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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찢는 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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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7.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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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3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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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3

DUMMY

* * *


누군가 그랬다. 방황하는 자들이 모두 길을 잃은 건 아니라고.


샬릭 역시 그랬다. 남들 눈엔 그가 일거리를 찾아 정처 없이 떠도는 용병처럼 보일 테지만 그에겐 가야 할 곳이 있었다.


그는 용 사냥꾼으로서 용을 사냥해야 할 의무가 있다. 모든 북부인은 용을 사냥하기 위해 태어났으니까. 어째서냐고? 그건 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이다. 북부인과 용은 서로 투쟁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니까.


북부의 용들이 들었다면 제발 미친 소리 좀 하지 말라고 할 테지만 어쨌건.


샬릭은 지금 제 의무를 다하기 위해 방랑하는 중이었다. 테레모에게 들은 정보를 따라 용 서식지로 향하다가 어느 마을에 잠시 들렸다.


여기서 잠깐 휴식하며 식량을 보충하려 했는데 뭔가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사실은 샬릭의 기분은 몹시 언짢게 했다.


“실망스럽군!”


단순히 사건에 휘말렸기 때문에 기분이 나쁜 게 아니다. 뭔가 일이 터졌다고 한들 압도적인 무력은 그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


“아주 실망스러워!”


샬릭의 기분이 나빠진 건 간단한 이유다.


바로 단상 위에서 짝 소리가 나게 채찍을 휘두르고 있는 저 존재 때문이다. 도마뱀을 닮은 이족보행 생물. 샬릭이 알기로 저건 도마뱀 인간이다.


‘용도 아닌 새끼가 꺼드럭거리기는?’


도마뱀 인간은 용의 먼 친척이다. 물론 진짜 용에 비하면 한없이 약해빠졌지만 그래도 생김새가 비슷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그들이 용의 하수인으로서 다른 종족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이유이다.


“정말 실망스럽기 그지없어! 내가 분명히 말했지! 할당량을 반드시 채우라고 말이야! 그런데 이게 뭐냐? 할당량을 채우라는 내 말이 우습나? 아니면 위대한 존재에게 반기라도 들겠다는 거냐?”


샬릭이 여기 와서 대충 듣기로는 마을 근처에 광산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채굴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마을 주민들이 호된 벌을 받는다고 했던가?


“죄, 죄송합니다. 저희가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매일 같이 노력을 했으나······.”


늙은 인간 촌장이 징수관에게 허리를 숙이며 굽신거렸다. 하지만 징수관은 짝 소리가 나게 채찍으로 바닥을 후려치며 두 눈을 뱀처럼 번뜩였다.


“변명 따윈 듣기 싫다! 내가 원하는 건 할당량을 채우는 것이지, 그깟 변명 따위가 아니야!”


짝!


위협적으로 바닥을 내려치는 소리. 매질을 당한 개가 몽둥이만 들어도 움찔하듯이,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그 소리만 들어도 몸을 움찔거린다.


그리고 징수관은 그 사실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짝! 짝!


채찍이 연신 바닥을 때릴 때마다 사람들의 어깨는 더욱 움츠러들었다. 이 순간 징수관은 광산 마을에 강림한 용과 다를 것이 없었다.


“벌을 내리겠다! 할당량을 더 올리도록 하마. 그리고 이번에 부족했던 양도 벌충해라!”


“가, 갑자기 할당량을 더 올리시면 감당할 수 없습니다! 당장 지금 할당량도 채우기 힘든데······.”


“내가 변명하지 말라고 했지!”


짝!


채찍이 촌장을 때릴 듯 가깝게 날아왔다. 바닥이 부서지고 돌조각이 튀지만 아무도 나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몸을 떨기만 했다. 그들은 학습된 것이다. 두려움이라는 채찍에.


“할당량 채우는 게 그토록 어렵나? 그냥 들어가서 철광석만 좀 더 캐오면 되는 거잖아. 지금보다 두 배만 더 열심히!”


“그, 그게······. 광맥이 점차 고갈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할당량을 채우기가······.”


“그래, 조짐이 보이는 거지. 단지 그것뿐이고 고갈이 된 건 아니잖아?”


“하지만 할당량을 채우려면 더 안쪽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럼 갱도가 무너질 위험이 있어서······.”


“그래서 무너졌나?”


“네?”


징수관이 가늘고 길쭉한 혀를 날름거렸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에는 싸늘함만이 감돌았다.


