쓰러트리려면 강력한 전사의 힘은 불가결한 요소다. 그러니 그가 용과 싸우는 게 옳다.


“듣기엔 괜찮은데······.”


간단하긴 해도 나쁘지 않은 작전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걸 어떻게 해내냐는 것이다. 제리얀은 차분히 샬릭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


아무리 기다려도 다음 말은 없었다.


“···그게 끝이야?”


“그럼 또 뭐가 있어야 하나?”


제리얀이 참다못해 말했다.


“이 무식한 놈아, 그런 건 아무도 작전이라고 안 해! 왜, 용도 그냥 칼로 찌르면 죽는다고 하지 그러냐?”


용도 칼로 찌르면 죽는 거 맞는데. 샬릭이 무심히 물었다.


“그럼 너는 대단한 작전이라도 있나 보지?”


“물론 있지, 작전······.”


제리얀이 고개를 숙인 채로 생각에 잠겼다. 한참 뒤에 그가 말했다.


“···이렇게 하자고.”


“말해 봐.”


“네가 아르샨데오를 맡는다.”


“그래.”


“그리고 내가 아르샨데오의 부하를 맡는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작전인데, 샬릭이 말했다.


“내가 했던 말에서 순서만 바꾼 것 아닌가?”


“···순서가 중요한 거야, 순서가.”


이 뻔뻔한 요정 놈이? 샬릭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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