“그래서 갱도가 무너졌냐고. 안 무너졌는데 웬 호들갑이지? 지금까지 안 무너진 걸 보면 안쪽으로 더 들어가서 작업해도 무너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는 것 아닌가? 왜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지?”


샬릭이 쯧 하고 혀를 찼다. 그는 용 사냥꾼이며 용을 닮은 모든 걸 혐오했다. 진짜 용이 저리 꺼드럭거렸어도 당장 죽어버렸을 텐데, 고작 도마뱀 인간 따위가 건방지게 굴다니?


본래 남들 죽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지만 지금만큼은 그냥 두고 보기 힘들었다.


“징수관 하나에 병사 열.”


샬릭은 가만히 숫자를 셌다.


그는 용 사냥꾼이지만 꼭 용만 죽여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었다. 용을 닮은 것들, 용과 붙어먹는 놈들, 그냥 마음에 안 드는 놈들 등등.


저기 있는 도마뱀 인간은 용을 닮았고, 용과 붙어먹으며 심지어 마음에 안 들기까지 했다. 그럼 안 죽일 이유가 있나?


“안 하는 걸 추천하지.”


낮고 굵은 목소리. 마치 동굴 속에서 말하는 듯이 울림이 있는 목소리였다. 한 마디만큼 뽑힌 샬릭의 검이 빛을 삼켰다.


“뭘?”


얜 또 뭐야.


샬릭의 왼쪽엔 망토를 두르고 후드로 얼굴을 가린 남자가 있었다. 그 역시 외지인인 듯했다.


“지금 네가 하려는 거 전부.”


“내가 뭘 하려고 했는데.”


남자가 고개를 숙인 채로 중얼거렸다.


“도마뱀 놈들을 죽이려고 했잖나.”


샬릭이 징수관 쪽으로 쳐다봤다. 그는 여전히 채찍을 휘두르며 촌장에게 성질을 부리고 있었다.


“그래서?”


“침착하게 생각해. 지금 여기서 징수관을 죽인다고 해봤자 아무것도 해결 안 돼. 저 녀석은 그냥 영주의 하수인일 뿐이니까. 징수관을 죽이면 화가 난 영주가 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릴 거다. 넌 그걸 감당할 수 있나?”


“어.”


“그래, 당연히 못 하겠지. 알량한 정의감으로 상황을 그르치지 마라.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 아, 아니 뭐? 뭐라고?”


샬릭이 벌떡 일어났다.


“내가 알아서 한다고.”


징수관이 그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쉬익 소리를 냈다.


“저 새낀 또 뭐야? 뭐 불만 있어? 생긴 것부터가 반항적으로 생긴 게······.”


난 투구 쓰고 있는데 내 얼굴 뭘 보고? 샬릭이 쯧 하고 혀를 차는 순간, 짜증스럽게 외치던 징수관의 머리가 터졌다.


“···어?”


모두가 당황한 사이에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도마뱀 인간이 외쳤다.


“마법사다! 마법사가 있다!”


멍하니 있던 도마뱀 인간들이 정신을 차리고 샬릭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멀리서 징수관의 머리를 터트린 샬릭을 마법사라 단정했다.


“아니야······.”


하지만 싸움을 지켜보던 남자는 샬릭이 마법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로 근처에서 샬릭이 뭘 했는지 봤으니 착각할 수가 없었다.


“씨, 세상 어떤 마법사가 돌멩이를 던져서 머리를 터트리냐고······.”


샬릭은 마법 따윈 쓰지 않았다. 그냥 돌멩이를 던졌을 뿐이지. 물론 그 정도 재주면 거의 마법에 가깝긴 하지만······.


“죽여!”


도마뱀 인간들이 무기를 들고 샬릭을 향해 달려들었다. 샬릭은 곧장 칼을 뽑았고 재빨리 휘둘렀다.


달려오던 도마뱀 인간의 머리가 하나둘씩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분명 열 명이 달려들었는데 샬릭의 지척까지 다가오고도 살아남은 도마뱀 인간은 겨우 다섯 명에 불과했다.


“죽여! 아무리 잘나봤자 한 명뿐이야!”


샬릭은 웃으며 칼로 도마뱀 인간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리고 재빨리 칼을 회수하며 왼쪽에서 달려오는 도마뱀 인간의 입을 갈랐다.


순간적으로 생긴 공격의 공백을 노리고서 도마뱀 인간이 달려들었으나 샬릭이 휘두른 왼쪽 주먹에 얼굴을 맞았다.


콱!


주먹에 맞고 쓰러진 도마뱀 인간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갑작스러운 충격이 뇌를 뒤흔들었을 탓에 바로 일어나지 못했다.


샬릭은 망설임 없이 그 머리를 밟았고 짓뭉개진 눈알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제 남은 것은 둘.


두려움을 모르는 도마뱀 인간답게 남은 둘은 도망치지 않고 샬릭에게 달려들었다. 번쩍이는 칼날이 정면에서 덤벼든 도마뱀 인간의 얼굴을 크게 그었다.


얼굴은 반으로 갈라져 어느 쪽이 먼저랄 것도 없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와 동시에 마지막 남은 도마뱀 인간이 달려들었다.


“죽어라!”


공격은 날카로웠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가려진 틈을 노려 내뻗은 칼이 샬릭의 머리를 노렸다. 이건 확실히 먹힌다. 그럴 줄 알았다.


“···거짓말이지?”


도마뱀 인간의 근력은 인간의 두 배가 넘는다. 인간보다 숫자가 적은 그들이 인간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씨, 칼을 무슨 맨손으로······.”


하지만 샬릭은 그 도마뱀 인간이 휘두른 칼을 붙잡았다. 아무리 건틀릿을 꼈다고 해도 이게 가능한가?


부들부들 떨리는 칼날은 샬릭이 힘을 주자 유리처럼 깨져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도마뱀 인간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다가 발작적으로 함성을 외쳤다.


그는 맨손으로나마 싸움을 이어나갈 모양이었다. 그가 주먹을 휘둘렀다.


“크악!”


그러나 힘껏 휘두른 주먹은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반대쪽에서 날아온 주먹이 도마뱀 인간의 송곳니를 완전히 박살 냈다.


부러진 이가 우수수 쏟아지는 가운데, 불쑥 뻗어 나온 손이 도마뱀 인간의 목을 붙잡고 그대로 돌려버렸다.


뿌드득! 목뼈가 부러진 도마뱀 인간은 힘없이 쓰러졌다.


“지, 징수관과 그 병사들이······.”


마을 사람들 모두가 이 참혹한 학살극을 보고서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껏 반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도마뱀 인간이 저리 쉽게 죽다니?


모두가 끔찍한 광경을 멍하니 보고만 있을 때,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촌장이 비틀거리며 샬릭에게 다가왔다.


감사 인사라도 하려는 걸까? 아니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샬릭이 도마뱀 인간을 전부 죽였건만 그는 기뻐하지 않았다. 촌장은 오히려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화를 낼 뿐.


“이 정신 나간 놈! 징수관을 죽이면 어떡하나! 이제 영주가 군대를 이끌고 여기로 찾아올 거라고! 그럼 우린 다 죽는 거야! 이제 어쩔 거냐! 대체 뭔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한 거냐고!”


“똥 마려운 것 같아서 대신 싸줬더니, 이젠 치우는 것도 대신해달라고 할 셈인가?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군.”


그럼 그냥 자기만 용변 본 게 아닌가? 그리고 자기가 쌌으면 자기가 치우는 게 당연하지 않나? 대체 뭔 비유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촌장의 말문이 막혔다.


“그래야 할 이유는 없지만 난 착하니까 한 번만 도와주지. 영주는 물론이고 남은 놈들까지 싹 치우고 올 테니까 돈 준비해둬.”


샬릭이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정말로 영주를 죽이러 갈 생각인 듯했다.


“어, 어어?”


모두가 당황하고 있는 가운데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남자가 얼른 정신을 차렸다. 그는 고개를 세차게 한 번 흔든 후에 샬릭의 뒤를 쫓아 달렸다.


“이, 이봐!”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샬릭이 잠깐 멈췄다.


“왜?”


“넌 대체 누구지? 정체가 뭐야?”


도마뱀 인간 병사 열을 혼자서 쳐죽이는 실력은 과연 범상치 않다. 그러나 더욱 신경 쓰이는 것은 이젠 영주까지 죽이러 가겠다는 저 무심한 태도다.


“샬릭.”


“아니, 이름을 물은 게 아니라······.”


그럼 또 뭐? 자기소개라도 하라는 건가? 샬릭이 대충 지껄였다.


“지나가던 용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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